소설리스트

254화 (254/256)

〈 254화 〉 새 가족은 가족이 되었습니다. ­2부 完­

* * *

『갑작스러운 은퇴 선언으로 팬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던 배우 임신혜 씨가, 최근 넷째 임신 소식을 알려와 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임신혜 씨는 이미 ‘프로 골퍼 진소영’, ‘배우 진선후’, ‘아이돌 진미소’까지, 스타 삼 남매를 키워내 ‘시대의 어머니 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뒤늦게 네 번째 아이까지 임신해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배 속의 아이는 임신혜 씨가 모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수정한 시험관 아기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내에는 총 5곳의 정자은행이 운영 중인데요. 임 씨가 어떤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았는지, 또 정자 기증자는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한편, 비혼모인 임신혜 씨가 인공수정으로 임신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회 각층에서는 많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배우자의 동의가 없으면 인공수정을 받을 수 없어 비혼모의 인공수정은 사실상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의료인이 이 법을 어기고 인공수정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한편, 이 시기에 임신혜 씨가 익명으로 A 여성의학 연구소에 거액의 기부금을 낸 것이 알려지면서, 해당 연구소에서 불법으로 인공수정을 받은 대가성 기부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임 씨 측은 ‘여성 의료 발전을 위한 기부금일 뿐 다른 의도는 없다’며 논란을 일축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임신혜 씨의 전 소속사 J­up의 한 관계자는 ‘임 씨가 이전부터 인공수정에 관심을 많이 가져왔다. 은퇴 후 넷째를 가지고 싶다는 이야기도 종종 했었다.’라며 임 씨의 불법 인공수정 가능성을 암시했습니다.』

『임신혜 씨의 아들인 배우 진선후 씨는 유튜브 개인 방송을 통해, ‘어머니는 인공수정을 한 사실이 없다. 내가 배 속의 아이의 아버지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팬들은 진 씨가 어머니 임 씨의 불법 인공수정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짓으로 아이 아버지 행세를 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임신혜 씨는 작년에도 미혼모 가족 협회에 1억 원을 기부하는 등, 미혼모 가족 지원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임 씨는 기부 당시 ‘나는 운 좋게 많은 분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아이들을 바르게 키울 수 있었지만, 많은 미혼모 가족들은 지금도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모든 어머니들이 걱정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며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임신혜 씨의 인공수정 시술이 사실로 밝혀지면 임 씨가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들끓고 있습니다. 여성계에서는 ‘여성의 임신권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경제적, 도덕적 자질이 중요한 것이지 배우자 유무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민의당 A 의원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존중받는 현대 사회에 있을 수 없는 후진적 법률’이라며 ‘사실상 ‘법률 공백’ 상태인 비혼모 출산권을 보장하는 법제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비혼모의 인공수정과 출산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하라는 사회 각층의 요구가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배우 임신혜 씨의 임신과 관련한 논란은 이번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어서──』

『배우 진선후 씨는 기자회견을 열어 ‘어머니 임신혜 씨는 인공수정을 받은 일이 없으며, 여성의학 연구소에서 찍었다는 사진은 합성’이라고 다시 한번 밝혔습니다. 전날 어머니 임 씨가 서울의 모 여성의학 연구소에서 찍은 인증 사진이 확산된 데 따른 대응으로──』

『팬들은 이제 더 이상 배우 임신혜, 진선후 모자를 괴롭히지 말아 달라며 성명문을 발표하며──』

* * *

언론 플레이는 성공적이었다.

이것도 다 엄마의 임신을 진단해준 산부인과, 그리고 인공수정 전문 여성의학 연구소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언론은 우리를 괴롭히기만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그 언론을 반대로 이용해줬다.

방법은 간단했다.

엄마가 인공수정을 ‘받은 듯한’ 정황 증거를 뿌려놓는 것만으로도 언론은 알아서 가짜 정보를 퍼뜨려줬다. 엄마의 임신을 ‘혼외정사를 통한 불의의 임신’이 아니라 ‘인공수정을 통한 자주적 임신’으로 알아서 포장해준 것이다.

정황 증거라는 것도 별것 없다.

예를 들어, 여성의학 연구소에 낸 거액의 기부금이라든가.

예를 들어, 연구소에서 찍은 기념사진이라든가.

예를 들어, 평소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인공수정에 관한 상담을 자주 했다는 인터뷰라든가.

떡밥을 뿌리듯 그럴듯한 정보를 흘리고 다니면, 미디어에서는 알아서 그 떡밥을 주워다 기사로 내주었다.

물론 그 모든 게 ‘의혹’에 불과했지만, 의혹도 모이면 진실이 되는 법.

항상 강경한 대응만 해오던 임신혜 패밀리가 이번에는 유독 소극적으로 대응한 탓도 있을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선 넘는 기사나 댓글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은커녕 소극적으로 부정하는 입장문만 발표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긴가민가하던 언론들도 떡밥을 물었다. ‘임신혜 인공수정설’을 진실인 양 포장해 기사를 내보냈다.

덕분에 지금은 엄마의 인공수정 임신은 이미 세간에서 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내가 애 아빠라고 주장해도 아무도 진지하게 믿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막둥이 동생과 가족을 지키려는 진선후의 헌신으로 포장되고 있다. 항상 봐왔던 ‘진선후 미담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논란에 대해 해당 여성의학 연구소나 산부인과에서도 적당히 발뺌만 할 뿐, 명확히 아니라는 증거를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의혹만 점점 깊어지고 누구 하나 나서서 고발하는 사람도 없었다. 국민 여론이 우리 편이기도 했고, 만약 찔렀다가 아니면 디스매치처럼 멸망을 각오해야 했으니 누구도 총대를 메지 않았다.

뭐, 만약 누군가 멸망을 각오하고 찔러서 조사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걱정은 없었다.

애초에 인공수정 시술 따위 처음부터 받은 적이 없으니까.

엄마 배 속의 아이는 나와 엄마가 함께 만든 사랑의 결실이니까.

* * *

──6개월 후.

엄마는 크게 부푼 배를 안고서 소파에 앉아 쉬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엄마의 다리를 열심히 주무르고 있었다. 언젠가 입원해 있던 나에게 엄마가 해줬던 것처럼.

“엄마.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

“응. 없어.”

“정말이야?”

“정말이라니까.”

엄마는 웃는다.

엄마는 늘 괜찮다고만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엄마가 걱정돼서 어쩔 줄을 몰랐다.

임신 중에는 지금처럼 다리가 붓는 일도 종종 있었다.

엄마는 분명 노산이고, 남들보다 훨씬 더 신경을 써야 했다.

그래서 나도 최근엔 스케쥴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가능한 엄마 옆에 있으려 노력한다.

──분명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겠지.

아이가 태어나기 전, 지금 엄마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분명 엄마를 아이에게 빼앗겨버릴 테니까.

“아. 수아 씨잖아?”

한편, TV에 나오는 익숙한 얼굴에, 엄마는 반가운 듯 목소리를 냈다.

“그, 그러네.”

……하지만 나는 마냥 반가워할 수만도 없었다.

지금 나오는 뉴스의 내용 때문이다.

『다음 뉴스입니다. 최근 비혼모 인공수정이 합법화되면서 많은 비혼 여성들이 아이를 가지기 위해 여성 의학원을 찾고 있는데요. 배우 황수아 씨도 연예인 5호로 ‘인공수정 비혼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황 씨는 SNS를 통해 근황을 밝히며 ‘비혼자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세상이 되어 기쁘다’며──』

“……선후 너.”

입을 벌리고 TV를 보던 엄마가 나에게 고개를 돌린다.

이걸 혼내야 할지 칭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헤헤.”

나는 바보처럼 웃으며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나도 억울하다.

수아 누나는 나와 한 마디도 상의하지 않고 아이를 가졌으니까.

나한테는 임신했다는 사실만 사후보고로 알려왔을 뿐이었다.

솔직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수아 누나는 본인 혼자 책임지고 키우겠다고 했다. 벌어놓은 돈은 나보다 많을 테니 아이 낳고 키우는 데 어려움은 없겠지.

물론 나도 도울 일이 있다면 돕겠지만, 가정이 있는 사람으로서 다른 집 살림까지 신경 쓰는 건 어떨까. 그렇다고 내 아이가 분명한데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고.

나로선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게다가 수아 누나뿐만 아니라…….

……아니. 이쪽은 생각하지 말자. 나는 모르는 일이다. 모르는 일이라고.

“엄마. 오랜만에 어때?”

이전보다 좀 더 커진 듯한 엄마의 가슴에 슬쩍 손을 올린다.

수아 누나의 임신 뉴스에 기분이 나빠진 엄마의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 손등을 찰싹 때려 떨어뜨렸다.

“안 돼.”

엄마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체.”

임신 판정을 받은 후, 엄마는 좀처럼 하게 해주지 않는다.

자궁수축이니 뭐니, 배 속의 아이에게 안 좋다는 얘길 들으면 나도 강하게 나설 수가 없었다.

억울하다.

의사 선생님도 가끔은 괜찮다고 했는데.

노산이니까 불안한 건 알겠지만, 가끔은, 정말 가끔은 괜찮지 않을까.

손이나 입으로는 해주더라도 본방이 없으면 섭섭하단 말이지.

후회스럽다. 왜 아이를 가지겠다고 했을까.

장장 10개월 동안 참아야 한다니.

아아. 엄마가 옆에 있는데도 엄마가 그립다.

“선후야. 대신 피아노 쳐줄래?”

피아노가 어떻게 섹스 대신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어머니!!

……하지만 나는 어떤 불평도 할 수 없었다.

“알았어.”

엄마의 손을 잡고 부축해 내 방으로 모신다.

허리에 손을 대고서 느릿하게 걷는 엄마.

그런 모습에서조차 우아함이 배어 나온다.

엄마를 침대에 앉히고,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어떤 곡을 쳐 드릴까요, 사모님?”

“녹턴 2번 쳐주세요, 새싹이 아빠.”

“또?!”

“새싹이가 듣고 싶대.”

새싹이.

우리 딸의 태명이다.

단단한 땅을 뚫고 나와 큰 나무로 자라라는 의미로 지었다.

그나저나 또 녹턴 2번이라니. 엄마는 질리지도 않는 걸까.

나도 쇼팽은 좋아하지만 매일 2, 3번씩 치다 보니 이미 한참 전에 질려버렸다.

“아빠, 멋있게 쳐주면 엄마가 상 준대요.”

엄마가 배 속의 아이 흉내를 내서 말한다.

“진짜?!”

큭큭큭.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들려주마! 이 아빠가 연주하는 최고의 쇼팽을!

연주가 끝난 뒤엔 임신한 엄마 임신혜와 임신 섹스다!

­디링.

연주를 시작한다.

의욕에 넘쳐 피아노를 치는 나.

가만히 눈을 감고서 내 연주를 감상하는 엄마.

그리고 엄마 배 속에서 얌전히 아빠의 연주를 듣는 아이까지.

그렇게──어느 ‘새 가족’의 이야기가 끝나고.

세상에서 가장 화목한, ‘가족’의 이야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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