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3화 〉 임신혜는 임신해
* * *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
맞잡은 엄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임신입니다, 임신입니다, 임신입니다.
그 말이 내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메아리쳤다.
임신했다.
엄마가 임신했다.
엄마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
사실 기대는 하고 있었다.
이렇게 젊은 엄마가 폐경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차라리 임신이라고 하는 편이 훨씬 개연성 있었다.
그러니까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속으로는 계속 임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결과를 듣자 왠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내 기분은 침착했다.
선생님의 표정이 유독 심각해 보여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이 순탄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 어디서 뒤통수를 맞아도 괜찮도록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조금 어려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산모님. 혹시 태아 아버지는…….”
“접니다.”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바로 알았다.
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했다.
“선후야.”
엄마는 복잡한 얼굴로 맞잡은 손에 힘을 준다.
‘말하지 마.’
그렇게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감출 생각이 없었다.
“선생님. 제가 아이 아버지 됩니다. 혹시 아이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아직 임신 초기라……그건 좀 더 자세히 검사해봐야 합니다.”
휴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 표정이 워낙 심각해서 아이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는 줄 알았다. 엄마는 분명 노산이고, 산모의 나이가 많을수록 장애나 기형아일 확률이 높다고 하니까.
선생님은 단순히 엄마에게 남편이 없는 점이 신경 쓰였던 것 같다.
여배우 임신혜가 여자 혼자 손으로 아이 셋을 키운 건 유명한 일화니까, 의사 선생님이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겠지.
“진선후 배우님이시죠? 임신혜 산모님 아들이신.”
선생님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진의를 살피는 듯한 눈으로 묻는다.
나는 그 물음에 당당하게 대답했다.
“네. 그리고 엄마 배 속 아이의 아빠이기도 합니다.”
내 대답에 엄마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끼어들었다.
“진선후, 입 다물어. 선생님도 잊어주세요. 이 애 정신이 불안해서 그런 거니까.”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안에서 있었던 대화는 절대 밖으로 새지 않습니다.”
선생님 말씀에 엄마는 안도했다.
그리고 다시 나를 타이른다.
“선후야. 엄마가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지?”
엄마가 뭘 걱정하는지는 안다.
‘임신혜 배 속의 아이는 의붓아들인 진선후의 씨앗이다. 두 사람은 사실 금단의 관계다.’
그 사실이 퍼져 나에게 불똥이 튀는 걸 엄마는 걱정하고 있었다.
엄마는 당신 혼자 모든 오명을 뒤집어쓰려 하고 있었다. ‘배우 임신혜가 혼외정사를 통해 아빠가 누구인지 모를 아이를 뱄다’고.
분명 엄마의 임신을 주제로 온갖 퇴폐적인 이야기가 나돌겠지만, 엄마는 그 모든 걸 감수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마음을 정했다.
“엄마, 미안해. 그래도 역시 안 되겠어.”
“진선후!”
그전까진 반반이었다.
엄마가 전부 책임질 테니 너는 모른 척하라는 엄마의 말을 따를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의사 선생님의 표정을 보고 마음을 정했다.
‘분명 배우 임신혜에게는 남편이 없는데, 이 아이는 어디서 나온 거지?’
그렇게 살피는 듯한 선생님의 눈길을 보고, 나는 마음을 정했다.
선생님은 그럴 생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눈빛은 나에게 칼날처럼 박혀왔다.
지금은 선생님 한 사람의 눈이지만, 곧 그 눈이 수천 명, 수만 명의 눈으로 바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엄마 혼자 모든 걸 감당하게 할 순 없어. 말하게 해줘, 엄마. 그 아이는 내 아이라고.”
“너 정말……!”
사실을 밝히는 게 엄마에게나 나에게나 더 안 좋을 수 있다는 건 안다.
미혼모를 보는 호기심 어린 시선이, 양아들의 씨앗을 받은 반윤리적 인간을 보는 비난 어린 시선으로 바뀔 거란 것도 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이 마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건 본능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엄마와 아이를 지키겠다는 본능.
엄마에게 비난이 쏟아질 걸 알면서도 모른 척 숨어 있을 수는 없다는 본능.
엄마 혼자 가시밭길을 걷게 할 바에는 함께 지옥에 떨어지겠다는 본능.
그런, 바보 같은 남자의 본능이었다.
“어흠.”
선생님은 작게 헛기침을 했다.
“두 분 마음은 알겠습니다. 어머님 마음도, 그리고 아버님 마음도.”
어머님, 아버님.
그 단순한 단어가 내 마음에 꽂혔다.
진선후에게 새로운 호칭이 생긴 것이다.
책임져야 마땅한 호칭이.
무심코 가슴이 뜨거워졌다.
“진선후 배우님. 아버지로서 책임지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그런 태도는 임신부에게 스트레스가 될 뿐이란 거 명심하세요.”
“윽. 네.”
냉정한 말로 혼나버렸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 내 태도는 폭주나 다름없으니까.
그래도 나로선 선생님이 아이 엄마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준다는 걸 알 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지금은 임신부의 의견을 따라주세요. 아버님 의견도 중요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어머님이니까요. 정신적인 부담이 임산부에게 안 좋다는 것쯤은 당연히 아시죠?”
“하지만 선생님. 저는 제가 만든 아이로 인해 어머니께서 비난받을 걸 알면서도 비겁하게 어머니 뒤에 숨어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걸 보고만 있을 자신도 없습니다. 제 아이를 평생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도 않습니다.”
엄마가 욕을 먹는다면 차라리 나도 같이 욕을 먹는 게 낫다. 엄마 혼자 비난받는 걸 보고만 있을 바에야 함께 지옥에 떨어지는 게 낫다고, 나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선후야. 안 돼. 이번만 엄마 말 들어. 응?”
엄마가 슬픈 눈으로 애원한다.
아아. 나는 참으로 불효자식이구나.
엄마에게 이런 얼굴을 하게 만들다니.
부담감이 가슴에 턱 눌러앉았다.
나는 괜한 선택을 한 걸지도 모른다.
가장 바라왔던 일이 막상 현실이 되자 총칼이 되어 나와 엄마를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었다.
나는 선택한 책임을 져야 했다.
“엄마. 모든 부담을 엄마에게만 지우고 싶지 않아. 만약 나랑 엄마 입장이 반대였으면 엄마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잖아?”
“선후야…….”
진선후의 이름을 쓰면 커버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쌓아놓은 까방권으로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것도 어떻게든 미담으로 포장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며 해결책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 아버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도 비난은 훨씬 거셀 겁니다. 저도 의사로서 이런저런 케이스를 많이 보지만, 이번처럼 충격받은 건 처음이니까요. 사실 저도 진선후 배우님 팬이거든요.”
“아, 네…….”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팬심 노출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팬일수록 충격과 배신감은 클 것이고 지금까지 호감 이미지를 쌓아왔던 것만큼 그 역풍도 클 거라는 이야기였다.
“이건 팬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마 진선후 배우님의 이미지 때문에라도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겠죠. 팬들은 배신당했다고 생각할 거고,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모든 게 무너질 거예요.”
선생님의 말을 들은 엄마는 기도라도 하듯이 내 손을 양손으로 잡았다.
“선후야. 그러는 거 그만두자. 엄마만 더 힘들어져. 엄마 봐서라도 제발. 응?”
문득.
나는 의사 선생님에게서,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한 눈빛을 보았다.
──무언가가 있다.
이걸 잡아야 한다고, 나의 직감이 그렇게 소리쳤다.
“……선생님. 혹시 뭔가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나는 엄마의 손을 놓고서, 대신 의사 선생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에…….”
“서, 선후야?”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의사 선생님도 엄마도 당황해했다.
그야 그렇겠지. 내가 일반인이라면 경찰을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돌출 행동이었다.
선생님이 내 팬이라는 걸 들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어머니와 아이를 지킬 방법은 없습니까? 불법적인 일이든 뭐든 좋습니다. 비밀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겠습니다. 책임은 전부 제가 지겠습니다.”
내 행동이 비상식적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어머니가 아들의 자식을 임신했다는 비상식적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상식적인 방법만으로는 안 된다.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저, 저는…….”
선생님은 얼굴을 붉히며 눈을 피했다. 하지만, ‘없다’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방법이 있는 게 분명했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아들로서, 아버지로서, 남자로서, 책임을 질 수 있게 해주십시오. 가족을 지킬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 이러지 마세요, 아버님.”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진심으로, 선생님을 설득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회유, 매수, 협박, 말 그대로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의사 선생님은 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여의사였다. 나에겐 충분히 ‘가능’한 레벨이었다.
“선생님.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나는 바닥에 이마를 찧을 기세로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걸, 나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엄마도 나와 선생님 사이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잠자코 이야기가 진행되길 기다렸다.
한참의 침묵 뒤.
굉장히 어렵게, 선생님은 입을 열었다.
“이건……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문제가 있는 방법이라서…….”
역시.
방법은 있었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제 어머니와 아이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습니다.”
나의 거듭된 애원에 선생님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 안 되는데……아…….”
──됐다.
내 마음에선 승리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나는 표정을 풀지 않고 선생님의 말을 끝까지 기다렸다.
의사 선생님은 체념한 얼굴로 말했다.
“……우선, 기념사진부터 찍읍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