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1화 (241/256)

‘진선후 씨도 차기작은 넷플릭스에서…….’라며, 소속사에서도 조심스럽게 차기작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나는 일단 손이 다 나은 뒤에 이야기하자며 이야기를 끊었지만, 나도 아마 그쪽으로 가게 되겠지. 돈도 접근성도 뛰어난 매체가 있는데 넘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공중파 드라마의 매리트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엄마와 같이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엄마는 이미 은퇴를 선언했으니 앞으로 같이 찍을 일은 없을 것이다.

아쉬운 마음도 없진 않지만, 앞으론 집에 돌아오면 언제든지 엄마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기대가 될 정도다.

“흑흑……훌쩍. 훌쩍.”

그리고.

내 병실에서 훌쩍이고 있는 이 사람.

우리 누나, 진소영 프로님이시다.

“……누나 울어? 왜 울어?”

분위기 깨는 거 같아서 묻고 싶지 않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에 이제 돌아온 누나는 내 병실에서 뒤늦게 드라마 최종화를 봤다.

그리곤 왠지 이렇게 울고 있는 것이었다.

몰입해서 재밌게 보는 건 좋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드라마에 울 만한 장면은 없었는데?

나는 누나가 훌쩍이고 있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물었던 건데.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왠지 누나는 울컥해서 화를 내고 있었다.

피도 눈물도 없다니. 나만큼 인간적인 사람이 어딨다고.

“아니, 누나. 사실 울 만한 내용은 없었잖아? 그리고 내가 얼마나 피도 눈물도 많은 사람인데. 지금도 피 철철 흘려서 입원해있고.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인생 스토리가…….”

“닥쳐. 네가 드라마를 알아?”

씨알도 안 먹혔다.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그 드라마 주연배우인데.”

티슈에 코를 풀던 누나가 내 말을 듣고 홱 돌아본다.

마치 처녀 귀신처럼 원망스러운 얼굴이었다.

“너! 너 이 새끼, 네가 황진우구나!”

그리고 내 얼굴에 코 푼 휴지를 던지며 외쳤다.

“엑. 더러워.”

나는 머리를 틀어 날아온 휴지를 피했다.

이제 와서 나한테 황진우라니. 지금까지 무슨 생각 하면서 본 거야?

“이 나쁜 놈! 처자식 놔두고 바람이나 피우더니, 세탁해서 너만 잘 먹고 잘살면 다야?”

누나는 내 위에 올라타 목을 조른다.

“켁켁. 누나, 항복. 나 환자야 환자.”

나는 누나의 엉덩이를 탭 하며 항복했다.

누나도 환자란 말에 정신이 들었는지 목을 조르던 손을 풀었다. 

“누나. 나한테 이러면 어떡해. 내가 바람피운 것도 아닌데.”

나는 졸린 목을 쓰다듬으며 투덜댔다.

확실히 난 드라마 속 황진우보다 쓰레기긴 하지만, 바람은 황진우가 피운 거지 내가 바람피운 게 아니다.

누나는 그래도 아직 분이 덜 풀렸는지 나를 보며 씩씩대며 말했다.

“야. 넌 선아가 미국 가서 얼마나 고생했을지 생각이라도 해봤어?”

“생각이야 해봤지만…… 선아는 능력도 있고 성실하니까 금방 인정받고 승승장구했을 거 같은데? 그러니까 2년 만에 저 자리까지 올라갔겠지.”

“그러니까 넌 안 된다고. 이 방구석 폐인아.”

“……누나는 언젯적 진선후랑 얘기하고 있는 거야?”

내가 어릴 때는 방구석 폐인이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지만.

지금은 사회생활도 하고 있고 번듯한 직업도 있고, 나름 인플루언서인데.

물론 여전히 내향적이긴 하지만 방구석 폐인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다.

“네가 미국을 안 가봐서 그래. 코쟁이들 차별 얼마나 심한데. 분명 선아도 엄청나게 멸시당했을 거야. CEO 된 것도 ‘우리는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PC 기업이라 동양인 여성을 CEO로 앉혔다!’라는 광고지, 실질적인 영향력은 쥐뿔도 없을걸? 저런 게 오히려 진짜 차별이라고.”

누나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미국에 발도 붙여본 적 없는 나로선 상상도 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누나. 미국에서 차별당했어?”

나는 누나가 미국에도 자주 가는 게 순전히 실력과 인기로 초청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은 미국의 PC 사상 홍보 차원에서 이용당한다는 거야? 동양인이고 여성이라는 점 때문이라고?

만약 본인들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당사자인 누나가 그렇게 느낀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였다.

그렇게 생각해서 물어봤지만.

“뭐? 누가 날 차별해?”

누나는 ‘이 등신이 또 뭔 헛소릴 하는 거야?’ 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지금 누나가 그렇게 차별당했다는 얘기 아니었어?”

“야 이 등신아. 현실이랑 드라마랑 같냐?”

-딱.

“아야.”

누나는 주먹으로 내 머리를 후려치려다 내가 환자라는 걸 깨닫고 이마 딱밤으로 대신했다.

누나가 상냥해! 하지만 여전히 이해 못 하겠어!

“그럼 뭐야? 지금 그건 누나 경험담 아니야?”

나는 이마를 문지르며 묻는다.

“드라마 얘기하는데 경험담이 왜 나와? 넌 드라마랑 현실도 구분 못 하냐? 드라마니까 현실보다 더 지독한 게 당연하지!”

“그건……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머리에 수많은 물음표를 띄우고 있었다.

지금 누나 대사는 그런 뜻 아니었어?

넌 미국에 안 가봤으니까 차별받는 걸 모른다, 누난 미국에 자주 가봤으니까 잘 안다, 그런 얘기였잖아?

“그럼 누나는 차별 안 받았다는 거야?”

“넌 네 누나가 누군지 모르냐?”

……왠지 대화가 맞물리질 않는다.

누나는 나를 딱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누가 나를 차별하는데? 너 같으면 나 차별할 수 있겠어?”

누나가 대단하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안다.

실력도 인기도 엄청나고 성깔도 보통이 아니다. 이런 누나를 인종이나 성별로 차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반대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여간, 이래서 고생을 못 해본 놈들은 안 된다니까. 선아는 분명 눈물 젖은 햄버거를 먹으며 진선후 같은 변태 상사한테 실컷 성추행이나 당했겠지.”

“거기서 내가 왜 나와? 그리고 내가 상사면 복 받은 거지. 얼마나 잘해주는데.”

“지랄. 그럼 그 빨간 머리는 뭔데?”

“빨간 머리? 에이 말하는 거야?”

누나도 당연히 에이가 내 병실에 들락거리는 걸 안다.

그리고 어떤 취급을 받는지도.

매일 관장하는 벌칙을 건의한 것도 다름 아닌 누나였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있었다.

“누나, 내가 괴롭히는 게 아니라니까? 난 벌써 다 용서했다고 하는데도 본인이 하겠다는데.”

“퍽이나.”

믿어주지 않는 누나였다. 억울하다. 

“판사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래? 그런 게 통할 것 같냐?”

“윽……그, 그건, 그럴지도 모르지만…….” 

누나 말처럼 법적으로 하자면 성 착취로 잡혀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딱히 에이를 괴롭히고 싶어서 괴롭히는 게 아니다. 이건 정말이다.

나는 에이한테 아무런 감정도……없는 건 아니지만.

에이를 원망한다고 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원망해봐야 내 감정만 소모될 뿐이니까, 나는 그냥 신경 안 쓰려고 했다.

그런데 본인이 제 발로 와서 저러는데 어쩐단 말인가.

나도 병원에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군것질하는 기분으로 자꾸 건드리게 되고…….

에이 본인이 그러는 게 마음 편해진다니까, 나도 거기에 어울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 여자도 참, 남자 복도 지지리도 없지. 그 스토커남도 그렇고 진선후도 그렇고.”

“누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 스토커랑 나랑 같이 놓고 비교해?”

“인생 망하게 했다는 점에선 너나 그 스토커남이나 마찬가지야. 걔는 차라리 본인이 찔리고 싶었을걸?”

누나의 빈정대는 말이 내 양심을 따끔, 찌른다.

“이대로 네 손 제대로 안 돌아오면 어떻게 될 거 같아? 걔 진짜 어디 이민이라도 가야 할걸? 지금도 ‘엉덩이 함부로 놀리다 우리 선후 오빠 손 아작낸 쌍년’ 취급받는데.”

“……그건,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누나가 하는 말에 짐작이 없는 건 아니다.

그 스토커와 에이가 같이 찍은 사진이나 개인적으로 보낸 메시지가 유포되면서, 범인이 단순한 정신질환자가 아니라 에이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게 인터넷에 쫙 퍼지고 만 것이다.

스프링의 소속사인 DS에서는 어떻게든 소문이 퍼지는 걸 막으려 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정보를 완벽히 통제하는 건 불가능했다. 진선후를 찌른 남자가 에이가 함부로 대하고 버린 전 남친이라는 사실은 이미 인터넷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가짜 스캔들과 피습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진선후가 이목을 끌고 인기를 얻은 만큼, 그 진선후를 다치게 만든 원흉(팬들은 그렇게 생각한다)인 에이는 맹렬한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내 팬 사이트에서 에이는 정말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욕을 먹고 있었다.

“이러다 정말 누구 하나 죽는 사람 나오는 거 아닌가 몰라.”

“윽…….”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진 누나의 말이 내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분명 에이의 상태는 겉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정상이 아니었다.

에이는 내가 정액을 짜여 초췌해지는 것 이상으로 초췌해지고 있었다.

잠은 제대로 자고 있는지, 밥은 제대로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에이도 여간 스트레스받는 게 아니겠지.

들리는 말에 의하면 미소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등을 돌려 그룹 내에서의 입지도 좁다고 하고, 이미지적으로나 영업적으로나 심각한 타격을 입은 기획사에서도 에이를 고운 눈으로 볼 리가 없으니, 연습실에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겠지.

거기에 인터넷에서는 죽일 듯이 까는 악플까지 받는다. 범인이 전 남친이라는 점 때문에 기존의 팬들도 쉴드를 쳐주긴커녕 쉴드로 치는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민심이 나락 간 지금 상황에서 강경 대응도 못 하고, 악플의 수위는 점점 심해지고만 있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악플로 자살하는 연예인 뉴스는 매해 거르지 않고 볼 정도다. 솔직히 내가 에이만큼 욕먹었다면 벌써 자살하고도 남았다고 생각한다.

──다음 비보의 주인공이 에이가 아니라고, 과연 단언할 수 있을까?

“……누나.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가 생각해야지.”

설마……싶긴 하지만.

에이가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한다면 사람들은 ‘진선후의 악성 팬덤’이 에이를 자살로 몰아갔다고 비난할 것이다. 내 이미지에 좋을 게 없었다.

에이를 비난했던 미소도 충격받을 테고.

……무엇보다 내가 충격받을 것 같았다.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지만…….

역시, 입 다물고 있어선 안 될 것 같다.

“야. 오늘은 몇 발 뽑았냐?”

……그렇게 내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누나가 슬금슬금 내 아랫도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한 번.”

“흥. 그럼 세 번은 더 할 수 있겠네.”

누나는 음흉하게 웃으며 내 바지를 벗겼다.

“하아…….”

나는 한숨을 쉬었다.

오늘도 나는 쥐어짜인다.

초췌해진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올 날은 아직 먼 것 같다.

용서 

「J-up Ent. 입니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요즘, 봄날 같은 소식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지난달 공연 도중 당한 불의의 사고로 입원 치료 중인 소속 배우 진선후 씨의 근황입니다.

팬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에 진선후 배우의 부상은 순조롭게 회복 중입니다.

특히 부상이 심했던 오른손은 수술을 해주신 의사 선생님마저 놀랄 만큼 빠르게 호전되고 있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치료를 마치고 팬 여러분께 건강한 모습으로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선후 배우 또한 팬 여러분과 다시 만나는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진선후 배우가 팬 여러분께 보내는 직접 쓴 손편지입니다.

『배우 진선후입니다.

안 좋은 일로 많은 분께 걱정을 끼쳤습니다.

죄송합니다.

팬 여러분의 응원과 가족들의 도움으로 다친 오른손은 이렇게 편지를 쓸 수 있을 정도로 나아졌습니다.

아직 붕대도 풀지 않아 글씨가 조금 삐뚤삐뚤하지만 용서해주세요.

배우 진선후를 사랑해주시는 팬 여러분.

제가 오늘 이렇게 다 낫지도 않은 손으로 굳이 편지를 쓰는 건 팬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입니다.

저는 입원 중 팬분들이 보내주신 편지뿐만 아니라 SNS나 팬 사이트에 올라오는 응원 글들도 하나하나 확인했습니다.

팬 여러분들의 응원과 격려는 제 입원 생활의 활력소였습니다.

덕분에 긴 입원 생활도 지루한 줄 모르고 보낼 수 있었습니다.

게시글들을 확인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많은 분들께 사랑받고 있구나, 이렇게 많은 분들이 나를 기다려주시는구나, 그런 생각에 더욱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지만 기분 좋은 이야기만 본 건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저를 슬프게 하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날 저와 함께 피해를 입은 에이 씨를 향한 비방입니다.

저 또한 유언비어와 가짜 스캔들로 인해 괴로운 경험을 했었습니다.

에이 씨를 향한 비난은 저에게 그때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더구나 그러한 비방글을 쓰는 사람이 제 팬분들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저를 더욱 슬프게 합니다.

사랑하는 팬 여러분.

에이 씨는 저와 함께 사고를 당한 피해자입니다.

다행히 신체적인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에이 씨는 그보다 더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몸에 입은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마음에 입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습니다.

저 또한 똑같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에이 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팬 여러분. 에이 씨를 향한 비방을 멈춰주세요. 

부디 저를 응원해주시는 것만큼 에이 씨도 응원해주세요.

제가 다시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고 피아노를 치게 됐을 때, 에이 씨도 똑같이 무대로 돌아와 좋은 노래, 멋진 춤을 보여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마음을 다해 부탁드립니다.

진선후 올림.』

편지에서 보신 것처럼, 진선후 배우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인 에이 양이 비난받는 상황을 우려하며 에이 양을 보호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저희 J-up Ent.에서는 진선후 배우의 요청에 따라 에이 씨의 소속사인 D.S.와 협의해, 진선후 배우뿐만 아니라 에이 씨를 비방하는 모든 악의적 게시글에 대해서도 적극 대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팬 여러분께서는 부디 이와 같은 사실을 인지하시고 불의의 피해를 보는 일 없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진선후 배우를 응원해주시고 아껴주시는 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말씀드립니다.

- J-up Ent. 배상.」

* * *

우리 소속사 제이업에서 그런 공지가 올라간 후.

에이에 대한 비난은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내 팬 사이트에서는 에이에 대한 비난을 멈추자는 캠페인이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진선후가 직접 편지를 쓴 게 주효했던 것이다.

물론 에이를 향한 비방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지만, 가끔 나오는 비방글은 분탕으로 취급당하고 관리자에 의해 금방 삭제되었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비방글을 올리는 일부 악질 팬들은 제이업에서 자료를 수집해 고소에 들어갔다.

고소 절차는 좀 복잡했다.

에이의 소속사인 D.S.가 아니라 우리 쪽에서 대리 고소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세아 씨를 통해 D.S 쪽과 협의해 J-up 이사님에게 내용을 전달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했다.

귀찮더라도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에이가 고소한 게 아니라 진선후가 고소했다’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안 그래도 이미지가 안 좋은 에이가 자신을 비방한 팬들을 고소했다고 하면 사태는 더더욱 안 좋아질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사용한 게 ‘진선후 까방권’이다. 이미 ‘까임 방지권’을 수십 장 쌓아 놓은 나는 이 기회에 그중 한 장을 쓰기로 한 것이다.

물론 까방권이 없더라도 명분도 있고 실리도 있는 나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이것조차 ‘진선후 미담’으로 삼아 나를 칭찬하는 목소리만 높아졌을 뿐. 어디로 굴러도 내 이미지가 좋아지기만 한다는 불가사의한 현상에 나조차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번 고소에 경찰은 이례적으로 빠르게 대처에 들어갔다.

아마 최근에 국회를 통과한 ‘진선후 법’ 덕분이겠지.

진선후 법이란 유명인과 그 관계자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현실 및 사이버상의 범죄를, 더욱 폭넓게, 그리고 강력하게 처벌하겠다는 법이다.

바로 경찰의 수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왔지만, 부족한 인력은 현장에서 잉여자원 취급받던 여경을 사이버 수사 쪽으로 대거 이동시키는 식으로 메꿨다.

성차별이니 주먹구구식 행정이라느니, 비난은 받았을지언정 효과는 있었다. 고소 후 결과를 받으려면 몇 달씩 걸리던 처리 기간도 대폭 줄어들었다.

그 진선후 법의 첫 처벌 대상이 진선후의 팬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긴 했지만.

어차피 진선후 팬이라는 건 피의자 본인들의 주장일 뿐, 나도 다른 팬들도 팬덤 물을 흐리는 그런 악질 팬은 필요 없었다.

그리고 나는 슬슬 귀찮아졌으므로 뒷일은 전부 소속사와 에이에게 맡기고 발을 뺐다.

고소장을 받은 뒤라도 사과문을 올린 악플러는 에이가 선처해줬다는 이야기도 들렸지만,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나는 어디까지나 환자이며, 병실에 누워 요양 중인 몸이니까.

* * *

-츄풉, 츄룹, 츄풉.

“……에이 씨.”

“츄룹……네?”

내 쪽으로 엉덩이를 내밀고서 자지를 빨던 에이가 고개를 틀어 눈을 마주친다.

“이제 안 와도 된다고 했잖아요.”

에이는 오늘도 내 병실에 출근했다.

내 수발을 들기 위해서. 아니, 내 놀이 상대가 되어주기 위해서라고 해야 할까.

요즘은 가족이나 간호사보다 에이의 얼굴을 더 자주 보게 된다.

이제 이 사람이 아이돌인지 간병인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제가 오는 게 싫으세요?”

최근 한 달 사이, 에이는 많이도 변했다.

표정이나 말투가 부드러워진 건 물론이다.

내가 뭔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알아서 해줄 정도로 눈치가 빨라졌다. 

지금처럼 내 얼굴 쪽에 엉덩이를 내밀고 자지를 빠는 게 에이의 디폴트 자세가 되었다.

처음엔 어색했던 펠라치오도, 지금은 숨 쉬듯 자연스럽다.

“싫은 건 아니지만…….”

내 대답을 들은 에이는 ‘그럼 잔말 말고 있어’라는 듯이 다시 자지를 빨기 시작했다.

“음…….”

이런 미인이 노예처럼 다 해준다는데 싫어할 남자가 어디 있을까.

나도 당연히 좋다. 편하고 즐겁고, 매일 왕이라도 된 기분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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