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1화 (231/256)

부상 

광기에 찬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죽이려는 인간의 표정.

나는 알고 있었다. 그 표정을.

“뒈져──!!”

하얗게 빛나는 칼날이 질러 들어온다.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선에서 나는 최선의 해답을 찾는다.

칼끝이 노린 곳은 내 복부. 그보다 조금 왼쪽.

피할 수 있을까?

피할 수 없다.

나는 오른손으로 그 칼날을 잡았다.

“크……!”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이 오른손 손가락을 차례로 베고 들어온다.

검지, 중지, 약지, 소지.

칼날이 각 손가락 근육을 깊숙이 자르고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오른손을 희생한 대신 그 칼날을 멈춰 세울 수 있었다.

뾰족한 칼끝은 내 옷을 찢고 겉의 피부와 근육 일부를 상처입혔지만, 그 안의 내장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오빠──!!”

아비규환이 된 현장.

그 비명의 바다에서 내 귀는 하나의 목소리를 포착했다.

그 목소리를 착각할 리가 없다.

내 동생, 미소.

미소가 내 뒤에 있었다.

이 미친 남자를 이 뒤로 보낼 수는 없다.

미소가 다칠 테니까.

그렇다고 내가 죽어서도 안 된다.

미소가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릴 테니까.

이 남자를 제압한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어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오빠니까.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

“크, 으……!”

오른손은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강력한 자석끼리 붙어버린 것처럼, 내 오른손은 칼날에 붙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남자도 용을 쓰며 칼을 밀어 넣으려 한다.

하지만 칼은 움직이지 않았다.

내 오른손과 완전히 일체화되어 있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칼 든 남자와 싸우는 방법 같은 건 모른다. 그런 걸 알 리가 없다.

영화에선 어떻게 했더라?

나는 액션 영화의 주인공에 빙의해 왼손으로 칼을 쥔 남자의 엄지손가락을 잡았다.

그리고 그 손가락을, 위로 꺾는다.

-빠득.

아.

의외로 되는구나.

“크아!”

엄지손가락이 부러진 남자는 칼을 놓았다.

내 오른손에도 힘이 빠지고, 지탱할 곳을 잃은 칼은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그 남자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오른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왼손으로 남자의 소매를 잡고 다리를 건다.

남자는 바닥에 요란하게 내동댕이쳐졌다.

나는 바닥에 엎드린 그 남자를 팔꿈치와 몸으로 눌러 제압했다.

“와아악! 그아악!”

남자는 미친 듯이 소리치며 발버둥 친다.

하지만 놓아줄 순 없었다.

나는 당분간 그대로 남자를 누르고 있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행사 관계자들, 경호업체 직원들, 매니저들.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냐고. 제기랄.

“진선후 씨!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이게 괜찮아 보이냐.”

아. 또 말이 반대로 나왔잖아.

하지만 지금 거기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도 어느샌가 사라졌다.

길을 막고 있다 차에 치인 것처럼 옆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오빠!!”

그 남자를 들이받은 이는 다른 사람도 아닌 내 동생, 미소였다.

“오빠, 오빠, 오빠.”

미소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수건으로 내 오른손을 둘둘 감쌌다.

하지만 손이 벌벌 떨려서 제대로 감아지지 않았다.

“오빠 괜찮아, 미소야.”

멀쩡한 왼손으로 미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려 했다.

그러다 손이 피범벅이란 걸 깨닫고 그만두었다.

미소가 손에 감아준 수건도 순식간에 검붉게 물들었다.

원래 색이 어땠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긴장이 풀린다.

몸에서 힘이 빠졌다.

뒤늦게 손가락에도 통증이 느껴졌다.

우와. 아파.

이거 이제 못 쓰는 거 아냐?

그래도 살았으니 된 건가?

“오빠, 오빠…….”

미소의 귀여운 얼굴이 눈물로 엉망이었다.

옷도 피투성이라 누가 칼에 찔린 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진짜 괜찮다니까.”

나는 제대로 웃어 보일 수 있었을까.

지금은 나보다 무대 아래 관객석 쪽이 문제였다.

무대 위로 올라오려는 관객들, 그런 관객들을 가로막는 관계자들, 여기저기 쓰러진 사람도 보였다.

비명과 고함으로 아수라장이었다. 진짜 좀비 아포칼립스가 벌어지고 있었다.

한편, 무대 위는 대충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경찰이 캠퍼스 안에 대기하고 있었는지, 벌써 그 남자에게 수갑을 채워 연행하고 있었다.

남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 쳤지만 수갑까지 채워진 상태에선 부질없는 저항이었다.

어느새 구급대원 같은 사람도 달려왔다.

아. 뒤쪽에 오던 사람은 내가 흘린 피를 밟고 넘어지고 말았다.

안 다쳐야 할 텐데. 다친 사람 도와주려다가 본인이 다치면 억울하잖아. 

먼저 온 구급대원은 내 손에 감긴 수건을 풀고는 거기에 거품 스프레이를 뿌리기 시작했다.

“지혈 스프레입니다.”

아. 난 또. 더럽게 아프길래 물파스라도 뿌린 줄 알았지.

손에 잔뜩 뿌린 뒤엔 내 상의를 걷고 배에도 스프레이를 뿌렸다. 

배는 깊숙이 찔리진 않았지만 출혈은 있었다. 찔린 주변에 피가 번져있었다.

그런 나를 관계자들이 빙 둘러싸고 지켜보고 있었다.

“사회자님, 마이크.”

“네?”

“마이크 주세요.”

옆에 서서 멍때리고 있던 사회자에게 말해 마이크를 받는다.

마이크에 피가 묻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시국에 배상하란 소린 안 하겠지.

『아아. S대 학생 여러분. 진선후입니다. 불미스러운 사고로 공연은 중단되었습니다.』

『질서를 잘 지켜서 퇴장해주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질서를 잘 지켜서 퇴장해주세요.』

『파랑새 여러분. 다른 분들이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S대와 진선후 팬클럽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질서를 지켜주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할 말을 마치고 다시 사회자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이제 정말 내가 할 일은 다 했다고 봐도 되겠지.

“휴우. 죽는 줄 알았네.”

나는 무대 위에 드러누웠다.

용을 너무 써서 몸에 힘이 다 빠졌다.

5번 연속 사정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모든 게 귀찮았다.

나는 환자니까 누워있으면 알아서 병원으로 옮겨주겠지.

“오빠! 오빠!”

미소가 너무너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몸을 흔든다.

아파. 흔들지 마. 제발.

아프다니까. 오빠 죽는 거 아니야.

“괜찮아, 미소야.”

오빤 괜찮으니까.

그러니까, 울지 마.

흔들지도 말고.

* * *

『배우 진선후 씨와 아이돌 그룹 스프링이 공연 도중 괴한에게 피습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고오환 기잡니다.』

(영상 제공: S대 동아리 파랑새)

『봄축제 기간의 S대 캠퍼스. 배우 겸 피아니스트 진선후 씨와 아이돌 그룹 스프링은 이 축제장에서 합동 공연 중이었습니다.

열정적인 공연이 끝난 뒤.

인터뷰를 진행하던 무대에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올라옵니다.

이 남자의 손에는 내용물을 알 수 없는 텀블러와 손가방이 들려 있습니다.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무대로 올라온 이 남자.

갑자기 무대 바깥쪽에 있던 스프링의 멤버 에이 양에게 텀블러의 내용물을 쏟아붓습니다.

이 액체는 휘발유였습니다.

에이 양에게 휘발유를 부은 괴한은 이어 가방에서 지포 라이터를 꺼냅니다.

불이 붙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

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몸을 날린 것은 다름 아닌 피아노를 치던 배우 진선후 씨였습니다.

진선후 씨는 영화에서나 보던 액션으로 괴한이 손에 든 라이터를 발로 차 날려버립니다.

하지만 괴한의 난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가방에서 날카로운 회칼을 꺼내더니 갑자기 진선후 씨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괴한이 찌르려 드는 장면에서 영상은 일시 정지)

진선후 씨는 괴한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오른손과 복부에 중상을 입고 현재 S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긴급 수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짜 스캔들 사건 이후 겨우 평화로운 일상을 찾았던 배우 진선후 씨. 그런 진선후 씨에게 또다시 날아든 비보에 팬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배우 진선후 씨의 이력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습니다. 학대 아동 보호센터에서 배우 임신혜 씨에게 입양된 진선후 씨는──』

『이번 피습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아이돌 그룹 스프링은 무기한 활동 중단에 들어가──』

『괴한 제압 이후의 대처도 훌륭했다는 후문입니다. 괴한의 습격에 놀란 수만 명의 관람객들을 향해 ‘다치지 않도록 침착하게 퇴장해달라’며 본인의 부상보다 팬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진선후 씨의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객석에선 다행히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강력 범죄자의 처벌에 대한 수위를 높여달라는 목소리가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진선후 피습 사건’의 용의자를 엄벌에 처해달라는 청와대 청원 동의가 200만을 넘긴 가운데──』

『민의당 ○○○ 의원은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명백하게 살인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해친 경우 살인과 동등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개헌을 촉구했습니다. 한편에선 유명인의 인기를 등에 업고 표심을 얻으려는 행태라는 비판도──』

『이번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S대 재학생과 축제에 참여한 시민들은 주최측의 안전불감증에 문제를 제기하며──』

『배우 진선후 씨의 긴급 수술을 집도한 S대학병원 황우성 교수는 ‘수술 경과를 봐야 알겠지만 오른손의 근육, 신경, 힘줄이 모두 손상되어 100% 회복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며──』

『배우 진선후 씨의 피아노 연주는 앞으로 듣기 어려울 것으로──』

『이번 사건으로 잠잠했던 남녀갈등에 또다시 불이 붙었습니다. 일부 진영에서는 페미니스트 논란이 있던 스프링의 에이 양을 노린 ‘이대남의 여혐 범죄’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반대 진영에서는 ‘범인을 잡고 부상을 입은 사람 또한 이대남인 진선후’라며 단순 범죄 사건을 남녀갈등으로 비화하지 말라며 맞섰습니다.』

『주연 배우 진선후 씨의 부상으로 종영을 앞둔 드라마 ‘꽃과 당신과 나’는 제작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8주간의 절대 안정이라는 진단에도 진선후 씨는 ‘끝까지 찍겠다’며 책임감을 보였는데요, 주연 배우 교체 없이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배우 진선후 씨의 쾌유를 기원하는 ‘진선후 촛불 챌린지’가 SNS를 통해 연예계뿐만 아니라 정치, 스포츠계에도 번지고 있습니다.』

『배우 진선후 씨를 보기 위해 병원에 진입하려는 일부 몰지각한 팬들과 이를 막으려는 배우 진선후 팬클럽 ‘파랑새’ 회원 간의 물리적 충돌이 벌어져──』

『큰 부상으로 많은 팬들을 안타깝게 했던 배우 진선후 씨가 유튜브 개인 채널 ‘찐남매 튜브’를 통해 수술 후 처음으로 근황을 알려왔습니다. ‘누나 진소영 선수가 저녁밥을 떠먹여 줬다’며 밝은 표정으로──』

『인기 아이돌 그룹 스프링은 소속 멤버 에이 양의 생명을 구해준 배우 진선후 씨를 그룹 스프링의 다섯 번째 명예 멤버로 추대하고──』

누나의 병문안 

별로 낯설지 않은 천장이다.

“푸하하하!!”

-퍽퍽.

“아야.”

옆에서 휴대폰을 보던 누나가 내 팔을 퍽퍽 때린다.

수술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야, 진선후. 이것 봐. ‘영웅 진선후, 황금의 오른손과 바꾼 생명’이래! 푸하하!”

-퍽퍽퍽.

뭐가 그리 웃긴지 누나는 연신 내 팔을 두드렸다.

“아야. 아야.”

그나마 다친 쪽 팔이 아니란 게 다행일까.

나는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누나. 나 환자야. 이거 안 보여?”

헐렁한 병원 환자복.

붕대를 둘둘 감은 오른손.

링거 바늘이 꽂힌 왼팔.

양손을 봉인 당해 옴짝달싹 못 하는 불쌍한 동생을 이렇게 두들겨 패다니.

“어쩌라고.”

항의하는 동생한테 하는 말이란 게 이거다.

어떻게 한숨이 안 나올 수 있을까.

“누나. 제발 안정 좀 취하자.”

엄마 나간 지 30분도 안 됐는데 벌써 엄마가 보고 싶다.

내가 마마보이가 된 건 누나 지분이 50%는 있다고 생각해.

“안정은 지랄. 아까도 엄마하고 했으면서. 모를 줄 아냐?”

뜨끔.

“아니 그건……엄마가 너무 불안해하니까.”

“그래서? 네 엄만 아들 자지 빨면 안정이 된다던?”

“누나…….”

누나가 악의 없이 이런 말 하는 건 알고 있지만.

나는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 찌릿, 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누나는 휴대폰으로 나와 관련된 웃긴 기사 제목을 찾아 읽어주고 있었다.

“야. 이런 것도 있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아름다운 희생, 가장 영광스러운 상처’래! 푸하하! 개 오글거려!”

나는 또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뭐, 누나가 엄마처럼 걱정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럴 거라곤 기대도 안 하긴 했지만.

엄마는 드라마 회의 도중 내가 칼에 찔렸다는 소식 듣고서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겨우 정신을 차린 뒤엔 병원으로 달려와 수술실 앞에서 내내 미소와 얼싸안고 울었다고 한다.

세상 모든 엄마가 다 그렇겠지만, 우리 엄만 특히 더 과보호니까.

이 불효자 진선후는 또 엄마한테 상처를 주고 말았다.

수술이 끝나고 일반 병실로 옮긴 뒤에도 엄마는 내내 나한테 붙어 있었다.

양손이 이 꼴이라 밥도 제대로 못 먹으니 엄마가 일일이 다 떠먹여 주고, 자위도 혼자 못하니 발기하면 엄마가 입으로 빼주었다.

나도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엄마한테 더 어리광부리긴 했지만, 엄마가 너무 불안해해서 그런 것도 사실이다. 엄마한테 아랫도리라도 건강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까. 그러니까 정상참작 해줬으면 한다.

“야. 누나도 불안하니까 빨게 해줘.”

“싫어. 엉뚱한 데 에너지 쓰면 안 돼. 회복해야 해.”

손을 붙이는 데 써야 할 에너지를 정액 만드는 데 써서야 되겠는가.

잘못하면 손 감각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데.

그러니 사정횟수는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다.

“지랄. 엄마는 되고 누나는 안 되냐?”

“어.”

“잔말 말고 벗어.”

“아 진짜. 누나. 나도 좀 쉬자.”

어차피 말해도 소용없다는 건 안다.

누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니까.

보통 이렇게 말하면 멋있어 보이는데.

기껏 한다면 한다는 게 동생 자지 빠는 거니까 말이지.

그렇다고 나도 딱히 싫다는 건 아니다만.

“입으론 싫다면서 몸은 솔직하잖아?”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대.”

누나가 내 환자복 바지를 내리자 이미 빳빳이 고개를 든 자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다치면 번식 본능이 자극돼서 이렇게 되는 거야. 내가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하여간 지랄은.”

누나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내 자지를 쓰다듬는 손길은 평소보다 훨씬 조심스러웠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예민한 고양이라도 쓰다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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