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독주 파트가 끝나고.
나는 다시 반주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스프링 멤버들이 있는 무대 쪽을 본다.
무대 위에는 미소, 세아, 진이, 에이.
네 명의 멤버들.
아무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모두가 완벽하게 노래하며 춤추고 있었다.
……이상했다.
아무 문제도 없는데.
당연한 장면이 당연하지 않게 보이는 느낌이었다.
……대체 뭐지?
아. 음 하나가 삑사리 났잖아.
피아노에 집중해라 진선후. 한눈팔지 마.
그렇게 자신을 타이르지만.
나는 강력한 인력에 이끌리듯이, 다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대와, 관객석 쪽으로.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불안하게 뛴다.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걸까.
수많은 카메라, 나를 향해 소리치는 사람들.
나에게 집중된 시선이 적응은 되지 않지만, 지금 이 장소에선 이상할 건 없었다.
너무 시끄러워서 정신이 이상해져 버린 건가?
아니면 이런 때에 또 정신병이 도진 건가?
이상할 건 아무것도 없는데.
……아니.
있었다.
이상한 점이.
아니. 이상한 사람이, 있었다.
카메라도 들지 않고.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답답한 정장을 입고.
얼굴에 마스크를 하고.
웃지도 울지도 않는 미묘한 표정의.
그런 이질적인 남자가 있었다.
한순간 눈에 띄었던 그 남자는 금세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수만 명의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드는 장소에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를 특정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제 다시 시작해, Without you, Neverlove──』
……노래가 끝나버렸다.
『감사합니다!』
-꺄아아악!!
스프링 멤버들이 관객석을 향해 인사하고, 사회자의 진행으로 토크가 시작된다.
그나저나, 나는 제대로 연주하긴 했을까?
하필 한창 연주에 집중하고 있을 때 이상한 강박증이 튀어 나와버렸다.
……대체 뭐였지?
지금까지 이런 증상은 나온 적 없었는데.
찝찝하다.
뭐가 찝찝한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찝찝했다.
『──진선후 씨는 어떠세요?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연주하는 건 처음이라고 하시던데.』
이크. 이번엔 내 멘트 차례였다.
『아, 네.』
-꺄아아아아──
입만 열었을 뿐인데, 관객석에서는 또 비명이 돌아왔다.
첫 공연을 제가 다녔던 S대에서 이렇게 할 수 있어서──
『아무래도 S대에는 익룡이 사는 것 같네요──』
아차.
딴생각하느라 생각과 말이 반대로 나왔잖아.
-하하하하!!
다행히도 관객들은 유머로 받아들인 것 같다.
어휴. 욕이라도 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
조심하자.
『제 첫 공연을 제가 다녔던 S대에서 이렇게 할 수 있어서 무척이나 뜻깊은 거 같습니다.』
『네. 진선후 씨는 이번에 배우로 데뷔하시면서 S대를 휴학하셨는데요, 그 뒤 드라마 ‘꽃과 당신과 나’에서 곧장 주연으로──』
왠지 내가 휴학한 이유가 배우 데뷔 준비 때문인 걸로 포장되어 있었다.
굳이 정정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시기상 맞아떨어지기도 했고. 정신병 때문이라는 것보단 나을 거다.
『S대에는 진선후 씨의 복학을 바라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이번 드라마가 끝나면 복학할 의향 있으십니까?』
『지금은 연기에 집중하고 싶어서요, 아직은 없습니다. 연기보다 공부가 하고 싶어 지면 돌아올 생각입니다.』
『그때쯤이면 지금 학우분들은 졸업하고 없겠는데요? 하하.』
-아아~
관객석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그렇다고 빈말로 돌아오겠다고 할 순 없지.
진짜로 기다리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마이크는 다시 스프링에게로 넘어갔다.
『미소 씨는 진선후 씨 친동생이잖아요.』
『네.』
『오빠가 다니던 S대학은 처음인가요? 와보니까 기분은 어때요?』
『직접 보니까 캠퍼스도 너무 예쁘고, 저도 공부만 잘했으면 오빠랑 같이 다닐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댄스 후에 땀 흘린 미소는 평소보다 50% 더 섹시했다.
새삼 또 반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깨닫는 게 늦고 말았다.
그 ‘이상한 남자’가 무대 위로 올라오고 있는 것을.
무대에는 바깥쪽에서부터 에이, 미소, 세아, 진이 순으로 서 있었다.
그 남자는 바깥쪽의 에이와 미소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아무런 제지도 없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누구 하나 그 남자를 막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엔 행사 관계자나 스프링 관계자, 대학 관계자도 많았다.
그래서 당연히 그 남자도 그런 관계자라고 생각했겠지.
멀쩡한 차림새 덕분인지 누구도 그 남자를 수상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관계자가 행사용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
그 남자도 그런 거라고들 생각했다.
그런 안일한 현장에서.
오직 나만이, 그 남자를 보고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그 남자의 오른손에는 평범한 커피 텀블러.
왼손에는 여성용 핸드백.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내 가슴 안에선 기분 나쁜 두근거림이 계속되고 있었다.
만약 내 착각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만약 착각이 아니라면……?
그 남자가 다가가는 방향에는 미소도 있다.
나는──
멀다.
피아노 의자를 발판삼아 박차고서 몸을 날렸지만.
무대의 오른쪽 끝에 있는 피아노에서 무대 왼쪽 끝에 있는 에이까지는 너무나 멀었다.
그래서 막지 못했다.
남자가 에이에게 텀블러의 내용물을 쏟는 것을.
“꺄악!”
그 비명이 에이의 것이었는지 미소의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남자가 쏟아부은 텀블러에는 커피가 아닌 투명한 액체가 들어 있었다.
그 액체는 에이에게 씌워지고, 일부는 옆에 있던 미소에게도 튀었다.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은 ‘황산 테러’.
하지만 에이의 반응을 봐선 아니었다.
에이는 아파하지 않았으니까.
대신 느껴지는, 코를 찌르는 주유소 냄새.
그 액체는 휘발유였다.
나는 한 번 바닥에 착지했다가,
발을 굴러,
그 남자를 향해 한 번 더 뛰어오른다.
시간이 느려진다.
귀가 멍하다.
분노와 흥분으로 눈도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 깜빡이는 시야에, 남자가 핸드백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모습이 들어왔다.
-피해!!
나는 그렇게 외치려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외쳤는지 어쨌는지 모르겠다.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든 남자가 손에 든 그것을.
기름 라이터에 불을 붙이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다리를 뻗는다.
닿아라.
제발.
제발 닿아라!
나는 온몸의 근육을 뻗으며, 오직 그것만을 빌었다.
그리고 내 발은.
남자의 손에 닿았다.
-틱!
그런 초라한 소리를 내며.
라이터는 위로 휘두른 내 발끝에 맞아, 불을 붙이기 직전에 공중으로 떠올랐다.
-꺄악──
무대가 무너질 듯한,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끔찍한 비명이 뒤늦게 울린다.
공중에서 라이터를 쳐낸 뒤, 나는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돌아서며 외쳤다.
-피하라고!!
에이도, 그리고 미소도.
몸을 굳힌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답답했다.
피하라니까!
어째서 가만히 있는 거야!
-세아 씨! 빨리 미소를!
피신시켜 주세요! 그렇게 외치려고 세아 씨를 본 나는.
다급한 표정의 세아 씨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을.
그 남자가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일식집에서 볼 수 있는 길고 얇은 회칼.
그 남자는 손에 그런 물건을 들고 있었다.
그 상황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내 오른손 손가락에, 날카로운 통증이 퍼졌다.
“오빠──!!”
아아.
정말로 나는.
더럽게 운도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