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9화 (219/256)

오빠가 천박한 여동생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그런 거 아닌데.

그러니까 이상한 목소린 참아야 하는데.

내 몸인데 내 말을 듣지 않았다.

“하읏! 아흑! 아앙!♡ 하아아앙!♡”

안 돼.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어.

부끄러운 목소리도, 못생긴 표정도, 이제 어쩔 수 없어.

“하아아앙──!!♡”

폭발한다.

몸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눈앞이 새하얘지고 귀가 먹먹해진다.

분명히 나는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던져진 것만 같은.

그런 불안하고, 행복한 기분.

오빠.

부르고 싶은데, 혀가 움직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걸까. 뭐가 잘못된 걸까.

무서운데, 불안한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크!”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 몸에 뿌려지는, 뜨거운 무언가.

얼굴에, 목에, 가슴에, 배꼽에, 아랫배에.

위에서 아래로 일자로 쏘아진 그것.

언젠가 삶는 시간을 잘못 재는 바람에 익다 만 계란 흰자를 떠올리게 했다.

따뜻하지만 눅진하고, 조금은 비릿한.

그리고 왠지 밤꽃 나무 향이 풍겼다.

밤꽃 나무.

그 단어에 떠올릴 수 있었다.

이게 오빠의 정액이구나, 하고.

“하아, 하아, 하아…….”

간신히, 몸의 감각이 돌아왔다.

움직이는 손가락으로 얼굴에 묻은 오빠의 정액을 닦아 확인한다.

약간 투명하고 하얀, 그리고 조금 걸쭉한, 묽은 요플레 같은 그것.

오빠의 정액이었다.

오빠가 내 몸으로 정액을 내주었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따뜻해졌다.

겨우, 나는 여동생의 의무를 다할 수 있었구나.

기뻤다.

오빠는 조금 나른한 표정으로, 후우,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선하야, 이제 다 끝났으니까, 잠깐만 눈 감고 있어.”

“응…….”

끝났다는 오빠의 말에 깊은 안심감과, 약간의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아팠던 건 사실이지만 지나고 보면 아픔보다 행복함이 더 강했다.

오빠와 연결될 수 있었다는, 오빠를 기쁘게 해줄 수 있었다는 행복감.

……또 할 수 있을까?

아픈 건 싫지만, 오빠만 괜찮다면…….

하지만 이런 얘기는 여자가 먼저 하면 안 되겠지?

오빠가 상스러운 여동생이라고 생각할 거야.

……나는 혹시……상스러운 여동생인 거 아닐까……?

“이제 됐어.”

무언가 부스럭부스럭, 내 몸을 닦다가, 어디론가 갔다가, 바쁘게 움직이던 오빠가 다시 돌아왔다.

“선하야. 많이 아팠지?”

바로 곁에서 나를 바라보는 다정한 눈.

내 머리를 쓰다듬는 상냥한 손길에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다.

“아니.”

오빠가 기특하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겨준다.

땀에 젖었을 텐데. 기분 나쁘진 않을까.

“고마워, 선하야.”

쪽. 이마에 키스 받았다.

헤헤.

나는 오빠 뺨에 키스를 돌려주었다.

행복하다.

“그럼 씻으러 갈까?”

“응? 와.”

오빠에게 안겨 가볍게 들어 올려진다.

나는 얼른 오빠 목에 매달렸다. 

듬직한 팔. 단단한 가슴.

이게 오빠구나.

그런 안심감이 느껴졌다.

오빠에게 안겨 욕실로 갔다.

넓다. 그리고 밝다.

커다란 욕탕에는 따뜻한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나를 안은 채 오빠가 탕 안으로 들어섰다.

“뜨거우면 말해.”

“응.”

오빠는 그대로 천천히 탕 안에 앉는다.

나도 발에서부터 물에 잠긴다.

따뜻한 물이 기분 좋았다.

“아.”

그러다, 도중에 따끔했다.

……오빠에게 찔린 거기가 물에 닿았을 때였다.

“미안. 아팠어?”

“아니. 괜찮아.”

누워있을 때는 마비된 것처럼 잘 못 느꼈었는데.

이렇게 물에 들어와 보니 아픈 게 느껴졌다.

“오빠랑 이렇게 있으니까 안 아파.”

오빠한테 딱 달라붙으며 말한다.

조금 부끄럽지만.

그건 진심이었다.

오빠에게 안겨있으면 이 아픔도 오빠가 만들어준 아픔이라는 실감이 났다.

그러면 왠지 따뜻하고 얼얼한 쾌감이 솟아났다.

“그럼 오늘밤은 계속 이렇게 안고 있을게.”

“응…….”

흔들흔들, 요람에 담긴 아이처럼, 나는 오빠에게 안겨있었다.

슬픔도 외로움도 아픔도, 모두 사라지고.

이 세상에 오빠와 나, 두 사람만 남은 기분이었다.

오빠와의 행복한 첫날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게 꿈이라면 이대로 깨지 않기를.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졸업식 

『──그래서 겨울이 지나면 새봄이 오는 것처럼, 에, 졸업생 여러분도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봄날은 온다는──』

스캔들 이슈가 끝났다.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나의 완전 승리였다.

뭐……실제로 선하와 스캔들에서 말하는 그런 관계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스캔들이 터진 시점에서는 아무 거리낄 게 없었으니까.

나에겐 아무 잘못도 없다.

애초에 그 스캔들이 아니었으면 선하와 그렇게 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난 아무 잘못 없다.

다 그 디스매치 탓이다.

아무렴.

스캔들이 터지고, 처음 나는 일방적으로 까이기만 했었다.

사실 스캔들은 사실이든 아니든 스캔들이 터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연예인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

만약 그 스캔들이 터지고 나서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니었습니다~’하더라도, 사람들의 머릿속엔 자극적인 제목만 남아서, ‘진선후? 걔 미성년자 스폰서 아니야?’하는 이미지만 남기 때문이다.

해명이나 사과 같은 건 스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팩트가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일반인들은 잘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대로 일이 끝났으면 나는 제대로 뜨기도 전에 묻혀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미성년자 스폰서’라는 자극적인 타이틀을 덮고도 남을 정도로 일이 커지고 말았다.

그 사람들도 설마 나한테 생이별한 친동생 같은 게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겠지.

나조차도 선하를 만나고 한참 지난 후에나 알았으니까.

하지만 일이 너무 커진 덕분에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진선후? 걔 미성년자 스폰서 아니야?’라는 이미지는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성공하자마자 친동생부터 찾아서 챙기다니, 너무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야’라는 훈훈한 이미지만 생겨버렸다.

이번 스캔들의 화제성은 드라마 시청률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스캔들 터지기 전 수영장 씬에서 자체시청률 33%로 최고점을 찍었다고 생각했지만, 스캔들이 터진 후 방송된 편에서는 무려 38%, 42%를 기록한 것이다.

초대박이 난 건 드라마뿐만이 아니다.

CF나 예능, 차기작 섭외도 어마어마하게 들어오고 있다.

J-up의 이사님 말에 따르면 ‘지금 진선후 씨는 아무 브랜드에나 전화 걸어서 모델 하고 싶다고 하면 다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더니.

사람 일이라는 게 정말 알 수가 없구나. 

하지만 그렇게 모든 일이 아름답게 끝나지만은 않았다.

여론이 내 쪽으로 완전히 기울고 난 후.

다들 끝난 게임이라고 생각했지만, 디스매치는 포기하지 않았다.

진선후와 황수아의 핑크빛 열애설을 추가로 터뜨린 것이다.

……어처구니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구질구질한 것도 정도가 있지.

누가 봐도 그건 디스매치의 발악이었다.

순전히 나와 J-up을 엿먹이기 위한 스캔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증거랍시고 내놓은 사진도 그렇다.

내가 황수아 배우와 바닷가에서 손을 잡고 달리는 사진(같이 바다에 갔다가 황수아 배우를 알아본 팬들이 모여드는 바람에 도망치는 상황이었다), 내가 수아 씨 사는 아파트 동으로 들어가는 사진, 아침에 함께 차에 타고 출근하는 사진, 술 취한 수아 씨를 부축해서 집으로 데려다주는 사진 등.

객관적으로는 충분히 스캔들이 될만한 사진일지도 모르지만, 이전에 터진 선하와의 가짜 스캔들 탓에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드라마 촬영 초기에 수아 씨의 매니저 역할을 맡았던 적도 있고, 수아 씨 집에서 같이 연기 연습을 했다는 건 이전 인터뷰에서도 밝혔던 이야기다.

결정적인 건 술 취한 수아 씨와 집에 들어가는 사진에는 원래 신지혜 배우도 같이 찍혀있었다는 거다.

셋이서 함께 들어가는 사진에서 하필 지혜 씨는 잘라내고 나와 수아 씨만 사진에 남긴 것이다.

술 취한 수아 씨와 내가 단둘이 집에 들어갔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악의적인 편집이었다.

그 사진의 원본이 하필 디스매치를 퇴사한 기자를 통해 공개되면서, 이번에야말로 디스매치는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후폭풍을 맞았다.

누가 봐도 진선후와 J-up을 묻어버리기 위한 디스매치의 보복성 보도였기 때문이다.

잘못된 보도를 하고도 사과하기는커녕 보복성 가짜 스캔들까지 추가로 터뜨린 디스매치.

여론은 마침내 폭발했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디스매치 폐지 청원이 역대 청원 최다 동의수를 얻을 정도였다.

그런 여론을 타고 디스매치에 당한 유명인들이 하나둘 폭로전을 시작했다.

디스매치에서 그동안 스캔들 보도를 덮어주는 조건으로 수억에서 많게는 수십억까지 요구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이번에 디스매치 탓으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다른 언론에서도 디스매치를 손절했다.

‘인기 배우 A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스캔들을 덮어주는 대가로 D언론사는 10억을 요구했다. 배우 커리어가 끝날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A씨는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유명인의 신상을 보호하면서 디스매치를 공격하는 그런 기사를 내놓았다.

한두 푼이면 몰라도, 그 피해 금액을 다 합치면 백억 단위가 된다.

국회의원 총선을 앞둔 정치판에서 이 먹잇감을 놓칠 리가 없었다.

여야가 앞다투어 ‘디스매치 폐간’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진선후 법’을 만들어 연예인과 그 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겠다고 나섰다.

그뿐만이 아니다.

배우 은퇴를 선언한 우리 엄마를 당 비례대표 1번으로 추대하겠다거나, 새로 만들 ‘가족부’의 장관 자리에 엄마를 앉히겠다는 등, 엄마를 정치판으로 끌어들이려는 세력까지 있었다.

대체 뭣들 하는 건지.

당연히 엄마는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만큼 여론이 우리 쪽으로 기울었다는 방증이겠지.

결국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편집장과 대표는 구속되고 회사는 압수수색 후 폐간 수순을 밟고 있다.

나는…… 꼭 망하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선하를 모욕한 건 용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의 인생이 끝장나길 원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디스매치는 평소에 너무 원한을 많이 사고 있었다.

내가 용서해도 다른 사람들이 용서하지 않았다.

‘진선후 스캔들 사건’은 디스매치의 폐간을 촉발하는 기폭제가 되었을 뿐이지, 폐간과 구속은 본인들의 업보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에에, 마침 여기에 우리 학교의 자랑스러운 졸업생, 김선하 양의 오빠가 되시는 진선후 배우도 와있는데요.』

……응? 나?

잠이 들 것만 같은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에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왜 내가 언급된 거야?

『진선후 씨, 우리 ○○여고 졸업생들을 위해서 한 말씀 해주시겠습니까?』

어? 나?

사람 좋아 보이는 교장 선생님은 웃으면서 나에게 손짓했다.

앞으로 나오라고?

“꺄아악!” “오빠! 선후 오빠!” “멋있어요!” “사랑해요!”

졸고 있던 학생들도 ‘진선후’라는 이름에 정신을 차리고 환호하기 시작했다.

학생, 교직원, 학부모, 그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려있었다.

나를 보는 시선 속에서 내 동생 선하를 발견했다.

조금 미안한 듯, 그러면서도 조금 기대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선하를.

……그래. 여긴 선하의 졸업식이다.

선하의 오빠로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겠지!

나는 교장 선생님의 손짓을 따라 강당의 단상 위로 올라섰다.

“꺄아악!!” “선후 오빠!!” “아아악!”

“진선후! 진선후! 진선후! 진선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졸업식이 아니라 실내 콘서트장에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교장 선생님 대신 마이크 앞에 섰다.

『○○여고 졸업생 여러분, 졸업을 축하합니다.』

“꺄아악!!!!”

강당이 무너질 듯한 환호성.

조금 무섭다. 울거나 기절하는 아이도 있었다.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울 나이니까 이해는 하지만, 이건 좀 위험한 거 아닐까.

『어, 제가 멘트는 따로 준비한 게 없어서…….』

“아~~!!”

땅이 꺼지게 아쉬워하는 학생들.

『……대신 괜찮으시면 저쪽에 피아노 한 곡 쳐도 될까요?』 

“네!!!!”

마침 강당 한쪽에 피아노가 놓여있었다.

보통 합창이나 연주회 같은 것도 여기서 하니까 그렇겠지.

내 말에 기기 담당자 같은 분들이 금세 피아노 앞에 마이크를 세팅했다.

『고맙습니다.』

피아노에 앉아 통통, 시험 삼아 두드려 본다.

키 감이 조금 무겁지만, 이 정도는 전혀 상관없었다.

『제가, 음, 사실 노래는 잘 못하지만,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곡은 선하의 졸업을 축하해주려고 연습한 곡이다.

이런 자리에서 부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오히려 잘 된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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