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4화 (204/256)

이런 숫자는 처음 봤다.

고장 났나? 아니면 설마 나한테도 스토커가?

불안한 마음을 얼버무리려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자 다시 폰이 깜빡이며 전화가 왔음을 알렸다.

지난번 CF 촬영 때 도와주셨던 J-up의 이선영 이사였다.

『아, 진선후 씨. 겨우 받았네요.』

“네, 이사님.”

나는 조금 각오를 다졌다.

안 그래도 진지한 이사님의 목소리가 더욱 진지했기 때문이다.

뭔가 일이 있는 거겠지.

『아침에 뉴스 봤어요?』

“뉴스요? 아뇨, 이제 일어나서…….”

뭐야? 나랑 관련된 뉴스라도 나왔나?

『그럼 간단히 이야기할게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였다.

스캔들.

그것도 나와 선하를 엮어서, 말도 안 되는 내용의 스캔들이 터졌다.

『미안해요, 진선후 씨. 우리가 미리 막았어야 했는데.』

“아니……아니요. 그쪽에서 갑자기 터뜨린 거니까……어쩔 수 없죠.”

이런 일로 소속사를 탓할 수는 없겠지.

소속사에 미리 선하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도 잘못이고.

어젯밤 엄마와 보낸다고 휴대폰을 꺼놓은 것도 잘못이고.

선하나 센터에 나에 대한 건 비밀로 해달라고 한 것도 잘못이었다.

하필이면 여러 가지 불운이 겹쳐서 벌어진 사태지, 누굴 탓할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에 가장 먼저 터뜨린 곳은 예전 미소와의 데이트 사건 때 기사 잘못 냈다가 역풍 맞은 언론사라고 한다.

그 일로 나한테 앙심을 품고 이번 스캔들을 터뜨렸다고.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것도 아니고!

그때 그건 내가 피해자잖아! 

“……일단 기사부터 확인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래요. 진선후 씨도 너무 스트레스받지만 말아요. 진선후 씨 말대로라면 이건 무조건 우리가 이기는 싸움이니까.』

“네.”

『지금은 성급하게 대응하지 말고 저쪽이 선 넘을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죠.』

“……네.”

이사님 생각은 이랬다.

지금 뜬 스캔들은 진실만 밝히면 바로 잠재울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선 약하다.

여론은 우리 편이 되겠지만 저쪽은 또 사죄 기사 한 줄로 끝낼 게 뻔하다.

그렇게 넘어가면 다음에 또 같은 일이 벌어질 거다.

몇 가지 정황만으로 SNS에 올라온 추측 글을 사실인 양 부풀려서 쓴 기사로 실컷 조회수 뽑아먹은 뒤에, 아니면 말고.

저번엔 미소, 이번엔 선하, 다음엔 또 누가 나랑 엮여서 피해를 볼지 모른다.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일망타진 해버리자고.

우리가 입장 발표를 미루면 저쪽에서 알아서 선을 넘을 것이다.

일이 커질 만큼 커져서 도저히 수습이 안 될 지경이 되었을 때, 우리는 반격에 나선다.

그때는 저쪽도 사과 한 줄로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이사님은 그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나 혼자라면 모른다.

그러나 내 소중한 사람들까지 건드리는 벌레들까지 용서할 만큼 나도 성인군자가 아니다.

얕보이면 잡아먹힌다. 나는 그런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다.

앞으로도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확실하게 쓸어버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사님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후우.”

전화를 끊고, 잠시 심호흡을 한다.

지금부터 나는 심연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됐다.

내가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도 나를 들여다볼 테니까.

휴대폰으로 인터넷 창을 열었다.

……검색할 필요도 없었다.

인터넷 초기 화면 포털 사이트 메인에 내 이름 석 자가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었으니까.

『‘찐잘남’ 진선후, 여고생 스폰서 스캔들』

……이미 기사 제목에서부터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이 ‘찐잘남’이라는 단어를 미소한테서 처음 들었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찐잘남은 미소가 나한테 붙여준 별명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별명이 마치 오피셜처럼 뉴스에 실린 걸 보는 기분은 몹시 기묘했다.

게다가 그 뒤에 따라오는 여고생 스폰서 스캔들이라니.

나는 기껏해야 선하와 돌아다니다 찍힌 사진 때문에 생긴 비밀 연애 스캔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스폰서라니.

순수한 연애 스캔들과 돈이 오가는 스폰서 스캔들과는 문제의 차원이 달랐다.

실제로 선하와 스폰서 운운하기는 했지만, 그게 스캔들에 해당하는 스폰서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스폰서, 지원한다는 뜻이지 그 대가로 내가 성 상납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준다는 걸 거부했었고.

그런데 기사 제목을 이렇게 써버리면 내가 정말 이상한 짓이라도 한 거 같잖아. 그것도 미성년자 상대로.

진짜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지난번 미소 스캔들 때 앙심을 품은 언론사가 이번 스캔들을 터뜨렸다더니, 기사 제목만 봐도 악의적인 기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휴우.”

솔직히, 눌러 볼 자신이 없었다.

철저하게 나를 파묻기 위한 기사일 테니까.

……그래도 일단 기사를 읽어야 어떻게 대응을 할지 생각할 텐데.

읽어봐야겠지?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기사를 터치했다.

『‘찐잘남’ 진선후, 여고생 스폰서 스캔들』

『드라마 ‘꽃과 당신과 나’에서 ‘찐잘남’ 황진우 역으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배우 진선후 씨가 스폰서 의혹에 휘말렸다.

그 상대는 미성년자인 K양.

진 씨는 ‘꽃당나’ 드라마 세트장에서 K양을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부모님 없는 고아로 아동 시설에서 생활하는 K양은 어린 나이에도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 중이었다. K양은 귀여운 외모와 성실한 태도로 아르바이트 처 언니·오빠들에게 많은 귀여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K양에게 접근한 것이 진 씨였다. 

진 씨는 큰돈을 주겠다는 달콤한 말로 K양을 유혹했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K양은 곧바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아니!!???

내가 언제???!!

선하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건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이었는데!!

그때가 언제였지? 내가 인터뷰에서 입양아란 걸 밝힌 시기였나?

선하는 그때 내가 친오빠라는 걸 알고,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일을 그만두었었다.

그리고 그 뒤엔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했고.

편의점에서 손놈한테 험한 꼴을 당하는 선하를 보고, 돈이라면 내가 지원해줄 테니 알바 그만두라고 한 것도 그때였다.

아무튼, 선하가 방송국 아르바이트한 것까진 사실이지만, 그 뒤는 완전히 소설이었다.

진실에 거짓이 교묘히 섞여 있었다.

선하가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한 것까진 조금만 조사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뒤 스폰서 운운한 건 당사자인 나와 선하 외에는 알 수 없으니, 선하가 방송국에서 알바한 걸 아는 사람은 이 기사가 진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부글거리는 속을 달래며 다음 문단을 읽어 내려갔다.

『K양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후에도 진 씨는 K양과의 밀회를 이어나갔다. 시내 곳곳에서 교복을 입은 K양과 데이트하는 진 씨를 봤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그리고 목격자 중엔 K양의 동급생인 A양도 있었다.

A양은 ‘진 씨가 입막음을 대가로 고급 가게에서 비싼 물건을 사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후우.”

오늘 도대체 몇 번 한숨을 쉬는지 모르겠다.

나는 ‘고급 빵집’에서 ‘비싼 빵’을 사줬을 뿐인데!

그게 ‘고급 가게’에서 ‘비싼 물건’으로 둔갑해 있었다!

기사만 보면 내가 무슨 명품 시계라도 뇌물로 준 줄 알겠네!

게다가 그건 입막음 용도가 아니라 선하랑 친하게 지내 달라는 의미였다고!!

나는 이를 갈며 다음 문단으로 넘어갔다.

『K양 동급생, ‘K양이 스폰서 조건 물어봐’』

『K양의 동급생 A양은 ‘K양이 스폰서 조건을 물어봤다. 기간이나 금액, 만나는 횟수 같은 것들.’이라며, ‘물어본 타이밍이 진선후 배우와 만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 후론 선물로 받은 옷이나 비싼 학용품 등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 전엔 허름한 교복만 입고 다녔었는데.’라며 진 씨의 여고생 스폰서 의혹에 신빙성을 더했다.』

“아니…… 하…….”

하필이면 선하가 친구한테 그런 걸 물어봤었어? 게다가 친구는 그걸 기자한테까지 말하고?

이건 당사자인 나와 선하가 아니라고 해도 진실을 밝힐 수가 없는 문제였다.

아니라고 해봤자 거짓말이라고 할 테고.

계좌 내역을 까도 현금으로 줬다고 우기면 된다.

제대로 가불기에 걸리고 말았다. 이 언론사도 그 정도는 계산하고 터뜨린 거겠지.

그야말로 나와 선하가 친남매라도 되지 않으면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래. 이건 나와 선하가 친남매라는 걸 밝힘으로써 전부 뒤집을 수 있다.

흥분하지 말자. 처음부터 승리는 정해져 있는 싸움이니까.

『C 코인노래방 CCTV에는 진선후 씨와 교복을 입은 여학생의 사진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이곳은 모텔에 갈 금전이 부족한 청소년들의 밀회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해당 코인노래방 사장인 B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래도 객실이 밀실이다 보니 커플끼리 오면 음란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 노래만 부르고 가는 쪽이 더 드물다. 우리가 막는 것도 한계가 있고……’라며 객실 내 음란 행위가 드물지 않다는 현실을 밝혔다.

당시 카운터 업무를 보고 있던 D씨는 당시 상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키가 큰 남자분이 먼저 나왔는데 왠지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뒤에서 여학생이 안절부절못하며 따라 나왔다. 다툰 것 같았다.’라고도 전했다.』

……마치 내가 코인노래방에서 선하와 ‘음란 행위’라도 한 것처럼 말한다.

이것도 가불기였다. 안 했다고 해봤자 믿어주지 않겠지.

어차피 밀실이고 내부엔 CCTV도 없었다. 했다는 증거도 없지만 안 했다는 증거도 없다.

제기랄.

『이번 스캔들에 네티즌들은 ‘진선후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다’, ‘그렇게 착한 척 이미지 메이킹 하더니 뒤에서 호박씨 까고 있었네’, ‘미성년자 성매매는 심각한 범죄다, 반드시 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다’. ‘진선후도 남잔데 돈 주고 할 수도 있지’ 등의 의견을 남겼다.

현재 진 씨와 그 소속사인 J-up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번 스캔들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어휴.”

이건 그냥 기자가 자기 하고 싶은 말 써놓은 거잖아?

애초에 이 스캔들은 자기가 처음 낸 건데 네티즌 의견을 어디서 구해?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할 말도 없었다.

……어떡할까.

우선 선하한테 전화부터 해야겠지?

지금쯤 엄청 걱정하고 있을 텐데.

졸지에 뉴스 1면에 성매매 청소년 낙인이 찍혀버렸으니까.

……생각할수록 용서할 수가 없었다.

“선후야……? 무슨 일 있어?”

그러고 보니 선하보다 먼저 이야기해야 할 사람이 여기 있었지.

흘러내린 이불을 다시 올리기 전에 가슴이 살짝 보였다.

잠에서 막 깬 부스스한 모습도 아름다웠다.

덕분에 들끓던 분노도 조금은 가라앉았다.

“엄마.”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엄마.

나는 우선 엄마에게 모든 걸 털어놓기로 했다.

스캔들 3 

엄마는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촬영장에서 알바하던 선하와 우연히 알게된 이야기.

편의점 알바하던 선하와 또 우연히 마주친 이야기.

그러다 선하가 친동생이라는 걸 알고 학비나 생활비를 지원해주게 된 이야기.

물론 마음에 켕기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순서가 조금 바뀌긴 했지만 거짓말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미안해, 엄마. 미리 이야기 안 해서.”

엄마한테만 미리 이야기했어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친동생을 찾았다고 널리 퍼뜨려서 미담으로 삼았으면 좋았을 걸.

그럼 선하가 주목은 받았겠지만 나쁜 주목은 아니니까.

“아니야. 엄마가 더 미안해.”

엄마는 괜찮다며 안아주는 것도 아니고,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어, 엄마?”

나는 당황했다. 엄마 성격상 화를 내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고개를 숙일 줄은 몰랐으니까.

나는 졸지에 엄마 머리를 숙이게 만든 불효자가 되고 말았다.

“엄마가 선후 동생까지 제대로 챙겼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미안해.”

“엄마! 그런 거 아니야, 엄마!”

죄책감에 눈시울을 붉히는 엄마를, 나는 와락 끌어안았다.

엄마의 죄책감은 곧 나의 죄책감이기도 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나도 알고 있어 엄마. 엄마도 힘들었다는 거. 선하한테까지 신경 쓸 여력 없었다는 것도……!”

나를 입양했을 때, 이 집에는 이미 딸이 둘이나 있었다.

그것도 부모의 손이 필요한 예체능계 아이들이.

거기에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억지로 데려온 아이가 더해졌다. 데려온 아이는 정신적으로 문제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생활이 순탄할 리가 없었다.

엄마는 남편과 싸우며 나를 돌보면서 두 딸까지 챙겨야 했다.

그 와중에 남편의 바람과 이혼까지 겹쳤다. 그 후로는 어린아이 셋을 여자 혼자 손으로 키워야만 했다. 내가 중학생이 된 후엔 연기자 일까지 해야했다.

그런 엄마에게 다른 아이까지 챙기길 바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요구다. 그렇게 말하는 인간이 있다면 내가 가서 두들겨 패버릴 거다. 네가 한번 해보라고!

“그때 엄마가 날 데려와 준 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이었어. 그러니까 다신 그런 말 하지 마.”

“선후야…….”

“엄마…….”

엄마는 결국 눈물샘이 터지고 말았다.

우는 엄마를 보고 나도 울어버리고 말았다.

나와 엄마는 서로 얼싸안고 울었다.

성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는 순수한 포옹이었다.

내 아랫도리가 반응하는 건 생리적인 현상이니 어쩔 수 없다. 아래쪽 절반은 내가 아닌 또 다른 생명체인 것이다.

“아. 엄마, 누나 전화 왔어. 전화 좀 받아볼게.”

“응. 그래.”

나는 엄마에게서 떨어져 콧물을 훌쩍이곤 전화를 받았다.

“누나.”

『야!!!!!!!』

“으악!”

통화버튼을 누르자마자 누나가 빽 소리를 질렀다.

깜짝이야.

귀청 떨어질 뻔했네.

너무 놀라서 울음이 다 가시고 말았다.

『너! 왜! 전화를 안 받아! 이 찐따 새끼야!』

“아니. 누나.”

『그리고! 처먹으려면 티라도 안 나게 처먹었어야지! 아예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지 그래!』

“아니. 누나.”

『닥쳐!!!!』

“으악.”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쪽 판 줄 알아?! 넌 집에 가면 뒤졌어!!』

“아니, 누나.”

뚝.

누나는 내가 뭔 말도 하기 전에 끊어버렸다.

“아니…… 누나…….”

나는 ‘아니, 누나’밖에 말하지 못했다.

내 말도 좀 들어보라고. 할 말이 태산인데.

……그나저나 누나한테도 민폐를 끼쳤구나. 

누나는 지금쯤 대회 중일 텐데. 설마 기자가 거기까지 찾아간 건 아니겠지?

아니지. 찾아갔으니 누나가 저러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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