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3화 (203/256)

억지로 뺐다간 찢어질까 봐 세게 당길 수도 없었다.

“흥!엉덩이 때린 벌이니까 얌전히 맞아!”

누나는 깔깔 웃으며 내 얼굴에 오줌을 뿌렸다.

“우왁!”

나는 호들갑을 떨며 싫어하는 티를 냈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싫진 않았다.

누나도 전에 내 오줌 맞은 적 있었고. 어차피 씻을 거고.

엉덩이 때린 것도 미안했는데 이걸로 퉁친다면야 얼마든지 맞을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오만상을 쓰고서 누나의 오줌을 끝까지 다 맞아주었다.

“으으. 누나…….”

“크크. 아유, 냄새. 저리 가.”

가벼운 누나의 말투에서 친근감을 느낀다.

어릴 때도 누나와는 이런 유치한 장난은 안 쳤었는데.

뒤늦게나마 누나와 진짜 가족처럼 친해진 듯한, 왠지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역시 안 되겠어. 한 번 더 해.”

“뭐? 오늘은 이제 안 한다며? 상처 나면 책임질 거야?”

누나도 싫은 듯이 말했지만 목소리 안에 숨어있는 기쁨을 다 숨기진 못했다.

“훗. 언제부터 애널 섹스가 디폴트가 됐어? 구멍이 하나밖에 없는 게 아니잖아?”

구멍은 하나 더 있다. 아니, 두 개 더.

“앗.”

누나도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 같다.

“흐흐. 각오해, 누나!”

누나와의 정액으로 정액을 씻는 처절한 복수전이 시작되었다.

유난히 긴 밤이었다.

스캔들 

“정 사장님이 웬일이야? 나를 다 보자 그러고.”

“신혜 씨한테는 미리 말해둬야 할 것 같아서.”

“뭘?”

J-up 엔터테인먼트의 정 사장.

배우 임신혜와 그 아들 진선후의 소속사 사장이다.

임신혜는 그 정 사장의 호출을 받고 사무실에 들른 것이었다.

신혜가 소파에 앉자 정 사장은 테이블 위에 몇 장의 사진을 올린다.

사진을 본 임신혜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이게 뭐야? 교복?”

사진에는 아들 선후와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나란히 찍혀있었다.

사이 좋게 팔짱 끼고 걷는 사진,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사진, 함께 고급 외제차에 타는 사진, 허름한 건물에서 나오는 사진.

“내일 아침, 진선후 씨 스캔들이 뜰 거야.”

“……농담이지?”

아들은 매력적인 남자다.

언젠가는 여자 문제가 터질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한창 선후의 주가가 오르고 있는 지금, 언론에서 미리 쥐고 있던 소스를 터뜨려도 이상하진 않겠지.

하지만 이건 안 된다.

미성년자는, 안 된다.

선후의 연기 인생은 물론 법적인 문제까지 불거질 수 있었다.

“정 사장.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이런 거 막으라고 정 사장 있는 거 아냐? 돈 때문에 그래?”

원래 연예인 스캔들이란 건 갑자기 터지는 게 아니다.

미디어는 먼저 소속사와 협의해서 묻을지 터뜨릴지를 결정한다.

이 건도 그랬다. 사진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 미디어에서 받았다는 거겠지.

그런데 왜 묻지 않고 터뜨리게 둔단 말인가. 돈이 부족한 거라면 신혜는 얼마든지 지불할 의사가 있었다.

하지만 정 사장의 계획은 달랐다.

“아니요. 일단, 음, 이야기부터 들어봐. 신혜 씨.”

임신혜는 악역 전문 배우지만, 평소에는 누구보다 온화한 사람이다.

그런 신혜도 아들 문제가 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아들을 건드리면 누구든 용서치 않는다. 그게 설령 아군이라 믿고 있던 정 사장일지라도.

그런 신혜의 공격적인 분위기를 느낀 정 사장은 진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우리가 잡고 있는 진선후 씨 소스는 이 애 말고도 몇 개 더 있어. 스프링의 한세아라든가, 우리 황수아 씨도 있고. 아나운서 나주리도 그렇고.”

신혜는 일단 잠자코 정 사장의 말을 들었다.

정 사장과는 10년 넘게 같이 일해오고 있다.

돈이나 계약이 문제가 아니다.

신뢰가 없으면 해올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오히려 황수아 씨보다 이 아이가 먼저 터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어째서? 이거 교복이잖아. 미성년자 아니야?”

“그게, 음…….”

정 사장은 왠지 말하기 민망한 듯이 머뭇거렸다.

“사실은 이 아이, 진선후 씨의 친동생이에요.”

“친동생이라니?”

신혜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정 사장의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선후는 그녀의 아들이다.

엄마가 모르는 친동생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니.

하나 있었다.

“설마.”

그 가능성을 떠올리자, 신혜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만 같았다.

“예. 그 설맙니다. 진선후 씨가 신혜 씨한테 입양되기 전에 같이 살던 동생, 진짜 피가 이어진 친동생 김선하입니다. 올해 나이는 20살이네요. 진선후 씨가 동생을 만나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니까 사진이 찍힌 시점에서는 아직 미성년자라는 게 됩니다.”

정 사장이 김선하의 프로필을 읊었지만 신혜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신혜의 눈은 두 사람이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웃고 있는 사진에 못 박혀 있었다.

어째서 선후는 말하지 않았을까.

엄마한테 비밀로 동생을 만나다니. 대체 선후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설마──

“신혜 씨.”

정 사장이 생각에 빠져있던 신혜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말했다.

“‘진미소 법’ 기억나죠?”

기억 못 할 리가 없었다.

딸인 미소에게 비밀 연애 의혹을 씌워 아들 선후를 쓰러지게 했던 그 사건을.

그건 SNS를 통해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퍼뜨리는 팬들, 그리고 그런 루머를 최소한의 팩트 체크조차 하지 않고 기사로 받아쓰는 ‘기레기’들의 합작품이었다.

일단 화제를 끌어서 조회수만 빨아먹으면 된다. 오보라면 사과하면 그만.

그게 요즘 기레기들의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그 사건 당시에는 선후가 쓰러지고 미소가 응급처치하는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SNS와 언론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가 높아졌었다.

그래서 탄생한 ‘진미소 법’은 언론 규제와 잘못된 정보 확산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었다.

정치인들은 그저 유명인의 인기를 등에 업고 언론을 통제할 목적이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루머에 가장 피해를 크게 받는 연예인에게 있어서는 환영할만한 법안인 것도 사실이었다. 연예인 협회에서는 대대적으로 해당 법안을 환영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여당 국회의원들이 내놓은 이 법안은 당시 화제가 된 미소의 영상 덕분에 국민의 지지를 받아 발의되었지만, 언론의 심한 반발로 마지막에 무산되었다.

그 결과, 법안지지 성명을 낸 연예인 진영과 거기에 불만을 품은 언론인 진영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되고 말았다.

뭐든지 파내려는 언론과 허점을 보이지 않으려는 연예인 간의 눈치 싸움이 수면 아래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정작 당사자인 진선후는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정 사장은 이번 스캔들을 그 ‘진미소 법’ 사태의 후반전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우리는 이번에 이 쥐새끼들을 다 때려잡을 계획입니다.”

쥐새끼들.

연예인 똥이나 받아먹으면서 돈 뜯어내려 협박하는 기레기들을 정 사장은 쥐새끼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우리 선후를 미끼로 던지겠다고? 쥐새끼를 잡을 쥐약으로?”

정 사장의 말에 신혜가 매섭게 쏘아붙였다.

신혜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였지만, 지금은 억지로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 아들의 미래가 바뀔지도 모르는 중대한 문제였으니까.

“신혜 씨. 이건 진선후 씨를 위한 거예요. 신혜 씨 아들이 진심으로 순수하다고 믿는 건 아니잖아? 언제든지 터질 수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예방접종을 하자는 거지.”

정 사장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정 사장 계획대로 된다면 다음에 선후에게 스캔들 의혹이 있어도 언론에선 터뜨리길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설사 터뜨리더라도 선후에 대해 두 번이나 헛발질을 한 언론을 국민이 믿어주지도 않을 거고.

하지만, 어째서 또, 또 선후인 걸까.

선후는 이제 겨우 자기 발로 걷기 시작했는데. 어째서 주위에서 가만히 놔두질 않는 걸까.

“……선후한테는 말하지 않는 거야?”

“말하면 반대할 테니까요.”

마음 약한 선후라면 자신의 이익보다 친동생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일반인이 연예인의 스캔들에 말려드는 스트레스는 다름 아닌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정 사장은 선후에게는 알리지 않는다.

사실관계 알아보고 답변 주겠다고 협상 중이었는데, 다른 언론에서 먼저 터질까 봐 다급해진 저쪽에서 갑자기 터뜨렸다. 정 사장은 그런 시나리오로 나갈 생각이었다.

“후우…….”

신혜는 탄식했다.

그럴 거면 나한테도 알리지 말지.

공범으로 끌어들이기나 하고.

만약 나중에 선후가 정 사장의 계획이었다는 걸 알더라도, 엄마가 그 계획에 협조했다는 걸 알면 강하게 항의할 순 없겠지. 정 사장은 거기까지 내다보고 신혜에게만은 미리 알린 것이었다.

‘아들을 위해서’라면 신혜도 협조하리라는 걸 알고서.

얄미울 정도로 철두철미한 인간 같으니.

신혜는 그런 정 사장이 같은 편이라는 게 다행스럽기도 하면서 원망스럽기도 했다.

“……정 사장님. 대신 조건이 있어요.”

그런 얄미운 정 사장에게 신혜는 폭탄을 던져줄 작정이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겨우 신혜가 마음을 정했다고 생각한 정 사장은 조금 안심하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응. 뭐든 말해봐요.”

이번 일만 성공하면 앞으로 진선후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J-up에 있어서 진선후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그 거위의 배를 가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작전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아들이 잘되길 바라는 신혜가 이 제안을 거절할 리는 없겠지만, 아들을 미끼로 쓴다는 데에 감정적으로 반응할까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신혜의 조건은 웬만하면 다 들어줄 생각이었다.

신혜는 지금까지 J-up을 위해 황금알을 낳아온 거위였으니까.

하지만, 신혜의 입에서 나온 조건은 정 사장의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였다.

“저, 이번 드라마를 마지막으로 은퇴할게요.”

“뭐?!”

정 사장은 펄쩍 뛰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심으로 뛰었다.

“아니, 신혜 씨, 왜 또 그래. 기분 나빠서 그래?”

“그런 거 아니에요.”

“알았어. 내 취소할게. 지금 이 자리에서 전화할게. 응?”

“그런 거 아니라니까.”

정 사장은 신혜가 빈정 상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혜의 결정은 확고했다.

“그럼 왜 또 그러는데. 뭐가 불만인데. 다 막아준다니까?”

“원래 그만둘 생각이었어. 마침 좋은 기회니까 미리 말한 것뿐.”

“아니, 진심이야? 진심으로 그만둔다고?”

“진심이지 그럼. 이런 말 농담으로 할까 봐?”

신혜는 진심이었다.

그땐 선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진짜 은퇴할 생각은 없었다.

아직 연기를 더 하고 싶다든가, 뭐라도 이유를 붙여서 이야기를 물릴 생각이었다.

그런 신혜의 마음이 바뀐 건 갑자기 튀어나온 여동생의 존재 때문이었다.

선후가 어떤 마음으로 동생을 찾은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여자의 직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이건 위험하다고.

선후를, 내 남자를 빼앗길지도 모른다고.

엄마와의 강한 연결을 바라는 건 선후만이 아니다.

신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엄마와 아들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으니까, 비록 피가 이어지지 않았어도 선후와의 연결이 끊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안심하고 있었다.

이미 한 번 이혼을 경험한 신혜에게 있어 결혼은 형식적인 절차일 뿐, 모자간의 인연보다 강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친동생이 등장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법이 정해준 가짜 모자 관계보다 훨씬 강한, 피로 이어진 혈연.

선후에게 이유를 물어봐도 어차피 엄마가 안심할만한 대답을 골라서 할 것이다.

선후가 새 가족보다 친가족을 선택할 거라곤 믿을 수 없지만, 믿고 싶지 않지만, 신혜는 그런 대책 없는 믿음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안심하기 위해서는 더 강한 연결이 필요했다.

선후의 아이가, 필요했다.

“하아~. 진짜 미쳐버리겠네. 그럼 지금 들어온 배역들은 어쩌고?”

“취소해야지 뭐.”

“그게 쉬워? 뭐라고 하고 취소하라고?”

천하의 임신혜가 이렇게 배역을 가볍게 여기는 여자였던가.

신혜의 가벼운 말투에 정 사장은 현기증을 느낄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신혜의 말에 정 사장은 더더욱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임신이라도 했다고 해.”

“……뭐?”

“지금까지 너무 엄마로서, 배우로서만 살았어. 얼마 안 남은 인생, 이제 여자로서 살 거야.”

그 나이에? 라든가, 폐경은? 이라든가, 일단 여러 가지 생각은 떠올랐지만, 여자 앞에서 대놓고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정 사장은 어떻게든 대신할 말을 찾았다.

“아니, 신혜 씨…… 애인이라고 생겼어?”

정 사장은 몹시 당황하면서도, 당연히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그렇게 물었다.

“생겼어.” 

하지만 신혜는 싱긋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멋진 애인이.”

그건 신혜가 정말로 오랜만에 짓는, 여자로서의 웃음이었다.

스캔들 2 

어제는 꽤 노력했다.

스케쥴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가 나한테 안아달라 찾아왔기 때문이다.

어제의 엄마는 힘든 일이라도 있었는지 몹시 지쳐 보였다.

힘내시라는 의미로 나도 힘내드렸다. 새벽이 밝을 때까지.

‘사실 엄마는 하기 싫은데 내가 보채서 억지로 하는 게 아닐까.’

나는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라 불안해질 때가 있었다.

피해망상이란 건 알고 있다.

엄마가 아들을 사랑하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니까.

하지만 그런 피해망상은 잊을 만하면 떠올라 날 괴롭혀댔다.

그래서 더욱 엄마의 그런 행동이 기뻤다.

엄마도 나를 원한다는 게.

나 혼자만의 짝사랑이 아니라는 게, 기뻤다.

그래서 무심코 너무 노력해버렸다.

엄마의 배 속이 촉촉해질 때까지.

서로가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안아드렸다.

다음 날은 나도 엄마도 스케쥴이 비어있으니까.

그러니까 안심하고 밤을 새울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난 나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엑.”

부재중 전화 177통.

그런 숫자가 휴대폰에 찍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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