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화 (199/256)

내 인공위성은 세아 씨의 궤도에 안착할 수 있을까.

절대 그런 일은 없겠지. 있어서도 안 되겠지만.

“하앗, 하앗, 하앗.”

천장을 향해 치켜들었던 세아 씨의 고개에 힘이 풀린다.

이내 허리에도 힘이 빠진 세아 씨는 무너지듯 내 위에 덜컥 쓰러졌다.

마치 내 심장 소리라도 듣는 것처럼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힘겨운 듯 숨을 몰아쉰다.

나는 사정 후에 찾아오는 나른함을 즐기며 세아 씨의 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하아, 하아, 선후 씨…….”

“예, 세아 씨.”

세아 씨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내 이름을 불렀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지금은 모든 게 귀찮으니까 심각한 이야기는 안 했으면 좋겠는데.

──그때, 휴대폰 진동음이 들렸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내 것도, 미소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세아 씨 거겠지.

사실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그 진동음은 세아 씨가 내 위에서 춤추던 때부터 몇 번이나 울렸다 꺼지고 있었다.

“세아 씨. 전화 안 받아도 되겠어요?”

세아 씨는 왠지 전화를 받을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정말 괜찮은 걸까.

이 시간에 저렇게 계속 전화가 오는 건 보통 일이 아닌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 그때가 빼빼로 데이였나?

그때 전화 온 사람은 분명……….

흠.

잠시 멍하니 쉬고 있자, 곧 진동은 멈췄다.

그리고 세아 씨는 다시 나를 부른다.

“……선후 씨.”

“예.”

진지한 목소리.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세아 씨는 이내 마음을 정했는지 입을 열었다. 

“저…… 많이 생각해봤어요. 선후 씨와의 관계에 대해서.”

“……예.”

“전에 말씀하셨었잖아요. 저랑 사귀지 않겠냐고.”

“그랬었죠.”

처음 세아 씨와 몸을 겹친 날, 나는 진지하게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세아 씨는 내가 아니라 다른 남자를 선택했다.

나도 세아 씨의 그 선택을 존중했고, 세아 씨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사실, 지금은 조금 후회하고 있어요. 혹시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닐까,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게 아닐까, 하고.”

이제 와서 마음이 바뀌었던 얘기일까.

……어째서, 이제 와서.

“……선후 씨. 만약…… 선후 씨만 괜찮다면──”

“세아 씨.”

세아 씨가 끝까지 말하기 전에 나는 말을 끊었다.

할 거 다 해놓고선 이런 말 하는 것도 우습지만, 세아 씨에게 그런 이야긴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지금 세아 씨 안에 태어난 마음은 한순간의 미혹입니다. 흔들리지 마세요. 몸의 욕구는 제가 채워드릴 수 있지만 마음까지 채워드릴 순 없습니다. 세아 씨를 진심으로 사랑해줄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하세요.”

나한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똑같이 힘든 사랑을 하는 처지로서, 나는 세아 씨에게 다소나마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세아 씨가 멀고 힘든 사랑보다 가깝고 편한 쾌락을 선택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걸 보는 나에게도 상처가 될 것만 같았다.

“전 세아 씨를 계속 좋아하고 싶습니다. 절 실망시키지 마세요.”

“…….”

세아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혹시 이야기하다 말고 잠이 든 걸까, 하고 생각하고 있자,

문득 가슴에 축축한 물기를 느꼈다.

“흑……윽…….”

이어서 억눌러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 싫다.

최악이구나. 나란 인간은.

나는 눈물로 떨리는 세아 씨의 등을 말없이 쓰다듬어주었다.

이런 거로 위로가 되진 않겠지만, 가만히 있기에는 내 손이 너무 허전했다.

내 손에 닿는 세아 씨의 등은 너무나도 약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보기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란 걸 나는 알고 있다.

세아 씨의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분명 세아 씨라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강해져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나의 아이돌을 응원했다. 

세아 씨는 그대로 잠시 흐느끼다 툭 말을 꺼냈다.

“제가 만약…… 그때 선후 씨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우린 연인이 될 수도 있었을까요?”

처음 세아 씨와 몸을 겹쳤던 그때.

그때 나는 세아 씨를 비교적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세아 씨만 OK 했다면 되고도 남았겠지.

아마 다른 여자관계를 전부 끊지는 못했겠지만, 삐걱삐걱하면서도 나는 어떻게든 세아 씨와 맞춰가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쓰레기에게도 책임감은 있으니까.

“……만약에, 같은 건 모릅니다.”

하지만, 괜한 기대감을 주고 싶진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나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세아 씨는 내 대답에 풋, 하고 덧없이 웃었다.

“지독한 사람.”

얄밉다는 듯이 유두를 꼬집는다.

아프다기보단 기분 좋은 꼬집기였다.

그렇게 잡으면 또 서버린다구요.

위이이잉-

위이이잉-

그리고 그때, 또다시 휴대폰이 진동했다.

“휴.”

세아 씨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내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상체를 세우고, 무릎을 세워, 자리에서 선다.

세아 씨와 연결되어 있던 자지가 쑥 빠졌다.

세아 씨의 벌어진 구멍에서 내가 낸 정액 덩어리가 툭, 툭, 떨어진다.

이불 또 빨아야겠구나.

“네, 사장님.”

세아 씨가 전화를 받는다.

역시 사장이었나.

“네. 미소 집이에요. ……죄송해요, 폰이 무음으로 돼 있어서. 네. 미소는 벌써 자요.”

“응하……?”

세아 씨가 흔들자 미소는 잠꼬대 같은 소리를 냈다.

“……네. 오늘은 자고 갈게요. 네. 네.”

그리고 세아 씨는 왠지 나를 보았다.

응? 왜? 나를? 왜?

“……저도 사랑해요, 사장님. 쪽.”

그 ‘쪽’은 내 입술에 키스하는 ‘쪽’이었다.

……무섭다.

여자가 무서워!

미소야, 넌 안 그럴 거지? 응?

“선후 씨. 앞으로도 외로울 땐 놀아주실 거죠?”

전화를 끊고서.

세아 씨는 내가 잘 아는 아이돌 한세아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이런 한세아라면 언제든지 놀아줄 수 있지.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얼마든지요.”

세아 씨는 기쁘게 웃었다.

이제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선후 씨 방에서 자고 갈 거니까, 선후 씨가 책임져주세요.”

세아 씨가 내 옆자리에 몸을 던진다.

침대가 가볍게 출렁인다.

“얼마든지요.”

나는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감싸 안으며 답했다.

그날 나는 진미소와 한세아, 두 명의 톱 아이돌에 둘러싸여 잠이 들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 * *

──그로부터 당분간, 세아 씨에게서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그래 봐야 겨우 일주일이었지만.

“……이건, 복수인가.”

오랜만에 세아 씨가 보낸 메시지와 사진을 보고, 나는 무심코 신음을 흘렸다.

『신곡 1위 축하!

사장님이 기념으로 데려다주셨어요!

(첨부 사진)

선후 씨도 미소 축하해주세요!^^

-한세아』

첨부된 사진은 고급 호텔 카운터에 체크인하는 최대승 사장, 그리고 그 뒷모습을 배경으로 V 사인을 그리고 있는 세아 씨의 셀카였다. 

마치 ‘지금부터 사장님과 섹스하러 갑니다!’라고 자랑하는 듯한 사진이었다.

큭.

아무렇지도 않거든?!

나도 지금 미소랑 같이 있으니까!

“……오빠. 설마 나랑 있으면서 다른 여자랑 연락하는 건 아니지?”

미소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뜨끔.

어떻게 알았지?

이럴 땐 귀신같이 눈치가 빠르다니까.

“흡!”

1차전 후 잠시 휴식 중이던 나는 미소의 날카로운 지적을 얼버무리기 위해 곧장 2차전에 돌입했다.

“하앙! 오빠 바보! 이렇게 얼버무리기나 하고!”

“어, 어떻게 알았지? 흡흡!”

“아앙!”

찜찜한 기분을 지우기 위해, 나는 한 번 더 미소의 배를 빵빵하게 채운다.

“오빠 바보!♡”

오늘도 평화로운 하루였다.

누나와 애널 플레이, 2회차 

조용한 저녁.

나는 방에서 머릿속 피아노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누나가 쳐들어왔다.

-쾅!

“야! 진선후!”

“우왓. 깜짝이야.”

어쩐지 무척 화가 난 듯한 누나.

누나는 늘 화가 나 있지만, 오늘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얼굴이 빨개져서 씩씩 콧김을 뿜을 정도로.

증기 기관차…… 아니, 폭주 기관차 모드였다.

“……누나. 문 부서지겠어.”

“넌 지금 문이 중요해?!”

“그럼 뭐가 중요한데.”

누나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금방이라도 두들겨 패겠다는 위협 신호였다.

위험하다. 도망칠까?

“왜! ……안 해주냐고!”

“어? 뭘?”

“3일 기다리라며! 누군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매일매일 관장하고 장 청소하면서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는데!”

“어…….”

3일, 관장, 장 청소.

그게 의미하는 건 하나밖에 없다.

“말을 하지. 하고 싶다고.”

웃음을 삼키고 한 내 말에 결국 누나가 폭발했다.

“와!”

내 머리를 팔에 끼우고 옆구리에 눌러 압박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당하는 누나의 헤드락이었다.

“누가! 하고! 싶댔어?! 사람이!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할 거! 아냐!”

“으아악! 항복! 알았어! 항복!”

얼굴에 눌리는 맘마통의 감촉보다도 머리통이 으깨지는 아픔이 더 컸다.

나는 살기 위해 열심히 누나의 팔과 엉덩이를 탭 했다.

“아야야…….”

겨우 누나의 팔에서 풀려난 나는 해롱해롱 바닥에 주저앉았다.

“흥.”

누나는 그런 나를 내려다보더니 콧방귀만을 남기고 방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남겨진 나는 고통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머리를 감싸고 있어야 했다.

아야야. 정말로 머리가 쪼개지는 줄 알았네.

누나라면 팔 힘만으로 수박도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리가 수박처럼 터지는 광경이 떠올라 오싹해졌다.

그나저나…….

흠. 그런가.

누나도 기대하고 있었다니.

그럼 그렇다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아니, 이건 내가 잘못한 거겠지.

3일 기다리라고 해놓고 계속 기다리게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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