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답장은 뭐라고 보내야 할까.
메시지 읽음 표시는 이미 떠버렸다.
읽고 씹는 것만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세아 씨. 너무 예쁘네요.
깜짝 놀라버렸습니다.
-진선후』
지금 생각해보면…… 뒤늦게 깨닫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지만, 아무튼.
그때 멈췄어야 했다.
이런 사진은 찍으면 안 된다고 따끔하게 이야기했어야 했다.
만약 누나나 미소가 이런 사진을 보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세아 씨다. 나에게 한세아는 그렇게까지 할 만큼 진지한 상대가 아니었다.
나는 한 마디도 이런 사진을 요구한 적이 없다. 세아 씨가 일방적으로 보냈을 뿐이다. 유출만 되지 않으면 괜찮다. 그러니까 나는 유출 안 되게 조심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세아 씨를 칭찬했다. 칭찬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세아 씨, 이런 사진은 위험합니다.
저야 당연히 유출되지 않게 조심하겠지만, 해킹이나 검열로 유출될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앞으론 이런 사진 보내지 마세요.
-진선후』
뒤늦게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나는 그렇게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그것도 세아 씨에겐 자신을 걱정하고 배려해주는 말로 들렸던 것 같다.
『그럼 유출 위험 없는 메신저로 할까요?
-한세아』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하지만 한때 한세아의 팬이었던 나는 ‘한정판’이라는 말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세아 씨가 보내는 사진들은 인터넷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나만을 위한 한정판’이었다.
세아 씨가 내 방에 벗어두고 간 팬티스타킹마저 보관중인 나다. 이런 귀한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세아 씨와 이전 미소와 비밀 메신저로 썼던 외국 메신저로 비밀스러운 메시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자기 전에 찰칵.
민낯이라 좀 부끄러워요.
(첨부 사진)
-한세아』
『겨드랑이에 자꾸 살이 붙는 거 같아요.
운동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ㅠ.ㅠ
(첨부 사진)
-한세아』
『이번 공연 의상 어때요?
조금 야한 것 같기도...?^^*
(첨부 사진)
-한세아』
『오늘 속옷은 핑크!
너무 어린애 같진 않나요?
-한세아』
세아 씨가 보내오는 사진은 조금씩 조금씩 수위를 높이고 있었다.
거기에 나는 예쁘다, 귀엽다, 섹시하다, 야하다 등등, 칭찬이되 인사치레로 보이는 뻔한 답장만을 보내고 있었다.
만에 하나, 십만에 하나라도 들켰을 때를 대비해서.
나는 누가 봐도 한세아가 일방적으로 나한테 사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도록 답장했다.
하지만 나도 일이 있고 생활이 있다.
종일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세아 씨가 보내는 모든 문자에 답해주지는 못했다.
그냥 읽고 넘어가거나 아예 다음 날까지 읽지 않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세아 씨는 다음 날 한 층 수위 높은 사진을 보내오는 것이었다.
대놓고 속옷 사진을 찍어 보내거나 야한 포즈를 취하거나.
마치 내 칭찬에 중독된 것처럼.
내 답장을, 칭찬을 요구하며 세아 씨는 점점 더 자극적인 사진을 보내왔다.
나야 좋지만…… 아니, 이거 정말 ‘나야 좋지만’이라는 말로 넘겨도 되는 걸까?
사실은 이미 상당히 위험한 지점까지 와버린 게 아닐까?
뒤늦게 그런 생각을 떠올린 나는 세아 씨에게 이제 그만하자는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세아 씨. 역시 이런 사진은 좀 위험한 것 같습니다.
이제 이런 건 그만 보내는 게 어떨까요?
-진선후』
『제가 메시지를 너무 자주 보냈죠?
앞으론 조금 줄이도록 할게요^^;;
-한세아』
문자를 보내고 1분도 안 돼서 답장이 돌아왔다.
세아 씨는 바쁘지도 않은 걸까?
나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
『아니요...줄이자는 게 아니라 이제 그만하자는 거예요.
저도 조심하고는 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세아 씨를 위해서라도 여기까지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진선후』
『저는 괜찮아요.
저는 선후 씨를 믿어요!
-한세아』
이상하다.
어째서 이런 대답이 돌아오는 거지?
내가 말을 어렵게 썼나?
내가 쓴 문자를 찬찬히 다시 읽어봤지만 문제는 없었다.
완곡하게 말하긴 했지만 세아 씨는 똑똑한 사람이니 내 말에 담긴 의미를 모를 리는 없을 텐데.
이번엔 좀 더 단도직입적으로 보내야겠다.
그렇게 내가 다시 한번 그만두자는 문자를 보내려는데, 세아 씨의 문자가 먼저 도착했다.
『죄송해요 선후 씨!
오늘 여기까지만 보내고 앞으론 줄이도록 할게요!
(첨부 사진1) (첨부 사진2)
이건 사죄의 의미로.... 죄송합니다 (__)
-한세아』
이번에 세아 씨가 보낸 사진을 열어본 나는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첫 번째 사진은 양쪽 가슴에 검지와 중지를 대고 젖꼭지만을 가린 사진.
두 번째 사진은 가리고 있던 손가락을 V자로 벌려 젖꼭지를 드러낸 사진이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쓰고 있던 문자도 전부 지웠다.
어떻게 하지?
그만 보내라고 다시 문자해봤자 설득할 수 있을 거 같지가 않았다.
그렇게 고민하길 10분.
세아 씨로부터 다시 문자가 왔다.
『죄송해요, 선후 씨.
사진이 마음에 안 들었나요?
-한세아』
내가 읽기만 하고 답장을 보내지 않고 있자 세아 씨는 불안해진 것 같다.
이건 또 뭐라고 답장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고 있자 또 문자가 날아왔다.
『혹시 괜찮으시면 다시 찍어서 보내봐도 될까요?
-한세아』
다시? 뭘? 벗은 사진을?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또 문자가 들어왔다.
『다시 찍어봤어요!
이번엔 마음에 드실 거예요!
(첨부 사진1) (첨부 사진2) (첨부 사진3) (첨부 사진4)
-한세아』
……사진은 열지 않았다.
무서워서 열어볼 수 없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한세아는 분명 똑똑하고 긍지 높은 아이돌이었을 텐데.
처음엔 분명 키스조차 거부했었는데. 진지하게 만나 보자는 제안도 거절했었는데.
천하의 한세아가, 어쩌다 이렇게 타락하고 만 걸까.
……어쩔 수 없다.
여기서 더 놔두면 진짜 문제가 커질지도 모른다.
“……미소야. 잠깐 이야기 좀 해도 돼?”
“응?”
그렇게 생각한 나는 미소에게 구조를 요청하기로 했다.
날 차버린 아이돌이 내게 집착한다 (#후회 #집착 #피폐) 2
“뭐야 이게?!”
세아 씨와의 문자를 본 미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무서워서 보지 못한 마지막 첨부 사진은 거울에 반사된 세아 씨의 알몸을 찍은 사진이었다.
성기만은 아슬아슬하게 가려졌지만, 가슴과 엉덩이를 비롯한 나머지 신체 부위는 자랑하듯이 드러내놓고 있었다.
“미소야 미안해. 원래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오빠가 미안해할 게 뭐 있어? 이건 누가 봐도 세아 언니가 이상한 건데.”
휴. 미소가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웠다.
솔직히 경솔하게 답장한 내 잘못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과실비율로 따지면 2:8 정도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전부 덤터기 쓰기엔 억울한 면도 있었다.
“그래서, 오빠는 어떻게 하고 싶어?”
“어떻게 하다니?”
“세아 언니랑 어떤 관계가 되고 싶냐고. 세아 언니가 우리 사장님이랑 사귀는 건 알고 있지? 이러는 거 봐서는 그것도 얼마 못 갈 거 같긴 하지만.”
“어…….”
그럼 나 때문에 헤어지는 거야?
그런 건 싫은데. 헤어진 책임을 지라고 하면 어떡하지?
“오빤 세아 언니랑 진지하게 해볼 생각이야? 아니면 지금처럼 가끔 만나기만 하는 관계가 좋아? 아니면 아예 얼굴도 보기 싫어?”
세아 씨랑 진지하게 해본다고.
그건 결혼을 전제로 만난다는 건가? 적어도 정식으로 사귄다는 의미겠지?
솔직히 나는 그 정도로 세아 씨한테 진심인 건 아니다.
처음에야 팬심도 있어서 세아 씨를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솔직히 ‘굳이?’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지금처럼 가끔 만나 섹스만 할 수 있다면 충분했다. 감정 소비나 책임질 일 없이.
하지만 그런 걸 미소한테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오빠를 쓰레기로 보는 거 아닐까? 이미 쓰레기긴 하지만.
“오빠. 이건 오빠의 솔직한 심정을 말해줘야 해. 그래야 내가 어떻게든 해줄 수 있으니까.”
“……진지하게 사귀고 싶단 생각은, 지금은 없어. 그렇다고 얼굴도 보기 싫을 정도로 싫은 건 아니지만, 그…….”
“오빠! 당당하게 말하라니까!”
찰싹.
미소에게 등짝을 얻어맞고 허리를 폈다.
“오빤 좀 더 당당해져야 해. 지금 세아 언니랑 관계에선 오빠가 갑이잖아. 그래가지고 여자들 후리고 다닐 수 있겠어?”
“후리고 다니다니…….”
별로 여자들을 후리고 다닐 생각은 없다.
나는 지금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관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물론 그냥 가끔 마음이 맞는 다른 여자랑도 하긴 하지만…… 그 정도는 다들 하는 거잖아?
“그럼 오빤 지금처럼 세아 언니랑은 가끔 만나서 섹스만 할 수 있으면 좋다는 거네? 책임질 생각은 없다는 거지?”
“어, 응……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렇게 되나…….”
내가 차마 민망해서 입에 담지 못한 말을 미소는 속 시원하게 말해버렸다.
미소 입으로 들으니까 더 쓰레기 같구나. 이미 쓰레기지만.
“알았어, 오빠. 내가 알아서 해줄게. 그럼 난 세아 언니랑 통화 좀 할 테니까, 오빤 방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
“어? 지금?”
미소는 곧바로 휴대폰을 조작해 전화를 걸었다.
쉭쉭 손을 흔들어 나가라는 제스쳐를 취하는 미소.
단호박처럼 단호하다.
나는 엉거주춤 미소의 방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여자 문제로 여동생에게 도움받는 오빠라니.
참 한심한 오빠로구나.
* * *
『여보세요?』
“세아 언니. 나야.”
『아, 응. 미소야.』
“언니. 내가 왜 전화했는지 알지?”
『……선후 씨 때문에?』
“그래. 언니, 무슨 생각이야?”
『뭐가?』
“선후 오빠한테 왜 꼬리치냐고. 내가 그러라고 언니한테 선후 오빠 소개해줬어?”
『…….』
“세상에 남자가 사장님밖에 없는 게 아니니까, 눈도 넓힐 겸 다른 남자도 만나보라고 샘플로 보여준 거잖아. 그런데 언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내가 우리 오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면서.”
『……미안…….』
“언니. 이제 우리 오빠한테 접근하지 마.”
『미소야.』
“문자도 사진도 보내지 마. 전화도 하지 말고 만나지도 마.”
『잠깐만, 그런 건─』
“세아 언니.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지금 이렇게 전화하는 거, 오빠가 나한테 말해서 하는 거야.”
『…….』
“언니가 점점 이상한 사진 보내니까 오빠가 나한테 언니 차단시켜 달라고 한 거라고.”
『저기…… 미소야. 잠깐 선후 씨랑 통화할 수 있을까? 잠깐이면 되니까…….』
“하아~.”
『저, 응, 미안해. 언니가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게 그럴 생각이 아니면 뭔데? 그래, 이야기 좀 들어보자. 언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데?”
『난 그냥, 선후 씨랑 좀 더 친해졌으면 해서,』
“언닌 남자랑 친해지고 싶으면 막 가슴 사진 보내고 그래? 알몸 사진 보내고 그러냐고.”
『아니…… 미안…….』
“하…… 세아 언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데? 언니 사장님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우리 오빠한테 사랑이라도 하는 거냐고.”
『……나도 모르겠어…….』
“언니 마음을 언니가 모르면 어떡해.”
『그냥, 문득문득 선후 씨 생각나고…… 맛있는 거 먹을 때나 혼자 있을 때나…….』
“하…….”
『사장님은 나 안 안아주니까…… 내가 매력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다가도…… 선후 씨는 내 몸 좋아해 줬는데, 그런 생각도 들고…….』
“중증이네. 중증이야.”
『그럴 땐 선후 씨 생각하면서 혼자…… 하기도 하고……』
“얼씨구.”
『……미안해, 미소야. 사진은 이제 안 보낼게. 그러니까 선후 씨랑 한 번만 더 이야기하게 해줘.』
“이미 늦었어, 언니.”
『아……….』
“그러게 오빠 만나고 싶었으면 나한테 이야길 했었어야지. 언니는 혼자 너무 나갔어. 저 오빠가 얼마나 섬세한 사람인데.”
『미소야 제발……. 언니 한 번만 도와줘.』
“나 참. 언니, 진짜 우리 오빠 좋아하는 거야?”
『응…… 나 이제 선후 씨 없이는 못 살 거 같아…….』
“……하. 알았어. 이번 한 번만 내가 오빠한테 이야기해볼게.”
『정말? 고마워! 고마워, 미소야!』
“대신. 언니도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해. 알겠지?”
『응. 알았어. 난 미소가 시키는 대로 할게.』
“좋아.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