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우연히 편의점에서 마주쳤을 때도 선하는 나를 모른 척하고 화를 냈었다.
선하의 태도가 그렇게 갑자기 돌변한 걸 그땐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짚이는 게 있었다.
“──수녀님. 선하는 저를 기억하고 있을까요?”
나는 그 답을 알면서도 굳이 수녀님에게 물었다.
“글쎄. 아마 기억 못 하지 않을까? 선후도 어렸지만, 선하는 더 어렸으니까.”
선하와 나는 2살 차이.
내가 6살일 때 선하는 4살이었다.
당시 집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던 나는 지능 발달이 늦게 이뤄졌다.
선하를 기억하지 못하는 데에는 아마 그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 4살, 6살 아이라면 기억하는 게 정상이겠지.
그리고 나는 ‘진선후’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과거를 전부 버렸지만, 선하는 아니다.
옛날부터 계속 김선하로서의 인생을 살아오고 있다.
오빠의 존재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 그래도 혹시 모르겠네. 선후를 입양 보낸 뒤론 오빠가 없어졌다고 선하가 매일 울었거든. 달래느라 혼났지 뭐야.”
수녀님은 그리운 듯이 말했다.
가슴이 따끔거린다.
이제 겨우 4살이 된 선하에게 있어 오빠란 낯선 시설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런 오빠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무서웠겠지. 슬펐겠지.
나도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었지만, 나보다 어린 선하는 아마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선후가 멋진 어른이 되어 돌아왔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하느님 감사합니다.”
선하가 방송국 알바를 그만둔 건 내가 처음 찍었던 인터뷰 영상이 방송을 탈 무렵이었다.
그 영상을 봤는지 물으려 선하를 찾았었기 때문에 잘 기억한다.
그리고 선하가 일을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은 것도 그때였다.
갑자기 말도 없이 그만둔 선하에게 서운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선하가 그랬던 이유도 납득이 갔다.
인터뷰에서 나는 미담을 만들기 위해 입양 사실을 밝혔다.
엄마가 나한테 얼마나 잘해줬는지, 새 가족을 만나 얼마나 행복한지, 내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도.
나는 카메라를 향해 열심히 어필했다.
홀로 시설에 남아 외롭게 자란 선하는 그 영상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선하는 학생 신분에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아등바등 살고 있었다.
그런데 입양 된 친오빠는 새 가족 품에서 행복하다고 자랑하고, 새엄마 백으로 화려하게 배우 데뷔까지 했다.
그런 오빠를 보며 선하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선하로선 나에게 배신감을 느껴도 이상하지 않겠지.
내가 친오빠라는 걸 선하가 언제부터 알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방송국 일을 그만둔 타이밍을 봤을 때, 내가 선하의 오빠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봐야 하겠지.
“어렸을 땐 선하가 사고도 많이 쳐서 힘들었어. 학교에도 몇 번이나 불려갔는지 몰라. 고등학교 들어와서는 그래도 얌전해졌는데, 요샌 남자친구라도 생겼는지 꾸미는 데에도 신경 쓰고──.”
수녀님의 선하 이야기를 듣는 한편, 나는 선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오빠라는 걸 알았다면 선하는 왜 말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마치 마음에 둔 남자를 대하는 듯한 말투, 행동.
만약 내가 그럴 마음이었다면 선하와 일선을 넘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설마 나를 원망한 나머지 파멸시킬 생각으로?
……아니겠지.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선하가 그렇게까지 할 성격은 아니다.
아니면 순수하게 나를 남자로서 좋아한 걸까?
오히려 그쪽이 신빙성 있어 보였다.
분명 선하와 친해지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연하의 여자아이가 좋아할 법한 남자’를 연기했었으니까.
선하와 친해지게 된 과정에는 드라마틱한 부분도 있었고.
순진한 여학생이 사랑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선하가 나를 남자로서 좋아하게 됐다면, 그래서 오빠 동생 사이라는 것도 숨길 생각이었다면.
나는 선하를 어떻게 대해야 좋은 걸까.
“아, 저기 마침 선하 왔네. 얘! 선하야!”
수녀님이 가리키는 방향에 선하가 보였다. .
선선한 초가을 날씨인 듯 가벼운 옷을 입은 채로 센터 정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나도 수녀님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쪽으로 걸어들어오던 선하는 나를 발견하고서 우뚝 멈춰 섰다.
“오, 빠……?”
일자로 다문 입술, 조금 붉어진 눈.
잠깐 사이에 초췌해진 안색이 멀리서도 잘 보였다.
“선하야.”
선하는 똑똑한 아이다.
내가 여기에 있는 의미도 알았을 것이다.
빙글, 뒤로 돈다.
그리고 선하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선하야!”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 걸까.
‘친오빠’라는 존재와 마주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도망치는 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선하를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나는 단숨에 달려 선하를 따라잡았다.
“선하야.”
멀어지려는 그 손목을 붙잡는다. 그리고 돌려세운다.
눈물 고인 눈. 두려움에 찬 얼굴.
선하가 무얼 두려워하는지,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건 어린아이가 잘못한 일을 부모에게 들켰을 때 보이는 것과 같은 반응이었다.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건지 나도 모른다.
단지 선하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오, 빠…….”
“미안해. 이제 괜찮아. 선하야.”
한 걸음 더 다가가 떨리는 작은 몸을 살며시 끌어안으려 한다.
하지만 선하는 그런 내 가슴을 양손으로 밀쳤다.
“바보! 뭘 이제 와서 오빠 행세하는 건데?!”
하지만 선하의 팔엔 나를 밀어낼 정도의 힘이 담겨있진 않았다.
선하의 목소리엔 분노보다 두려움이란 감정이 더 강했다.
나는 다시 선하를 끌어안았다.
“싫어! 이거 놔!”
“미안해. 미안해, 선하야.”
“나 버리고 가 놓고선, 나만 버리고 가 놓고선……!”
선하가 버둥거리며 내 등을 두드린다.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아픈 건 몸이 아니라 마음 쪽이었다.
그리고 끌어안은 선하의 몸이 차가워서 감기에 걸릴까 봐도 걱정이었다.
“미안해 선하야. 혼자 힘들었지. 외로웠지.”
내 등을 두드리는 손에 힘이 점점 약해졌다.
“이제 괜찮아. 오빠랑 같이 가자.”
내 등을 두드리던 손이 멈췄다.
대신 그 손은 내 등을 안았다.
혼자서 살아가기엔 너무나 작고 여린 손이었다.
“아앙! 오빠! 와아앙! 선후 오빠아아!”
어느 추운 겨울날.
나는 친동생과 재회했다.
일단락
선하와 눈물의 재회를 마친 후.
나는 수녀님의 배려로 선하와 단둘이 개인실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참고로 수녀님은 이 시설의 센터장이라고 한다. 그래도 수녀님이라고 불리는 걸 더 좋아하시는 듯해서 나는 계속 수녀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오빠, 그때 기억나? 우리 처음 돈가스 먹었던 날…….”
눈물이 진정된 선하는 수다스럽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옛날 우리가 함께 겪었던 이야기.
내가 입양된 후 ‘이제 오빠는 못 만난다’는 센터 선생님의 말을 듣고 오빠가 죽었다고 착각한 이야기.
초등학생 때 고아라고 놀리던 아이와 몇 번이나 싸우는 바람에 센터장님이 학교에 불려왔던 이야기──
지난 십수 년간의 공백을 메우려는 것처럼 선하는 자기 이야기를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그때 케이크 큰 거 고른 애 이름이 희진이라고 하는데, 그 전엔 걔랑 별로 사이 안 좋았거든? 근데 오빠랑 만난 뒤로 나한테 되게 잘해준다? 너무 속 보여서 웃긴다니까. 이번에 같이 영화 보러 갔었는데──”
빵집에서 만났던 인싸 일진 여자애들이랑 친해지게 된 이야기도 들었다.
사이 좋은 거 같아서 다행이네.
나는 적당히 맞장구치면서 선하의 이야길 듣고 있었다.
“오빤 어때? 가족들은 잘해줘?”
선하의 이야기가 일단락되고 다음은 내 차례였다.
내 이야기란 필연적으로 새 가족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잘해주지만, 평소처럼 대본 읽듯이 무턱대고 자랑할 수도 없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정액과 애액이 난무하는 파티를 벌이고 있다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었다.
좋게도 말할 수 없고 나쁘게도 말할 수 없다.
나는 생전 처음 겪는 이상한 딜레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오빠 사실은 신데렐라처럼 구박받는 거 아니야?”
내가 선뜻 대답을 못 하자 선하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신데렐라라니.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라는 그 신데렐라?
“……아니야. 다들 잘해줘.”
“정말? 새언니는 좀 무서운 사람 같던데.”
윽.
여자들은 이상한 데서 날카롭다니까.
“……누나도 평소엔 괜찮아. 전에 봤던 그 차도 누나가 사준 거고. 가끔 화나면 무섭긴 하지만.”
누나가 나한테 잘해준 것만 나열하자면 세상에 둘도 없이는 성인이다.
슈퍼카에 명품 시계, 옷, 구두. 기타 등등.
평생 피라미드 짓는 노예처럼 일해도 갚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걸 받았다.
무엇보다 나에게 첫 경험을 시켜준 것도 누나였다. 누나도 처녀였는데.
아마 나한테 잘해준 것만 모으면 세계 누나 올림피아드 금메달이겠지. 잘해준 것만 모으면.
누나한테 얻어맞은 건 셀 수도 없지만 여백이 부족하여 적지 않는다.
“……동생은?”
단 세 글자.
‘동생은?’이라는 세 글자 말에 내 가슴에 섬뜩한 무언가가 지나간다.
“미소……언니랑은 평소에도 그렇게 친하게 지내?”
미소는 내 동생이지만 선하보다는 1살 많다.
선하의 말투에서도 미소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
“어……그냥 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여자친구 몰래 바람피우던 걸 들킨 남자가 이런 기분일까.
선하가 낮에 폭발했던 대화에도 미소가 연관되어 있었다.
미소와는 찐남매 컨셉으로 유튜브 채널도 따로 운영하고 있고, 선하도 아마 그 채널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선하는 미소에게 자기 자릴 빼앗겼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미소 이야기는 쉽게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뭐?”
“그냥 뭐…… 평범한 남매라고 해야 하나…….”
나는 아닌 척하면서도 선하의 안색을 살피고 있었다.
10년 이상 누나의 안색을 살피면서 단련한 능력을 120% 발휘해서.
덕분에 선하의 표정이 약간이지만 차갑게 굳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평범한 남매’라는 건 안 되나.
“가끔 싸우기도 하고…….”
선하의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
‘가끔 싸우는 남매’도 안 되나?
으음.
“있는 둥 없는 둥 무시할 때도 있고…….”
선하의 표정이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해졌다.
‘무시하는 남매’도 안 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나는 항복했다.
“선하야.”
“어?”
이름을 불리자 차갑게 굳어있던 선하의 표정이 한순간에 웃는 얼굴로 반전했다.
……조금 무서웠다.
“선하한테는 남이겠지만, 나한테는 가족이야. 그러니까…… 나쁘게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단어 선택에 신중을 기하며 말했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을 나아가는 기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선하의 표정은 웃는 얼굴에서 금세 다시 무표정으로 바뀌었다.
그건 내가 단어를 잘못 선택했다기보다는 새 가족을 신경 쓰는 것 자체가 싫은 것 같았다.
하지만 선하를 내 동생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길이다.
여기서 선을 확실히 긋고 가야 했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말을 이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선하랑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그 가족들 덕분이야. 선하는 기억 못 할지도 모르겠지만 입양 당시 내 정신상태는 정상이 아니었어. 새 가족의 보살핌이 없었으면 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고 선하랑 이렇게 같이 있을 수도 없었을 거야.”
“…….”
굶어 죽지는 않았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거라 확신한다.
그 정도로 내 정신상태는 불안정했다.
“가족처럼 여겨달라곤 말 안 할게. 그래도, 적어도 네 오빠의 은인이니까, 나를 봐서라도 평범하게 대해줬으면 좋겠어. 만약 선하에게 아까 같은 그런 말을 또 들으면──”
나는 선하를 버릴 수밖에 없어.
굳이 그렇게 끝까지 말하진 않았다.
하지만 선하는 똑똑한 아이다.
내 표정, 내 목소리에 담긴 의지를 선하도 캐치했을 것이다.
내가 사랑받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봤던 것처럼, 선하도 그렇게 자라왔을 테니까.
“오, 오빠……”
‘가짜 동생’, ‘진짜 가족도 아니면서’.
나와 피가 이어진 선하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선하의 말대로 나는 그 가족의 진짜 아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나라는 존재 자체가 그 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인간인 것을.
피가 이어지지 않은 나를 진짜 가족 이상으로 대해주었다.
피가 이어진 가족에게조차 버림받은 나를 가족으로 받아주었다.
그런 내 가족을 부정하는 건 설령 내 친동생인 선하라고 해도 용서하지 않는다.
만약 선하와 다른 세 사람의 가족 중 한쪽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선하를 버릴 것이다.
“……오빠, 아까는…… 미안…….”
반대로, 선하가 내 가족을 건드리지 않는 이상 나는 선하를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할 거라는 말이기도 했다.
선하는 ‘하나밖에 없는’ 내 혈연이니까.
“괜찮아. 대신에 앞으론 그러면 안 돼. 알았지?”
“……응…….”
움츠러든 선하의 어깨를 살며시 끌어안는다.
긴장하고 있던 선하가 조금은 안심하는 게 느껴졌다.
같은 동생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선하를 보는 내 마음은 미소를 볼 때와 많이 닮아있었다.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하고, 괜히 감싸주고 싶고, 뭐라도 도와주고 싶었다.
나는 미소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외로움쟁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서 따르던 아빠가 이혼해 나가버린 후, 미소는 그 빈자리를 채우려는 듯이 나에게 응석 부렸다. 새아빠의 이혼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꼈던 나는 미소의 응석을 가능한 받아주려고 노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