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차 안에 울리는 내 목소리는 내 귀에도 잘 들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거칠게 들린 목소리에 선하는 겁먹은 듯 움츠렸고, 그 모습을 본 나도 조금은 냉정함을 되찾았다.
“……선하 넌 날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무슨 미성년자에 환장한 인간으로 보여? 나도 2년 전까진 미성년자였어. 너랑 나랑 겨우 2살 차이밖에 안 난다고.”
해가 지나 20살이 된다고 해서 사람이 극적으로 진화하는 게 아니다.
미성년인지 성년인지, 그런 건 나라가 정한 기준일 뿐.
어른이라도 어린애 같은 사람은 있다. 물론 그 반대도 있고.
나이에 얽매일 필요가 뭐 있을까.
“그치만…… 여고생 프리미엄 붙어 있을 때 팔아야 된다고…….”
“뭐? 뭔 프리미엄?”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선하의 말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아니. 침착하자.
괜히 화내서 선하가 움츠러들면 더 일이 복잡해진다.
“선하야. 그런 말 어디서 들었어? 인터넷? 아니면 주변 어른들이 알려줬어?”
입을 다물어버린 선하를 보며, 나는 오래전 내 모습을 떠올렸다.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 엄마는 나를 상냥하게 다독이며 대답을 끌어냈다.
나는 네 편이다. 혼내려고 묻는 게 아니다. 도와주려는 거다.
그런 내 의도가 전해지도록, 나는 진지하게 선하를 설득했다.
껄끄러운 이야기를 꺼내게 하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내 진심이 통했는지, 선하는 머뭇거리면서도 입을 열었다.
“그때, 빵집에서 만났던 친구들이요…….”
“빵집에서 만났던 친구들? 나한테서 빵 뜯어간 그 인싸 일진 애들?”
“인싸 일진이라니…….”
내 단어 선택이 이상했는지 선하는 작게 웃었다.
내가 자처해서 사주긴 했지만, 왠지 삥을 뜯긴 듯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하아. 요즘 애들이란.”
나는 탄식했다.
그래도 친구들이 말한 거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른이 그런 말을 했으면 경찰에 신고해야 할 일이지만, 여자애들끼리는 연애 이야기하다 보면 농담 삼아 나올 수도 있는 얘기였다.
선하는 그걸 진지하게 듣고선 홧김에 말해버린 거겠지.
“오빠 저랑 2살밖에 차이 안 난다며요. 요즘 애들은 무슨.”
“그건 그렇긴 해.”
그런 농담으로 애써 이야기를 얼버무린다.
하지만 쓴 약을 삼킨 듯한 선하의 분위기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오빠는……제가 싫어요?”
선하는 잠시 뜸을 들이고서 묻는다.
나한테 그럴 마음이 없다고 해도, 선하는 내가 흑심이 있어서 도와준다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용기 내 권유했더니 두 번이나 차였다.
선하로서는 자존심이 박살 날만 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거 아니야.”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선하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매력적인 아이다.
귀엽고 밝고 기특하고 예쁘고.
젊고 활기가 넘치면서도 천박하지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 성적인 대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절조 없는 내 자지가 선하 앞에서는 유독 얌전히 있었다.
“그럼 왜요?”
이걸 선하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네 앞에선 자지가 서지 않는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어떻게 돌려 말해도 이상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네가…… 내 동생 같아서.”
내가 어렵게 찾아낸 말은 ‘동생’이라는 키워드였다.
“나한테도 여동생이 있는데, 너랑 겹쳐 보여서 그래.”
“……오빠 동생이면 진미소요?”
그러고 보니 선하도 알겠구나. 미소는 유명하니까.
정작 나는 그 동생한테도 잘만 서는 변태인데.
하지만 그런 걸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리도 없다.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선하 보면 우리 미소 생각나서. 그래서 도와주고 싶었어.
선하도 내 동생 같으니까.
동생 도와주면서 대가를 바라는 오빠가 어딨겠어? 그러니까 선하 너도 부담 가질 거 없어. 친오빠라고 생각하고 자립할 때까진 나한테 뻔뻔하게 빌붙어 살면 돼. 알았지?”
처음엔 어떻게 설명할지 막막했었는데.
이 정도면 나름대로 잘 정리된 거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선하한텐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뭐야, 그게.”
선하의 목소리는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왠지 울먹이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어째서?
내가 뭔가 말실수라도 했나?
“친동생도 아니면서. 진미소는 가짜 동생이면서.”
“선하, 너…….”
조금 쇼크였다.
아무리 선하가 철이 없다곤 해도, 설마하니 패드립을 칠 줄이야.
분명 미소는 내 친동생이 아니다.
하지만 제삼자가 가볍게 입에 담을만한 일도 아니었다.
“선하야. 가족 건드리는 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너도 알잖아. 어서 사과해.”
나는 감정적으로 되지 않도록 누르며 선하를 타일렀다.
하지만 선하에게서 돌아온 반응은 내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하! 가족? 진짜 가족도 아니면서!!”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까지 듣고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야, 김선하!”
나는 선하를 꾸짖을 생각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해서 될 말이 있고 안 될 말이 있다고, 어른으로서 설교해주려 했다.
하지만 선하의 얼굴을 본 나는 그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너, 울어?”
선하의 갸름한 턱을 타고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나는 뒤늦게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몰라!! 다 필요 없어!!”
선하는 안고 있던 종이가방과 내가 사준 패딩까지 벗어 던지고선 조수석 문을 쾅 닫고 가버렸다.
“야, 선하야! 김선하!”
당황한 나는 뒤늦게 선하를 잡으려 했지만, 선하는 금세 인파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바로 조금 전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경험을 했던 나는 함부로 선하를 뒤쫓을 수도 없었다.
“……이런.”
사춘기 여자애가 어디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른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누나나 미소 상대로 실컷 겪었으니까.
……하지만 방금 전 대화의 어디에 터질 데가 있었던 거지?
동생 같다는 말이 그렇게 기분 나빴나?
하. 모르겠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아마 나는 평생 여자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일단 전화해서 사과라도 할까.
‘오빠가 뭘 잘못했는지는 알아?’라고 물으면 할 말 없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지금 거신 전화는 고객의 요청에 의해 잠시 착신이 정지되어──』
……하지만 전화도 연결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새 차단당한 것 같다.
역시 빠르네, 요즘 애들은.
이렇게 되면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나.
그나저나 선하가 갑자기 폭발하는 바람에 정작 중요한 용건은 꺼내지도 못했다.
선하가 신세 지고 있는 시설에 인사도 드리고 기부라도 하려고 했는데. 이제 곧 크리스마스니까.
몰랐으면 그냥 넘어갔겠지만, 알고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
선하가 벗어 던진 패딩에는 아직 선하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오늘 날씨는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그런데도 오늘 선하는 가벼운 차림으로 나왔다.
그나마 이 패딩도 내가 오늘 사준 거고.
선입견일지도 모르지만, 시설에서 지내는 선하에겐 변변한 겨울옷도 없는 거 아닐까.
“…….”
차가운 바람에 덜덜 떨며 거리를 헤매는 선하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차비도 없어서 시설까지 걸어가는 건 아니겠지?
혹시나 집까지 태워준다고 모르는 사람 차에 타기라도 하면…….
“하아…… 내 팔자야.”
나는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사실 선하가 있는 시설이 어딘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선하가 항상 타고 내리는 곳 근처에 아동 관련 시설은 한 군데밖에 없었으니까.
휴대폰에서 안내음이 흐르고, 곧 통화가 연결된다.
『──네, 서울특별시 ○○ 아동 보호 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재회
데자뷔.
처음 보는 대상이나 처음 겪는 일을 마치 이전에 경험한 것처럼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나는 선하가 신세 지고 있는 아동 복지 센터 주차장에 들어온 후, 그런 데자뷔를 강하게 느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건물, 어디선가 본 듯한 돌바닥, 어디선가 본 듯한 담쟁이덩굴.
“어머.”
그리고 어디선가 본 듯한 수녀님도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린다.
옆 정원에 쪼그려 앉아 풀을 만지고 있던 수녀님이 나를 보고 일어섰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수녀님의 눈가에 세월의 흔적이 엿보인다.
나는 마스크를 내리고 수녀님에게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내 얼굴을 보고 잠시 놀란 표정으로 굳어있던 수녀님이 입술을 뗀다.
“선후니?”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수녀님까지 알아봐 주시는 건 감사했지만, 말투가 너무 친근한 거 아닐까.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인 것처럼.
마치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사이인 것처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던 나는 다음 수녀님의 말로 더욱 굳어버렸다.
“선후, 김선후 맞지?”
“……김선후?”
“아, 그랬지 참, 그쪽으로 갔을 때 성이 바뀌어서.”
성을 착각할 수는 있다.
진 씨라는 성은 그리 흔한 것도 아니고 발음도 김 씨와 비슷하니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신에 찬 수녀님의 목소리에 ‘성이 바뀌었다’는 말이 더해지며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단편적인 정보가 모여 하나의 선을 잇는다.
방정식의 해답을 찾는 것처럼, x와 y의 값이 차례차례 주어진다.
하지만 내 머리는 어째서인지 그 답을 내놓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마치 머릿속에 안전장치라도 걸려있는 것처럼.
“어머. 혹시 제가 사람을 잘못 봤을까요?”
내가 답을 못 하고 있자 수녀님이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전에 여기 있었던 아이랑 닮아 보여서.”
그 말이 결정타가 되었다.
더는 얼버무릴 수 없었다.
“──아니요. 저 김선후 맞아요. 지금은 진선후가 됐지만.”
오랫동안 봉인해두었던 기억의 상자를 연다.
머릿속의 노이즈가 걷힌다.
김선후.
그것은 내가 버린 이름.
기억의 상자 가장 안쪽에 묻어두었던 이름이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에 색이 입혀진다.
그리고 ‘이전에 봤던 풍경’으로 탈바꿈한다.
이곳은 내가 엄마에게 입양되기 전 잠시 머물렀던 기관.
그리고 이 수녀님은 내가 이 시설에 머무는 동안 나를 돌봐주셨던 분이었다.
좀 더 늙고 좀 더 작아지셨지만, 잊을 리가 없었다.
“세상에……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선…….”
수녀님은 눈부신 듯 나를 올려다보시더니 성호를 긋고 기도했다.
주름진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수녀님.”
꽁꽁 숨겨두었던 기억의 봉인을 풀었지만, 내 마음은 놀랄 정도로 평온했다.
나는 예전처럼 약하지 않다.
과거의 망령 따위, 이제 두렵지 않았다.
“이리 와서 앉아요. 햇볕이 잘 드니까.”
“네, 수녀님.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셔도 돼요.”
“……그래도 될까?”
수녀님과 함께 주차장 한쪽의 벤치에 앉았다.
오늘은 분명 추운 날이었을 텐데, 여기에 온 뒤론 이상하게 날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작았었는데…… 이렇게 듬직하게 자라선.”
나를 보고 감정이 북받치신 건지, 수녀님 훌쩍이며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나는 잠시 수녀님이 진정하길 기다려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와 전혀 관련이 없지만, 동시에 가장 관련이 깊은 이야기를.
“수녀님. 혹시 여기에…… 제 동생도 있나요?”
동생.
사실 내 기억 속에는 ‘동생’이라기 보다는 ‘내 옆에 있었던, 나보다 작은 어떤 존재’ 같은 느낌으로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이름도 생김새도, 성별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끄집어낸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정보의 조각들을 끼워 맞춰보고서 동생이라는 결론이 나온 거였다.
그리고 만약 나에게 정말 동생이 있었다면, 그건──
“암. 선하 말이지? 있어. 아직 학교에서 안 돌아온 것 같지만.”
역시.
나는 가슴을 스치는 아픔을 참듯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선하를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린다.
자기 체격에 안 맞게 큰 짐을 위태롭게 들어 옮기던 아이.
나는 왠지 불안한 마음에 오지랖을 부려 도와주었었다.
그 뒤 선하는 나와 다투던 주정환의 머리에 커피를 쏟으며 반대로 나를 도와주기도 했다.
그 일을 계기로 선하와는 친해져서 인사도 하고 잡담도 나누는 사이가 됐다.
선하와 있으면 묘하게 마음이 편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심층의식은 선하가 내 동생이라는 걸 인식했던 거겠지.
하지만 선하는 돌연 방송국 알바를 그만두었다. 나한텐 말도 하지 않고.
나름 선하와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나로선 조금 슬픈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