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6화 (166/256)

이 누나도 미인이고,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긴 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 인싸 기질이 나랑은 맞질 않는다.

지혜 누나한테 맞춰서 인싸 연기를 하려면 할 수는 있지만, 피곤하단 말이지.

그래서 나는 지혜 누나와 되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선물도 생략하려고 했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게 그렇게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본인이 직접 받으러 왔는데 안 줄 수도 없고.

“여기요.”

내가 준비한 선물을 내놓자 지혜 누나가 냉큼 가로챘다.

“이게 뭐야?”

“인형요.”

“인형?”

수아 누나에게 준 인형과 같은 가게에서 샀지만, 내용물은 다르다.

이번 선물은 못생긴 거로 유명한 고양이 인형이었다.

“……이게 뭐야?”

아니나 다를까 지혜 누나는 포장을 뜯자마자 인상을 썼다.

“드럽게 못생겼네. 너처럼.”

“못생겼어도 귀엽잖아요. 저처럼. 엄청 인기 많아요, 그거.”

지혜 누나는 못생긴 고양이 인형을 불만스러운 듯 이리저리 주물러댔다. 

“마음에 안 들어요?”

“누가 마음에 안 든대? 고마워.”

내가 슬쩍 돌려받으려 하자 지혜 누나는 약삭빠르게 빼돌렸다.

어차피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면 산더미처럼 받을 거면서.

마음에 안 들면 돌려줘도 되는데. 승희라도 주게.

“근데 누나, 저는 뭐 없어요?”

“없어.”

“헤? 장난치지 말구요.”

아무래도 정말 없는 모양이다.

자긴 선물 준비도 안 했으면서 후배한테 선물 요구한 거야?

돈도 잘 벌면서 갓 데뷔한 후배의 간을 빼 먹다니!

“그, 뭐야, 나중에 몸으로 갚으면 되잖아? 아니면 뭐…… 나중에 따로 보든가.”

내가 지긋이 쳐다보자 지혜 누나가 뻘쭘한 듯 대답한다.

아마 평소처럼 섹드립으로 넘길 생각이었겠지만, 웃어넘기질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바람에 섹드립이 드립이 아니라 진담처럼 들리고 말았다.

“누나, 왜 귀여운 척해요. 안 어울리게.”

“이게!”

“아야.”

로우킥을 맞았다.

이번 건 꽤 아팠다.

“아무튼, 선물은 고맙게 받을게. 잘 가.”

지혜 누나는 그 말만 남기고서 바람처럼 떠나버렸다.

의외로 못생긴 고양이 인형은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그날, 내가 촬영장에 뿌린 선물은 총 13개.

그리고 받아온 선물은 총 38개였다.

누나와 드라마 감상 

누나가 돌아왔다.

이번엔 북미 대회뿐만이 아니라 스폰서 행사까지 참여하느라 체류 기간이 상당히 길어졌다.

그 스폰서라는 게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스포츠용품 세계 1위 기업이니, 며칠이 아니라 몇 달을 붙잡아도 불만은 말할 수 없겠지.

그리고 정작 중요한 대회에서, 누나는 3위를 했다.

분명 좋은 성적이긴 하지만 연승 기록이 끊어지고 말았다.

누나도 분명 아쉽겠지.

그리고 이번 우승도 한국인 선수가 했다.

그 우승자는 아이러니하게도 ‘포스트 진소영’이라고 불리는 누나의 후배 선수였다.

멀쩡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누나가 있는데 다른 사람이 제2의 진소영이라고 불리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뭐, 본인은 신경도 안 쓰는 것 같다만.

“아흐~ 역시 집이 좋다니까.”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누나가 한껏 기지개를 켜더니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야, 빨리 틀어 봐.”

그리고 옆에 앉은 나를 맨발로 쿡쿡 찌른다.

“아, 응.”

오랜만에 돌아온 만큼 갑자기 덮쳐지는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누나는 멀쩡했다.

오히려 평소보다 차분해 보일 정도였다.

나는 누나의 명령에 따라 리모컨을 조작해 ‘꽃당나’ 1화를 재생했다.

나는 긴 소파 한쪽 끝에 앉아서, 그리고 누나는 반대편에 머리를 눕히고 TV를 보았다.

참고로 누나의 발은 내 허벅지 위에 올라와 있다. 마치 원래부터 제 자리인 양 자연스럽다.

“재밌어?”

“어…… 그야, 재밌, 겠지?”

“흐응.”

물론 이 드라마는 재밌다.

하지만 누나 취향에 맞을지 어떨지는 솔직히 자신 없었다.

누나는 드라마는커녕 TV 자체를 안 보는 사람이다.

엄마가 나오는 드라마도, 미소가 나오는 예능 프로도, 누나 본인이 나오는 스포츠 뉴스조차도 안 본다.

누나의 인생에 있는 건 오로지 운동뿐.

자는 것도 먹는 것도, 모든 생활이 운동을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나와 하는 야한 장난도 거기에 포함되는지 모른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금욕적인 사람.

존경심을 넘어 경외심마저 느껴지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우리 누나였다.

저렇게까지 하니까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던 거겠지.

나는 솔직히 비슷하게도 따라 할 자신이 없다.

그런 누나가, 어째서인지 내가 나온 드라마를 보겠다고 했다.

엄마가 나오는 드라마도 안 봤으면서 이번엔 본다는 건 분명 내가 나오기 때문이겠지.

누나의 관심이 기쁘기도 했지만, 솔직히 걱정되기도 했다.

분명 드라마 자체는 좋은 드라마다.

하지만 누나 감성에 맞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나는 누나 말처럼 찐따에 찌질이다.

일반 대중의 평가조차 무서워서 인터넷도 못 보는 쫄보다.

그런데 만약 누나가 이 드라마를 보고 재미없다고 하면?

아니면 재미없는데도 아닌 척하면?

나는 분명 혼자 상처받고 자신감도 잃고 말 것이다.

게다가 그 탓으로 연기에도 지장이 나오면…….

“뭐 해? 빨리 안 틀고.”

“……응.”

내가 어정쩡하게 망설이고 있자 누나가 다시 재촉하며 발로 쿡쿡 찌른다.

나는 마음을 정하고 ‘꽃당나’ 1화를 재생했다.

“야, 팝콘 같은 건 없냐?”

괜히 긴장해서 드라마 오프닝을 보고 있으려니 누나가 또 발로 찔러댄다.

“어, 없는데…… 나가서 사 올까?”

“됐어. 넌 거기서 해설이나 해.”

“아, 응…….”

해설이 필요할 만큼 어려운 드라마는 아닌데…….

하긴, 누난 드라마 자체가 거의 처음이니 의외로 해설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잠시 후,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드라마의 첫 신은 내가 회사에서 프로젝트 팀 직원들과 일에 관해 대화하는 장면이었다.

“저기서 네가 주인공이지? 이름이 뭐야?”

“황진우.”

“황진우? 사장이야?”

“아니, 실장.”

“실장이 뭔데? 사장보다 높아?”

“어…… 회사에 프로젝트 팀이 있는데, 그 팀의 팀장이라고 보면 될 거야. 사장보다 높지는 않을걸? 그래도 회장 아들이니 사장도 가볍게 대하지는 못하겠지만.”

“흠.”

장면은 황진우에서 김선아로 넘어간다.

신지혜 배우가 연기하는 김선아는 어느 작은 벤처 기업의 사원이다.

느긋하게 아래 직원들에게 지시만 하는 황진우와 달리, 김선아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기업 규모도 다르고 직책도 다르니 당연한 일이었다.

“쟤가 네 여자친구야?”

“어? 어떻게 알았어?”

아직 그런 떡밥도 안 나왔는데.

의외로 누나도 생각하면서 보고 있구나.

“원래 처음 나오는 게 주인공이잖아. 네가 남주인공이고 쟤가 여주인공이면 당연히 둘이 커플이겠지.”

“어……그건 그렇긴 한데…….”

누나 생각에도 논리는 있었다.

그래도 기왕이면 작품 내용을 보고 판단해줬으면 하는데.

“근데 쟤는 차도 없어? 왜 지하철 타고 다녀?”

힘든 회사 일을 마치고 어두워진 시각.

지친 선아는 퇴근해 지하철을 탔다.

누나는 그 장면을 보고 엉뚱한 부분에서 딴지를 걸었다.

“어…… 그야 차가 없으니까 지하철 타는 거 아닐까?”

스폰서로 받은 페라리를 비롯해, 누나가 대회 부상으로 받은 차만 10대가 넘는다.

누나라면 가만히 있어도 승용차 정도는 누가 공짜로 준다고 진심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네가 사주면 되잖아. 회장 아들이라며.”

드라마는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다.

아직 황진우와 김선아가 어떤 관계인지조차 나오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예전에 사귀다 지금은 헤어진 상태라든가, 말하면 스포가 되니 말할 수도 없었다.

“그게 어, 일단 보면 알아.”

“흥.”

내가 어물어물 넘기자 누나는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휴. 해설도 의외로 어렵구나.

복잡한 지하철에 서서 사람에 치이던 선아가 겨우 빈 자리에 앉았다.

한숨을 돌리며 스마트폰으로 사진첩을 여는 선아.

넘어가는 사진들 중에는 나, 황진우의 사진도 있었다.

그 사진을 선아는 왠지 그리운 눈으로 바라본다.

“뭐야. 보고 싶으면 전화하면 되지.”

“음, 만날 수 없는 상황이라 그러는 거 아닐까?”

“왜 못 만나? 죽었어?”

“……글쎄. 죽었으면 아까 안 나왔겠지?”

그런 식으로 누나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그냥 가만히 보면 알 수 있는 것조차 누나는 하나하나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드라마를 전혀 안 보던 사람이 보면 다 이러는 건가?

피곤해…….

1화는 전체적으로 캐릭터를 소개하는 화라고 볼 수 있다.

그 1화의 마지막 장면은 진우와 선아가 극적으로 재회하면서 끝이 난다.

“아! 만났어!”

아슬아슬하게 만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두 사람.

그런 두 사람을 답답해하며 보고 있던 누나도 호들갑을 떨며 나를 발로 퍽퍽 찼다.

“아야. 아야. 아퍼, 누나.”

지혜 누나가 장난으로 차는 거랑은 다르다.

우리 누나의 하체 힘은 어지간한 남자보다도 강하고, 맞으면 멍이 들까 걱정될 정도로 아프다.

“아! 끝났잖아!”

그게 마지막 장면이니까 끝나는 게 당연했다.

아쉬워하는 누나의 마음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어…… 그럼 다음 편도 볼래?”

“다음 편도 있어?!”

순간 누나의 눈이 번쩍 빛난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두말없이 2화를 재생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누나가 좋아해 줘서 다행이다.

“……저, 누나, 어떤 거 같아? 재미있어?”

덕분에 나도 용기를 내 물어볼 수 있었다.

“흠, 뭐, 그럭저럭?”

“……응.”

그렇게 대답하는 누나의 눈은 TV 화면에 고정된 상태였다.

가식을 모르는 누나가 이렇게까지 말해주다니.

누나는 비록 시큰둥하게 말했지만, 내게는 그 대답이 최대한의 극찬으로 들렸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누나는 말수가 줄어들었다.

그만큼 드라마에 집중한다는 의미였다.

누나가 물어보질 않으니 나도 자연히 말할 일이 없었다.

방송된 1화, 2화는 이미 외울 정도로 돌려 봤다.

더 봐봤자 지루할 뿐이었다.

“누나, 다리라도 주물러 줄까?”

무료한 내 눈에 들어온 건 누나의 다리였다.

누나의 두 발은 지금도 내 허벅지 위에 올라와 있었다.

“그러든가.”

누나는 여전히 TV에 집중한 채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지.

그래도 일단 허락은 나왔으니 마음껏 주물러 주자.

“음…….”

나는 일단 종아리부터 주무르기 시작했다.

발은 민감해서 처음부터 건드리면 바로 거부당할 수도 있다.

종아리 쪽부터 풀어주면서 마사지의 효과를 먼저 실감하게 해줘야 했다.

“누나. 아프진 않아?”

“응. 좀 더 세게.”

TV에 집중하느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내 말도 듣고 있구나.

나는 엄지손가락에 힘을 주고 종이라 근육 사이를 꾹꾹 눌렀다.

“으응. 좋네.”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나는 누나의 종아리를 마음껏 주물렀다.

집에 있을 때 누나의 편한 복장이라고 하면 보통 몸에 붙는 스포츠 웨어다.

그중에서도 하의는 레깅스인 경우가 많다.

밖에서 입으면 난리 나니까 집 안에서만 입지만, 솔직히 예전에는 집 안에서도 좀 자제해줬으면 하고 바라던 때도 있었다.

왜냐고? 너무 야하니까!

누나는 워낙 운동을 열심히 한 탓에 엉덩이도 허벅지도 굉장하다.

가슴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래에 레깅스까지 입어버리면 눈 둘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걸어 다니는 섹스이자 존재 자체가 섹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누나와 이런 사이가 되기 전까진 쳐다보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보기만 해도 거기가 서버리니까.

지금은 뭐, 내 눈요깃거리가 되어줘서 감사할 뿐이다.

앞으로는 매일 이렇게 입어줬으면 한다.

“응…….”

여자의 몸이란 참 신기하지.

힘은 보통 남자보다 더 센데, 이상하게 몸은 부드럽다.

겉은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안쪽에선 단단한 심지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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