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다 연예인이라(나는 아직 애매하지만) 티키타카도 좋았고, 근황 이야기하는 틈새로 드라마 홍보도 자연스럽게 해냈다.
도입부는 무척 스무스하게 끝낼 수 있었다. 100점 만점에 90점은 되지 않을까.
“자, 그럼 본격적인 질문 코너로 들어가 볼까요?”
질문으로 들어가다니.
왠지 야하게 들리는 건 나뿐인가?
“오늘 임신혜 씨가 출연한다는 소식에 많은 분들이 질문을 올려주셨는데요.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 중 특히 좋아요를 많이 받은 질문을 추려봤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 들어가기 전에, 혹시 임신혜 씨는 인터넷 방송을 본 적 있으신가요?”
“네. 옛날 방송 하이라이트 같은 건 가끔 봐요. 음악 들을 때도 이용하고요.”
“이런, 뭘 모르시네. 그런 건 인터넷 방송이라고 하지 않아요. 제가 오늘 임신혜 여사님께 인방의 매운맛을 한 번 제대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매운맛이요?”
인터넷 방송은 일반 공중파 방송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롭고, 동시에 자극적이다.
공중파에서도 엄선된 프로그램에만 출연하는 엄마에게 그런 인방 특유의 문화는 맞지 않을지도 몰랐다.
“야. 너 또 이상한 짓 하려는 건 아니지?”
이전 방송만 해도 그랬다.
미소가 내 뺨에 뽀뽀하거나, 자고 있을 때 바디 프레스를 먹이거나.
팬들 반응은 좋았다지만, 아이돌에 과몰입한 팬이라면 폭발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괜히 이상한 이야기로 엄마가 구설에 오르지나 않을까 걱정됐다.
“이상한 짓? 걱정 마세요! 겨우 이상한 짓으로 끝난다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채널의 운영은 전적으로 미소가 맡고 있다.
말이 남매 튜브지, 나는 질문 목록조차 보지 못한 상태였다.
바지사장이 따로 없구나.
“네. 얼마든지 질문해주세요.”
엄마는 자신만만했다.
“정말이죠? 거짓말하거나 빼기 없기예요.”
“네. 각오는 돼 있습니다.”
엄마와 달리 나는 불안밖에 없었다.
미소는 나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영악한 아이다.
하지만 감성이 보통 사람과 다른 만큼, 언제 무슨 실수를 저지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나는 미소가 이상한 질문을 하면 언제든지 멈출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럼 첫 번째 질문 갑니다. 임신혜 님은 아들 진선후 님을 입양할 때──”
“잠까안!!”
……불안하긴 했지만, 설마하니 첫 번째 질문부터 멈추게 될 줄이야.
“엄마한테 하는 질문이잖아? 내 얘기가 왜 나와?!”
입양 어쩌고 하는 것만 봐도 민감한 질문일 게 뻔했다.
입양 당시의 이야기 같은 건 당사자인 나도 잘 모른다.
엄마한테 물어보면 말해줬을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나는 겁이 나서 건드리고 싶지도 않았다.
“선후 오빠. 오빠도 이제 연예인이야. 앞으로 점점 유명해지다 보면 언젠가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구. 그리고 이런 민감한 이야기일수록 다른 데서는 말하기 힘들잖아?”
“그건…… 그렇지만…….”
미소가 드물게 진지하게 말했다.
미소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드라마 오디션 때 입양 사실을 밝힌 이후로, 촬영장에서든 밖에서든 많은 사람들이 입양에 관해 물어왔다.
하지만 나도 입양됐다는 사실 외에는 별로 아는 게 없었고, 질문하는 사람도 민감한 문제다 보니 빙빙 돌려서 묻곤 했다. 당연히 속 시원한 답변이 나올 리 없었다.
미소는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펴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 진미소 님이 판을 깔아주겠다 이거야. 여기서 확실하게 마침표를 찍어 놓으면 다른 데서는 이제 안 물어볼 거잖아?”
“으음…….”
미소의 말투는 장난스러웠지만, 이 질문을 선택한 의도는 명확했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엄마를 위해서.
숨기고만 있어선 안 된다.
그럼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이 조회수를 벌기 위해 내 뒤를 마구 파헤칠 테니까.
그렇게 되면 알리고 싶지 않은 일마저 알려지고 만다.
그럴 바에야 미리 오픈할 만큼 오픈하는 게 낫다는 거다.
……나를 생각해주는 미소의 마음은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미리 한 마디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엄마와 같이 찍는다고 좋아하기만 했지,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할 마음의 준비는 되어있지 않았다.
“엄마는 괜찮아. 미소야, 질문해줘.”
엄마가 상냥하게 내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엄마 손은 약손.
내 불안한 마음마저도 가라앉혀 주는 약손이었다.
그래. 불안해할 게 뭐가 있어?
이미 옛날 일, 지나간 일인데.
무슨 얘길 듣더라도 내가 엄마 아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응. 오빠는 내 말 끊었으니까 옐로카드 한 장이야. 두 장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아니. 모르는데…….”
미소는 어디선가 진짜 옐로카드를 꺼내 보였다.
두 장 받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설마 퇴장?
일단은 나도 공동 진행자인데.
그런 규칙이 있었다면 미리 알려줬으면 한다.
“그럼 다시 질문드리겠습니다. ‘임신혜 님은 아들 진선후 님을 입양할 때 어떤 심경으로 입양을 결정하셨나요?’ 선후 오빠의 입양 배경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제일 많으셨어요.
‘얼굴 보고 입양한 거 아니냐’, ‘연예인 후계자로 키우려고 입양한 거 아니냐’, 이런 의견도 있고요. ‘예쁜 품종묘만 데려다 키우는 캣맘이랑 뭐가 다르냐’는 분도 계시네요. 이런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엄마를 모독하는 듯한 질문들.
나는 당장이라도 끼어들고 싶었지만,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다.
‘괜찮아, 엄마한테 맡겨.’
엄마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하하. 이런 게 인방의 매운맛이라는 거네요? 정말 난감한 질문이에요.”
“공중파에서는 상상도 못 할 질문이죠? 인방에선 이 정도 수위가 기본입니다.”
엄마도 미소도 싱글벙글하니 여유가 넘쳤다.
이 자리에서 심각한 건 나뿐이었다.
“음, 결과적으로 우리 선후가 지금 이렇게 멋지게 자라줬으니까, 사람들이 그런 의문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엄마 눈으로 보기에도 선후는 키도 크지, 잘생겼지, 목소리도 좋지, 거기에──”
“어흠. 엄마 아들 자랑 들으려고 부른 거 아니거든요? 답변이나 해주시죠?”
“아직 많이 남았는데…… 알았어.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아닙니다. 처음 선후를 입양하고자 생각했을 때는 선후 이름도 몰랐어요. 아는 정보라곤 가명, 모자이크로 가려진 전신사진, 그리고 학대당했다는 배경뿐이었어요.”
거기서부턴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려 하고 있었다.
상자 안에 남아있는 것은 희망인가 절망인가?
“그럼 어머니는 선후 오빠 얼굴도 못 보고 입양한 거예요?”
“네. 선후랑 처음 대면했을 때도 전신을 붕대로 감고 있었거든요. 얼굴도 붕대로 가리고선 눈만 내놓고 있었어요.”
“눈만요?”
“네. 미라처럼 붕대 둘둘 감고서, 이렇게 침대에 기대고서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더라구요. 꼭 영화 속 한 장면 같았어요. 한쪽 팔만 붕대를 안 감고 있었는데, 뼈만 앙상해서는, 그 모습이 눈물 나게 서글픈 거예요.”
입양되기 전 일은 거의 기억에 없다.
잊었고, 억지로라도 잊으려 했다.
하지만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잊었던 기억이, 서랍 안에 넣어두었던 기억이, 거짓말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실 그때 내가 보고 있던 건 창밖 풍경이 아니었다.
나는 창문에 비친 어떤 사람을 보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보고 있었다.
“선후한테 다가가서 물어봤죠. ‘얘, 뭘 보고 있니?’ 그랬더니 선후가 뭐라는지 아세요?”
“뭐라고 했는데요?”
“‘천사님이요.’”
“꺅!”
……참고로 그때 그 천사님은 엄마가 되어 지금 내 옆에 앉아 계신다.
“그때 선후랑 처음 눈이 마주쳤는데, 그 눈빛이 너무 맑고 예쁜 거예요. 눈은 영혼의 창이라잖아요? 이렇게 예쁜 눈을 가진 아이를 학대하다니! 이 아이는 내가 구해줘야 해, 내가 행복하게 해줘야 해. 그 길로 바로 입양 신청했죠.”
“하~ 선후 오빠의 입양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잘 들었습니다. 그럼 어머니가 첫눈에 입양을 결심하게 했다는 마음의 창을 가까이서 한 번 들여다볼까요?”
미소가 손에 든 작은 카메라를 내 얼굴에 들이민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 마.”
“어? 오빠 울어?”
“안 울어.”
왠지 좀 울컥하긴 했지만 울지는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정말 울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성장했다.
남자는 여자를 알면, 사랑을 알면, 성장하는 법이니까.
나는 눈물을 삼켰다.
내 등을 문지르는 엄마의 손길을 느끼며.
찐남매 튜브! #2-2
그 후로도 내 입양에 관한 이야기는 계속됐다.
엄마나 미소 시점에서 듣는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두 사람은 마치 미리 대본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술술 이야기해 나갔다.
입양아 진선후가 남의 집 자식에서 진짜 가족이 되기까지의 이야기.
나는 그걸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듣고 있었다.
입양 직후 심하게 불안정했던 선후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가족의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내 기억과는 좀 다르지만…… 뭐, 그런 거겠지.
안 좋았던 일은 최대한 줄이고, 좋았던 일은 부풀리고.
분명 아름답게 포장되긴 했지만,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건 아니었다.
“……근데, 아까부터 왜 내 얘기만 하는 거야? 엄마 질문 코너잖아?”
“그야…… 재밌으니까?”
“내 얘긴 이제 다 했잖아. 빨리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처음엔 분명 내 입양과 아름다운 가족애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점점 단순한 여자들의 수다로 변해갔다.
두 사람 다 방송용 필터링을 거치긴 했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조마조마하기 짝이 없었다.
이대로 두면 내 자지 길이 이야기까지 나오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응~ 알았어. 그럼 오빠 얘긴 다음에 또 하기로하고.”
“내 얘길 다음에 또 한다고?”
“선후 얘기할 땐 언제든지 불러줘. 선후 얘기라면 밤새 할 수도 있어.”
“엄만 이제 나오지 마.”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나를 놀렸지만 화제는 무사히 다음으로 넘어갔다.
“자, 그럼 다음 질문입니다.”
‘임신혜 배우님, 만약 아들 진선후 님과 연인으로 나오는 멜로 영화 제의가 들어오면 출연하실 생각 있으신가요? 좋은 감독에 시나리오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고 가정했을 때요.’
우와. 이건 또 뭐야?
내가 엄마랑 연인으로 영화에?
……좋은데?
엄마는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음, 저는 안 할 것 같아요.”
“진짜요? 천만 관객이라도?”
“네. 아들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연인 연기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요. 이번에 나올 드라마처럼 엄마-아들 역할이라면 언제든지 환영하지만요.”
역시 엄마야.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무난한 답변에 깨알 같은 드라마 홍보도 잊지 않았다.
“하긴, 나라도 싫겠다. 오빠랑 커플 역할이라고 하면 절대 안 하지.”
“야. 누군 한대? 나도 너랑은 안 찍어.”
“아! 진미소 100만 팬을 적으로 돌리는 발언!”
“미소 팬 여러분, 제가 부족해서 안 찍겠다는 말이니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 대화도 남매 어필용 연기였다.
“그럼 진선후 씨는 어떠세요? 엄마랑 연인으로 나오는 영화, 섭외 들어오면 하실 건가요?”
“저는 합니다.”
“오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대답했다.
미소도 엄마도 놀라는 눈치였다.
뭐야. 무난한 대답만 하면 재미없잖아?
말을 잘 고르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연기할 때는 부모 자식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엄마도 저도 한 사람의 연기자니까요. 좋은 작품이 있다면 뭐든지 받을 생각입니다.”
“우리 아들이 저보다 낫네요.”
“오빠는 가릴 처지도 아니지만요.”
“물론입니다. 불러만 주십시오.”
엄마는 중견 배우로서 얼마든지 고를 수 있는 입장이다.
하지만 난 이제 갓 데뷔한 신인이다. 시켜만 주십시오! 뭐든지 하겠습니다! 하는 태도가 중요했다.
실제로는 뭐, 엄청 고르겠지만.
“그러면서 저랑은 안 한다면서요?”
“너랑 엄마랑 같냐?”
미소가 센스 있게 끼어 들어와 주었다.
덕분에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이번 질문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마무리되었다.
“그럼 다음 질문 갈게요. 임신혜 님은 21세기의 신사임당이라고 불리시는데요.”
“네? 신사임당이요?”
엄마는 신사임당이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놀랄 일인가?
100년 뒤 500만 원권 지폐에 엄마 얼굴이 그려져 있더라도 나는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일단 끝까지 들어봐.
‘임신혜 님은 21세기의 신사임당이라고 불리시는데요. 저도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본인 일도 있는데 아이 셋을 모두 그렇게 훌륭하게 키워내신 게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비결이 무엇인가요?’
라고 물어주셨어요. 어머니, 진미소를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내신 비결이 뭔가요?”
엄마가 대단하긴 하지.
입지전적인 배우이자 여자 혼자 힘으로 자식 셋을 키워냈으니까.
그것도 셋 중 하나는 내 자식도 아닌 양아들이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존경해 마땅했다.
“어…… 일단 신사임당에 비교하는 건 너무 과장인 거 같고요…… 저도 모든 걸 다 잘하진 못했어요. 아시다시피 남편이랑도 이혼했고…….”
힘없이 대답하는 엄마.
어째서 엄마는 그렇게 자신이 없는 걸까.
엄마는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어머니인데.
“이의 있습니다!”
나는 손을 번쩍 들면서 감히 엄마의 말을 끊었다.
“네, 진선후 씨. 발표하세요.”
미소는 기다렸다는 듯이 토론회 사회자 흉내를 내며 나를 지목했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서 변호사에 빙의했다.
“예. 저는 ‘21세기의 신사임당’에서 ‘신사임당’이 아니라 ‘21세기’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만원권에 새겨져 있는 신사임당은 조선 시대의 이상적인 여성상이며 현모양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남편을 내조하며, 아이들을 바르게 키운 현모양처 말입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웅변했다.
“과거엔 그런 현모양처가 이상적인 여성상이었습니다. 가정을 뒤에서 지원하며 헌신하는 것만이 여성의 존재 가치로 여겨졌습니다. 신사임당 본인 또한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재능을 죽이고 남편과 아이들을 지원하는 데에 인생을 바쳤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신사임당을 모범적인 어머니, 본받아야 할 여성이라며 치켜세웠습니다.”
나는 이 자리에는 없는 시청자들에게 묻는다.
그게 진정 이 시대의 여성상이냐고.
“시대는 변했습니다. 21세기에는 가정을 위해 희생하는 것만이 여성의 역할이 아닙니다. 여성도 하나의 주체적 인격체이며, 재능이 있다면 그 재능을 펼칠 권리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이혼 경력이 흠인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요즘 세상에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한 게 어떻게 흠이 되겠습니까?”
'오빠.'
미소가 손가락으로 X표를 그리며 작게 신호를 보낸다.
아빠 얘긴 하지 말라는 걸까.
나도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살짝 고개를 끄덕여 알았다고 신호를 돌려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가정을 내팽개쳐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정을 돌보면서도 자신의 재능을 펼친다. 그런 게 진정한 이 시대의 여성상, ‘21세기의 신사임당’ 아닐까요?”
“어머니는 이혼 후 여자 혼자 힘으로 자식 셋을 키우면서, 배우로서도 훌륭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가정을 돌보면서 일까지 해낸다. 그런 어머니야말로 진정한 ‘21세기의 신사임당’이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나는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깊이 숙이고서 자리에 앉았다.
“오~! 짝짝짝! 오빠 멋져! 꺄~!”
발표를 마치자 미소가 호들갑을 떨며 손뼉 쳐주었다.
조금 쑥스럽지만 고개를 숙이진 않았다. 나는 잘못된 말은 하나도 하지 않았으니까.
“선후 오빠는 저렇게 말하는데,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제가 아들 하나는 잘 키운 것 같습니다.”
엄마는 그 대답과 함께 나를 꼭 안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