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뚝 선 자지가 바닥에 기둥을 세우며 나를 짓누르는 무게를 덜어주었다.
나에게 땅을 밀어낼 힘을 보태주었다.
“흐읍!”
나는 팔을 펴는 데 성공했다.
발기한 자지의 도움으로 중력을 이겨내고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이다.
“우와! 성공!”
아나운서가 손뼉을 치며 내 등에서 내려왔다.
등을 누르던 무게가 사라진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이고 아랫도리를 확인했다.
자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
방금 분명히 섰었는데.
내 착각?
아니면…… 기적인가?
어쨌든.
나는 해냈다.
“후아. 힘드네요.”
나는 손을 털고 일어섰다.
지금 내 표정은 평온했지만 십 년 감수한 기분이었다.
나주리 아나운서가 대본 카드로 내 얼굴을 부채질 해주며 말한다.
“고생하셨어요! 제가 이래 봬도 보기보다 무겁거든요.”
“예. 정말로요.”
“아이참! 그럴 땐 아니라고 해주셔야죠!”
빈말로라도 가볍다곤 말할 수 없었다.
연속으로 팔굽혀펴기 100개 한 것보다 더 힘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실패해도 상관없는 거 아니었나?
팔굽혀펴기랑 드라마의 성공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데.
왜 나는 그렇게 필사적으로 했지?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한 기분이었다.
*
두 번째 홍보 인터뷰 촬영도 무사히 마쳤다.
왠지 인터뷰치곤 좀 이상한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촬영팀 분위기를 보면 인터뷰 자체는 괜찮았던 것 같다.
“진선후 배우님, 수고하셨어요.”
“아, 네. 나주리 아나운서님도요.”
나주리 아나운서는 인터뷰할 때는 장난스럽지만, 평소에는 차분한 모습이었다.
보통은 그 반대 아닌가?
“호칭 너무 서먹한데, 그냥 우리 이름으로 불러요.”
“그래도 될까요? 주리 씨.”
“그럼요, 선후 씨. 그럼 친해진 기념으로.”
“선후야, 인터뷰 끝났니?”
나주리 아나운서가 뭔가 말하려던 타이밍에 나타난 한 사람.
오오. 내 삶의 빛, 내 허리의 불꽃.
바로 엄마였다.
“아. 엄마.”
“임신혜 선생님, 안녕하세요.”
“주리 씨. 우리 선후 인터뷰 이상한 거 안 했지?”
물론 엄마도 나주리 아나운서의 악명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럼요. 제가 얼마나 상냥한 질문만 했는데요.”
나주리 아나운서는 시치미를 뗐다.
상냥한 질문?
흠…….
“그렇죠, 선후 씨?”
“예. 그럼요.”
“그래? 수상한데?”
역시 어머니, 예리하십니다.
엄마! 얘가 나 괴롭혔어! 혼내줘!
“그런데 선후 씨, 오늘 시간 있어요? 친해진 기념으로 식사나 같이할까요?”
흠…….
이건 그건가?
내가 생각하는 그런 뜻인 건가?
이전부터 이 사람 왠지 태도가 묘했단 말이지.
내가 봐도 노골적이었는데.
왠지 모를 찝찝함에 거절하려 했는데, 나보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이 있었다.
“미안해, 주리 씨. 선후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그렇게 말한 건 엄마였다.
내 머릿속에 선약 같은 건 들어있지 않았지만, 마침 잘됐다.
“주리 씨, 미안해요. 오늘 일찍 들어가 봐야 해서요. 다음에 같이 해요.”
“아, 그래요? 할 수 없죠. 그럼 다음에 봐요.”
“네.”
나주리 아나운서는 그냥 인사치레였던 것처럼 순순히 물러났다.
지혜 누나처럼 매일 볼 것도 아니니까 별문제 없겠지?
흠.
하지만 엄마는 왜 그랬을까?
나한테 여러 사람과 사귀고 인맥을 늘리라고 한 건 엄마였는데.
“선후야. 예쁜 꽃에는 가시가 있는 법이야.”
조용한 곳에서 따로 묻자, 엄마는 그렇게 대답했다.
엄마의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가시.
나주리 아나운서한테는 뭔가 다른 의도가 있다는 걸까?
내 눈엔 안 보이는 뭔가가 엄마 눈에는 보였다는 거겠지?
흠.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하지만 내 주위에 예쁜 꽃이라면 저 사람 외에도 많은데.
“그럼 수아 씨는?”
“수아 씨 가시는 엄마가 다 뽑아서 줬잖니.”
왠지 엄마가 생선 가시를 발라주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럼 수아 누나는 꽃이 아니라 순살 생선인가…….
“선후야. 수아 씨한테 상처 입히면 안 돼. 알았지?”
“응.”
이미 늦은 거 같은데.
지금은 좋아도 결국 이어지지 못한다면 상처는 줄 수밖에 없다.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나중에 받을 상처는 더 커진다.
수아 누나의 존재는 나에게 딜레마였다.
하지만 엄마한테 그런 얘길 할 필요는 없겠지.
엄마와는 그런 얘기보다 좀 더 즐거운 일을 하고 싶다.
“엄마. 약속 파투냈으니까 오늘 저녁은 엄마가 책임져줄 거지?”
“응? 선후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니?”
‘엄마.’
나는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알았어. 오늘은 엄마가 책임지고 선후가 먹고 싶은 거 해줄게.”
“정말로?”
엄마는 살짝 눈을 피하면서도 허락해주었다.
신난다! 오늘 저녁은 엄마카세다!
엄마와 교복 플레이
“선후야. 이건…….”
엄마는 내가 준 옷을 들고 망연자실했다.
예상한 대로의 반응이었다.
“엄마, 입어 봐. 틀림없이 잘 어울릴 거야.”
나는 기대에 가득 차 엄마에게 권유했다.
“아니, 그래도 이건 좀…….”
엄마가 이렇게까지 망설이는 이유.
내가 준 옷이 누나가 입었던 고등학생 시절 교복──을 닮은 코스튬이기 때문이다.
“엄마. 책임진다고 했잖아?”
“그건……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엄마는 민망해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래도 이건 너무 주책이잖니. 안 돼. 엄마 나이가 몇인데.”
한사코 거절하는 엄마.
하지만 나도 물러날 수 없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이런 기회는 오지 않을 테니까.
“주책이면 뭐 어때? 나만 볼 건데, 나만 좋으면 되는 거지.”
“……그래도 안 돼. 이거 소영이 거잖아. 말도 안 하고 가져온 거지?”
“누나 거 아니야. 내가 산 거야.”
“샀어?”
내가 샀어도 누나한테 선물했으니 누나 거긴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안 입어줄 테니까.
엄마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고개를 저었다.
“……선후야. 다른 거 하면 안 될까? 엄마가 다른 거라면 뭐든 해줄 테니까. 응?”
엄마의 간절한 바람을 나는 빙긋이 웃으며 흘려넘겼다.
“엄마. 부탁해? 나도 준비해서 올게.”
“선후야, 선후야!”
나는 엄마의 애타는 부름을 뒤로하고 방을 나왔다.
엄마도 처음엔 저렇게 부끄러워하긴 하지만, 결국 내 부탁이라면 들어주니까.
이번에도 아마 입어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설마 첫 시연을 엄마한테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는 내방 옷장 안에 꼭꼭 숨겨두었던 박스를 꺼냈다.
이 박스 안에 들어있는 건 남성용 교복 코스튬.
내가 고등학생 때 입었던 것과 같은 교복 코스튬이 들어있었다.
“하…….”
교복을 펼쳐보며 나는 감회에 젖었다.
사실 난 이 교복에 별로 좋은 추억이 없다.
내 어두운 학창시절을 상징하는 듯한 물건이니까.
학창시절 나는 제대로 된 친구 하나 사귀지 못했다.
변변한 연애 한번 한 적이 없었다.
그뿐이랴. 초등·중학생 때는 괴롭힘도 당했다.
누나 왈, 피해망상으로 가득 찬 소심한 찐따.
그게 바로 나였다.
칙칙하고 지루했던 회색빛 학창시절.
이 교복을 보고 있으면 안 좋은 기억만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 어두운 기억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덧씌우기 위해.
나는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교복을 입은 나는 전신거울 앞에 섰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겨우 2년.
내 겉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30대 기업인 흉내를 내는 것보다 오히려 이런 교복 차림이 나한테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
“후…….”
나는 천천히 심호흡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교복을 입고서.
교복을 입은 엄마를 만나기 위해.
나는 방을 나와 엄마 방으로 향했다.
엄마는 벌써 갈아입었을까?
아니면 아직도 망설이고 있을까?
어쩌면 갈아입는 도중일지도 모른다.
운이 좋으면 갈아입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나는 살금살금 다가가 소리 없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틈으로 방안을 살짝 엿보았다.
“하아…….”
거울 앞에서 한숨을 쉬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이미 교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40대를 넘어 50대를 향해 가는 엄마가.
여고생이 입는 하늘거리는 여름 교복을 입고.
거울 앞에서 민망한 듯 뺨을 붉히고 있었다.
그 엄마의 모습이 내 심장을 때렸다.
“어쩌지…… 하아…….”
엄마는 거울을 보며 연신 한숨을 쉬었다.
민망하겠지.
겉모습이 아무리 젊어 보인다고 해도 당당하게 교복을 입을 수 있는 나이는 아니니까.
솔직히 교복을 입은 엄마가 고등학생처럼 보인다고는 내 입으로도 말할 수 없었다.
고등학생은 절대 가질 수 없는 풍만한 가슴, 그리고 엉덩이.
그런 퍼포먼스로 여고생이면 반칙이겠지.
그곳만은 교복이 터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부끄러워하는 모습 또한 내 심금을 울렸다.
어른의 성적인 매력, 그리고 소녀의 청순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니면 이렇게?”
어떤 역할이든.
그 역할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나에게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맡은 배역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연기자로서 가져야 할 기본 마음가짐이다.
엄마는 그 기본을 충실히 지키며, 교복에 어울리는 자신의 모습을 찾고 있었다.
거울을 통해 조금씩 표정이나 몸짓을 바꿔가며 모습을 확인하는 엄마.
하지만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지, 몇 번이나 그런 행동을 반복했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교복 치마 아래로 엄마의 팬티가 살짝 보였다.
단순한 디자인의 순백색 팬티였다.
항상 섹시한 란제리만 입던 엄마가, 이번엔 교복에 맞춰서 청순한 속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성욕보다는 좀 더 순수한.
그런 설렘을 느꼈다.
“엄마.”
방에 들어오며 목소리를 내자 엄마가 화들짝 놀란다.
“서, 선후야.”
엄마는 알몸일 때보다 더 부끄러워하며 허둥거렸다.
손으로 가린다고 가릴 수 있는 게 아닌데.
알몸일 때처럼 중요 부위만 가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엄마 이상하지? 역시 안 되겠어. 너무 부끄러워. 그냥 갈아입을게.”
빠르게 말하며 교복을 벗으려는 엄마.
“엄마.”
나는 가슴 가득 넘치는 사랑스러움에 참지 못하고 엄마를 끌어안았다.
벗는 것도 좋지만, 아직 좀 더 기다려줬으면 한다.
“엄마, 고마워. 나 지금 너무 행복해.”
“선후야…….”
나에게 안긴 엄마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