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누나는 설명하지도 않을 것이고, 설명한다 해도 보통 사람은 이해하지도 못할 거다.
이러면 신지혜에 대한 나쁜 소문만 더 커질 게 뻔했다.
아무리 작품을 위해서라지만 지혜 누나가 악평을 뒤집어쓰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다들 나가. 부를 때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마.”
신지혜 배우 대기실에 도착하자 의상팀 누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물 뿌리는 신’은 약방의 감초 같은 장면이지만, 이렇게 한 번 NG가 나면 머리, 화장, 옷을 전부 손봐야 해서 큰일이다.
그것도 이번엔 주연 여배우 두 사람이 동시에 물을 뒤집어썼으니 스태프들은 비상이겠지.
그런 뒤처리를 위해 기다리고 있던 스태프 누님들이었지만, 지혜 누나의 말 한마디에 허둥지둥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소영 누나가 우리 집의 폭군이라면 이 사람은 촬영장의 폭군이었다.
“야. 넌 어디 가?”
그 흐름에 섞여 빠져나가려 했던 나는 지혜 누나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넓은 대기실에 나와 지혜 누나, 두 사람만 남았다.
지혜 누나가 물에 젖은 옷을 힘겹게 벗으며 말한다.
“뭘 보고 있어? 너도 도와.”
……그럴 거면 스태프들한테 벗겨달라고 하지.
이 누난 내가 남자로 안 보이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지혜 누나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겉옷을 벗고 속옷 차림이 된 지혜 누나.
어제도 봤지만 멋진 몸이다.
군살 하나 없이 깨끗한 몸.
본인의 성격만큼이나 완벽하게 관리된 몸이었다.
“너도 벗어.”
“……제가 왜 벗어요.”
나는 물도 안 맞았는데.
명백한 성희롱이었다.
“나도 이대론 안 돼. 수아 선배처럼 널 좀 더 사랑해야겠어.”
……그래서 어쩌자고. 지금 여기서 하자고?
밖에 스태프들 기다리고 있는데?
대체 이 사람은 뭔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날 반하게 만들어 봐. 수아 선배한테 했던 것처럼.”
황수아 배우를 소개받을 때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수아 씨는 제대로 된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서 문제라던 엄마의 말이.
지혜 누나는 그때의 엄마와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다.
여배우들은 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그런 감정이 일의 원동력이 된다는 건 나도 알지만, 신지혜 레벨의 배우에게도 그런 게 필요한지는 의문이었다.
애초에 수아 누나는 온갖 우연과 필연이 겹쳐져서 이런 관계가 된 거다.
최면 어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반하게 하라고 해서 사람을 마음대로 반하게 만들 수 있을 리도 없었다.
“지금요? 여기서요?”
“넌 잔말이 너무 많아.”
지혜 누나가 내 뒷목을 콱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이 내 마른 입술을 적신다.
키스를 해보면 그 사람의 본성을 알 수 있다고들 한다.
가장 예민한 감각기관이 맞닿으면서 상대방의 본성이 서로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고.
“후우…… 츄웃. 츄웁.”
하지만 다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그게 사실이라면 지혜 누나의 본성도 그녀의 키스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어야 했다.
이렇게 냉혹하고 완벽한 사람의 본성이 그럴 리 없잖아?
딸기 시럽을 칠한 얼음에 딸기 맛이 난다고 해서 그 얼음이 딸기가 아닌 것과 같다.
“……야. 제대로 해. 어제는 이렇게 안 했잖아?”
내가 멍청히 키스를 받고만 있자 지혜 누나가 불만스럽게 말한다.
그 손은 이미 내 아랫도리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다.
좀 더 망설이다 하느냐, 그냥 하느냐의 차이일 뿐.
내가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사람이 그냥 보내줄 리도 없고.
무엇보다 나도 하고 싶었고.
대선배의 명령이니까, 일개 신인 배우인 나는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흐읍.”
나는 지혜 누나의 등을 끌어올리며 제대로 키스했다.
지혜 누나는 까치발을 들고 내 키스를 받았다.
황수아 vs 신지혜 3
“읏, 읏, 흣, 읏──”
신지혜 배우님의 대기실.
그 신성한 장소에서 나는 그 방 주인과 섹스 중이었다.
속옷 차림인 지혜 누나의 팬티를 옆으로 젖히고, 지혜 누나와 마주 선 채로 박는다.
지혜 누나는 한쪽 다리는 내 팔에 걸치고, 나머지 한쪽 발도 까치발을 들고 있다.
자세가 불안정한 탓에 땅을 짚은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내가 찌를 때마다 몸이 흔들리는 바람에 엉덩이를 꽉 잡아줘야 했다.
“지혜 누나. 아직도 제가 약 쓰는 거 같아요?”
“윽……!”
지혜 누나와 하는 건 어제에 이어 두 번째다.
어제도 느꼈지만 지혜 누나는 무척 반응이 좋다.
어제 욕탕에서 했을 때는 1회째 도중에 기절했을 정도고, 이번에도 별다른 애무 없이 바로 넣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누나는 그런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지 나에게 약물 의혹을 제기했다.
당연히 누명이었다.
나는 약 같은 건 쓰지도 않았고 앞으로 쓸 생각도 없다.
기분 좋게 즐기면 좋은 건데, 왜 그런 데 자존심을 세우는지 모르겠다.
“알고 있어요. 오늘 아무것도 안 먹은 거. 커피도 입에만 대고 안 마셨던 거. 저 의심해서 그랬죠?”
나는 우연히 그 사실을 눈치챘다.
분명히 음료를 마시는데 양이 줄질 않는다.
지혜 누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시는 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관찰력을 키우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저 누난 왜 저런 연기를 하는 걸까?
그 의문은 이곳 대기실에서 풀 수 있었다.
지혜 누나는 자신의 몸으로 내가 약을 썼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했던 것이다.
오늘은 확실히 약을 먹지 않았으니, 오늘 했을 때 어제보다 덜 느낀다면 어젠 약을 먹었다는 게 되는 거다.
몸으로 때워서 확인하다니.
스마트한 지혜 누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 원시적인 확인 방법이었다.
차라리 그냥 또 하고 싶었다고 하면 될 텐데.
“비교해보니까 어때요? 제가 느끼기엔 어제랑 별반 다를 게 없는 거 같은데. 그래도 제가 약 먹인 거 같아요?”
“아까, 읏, 키스, 할 때…….”
아직도 미련을 못 버렸나.
“그건 아니죠. 누나가 갑자기 했는데. 아니면 제 침에 약이라도 들어있을까 봐요?”
자세가 이래서 지혜 누나가 힘들어 보인다.
질 경련보다 다리 경련이 먼저 올 것 같았다.
나는 지혜 누나를 번쩍 들어서 소파로 이동했다.
소파에 누나를 눕힌 다음 정상 체위로 바꾸었다.
“그냥 인정하는 게 어때요? 지혜 누나도 알고 있잖아요? 누나 몸이 저를 원하고 있다는 거. 누나 자궁이 제 정자를 원하고 있다는 거.”
지혜 누나는 여전히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 입술을 깨물고 버텼다.
표정이나 소리만 참는다고 숨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질이 이렇게 요란하게 떠들고 있는데.
“하고 싶으면 그냥 말하면 될 텐데. 이런 번거로운 방법 안 써도 되니까 그냥 말로 해요. 괜히 여러 사람 끌어들이지 말고.”
지혜 누나는 완벽주의자다.
남에게 엄격한 만큼 자신에게도 엄격하다.
지혜 누나는 나와의 행위에서 쾌락에 빠진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지혜 누나를 울리고 싶다.
강한 척하는 암컷을 굴복시키고 싶다는 수컷의 욕망이 피어오른다.
나는 좀 더 스트로크를 길게 잡았다.
푸욱, 푸욱, 푸욱, 푸욱,
끝까지 찌르고, 길게 뺐다가, 다시 끝까지 찌른다.
한 번 찌를 때마다 단단하게 다잡은 지혜 누나의 표정이 풀리고 소리가 삐져 나왔다.
“핫, 읏, 핫, 핫…….”
“누나 얼굴 지금 어떤지 알아요? 거울 봐봐요.”
내가 손으로 메이크업용 큰 거울을 가리키자 지혜 누나의 눈이 무의식적으로 그쪽으로 향한다.
“보여요, 누나 표정? 엄청 기분 좋아 보이지 않아요?”
아마 지혜 누나 본인은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리도 내지 않고 인상은 찌푸린 채로, 별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그런 연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섹스가 주는 쾌락은 신지혜의 연기로도 커버할 수가 없었다.
마치 순한 양처럼 눈꼬리가 내려와 있다.
눈 주위는 발갛게 달아오르고 눈에는 눈물이 고여 초롱초롱 빛난다.
입은 헤벌레 벌어져 안쪽에 혀가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그건 성애에 녹아내린 여자의 얼굴이었다.
“흣, 흐윽!”
아. 왔다.
자신의 허술한 표정을 보고서 마음에 틈이 생긴 탓인지, 지혜 누나의 질에 오르가즘의 전조가 느껴졌다.
지금 큰 소리 내면 밖에서도 들릴 텐데.
나는 급하게 지혜 누나의 입을 내 입으로 막았다.
“흐으으으응!”
허리가 움찔움찔 튄다.
질이 격하게 요동치며 내 자지를 주무른다.
나는 지혜 누나가 그 쾌락을 더 잘 즐길 수 있도록 허리 운동을 약하게 늦췄다.
혀로는 입안을 부지런히 애무했다.
이 누나는 키스하는 걸 좋아하는 거 같으니까.
1분, 2분, 나름대로 긴 시간이 지나간다.
불꽃처럼 타오르던 오르가즘도 가라앉고, 나를 안고 있던 팔에도 힘이 빠져 늘어졌다.
“흐응, 흐응, 흐읏.”
뺨에 닿는 콧김이 간지럽다.
지혜 누나도 이제 진정된 것 같으니 슬슬 2회전으로 넘어가 볼까.
“아야.”
심심해서 가슴을 조물거리고 있던 나는 지혜 누나에게 옆구리를 꼬집혔다.
입술을 떼고 떨어지자 지혜 누나가 평소처럼 눈초리를 올리고 말했다.
“비켜. 이제 됐어.”
“에.”
됐어? 뭐가 돼?
난 이제 시작인데.
“나가.”
양손으로 내 가슴을 밀어낸다.
나는 엉거주춤하게 밀려났다.
지혜 누나와 연결돼있던 자지도 쑥 뽑혀 나왔다.
붉게 충혈된 내 자지는 지혜 누나의 애액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나가라고요? 전 아직 싸지도 않았는데?”
자지가 내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지혜 누나는 그런 내 자지를 흘겨보았다.
“……그래서 뭐? 여자들 냄새 민감한 거 몰라? 어디 화장실에서 딸딸이라도 치든가, 밖에 나가서 싸.”
……자기 즐길 거 다 즐겼으니 난 이제 나가라고?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짓을.
우리 집 폭군도 그런 짓은 안 했는데!
“아니…… 누나 진짜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소리 지를까?”
지혜 누나가 여유롭게 웃으며 말한다.
이 사람이라면 하고도 남았다.
“아! 잠깐! 나갈게요! 10초만요!”
“당장 나가.”
서둘러 옷을 챙겨입는 내 엉덩이를 지혜 누나가 발로 찬다.
으으.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정신도 못 차리게 해버릴 걸 그랬나.
소리 샐까 봐 일부러 약하게 한 거였는데.
“나가면 스태프들 들어오라고 해.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야?”
자기가 기다리게 해놓구선…….
나는 서둘러 바지를 입고 옷매무시를 다듬었다.
하지만…… 이건 어쩌지.
도중에 멈추는 바람에 성난 자지는 바지를 찢고 나올 기세였다.
나는 급한 대로 정장 재킷을 손에 들어 불룩 튀어나온 앞부분을 가렸다.
“저, 스태프분들 들어오시라는데요.”
“아. 네.”
문을 빼꼼히 열고 말하자 밖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던 스태프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휴. 내 가랑이 상태에는 아무도 눈치 못 챈 거 같다.
“진선후 배우님, 괜찮으세요?”
“아. 승희 어머니.”
신지혜 배우 대기실에서 나오자 승희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내 눈은 자연히 승희 어머니의 신체를 스캔한다.
오늘도 노출 없는 단정한 정장 차림이지만, 그 안에 여자의 몸이 감춰져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날 안았던 성숙한 육체가 눈에 아른거린다.
아까는 승희가 천사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승희 어머니가 나를 구해주기 위해 내려온 천사처럼 보였다.
“괜찮으세요? 다들 걱정하시던데.”
승희 어머니도 지혜 누나가 날 괴롭히려고 데려간 줄 알았나 보다.
뭐, 이것도 괴롭힘이라면 괴롭힘이긴 하다만.
“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승희는요?”
“현장에 있어요. 전 걱정돼서 잠깐.”
마침 잘 됐다.
이 틈에 승희 어머니한테…….
……아니. 아니지.
한 번 그런 관계를 맺었다고는 해도, 갑자기 그런 부탁을 드리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그것도 다른 여자랑 하다가 나와서 그 뒤처리를 해달라고 하는 건…….
“? 왜 그러세요?”
“아……그…… 실은 부탁이…… 아니, 아닙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뭐 필요한 거라도 있으세요? 가서 사 드릴까요?”
그렇다고 지금 수아 누나한테 부탁할 수도 없고.
지혜 누나 말대로 화장실에서 딸딸이나 쳐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