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4화 (144/256)

어렸을 때 누나한테는 노래로 놀림당했고, 나에 대한 건 뭐든 긍정하는 엄마조차도 ‘연습하면 좋아질 거야’라고 했을 정도다.

지금은 그 말을 듣고 연습해서, 그나마 사람처럼 부를 수 있을 정도는 됐다.

나는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선곡했다.

듣는 사람은 선하밖에 없으니, 잘하고 못하고를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언젠간 그가 너를─

맘 아프게 해 너 혼자 울고 있는 걸 봤어─』

고음 부분에선 삑사리가 났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끝까지 불렀다..

『나의 인생을 모두 주어도─

난 얻지 못하는─

그녈 가진 그대라고─』

노래가 끝났다.

선하가 환호하며 박수를 쳐줬다.

후.

속이 시원했다.

“오빠 뭐예요? 잘만 부르면서.”

“노래는 못해. 음정 박자만 얼추 맞추는 거야.”

일반인은 음정과 박자만 잘 맞춰도 절반은 간다.

그건 피아노로 단련돼 있으니까 어려울 건 없었다.

“오빠, 한 곡 더 불러줘요.”

“난 이제 됐어. 선하 네가 불러.”

“에이~. 알았어요. 그럼 제가 부를게요.”

“응. 근데 여기, 무슨 소리 안 들려?”

어디선가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어디 공사하나?”

“그러게요. 뭘까요?”

선하가 이상하다는 듯이 소리가 들리는 벽에 귀를 대어본다.

그리곤 소곤소곤 나를 불러들였다.

“……오빠. 이리 와서 들어봐요.”

“왜?”

“빨리요!”

“뭔데 그래?”

선하를 따라 벽에 귀를 대 본다.

거기선 벽을 치는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 오빠~ 아~ 거기~』

……분명 들어올 때 본 바로는 교복 입은 학생 커플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데서 할 생각을 하지?

“……선하야, 나가자.”

생각해보니 나도 미소랑 영화관에서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구나.

“왜요, 오빠. 좀만 더 놀다 가요.”

선하는 흥미진진한 모습이었다.

한창 그런 데 관심 있을 나이긴 하다만…….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선하야. 이런 건 어른 되거든 해.”

“저 이제 한 달만 있으면 어른인데요?”

“아직 한 달 남았잖아. 그때까진 애지.”

내 말에 선하는 입을 꾹 닫았다.

겨우 한 달이라곤 해도, 그때까진 엄연히 청소년이었다.

잠자코 있던 선하에게 다시 한번 나가자고 재촉하려 하자 선하가 입을 열었다.

“……그럼, 한 달 뒤엔 오빠가, 저 어른으로 만들어 줄래요?”

선하는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물었다.

어른으로 만들어 준다.

성년의 날에 장미꽃을 달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쿵!

『아아앙─』

그런 민망한 타이밍에, 옆 부스에서 성대한 소리가 울렸다.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지른 모양이다.

굳었던 내 몸이 풀렸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빨리 나와. 집에 가게.”

나는 결국 선하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먼저 자리를 떴다.

수능 날, 선하와 데이트2 

“어, 선후 오빠, 화났어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민망한 마음에 무작정 부스에서 나온 내 뒤를 선하가 쫄래쫄래 따라오며 말했다.

“……미안해요, 오빠. 그런 뜻이 아니라, 저기…….”

내 태도가 쌀쌀맞게 느껴졌던 걸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선하는 당황해했다.

화가 나? 화가 왜 나?

민망해서 입 다물고 있었던 건데.

선하 눈에는 그런 내가 화가 난 것처럼 보였나 보다.

그래도 마침 잘됐다.

화난 척해서 넘길 수 있다면 얼마든지 화내주지.

“화 안 났어.”

뒤를 힐끗 돌아보고서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그러고는 가던 길을 간다. 

나는 ‘누가 봐도 화났으면서 화나지 않은 척하는 남자’를 연기했다.

“선후 오빠, 제가 잘못했다니까요? 전 그냥, 오빠도 그럴 생각으로 저한테 잘해주나 싶어서…….”

“선하야.”

걸음을 멈추고 돌아선다.

선하가 움찔, 긴장하는 게 보였다.

착각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수아 누나 때 이미 경험해봤잖아?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반하게 만들고.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냉정하게 잘라내지도 못하고.

그러다 몸만 요구하고 마음은 주지 않는, 그런 어중간한 관계가 돼버렸다.

수아 누나는 그래도 좋다고 한다.

나한테 뭐라도 해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 한다.

날 좋아하니까.

하지만 그런 보답받지 못하는 관계는 여자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언젠가 수아 누나가 꿈에서 깨어나면 과거를 후회하고 나를 원망할지도 모른다.

정말 상대를 위한다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선하야. 내가 그러려고 너 만나는 거 같니?”

나는 마음을 단단하게 먹었다.

선하는 길고양이 같은 아이다.

추운 겨울 뒷골목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그런 길고양이 말이다.

가벼운 동정심으로 먹이를 주고 쓰다듬어 주는 건 쉽다.

하지만 야생 동물이 사람 손을 타면 혼자 사는 법을 잊어버린다.

사람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진 고양이는 평생 사람이 주는 사료밖에 먹을 수 없다.

먹이를 주던 내가 갑자기 먹이를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선하는 다른 사람에게 먹이를 바라고 아양 떨면서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선하처럼 기댈 곳 없는 여자아이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순수하게 도와주고자 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선하를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내가 거둬 키울 것도 아니니까.

그러면 안 되는데…….

“미안해요, 오빠…….”

선하는 나에게 사과했다.

마치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슬픈 얼굴로.

그 당돌했던 얼굴에는 처량함이 가득했다.

선하는 나에게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선하는 나와 닮았다.

엄마에게 구원받지 못한 세계선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홀로 외로움을 안고 살면서, 겨우 찾은 기댈 곳조차 언제 사라질지 몰라 두려워한다.

선하의 존재는 언제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았던 나의 어린 날들을 떠올리게 했다.

어떻게 이런 아이를 매몰차게 끊어낼 수 있을까.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선하는 이미 나를 따르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나도, 선하를…….

“…….”

나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선하를 어떡하면 좋을까.

……이거는…… 그거다.

긴급 구조다.

사람 손을 타면 안 된다고, 길에서 얼어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차에 치여 죽어가는 고양이를 동물 병원에 데려가는, 그런 구조 조치다.

어쩔 수 없었던 거다.

나는 그렇게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켰다.

선만 넘지 않으면 된다.

선만 넘지 않으면, 누구에게든 선의로 한 일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키다리 아저씨가 되자.

나는 주디의 학업을 지원해주는 존 스미스가 되는 거다.

……그런데, 키다리 아저씨는 원작에서 지원해준 소녀와 결혼했던가?

그럼 안 되잖아?

노래방을 나와 차에 도착했다.

나는 먼저 운전석에 앉았지만, 선하는 타지 못하고 차 옆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설마 선하는 내가 화가 나서 자길 버리고 갈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뭐해? 안 타고.”

내가 문을 열고 부르자, 그제야 선하는 부랴부랴 차에 탔다.

“다음은 어디 갈래?”

선하에게 다시 안전벨트를 매주며 묻는다.

“가도 돼요?”

“……수험생 할인된다며. 쓸 수 있을 때 써야지.”

내 무뚝뚝한 말에 선하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신나서 휴대폰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오빠, 여기요. 커피 사면 케이크 한 조각씩 준대요.”

선하가 휴대폰으로 보여준 건 나도 먹어본 적 있는 유명한 빵집이었다.

“그래. 가자.”

선하와 함께 빵집에 갔다.

아직 오전이라 한산했던 코인 노래방과는 달리, 빵집에는 사람이 꽤 있었다.

SNS에 맛집으로 소문나서 그렇겠지. 유독 젊은 여자 비율이 높았다.

“……선하야. 네가 가서 좀 사다 줄래? 난 아까 너무 시달렸더니 사람 많은 곳은 좀.”

“네! 오빤 뭐 드실 거에요?”

“아무 빵이나 하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너도 먹고 싶은 거 사고.”

“금방 올게요!”

선하에게 카드를 주고 심부름을 시킨다.

신나서 빵집으로 들어가는 선하.

나는 차에 앉아서 선하가 심부름을 잘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응?”

빵집 안에서 선하가 같은 교복을 입은 여자애들과 맞닥뜨렸다.

무리는 5명이었다.

학생답지 않게 꾸민 화장에 화려한 분위기.

짧게 잘린 교복 치마와 몸에 딱 달라붙는 교복 상의.

한눈에 잘 노는 인싸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분위기는 미묘했다.

아이들은 마치 선하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둘러싸듯이 포진했다.

선하는 웃고는 있었지만, 나와 있을 때 보여주는 그런 자연스러운 웃음은 아니었다.

마치 웃지 않으면 누가 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억지로 웃고 있었다.

반면 그 친구들은 주위의 눈도 신경 쓰지 않고서 웃고 떠든다.

그 행동은 선명하게 대비되고 있었다.

선하와 나머지 아이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같은 교복을 입은 무리에서, 선하 한 명만이 고립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잘 아는, 익숙한 분위기였다.

나는 차에서 내렸다.

음…….

여고생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는 뭐가 있을까.

나는 금수저 연예인의 가면을 쓰고 빵집에 들어갔다.

“선하야.”

“아…… 오빠.”

나를 본 선하의 표정은 뭐라 말하기 힘든 것이었다.

기쁘지만 부끄럽기도 하고, 그냥 모른 척 지나가 줬으면 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나도 경험자라서 안다.

그건 괴롭힘 현장에 아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우리는 저런 얼굴을 한다.

“오래 걸리는 거 같아서 와봤어. 선하 친구들이세요?”

물론 나는 모른 척 지나칠 생각이 없었다.

“네. 그런데요?”

“누구세요?”

여자애들은 곧바로 나를 적이라고 인식한 듯, 사나운 태도로 묻는다.

요즘 애들은 무섭네.

“선하 남자친구예요.”

“남자친구?!”

“너 남친 있었어?”

당황하는 아이들.

기선 제압에는 성공했군.

“오빠! 무슨 말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당황한 건 선하도 마찬가지였다.

“하하. 우리 선하가 부끄럼이 많죠?”

나는 선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살짝 내 쪽으로 끌어들였다.

선하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우물쭈물거린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