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6화 (136/256)

어차피 연예인은 광대다.

기왕 광대가 되기로 한 거,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리지 않고 할 생각이었다.

“아니. 미소가 귀여워서.”

귀여운 입술에 키스한다.

남매는 상대를 털끝만큼도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듯한 저런 영상을 찍어놓고, 실제로는 이러고 있다는 걸 알면 팬들이 뭐라고 할까.

날 죽이려 들겠지?

“아앙. 간지러워.”

매끈매끈한 피부를 즐긴다.

귀여운 엉덩이도, 예쁜 가슴도.

화면 너머로 미소를 보는 걸로 만족해야만 하는 팬들에게 소심한 우월감을 느낀다.

“근데 이번엔 오빠한테 서비스로 뭘 해주지? 에이한테 한번 말해볼까?”

“에이?”

진이랑 세아에 이어 에이까지?

미소는 나한테 스프링 멤버들을 컴플리트 시킬 생각일까?

“이제 그런 건 필요 없어. 난 미소가 좋아.”

“오빠…….”

미소가 감동한 듯 내 얼굴에 키스 세례를 퍼붓는다.

미소는 왜 자꾸 나한테 보답하려 하는 걸까.

이렇게 같이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나한테는 최고의 서비스인데.

그리고 에이는 걸 크러쉬 이미지가 강해서 좀 무섭단 말이지.

나는 여자다운 미소가 좋다.

거기에 굳이 더하자면 세아까지.

진이는 좀……너무 작으니까.

“미소야. 한 번 더 할까?”

“응…….”

미소의 몸을 가리고 있던 이불을 걷어내고 다시 한번 몸을 겹친다.

“아앙~♡ 오빠 너무 커~♡”

미소는 아직 장난칠 여유가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봐줄 필요 없겠지.

“아앗?! 앗앗!”

내가 진지하게 공격하기 시작하자 미소는 순식간에 여유를 잃고 허덕였다.

귀엽기도 하지.

그날 밤은 새삼 미소의 귀여움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팬들은 모르는, 세상에서 나만이 아는 미소의 귀여운 모습이었다.

2:1 데이트? 

촬영은 순조로웠다.

너무 순조로워서 무서울 지경이다.

여배우 트로이카는 여전히 신들린 연기를 뽐내고 있다.

조연들도 감초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있다.

천재 아역인 승희는 말할 것도 없다.

배우들의 NG가 줄어드니 촬영 시간이 짧아진다.

촬영 시간이 짧아지니 배우들의 집중력도 살아난다.

집중력이 살아나니 영상의 퀄리티는 더욱 높아진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전체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었다.

매일 촬영도 일찍 마치면서 여유분까지 찍어놓을 정도로 순조로운 진행 상황.

그렇지만 이렇게 좋은 상황에도 불만스러워하는 사람은 있었다.

바로 신지혜 배우다.

신지혜 배우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극단적인 완벽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나처럼 어중간한 신인에겐 별 잔소리하지 않지만, 기대치가 높은 배우에겐 그만큼 높은 기준을 요구한다.

특히 황수아 배우에게는 그 요구가 심한 수준이었다.

수아 씨야 태어날 때부터 배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지혜 누나의 기대치가 높은 건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있다.

멀쩡한 OK 컷에 트집을 잡는 것도 신지혜 배우의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 상관없는 나한테 화풀이하는 것만은 참아줬으면 한다.

“아야.”

지금도 수아 씨의 연기를 보던 지혜 누나가 나에게 발차기를 먹이고 있다.

수아 씨는 지혜 누나보다 한참 선배다 보니 감독님이 OK를 낸 연기를 가지고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지혜 누나는 그 화풀이를 괜히 나한테 하는 것이다.

“왜 때려요?”

“몰라서 물어?”

10여 년간 그 누나에게 불합리하게 맞고 자라온 나다.

이 정도로는 아프지도 억울하지도 않았지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선 좀 자제해줬으면 하는데.

지혜 누나 본인의 평판을 위해서라도.

‘신지혜 씨 또 저러네’하고 웃으며 넘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내 팬이 된 스태프 누나들은 지금도 도끼눈을 뜨고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모르니까 묻죠.”

“너 때문에 연기가 엉망이잖아.”

여기서 연기가 엉망이라는 말의 주어는 황수아 선배다.

아무리 남 눈치 안 보는 신지혜 배우라도 대놓고 선배 이름을 언급하면서 깎아내리지는 않는 눈치는 있는 것 같다.

“뭐가 엉망이에요? 좋기만 한데. 아야.”

나는 또 로우킥을 먹었다.

“저렇게 빵실빵실 웃으면서 무슨 연기가 돼?”

빵실빵실?

지혜 누나 말대로 수아 씨는 웃으면서 스태프들에게 수고했다고 인사하고 있었다.

여유가 느껴져서 좋기만 한데.

그게 나쁜 걸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예쁘고 친절해서 스태프들에게 인기 많은 황수아 배우를 질투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왜요. 보기 좋구만.”

“넌 저게 좋냐? 좋아?”

“아야. 아야.”

또 얻어맞는다.

이 정도 때려서 마음이 풀린다면 괜찮지만.

이 누님의 불평불만은 계속된단 말이지.

“신아영은 좀 더 피폐한 맛이 나야 한다고. 그 느낌이 안 나잖아. 이럴 거면 차라리 예전이 나았어.”

“예전?”

“수아 선배 우울했던 시즌. 시청률 안 나와서 망했어도 연기는 그때가 더 좋았다고.”

“시청률이 안 나오면 연기가 무슨 소용이에요.”

“넌 그게 연기자가 할 말이야?”

“아야.”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현실이 피폐해져서 연기도 음울해지면 보는 사람도 피곤할 텐데.

그래서 시청률 떨어지면 어떡해?

현실도 우울한데 드라마에서도 우울한 연기 보고 싶은 사람이 어딨다고.

“그러니까 빨리 헤어져.”

“사귀지도 않는데 어떻게 헤어져요.”

이게 지혜 누나가 나를 괴롭히는 이유다.

나 때문에 수아 씨가 행복해서 피폐한 연기가 안 나오니까 헤어지라는 거다.

억지에도 정도가 있지.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재밌게 해요?”

그리고 하필 수아 씨가 이 자리에 끼어들어 왔다.

수아 씨는 지혜 누나 말대로 빵실빵실 웃고 있었다.

“야. 알지?”

지혜 누나가 내 팔짱을 끼면서 옆구리를 쿡 찌른다.

또 무슨 연기를 하려는 건지.

“수아 선배, 오늘 시간 있어요? 선후가 쏜다는데.”

응? 내가?

언제요?

“나도 끼워주는 거야? 괜찮아?”

“당연하죠. 선후 넌 어때? 수아 선배 같이 가도 괜찮아?”

안 그래도 오늘은 시간이 비어서 두 사람 중에 시간 되는 사람은 권유하려고 생각했었는데.

지혜 누나는 이전부터 술 사라고 보채고 있었고.

수아 씨는 지난번에 약속 취소하는 바람에 보충하기로 했었고.

나야 한 번에 두 사람 빚 갚을 수 있으면 더 좋긴 하지만.

지혜 누나는 무슨 생각인 거지?

“예, 저도 좋, 윽.”

“네?”

지혜 누나에게 옆구리를 찔렸다.

“……아뇨. 저도 좋아요.”

옆에서 지혜 누나가 무시무시한 눈빛을 발사하고 있다.

“……후후. 그럼 오늘은 선후가 쏘는 거니까 실컷 마셔요, 선배.”

나는 무서워서 차마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야. 너 죽을래?”

나는 으슥한 구석으로 지혜 누나에게 끌려왔다.

“……누나 일진이에요?”

“어휴, 이걸 확 마.”

어두웠던 초딩 시절이 떠오른다.

윽. 머리가.

“넌 거기서 좋다고 하면 어떡해? 수아 선배 끼면 안 간다고 했어야지.”

“예? 누나가 같이 가자면서요?”

“네가 싫다고 할 줄 알았지! 내가 가자고 할 땐 죽어도 싫다더니!”

“그건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시간이. 아야.”

어차피 내가 거절할 줄 알고 그랬다고?

아하.

그럼 지혜 누나랑 둘이서는 간다고 했으면서, 수아 씨가 끼면 나는 안 가겠다는 게 되는 거니까.

근데 유치하게 그런 짓까지 해야 해?

“아무튼. 기왕 가는 거니까 가선 잘해. 수아 선배 따돌리고 둘이서만 친하게 노는 거야.”

“애들도 아니고 그런 짓을 어떻게 해요?”

“선배가 하라면 하는 거지, 뭔 말이 많아?”

“아야.”

그런 우여곡절 끝에 나는 신지혜, 황수아 두 배우와 그날 저녁 술 약속을 잡게 되었다.

와! 미녀 배우 두 사람과 2:1 데이트다!

그렇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여럿이 만나면 야한 짓도 못 하니까.

“나이트 가요, 나이트!”

“난 그런 데는 좀…….”

“저도 좀.”

지혜 누나의 나이트 추천에 수아 씨와 나는 거북한 반응을 보였다.

“뭐야. 그럼 어디 가게요? 클럽?”

클럽이랑 나이트랑 다른 거였어?

“그런 거 말고 좀 조용한 데는 없어?”

“선후 네가 사는 거잖아. 어디 갈 거야?”

“음…… 그럼 고기 먹으러 갈까요?”

“고기 같은 소리 하네! 촌스럽게!”

“아야.”

고기가 얼마나 좋은데!

맛도 있고 배도 부르고 영양도 풍부하고!

“아예 시끄러운 데로 가야 우리가 묻히지. 어중간한 덴 더 정신없어.”

“그런가?”

애초에 나는 외식이란 걸 별로 해본 적이 없으니까.

특히 여자를 모시고 하는 외식 따위.

데이트 같은 걸 해봤어야 알지.

“그럼 차라리 우리 집으로 가요.”

수아 씨가 그렇게 의견을 냈다.

“선배네 집?”

“그래도 돼요?”

“그럼요. 집에서 먹으면 방해받을 일도 없고 좋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두 사람은 그래도 괜찮나?

“수아 선배네 가면 재워줘요?”

“우리 집에 빈방 많으니까 자고 가도 돼.”

“그럼 가요! 수아 선배 집으로!”

수아 씨야 나 못지않게 집순이라 그렇다 치지만.

지혜 누나는 틀림없이 반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무슨 꿍꿍이지?

나야 편하니까 좋긴 한데.

잠시 후, 촬영이 다 끝나고.

지혜 누나는 바로 매니저를 퇴근시키고 나와 함께 수아 씨 차로 돌아가기로 했다.

운전은 당연히 내가 했다.

나는 까마득한 후배니까.

그렇게 유명 여배우 두 사람과 함께 돌아가는 길.

우리는 편의점에 들러서 각자 먹을 걸 고르기로 했다.

지혜 선배는 양주 2병에 소주 6병을 담았다.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사요?”

“네가 사는 거니까.”

“다 마시지도 못할 거면서.”

“네가 마실 거니까.”

“저 술 못 마셔요.”

“쪼끄만 게 어디 어른 앞에서 술을 빼?”

“아야.”

쪼끄맣다니.

내 어디가 쪼끄맣다는 거야?

“선후 씨. 계산은 제가 할게요.”

“어허. 수아 선배, 애 버릇 나빠져요.”

“선후 씬 이제 데뷔한 신인이잖아. 이런 건 선배가 사야지. 그리고 이번엔 내가 중간에 낀 거니까.”

“그래도 사기로 했으면 사야지. 뭐해, 빨리 계산 안 하고.”

지혜 누나가 수아 씨를 막아주는 사이에 계산을 마친다.

“내가 사면 되는데…….”

“수아 씬 다음에 둘이 있을 때 사줘요.”

“그럴까요……?”

“참 내. 야, 진선후. 너 내 말 까먹은 거 아니지?”

무슨 말?

나는 잘 모르겠는데.

“저, 혹시 신지혜 언니 아니세요?”

카운터 앞에서 떠들고 있자 계산하던 알바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러자 지혜 누나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신지혜입니다. 사인해줄까?”

“네!”

역시 인싸.

처음부터 반말이라니.

나는 흉내도 낼 수 없다.

“혹시 그쪽 분은…….”

“네. 황수아입니다.”

“아! 그렇구나! 팬이에요!”

“그럼 우리 둘 중에 누가 더 좋아?”

“어, 저. 신지혜 언니요.”

“오~ 고맙습니다. 이번에 드라마 같이 나오니까 꼭 봐줘요.”

수아 씨도 사인하고, 그 사이에 지혜 누나는 알바와 악수하고 셀카까지 같이 찍었다.

“저, 혹시 오빠도 연예인이세요?”

“저요?”

알바의 시선이 이번엔 나에게 향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연예인이던가?

“이 오빠 크게 될 사람이니까 지금 미리 사인받아놔요.”

“크게 되긴. 거시기만 컸지 뭘.”

“우와! 무슨 소리예요? 죄송합니다. 진지하게 듣지 마세요. 이 사람 원래 좀 이상한 사람이니까.”

“하하…….”

나는 얼른 사인을 마치고 도망치듯 편의점을 나왔다.

아. 부끄러워라.

무슨 술 취한 아저씨도 아니고 아무 데서나 섹드립을 날리고 있어?

부끄러워서 같이 다닐 수가 없네.

내 거시긴 보지도 못했으면서.

“지혜 누나. 그런 소리 좀 하지 마요.”

“야. 그거 다 일부러 그런 거야. 네가 몰라서 그렇지, 저런 썰 하나 퍼지는 게 광고 10번 찍는 거보다 나을 수도 있어.”

“어. 그래요?”

광고 10번이란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요즘같이 SNS가 발달한 시대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선후 씨. 속지 말아요. 저건 그냥 성희롱이니까.”

“아. 그럼 그렇지.”

잠시라도 저 사람을 믿은 내가 잘못이지.

“어쭈? 누나가 칭찬해지는데 고맙게 받아들이진 못할망정.”

“네네. 칭찬 고맙습니다.”

왠지 지혜 누나의 매니저가 금방 그만둔다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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