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대놓고 흥미진진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누나. 정말로 할 거야?”
이번엔 조금 진지하게 물었다.
누나가 하고 싶다면 나도 최대한 협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해선 안 된다.
할 거면 제대로 배워서, 안전하게 해야 했다.
잘못해서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누나는 병원에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신분이니까.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
누나는 눈을 피하며 대답했다.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히 있는 거겠지.
“……나도. 이런 건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다칠지도 모르고.”
솔직히 다행이었다.
당장 하자고 하면 어떡하나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마음의 준비가 되면? 할 거야?”
“……너 하는 거 봐서.”
“나 하는 거? 어떤 거?”
“……넌 그걸 꼭 내 입으로 말을 해야 아냐?”
누나가 도발적인 표정으로 묻는다.
“아니.”
나는 누나가 기다리는 침대 위로 올라간다.
“누나. 오늘은 안 봐줄 거야.”
“한 번 해보시든가. 이 변태 새끼야.”
교복을 입은 누나.
그건 내 머릿속에 트라우마로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건드리면 폭발할 것만 같았던, 그렇다고 건드리지 않아도 멋대로 폭발했던 고교 시절의 누나.
아름답고, 고고하고, 누구보다 강인했던 누나.
그런 누나는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었고, 동경의 대상이었으며, 내 첫사랑이기도 했다.
교복을 입은 누나를 내려다보며, 나는 오래전의 두근거림을 떠올렸다.
그날, 나는 또 하나의 트라우마를 극복해냈다.
찐남매 튜브!
“찐하~!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저는 찐남매 튜브의 진미소!”
“……진선후입니다.”
“반갑습니다! 예이!”
무척이나 활기가 넘치는 미소.
그 옆에는 도살장에 끌려오기라도 한 듯한 내 얼굴이 화면에 비치고 있었다.
“역사적인 찐남매 튜브의 첫 방송! 진선후 님, 먼저 우리 찐남매 튜브라는 이름의 어원에 대해서 알려주시죠?”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아! 오빠! 제대로 좀 해 봐!”
치직.
화면 전환.
“네! 저희 찐남매 튜브는, 진선후-진미소 남매를 합쳐서 진진 남매, 그래서 찐남매 튜브가 됐습니다!”
“아, 네.”
“어떠신가요? 채널 이름은 마음에 드시나요?”
“예, 뭐…….”
“저희 오빠가 이렇게 의욕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하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랍니다. 컨셉이에요, 컨셉. 그렇죠?”
“……예.”
“……컨셉 맞죠?”
오빠를 때리기라도 할 것처럼 주먹을 쥐어 보이는 미소.
“커, 컨셉입니다.”
그리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나.
실제로 그런 컨셉이기도 하다.
“저희 찐남매 튜브에는 저 미소와 선후 오빠의 소소한 일상 브이로그가 올라올 예정입니다. 그밖에도 스프링 멤버들이나 다른 멋진 게스트들도 모실 생각이니까 많이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반갑게 양손을 흔드는 미소와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나.
치직.
화면이 암전됐다가 다시 밝아진다.
밝아진 화면에는 나는 빠지고 싱글벙글 웃는 미소만 있었다.
“우흐흐. 여러분! 이렇게 빨리 끝나면 섭섭하겠죠?”
“그런 여러분들을 위해서! 사전에 모집했던 ‘동생이 이럴 때 친오빠의 반응이 궁금하다!’ 코너!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세 가지를 준비해봤습니다!”
“먼저 3위!”
“‘오빠가 게임하고 있을 때 옆에서 섹시 댄스를 추면 어떻게 되나요?’”
“무려 좋아요 3,200개를 받았습니다!”
“저도 오빠의 반응이 굉장히 궁금한데요! 저의 섹시 댄스에 코피라도 쏟는 거 아닐까 걱정입니다!”
“그런데 선후 오빠는 게임을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대신 TV를 볼 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화면은 어두운 거실에서 TV를 보는 나로 전환됐다.
진지한 표정으로 외국 영화를 보는 나.
그런데 갑자기 거실이 밝아지고, 평상복을 입은 미소가 나타났다.
짧은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다.
BGM은 스프링의 히트곡 ‘네버러브’.
빠른 비트에 맞춰 미소가 섹시 댄스(?)를 추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미소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조금 찌푸린 얼굴로, 여전히 TV 화면에 집중하고 있다.
“오빠! 나 좀 봐!”
답답해진 미소가 불러보지만, 내 시선은 여전히 TV에 못 박힌 채다.
미소는 뾰로통한 얼굴로 이번엔 TV 앞으로 이동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안 보여. 비켜.”
우와. 재수 없어.
내가 저랬다고?
“오빠. 나 어때? 웃흥~♡”
미소가 나름 섹시 포즈를 취해보지만, 나는 미소 등 뒤의 화면을 보기 위해 기웃거린다.
“어. 예쁘네.”
미소는 보지도 않고 대답한다.
“아! 진짜! 좀 보라니까!”
결국 미소는 화를 내며 TV를 꺼버렸다.
그런 미소의 횡포에 결국 나도 폭발한다.
“야!”
“꺅!”
미소가 도망치고 내가 잡으러 가는 장면에서 영상은 멈춘다.
* * *
“네! 다음!”
“‘동생이 이럴 때 친오빠의 반응이 궁금하다!’ 그 2위!”
“‘오빠가 자고 있을 때 덮치면 어떻게 되나요?’”
“헉! 좋아요가 무려 6500개!”
“우흐흐. 저도 굉장히 궁금한데요. 참고로 선후 오빠는 잘 때 건드리면 굉장히 싫어한답니다.”
내가?
“과연! 오빠가 잘 때 귀여운 동생이 덮치면 오빠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금부터 함께 보시죠!”
화면은 어두운 내 방으로 이동한다.
‘쉿. 여긴 오빠 방입니다. 오빠는 저쪽 침대에서 자고 있네요.’
미소가 카메라를 향해 소곤소곤 말한다.
내 방 전자시계에는 3:24라고 표시되어 있다.
‘지금 시각은 새벽 3시 24분. 오빠는 완전히 꿈나라에 있는 것 같은데요. 우흐흐. 과연 오빠는 제가 덮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카메라가 자는 내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사전 협의대로 웃통은 벗고 있는데, 이래도 되나?
나중에 괜히 문제 되는 건 아니겠지?
‘그럼 지금부터 자는 오빠를 제가 덮쳐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덮친다는 건 결코 야한 의미가 아니다.
말 그대로 ‘덮친다’는 뜻이다.
미소는 살금살금 내 침대로 다가오더니.
“오빠!!”
그대로 침대에 다이빙해 내 배에 바디 프레스를 먹였다.
“쿠헥?!”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나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잠에 취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아…… 뭐 하는 거야 진짜…….”
“오빠! 놀자!”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면서도 미소의 손에 들린 카메라를 확인하고 욕을 삼킨다.
“하아…….”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고서 일어난다.
“오? 오?”
그리고는 미소를 번쩍 들어서는 방 밖으로 쫓아냈다.
쾅. 철컥.
문이 닫히고 잠금쇠가 잠긴다.
“오빠! 오빠!”
미소가 문을 두드리며 불러보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화면은 다시 전환된다.
* * *
“네! 다음!”
“‘동생이 이럴 때 친오빠의 반응이 궁금하다!’ 대망의 1위는!”
“두구두구두구~!”
“‘오빠한테 갑자기 뽀뽀하면 어떻게 되나요?’”
“으엑. 오빠한테 뽀뽀해야 돼?”
“무려 좋아요 11000개를 받았습니다. 우와!”
“안 하면 안 돼?”
“음~ 전 하기 싫지만! 시청자 여러분들이 원하시니까!”
“평생 뽀뽀 한 번 못 해봤을 오빠를 위해! 저 미소가! 특별히! 오빠에게 뽀뽀를 해주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오빠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뻐서 울어버리는 건 아닌지 미소는 걱정인데요!”
“그럼! 지금 확인하시죠!”
화면은 다시 바뀐다.
미소가 살금살금 내 방으로 다가와 문을 연다.
열린 문 틈새로 카메라가 내 방안을 확인한다.
나는 피아노를 치고 있다.
최근 연습하고 있는 쇼팽의 환상 즉흥곡이다.
‘쉿.’
미소는 조용히 하라는 듯이 카메라 앞에서 검지를 입에 댄다.
그리고 살금살금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침입자의 존재에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피아노를 치고 있다.
곡은 거의 막바지.
미소는 연주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마지막 건반을 치고, 나는 우아하게 손을 들어 올린다.
그야말로 자아도취.
우와. 재수 없어.
저게 나라고?
“……이건 빼면 안 돼?”
“무슨 소리야, 오빠. 이게 좋은 건데.”
분명 뺄 게 있으면 빼준다고 했는데, 미소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럴 거면 왜 보여주는 거야.
다시 영상은 돌아간다.
연주를 마친 나는 눈을 감고 여운에 잠겨있다.
그런 내 옆으로 다가오는 불온한 그림자.
말할 것도 없이 미소였다.
“오빠.”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뜨는 나.
그런 내 볼에 미소는 ‘쪽’ 소리가 나게 뽀뽀했다.
화면으로 봤을 때는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약 1초.
나는 굳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나는 분기탱천했다.
“야! ‘삐─’ 너 진짜 ‘삐──’ ‘삐─ 삐삐──’ 야! 진미소!”
“아하하하하!”
“‘삐───’”
다행히 내 목소리는 대부분이 ‘삐─’ 처리됐고, 입 모양도 알아볼 수 없게 모자이크 돼 있었다.
내용은 알 수 없지만 표정만 봤을 때는 분명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미소는 나와 대조적으로 숨이 넘어가도록 웃으며 도망친다.
* * *
다시 영상은 미소의 스탠딩으로 넘어간다.
“찐남매 튜브의 역사적인 첫 방송! 여러분, 어떠셨나요? 재미있으셨나요?”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저희 찐남매 튜브는 항상 시청자 여러분들의 의견을 받고 있습니다.”
“선후 오빠의 연주로 듣고 싶은 곡, 저 미소가 불러줬으면 하는 곡, 댓글로 남겨주시면 저희 찐남매가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겠습니다! 좋아요를 많이 받을수록 확률이 높아져요!”
“그럼 여러분, 다음에 또 만나요! 찐바~!”
영상은 그렇게 끝이 났다.
“어때, 오빠? 괜찮은 거 같아?”
“응……. 피아노 치는 장면만 빼고.”
화면으로 보는 내 모습은 무척이나 재수 없었다.
설마 드라마에서도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닐까?
“오빠. 그게 좋은 거라니까. 내 말 믿어.”
“……알았어.”
미소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어차피 난 그런 거 잘 모르니까.
“그런데 그런 장면은 괜찮아? 나 자는 장면이나 볼에 뽀뽀하는 것도 그렇고.”
“괜찮아. 남자들은 남자 상탈에는 관대하고, 여자 팬들은 오히려 좋아할 거야. 볼 키스는 하는 척만 했다고 하면 돼. 여론은 소속사에서 알아서 조작해줄 테고.”
“그런가…….”
굳이 그런 장면을 넣을 필요 있을까 했지만, 미소가 필요하다니까 필요한 거겠지.
앞으로도 스프링 멤버들과 콜라보 영상은 계속 찍을 예정이니까, ‘남자’가 아니라 ‘친오빠’라는 이미지를 굳히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남자와 오빠의 이미지 차이는 뭐지? 오빠는 남자도 아닌가?
내 기준에는 모르는 남자보다 친오빠가 훨씬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응? 왜?”
내가 가만히 보고 있자 미소가 묻는다.
지금도 미소는 알몸으로 내 침대에 함께 누워있다.
실컷 몸을 겹친 후, 잠깐 쉬는 동안 영상을 확인한 참이었다.
이번 영상은 새롭게 개설한 ‘찐남매 튜브’에 올라갈 예정이다.
이 ‘찐남매 튜브’는 미소의 소속사에서 도와주긴 하지만 미소의 개인 채널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편집자도 미소가 개인적으로 고용하고 영상도 미소가 직접 찍으니까.
나는 거기에 숟가락만 올렸다.
인터넷 방송을 하자는 미소의 제안이 처음엔 거북했지만, 드라마 홍보나 인지도를 올리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받아들이기로 했다.
미소와 스프링의 도움을 받을 정식 창구가 생기면 천군만마를 얻은 거나 다름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