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7화 (127/256)

김선하3 

“어? 선하 아냐?”

선후 오빠는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웃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 아닌데요.”

말도 안 하고 도망친 게 부끄러워서였을까.

왠지 모르게 오빠와 아는 척할 수 없었다.

“선하 맞잖아. 요즘 세트장에서 안 보인다 했더니, 아르바이트 바꿨어?”

“아니라고 했잖아요!”

어째서일까.

왜 나는 오빠한테 화를 내는 걸까.

서울 시내 수많은 편의점 중에서, 하필 내가 일하는 편의점에, 내가 일하는 시간대에.

끊어진 실을 신이 억지로 이어주려 하는 듯한, 그런 운명적인 만남인데.

오빠가 내가 없어진 걸 신경 써줬다는 게 기쁘다고 생각하면서, 왜 나는 화를 내는 걸까.

선후 오빠는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당연하겠지. 그렇게 친한 척해놓고 하루아침에 모르는 사람인 척하고 있으니까.

“……죄송합니다. 계산해드릴게요.”

나는 정해진 순서대로 계산하고 상품을 봉투에 넣어 오빠에게 넘겼다.

“안녕히 가세요.”

“……고맙습니다.” 

그렇게, 보내고 만다.

안 돼.

오빠가 가버려.

미안하다고 말해.

사실은 내가 오빠 동생인 선하라고 말하라고.

……하지만, 내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오빠가 겨우 찾은 ‘진짜 가족’.

거기에 나 같은 ‘가짜’가 끼어들어선 안 된다.

겨우 날갯짓하기 시작한 오빠를 방해해선 안 된다.

나는…… 오빠에게 짐이 될 뿐이니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제 울지 않기로 했는데.

나는 서둘러 자재 창고로 들어가, 거기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밖에 나왔을 때, 나에겐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나는 여전히 편의점 알바를 계속하고 있다.

선후 오빠를 피하려고 방송국 알바는 그만뒀으면서.

정말 오빠를 피하고 싶다면 이번 알바도 그만둬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만두지 않았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면 또 찾아올지도 모르는데.

만나고 싶은 건지 만나기 싫은 건지.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아마 만나고 싶은 거겠지.

오빠가 일부러 또 찾아와서, 억지로라도 내가 왜 그러는지 묻길 바라는 거겠지.

그래서 내가 동생이라는 걸 밝혀줬으면 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바라고 있는 거겠지.

스스로 말할 용기는 없으면서.

어린애 같이.

나도 이런 내가 싫다.

* * *

오늘은 온종일 재수가 없었다.

손님이 컵라면을 쏟질 않나, 노숙자가 와서 돈을 빌려달라질 않나.

거기에 이번엔 이거다.

“학생, 몇 살이야?”

“…….”

“이쁘네. 꼭 우리 딸 같아.”

징그러운 웃음을 띤 50대 아저씨.

어차피 이런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 따윈 다 똑같다.

내가 아무리 돈이 없어도 아저씨 같은 사람이랑은 안 놀거든요?

좀 꺼져주세요.

안 그래도 기분 더러운데.

“학생. 전화번호 좀 알려줘. 아저씨가 쉽게 벌 수 있는 일자리 알거든? 학생처럼 이쁜 아가씨가 이런 힘든 일 할 필요 없잖아?”

“전화 없어요.”

“없어? 그럼 손에 든 건 뭔데?”

짜증 난다.

거절하는 것조차 지치고, 피곤하고, 말을 섞는 것만으로도 토할 것 같았다.

내가 대꾸도 안 하고 무시했더니 아저씨는 표정을 굳히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 너 어른이 좋게 말하니까 우습지?”

좋게 말해서 우스운 게 아닌데.

인간 자체가 우스운 걸 왜 모르는 걸까.

“야! 손님이 말하는데 대답 안 해?!”

“아!”

내 손을 잡으려는 듯 팔을 뻗는다.

순간적으로 피했지만, 손등이 스쳤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가세요! CCTV로 다 찍고 있어요! 안 나가면 성추행으로 고소할 거에요!”

억울하고 분했다.

내가 왜 이런 쓰레기 같은 아저씨한테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뭐? 성추행? 해 봐 이년아!”

상식이 있는 어른이라면 ‘성추행’이라는 말에 쫄아서 나가야 했다.

그런 일로 고소당하면 멀쩡한 사람이라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테니까.

하지만 이 아저씨는 생각보다 더 막 나가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지도 모른다.

“꺄악!”

편의점 카운터를 넘어오려고 드는 아저씨.

나는 카운터 구석에 붙어서 소리만 질렀다.

설마 이렇게까지 막 나올 줄은 몰랐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머릿속이 하얘지고 만다.

누가, 누가 좀 도와줘!

“……뭐 합니까? 딸 같은 애 상대로.”

“뭐야 넌? 이거 안 놔?!”

정말?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

한 남자가 아저씨의 옷깃을 붙잡아 카운터를 넘어오지 못하게 붙들었다.

“선후 오빠……!”

이 순간 가장 간절하게 와주길 바랐던 사람.

나의 오빠였다.

* * *

“정말 괜찮겠어? 신고 안 해도.”

“됐어요. 저런 사람 일일이 신고하다간 한도 끝도 없어요. 신경 쓰기도 싫고.”

아저씨가 넘어뜨린 카운터 상품들을 정리하며 말한다.

선후 오빠도 정리하는 데 거들어주었다.

“저런 사람 많아?”

“많죠. 하루에 한 명은 꼭 있어요.”

“진짜?”

저렇게 덤비기까지 하는 사람은 나도 처음 보지만, 시비 걸거나 번호 따려는 사람은 거의 매일 본다.

선후 오빠는 내 말에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왜요. 걱정돼요?”

“당연히 걱정되지. 오늘은 우연히 내가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오빠가 나를 걱정해준다.

겨우 그런 일로 내 마음은 기뻐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빠는 여기 웬일이에요? 집이 근처에요?”

“아니. 집은 좀 멀어.”

“그럼요? 오빠 혹시 저 스토킹 해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미안.”

내가 장난으로 한 말에 오빠는 몹시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찔리는 게 있는 거야?

하필 위기 상황에 딱 맞춰 등장한 것도 그렇고.

설마 그렇게 되길 노리고 있었어?

“그때 선하가 나한테 화난 게 신경 쓰여서…… 뭐 때문에 화났나 물어보려고 오긴 왔는데, 차마 물어볼 용기가 안 나서 밖에서 보고 있었어.”

“우와. 스토커.”

“……미안.”

만약 다른 남자가 그랬다면 기분 나빠서 소름 돋았을 텐데.

선후 오빠가 그랬다고 하니 기뻐서 소름이 돋았다.

자꾸만 웃음이 나려고 했다.

오빠는 그렇게 나를 신경 써줬구나, 하고.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 선하가 자꾸 신경 쓰이고, 걱정도 되고. 그래서 그랬어. 앞으론 안 그럴게.”

계속 그래도 되는데.

앞으론 안 그러면 내가 곤란해.

“그래도 이유는 알려 줘. 그땐 왜 화냈는지.”

“오빤 진짜 제가 왜 화났는지 몰라요?”

“미안……. 진짜 모르겠어.”

오빠의 반응이 왠지 재밌었다.

그야 모르는 게 당연하다.

나도 내가 왜 화냈는지 모르니까.

굳이 말하자면 오빠가 나를 기억 못 해서?

아니면 오빠가 행복하게 살아서?

하지만 그걸 오빠 잘못이라고 하는 건 너무 가혹한 거겠지.

“됐어요. 이제 화 안 났으니까.”

“정말?”

“네. 오빠가 저 도와줬으니까 쌤쌤으로 쳐요.”

내 말에 오빠는 눈에 띄게 안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럼 이제 오빠는 나한테 볼 일 없어지는 걸까.

그런 건 싫은데.

그냥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겠지?

내가 오빠 동생 선하라고.

하지만 그러면 우린 진짜 남매가 되는 거잖아?

“응? 왜?”

내가 빤히 쳐다보자 오빠가 묻는다.

오빠를 바라보는 내 심장은 마구 두근대고 있었다.

동생이 오빠한테 가지는 감정이 아니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이건 사랑이었다.

나는 선후 오빠한테 진심으로 사랑에 빠져버린 거다.

“……그래도 이 알바는 그만둬야 할까 봐요. 그 아저씨 또 올지도 모르고.”

“그러는 게 좋겠네. 방송국 알바는 다시 할 생각 없어?”

할 수만 있다면 다시 하고 싶었다.

방송국 알바라면 선후 오빠도 자주 볼 수 있을 테고.

언니들도 좋은 사람들 뿐이고.

하지만 그런 거론 만족할 수 없었다.

멀리서 보는 것만이 아니라 좀 더 직접적인 연결을 원했다.

오빠와 동생 관계가 아닌, 남자 대 여자로서의 연결을.

어쩌면 내가 화난 이유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선후 오빠는 내가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남자.

내 첫사랑이다.

그러니까 그런 걸 인정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선후 오빠와 내가 사실은 남매였다는 것.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였다는 걸.

……하지만.

오빠는 내가 동생이란 걸 모르고 있다.

내가 친동생이라고 밝히는 순간부터 오빠와는 혈연 관계가 된다.

그렇게 되면 두 번 다시 남녀 관계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 말하지 않기로 했다.

먼저 선만 넘어버리면.

그러면 그 뒤로는 내가 친동생이든 아니든, 그런 건 아무 상관없어지니까.

“오빠, 돈 많죠?”

“돈? 아니?”

“왜요? 오빠 연예인이잖아요.”

“나도 이제 막 일 시작했을 뿐이니까. 나도 엄마랑 누나한테 용돈 받아서 써.”

그랬구나. 하긴, 이번이 데뷔작이라고 했지.

그럼 어떡하지.

“그런데 돈은 왜? 돈 필요해서 그래?”

“필요하다고 하면 빌려줄 거에요?”

“용도랑 금액에 따라 다르겠지? 나도 어차피 엄마나 누나한테 빌려서 빌려줘야 할 테니까.”

오빠도 새 가족한테 빌려야 하는 건가.

그런 건 좀 싫은데.

“뭐 땜에 그래? 무슨 일 있어? 부모님이 아프시다거나.”

“부모님 같은 거 없어요. 저 고아에요. 시설에 있어요.”

“아, 응. 그랬구나.”

“이제 저도 곧 성인이니까 돈 벌어야 하거든요. 시설에 더 있고 싶으면 더 있어도 되지만 전 하루라도 빨리 독립하고 싶어요. 괴롭히는 사람도 많고, 이상한 짓 하려는 사람도 많고.”

“……이상한 짓이라니?”

“오빠도 알 거 아녜요. 우리 같은 어린 여자애들이 그런 시설에서 어떤 취급 받을지.”

구체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다.

두루뭉술하게 말하면 알아서 상상해줄 테니까.

내 예상대로 선후 오빠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당했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니까 거짓말한 건 아니지?

“그래서 빨리 독립하고 싶은데, 학교 다니면서 알바하려니 몸이 힘들기도 하고. 시간도 없고 돈도 안 되고. 독립자금으로 500만 원 준다는데 그거론 월세도 못 구하잖아요.”

“그…… 렇겠지.”

“그러니까 오빠가 제 스폰 해주시면 안 돼요?”

“……스폰?”

“네. 스폰요. 오빠가 저 먹여주고 재워주고 용돈도 주고. 전 대신에.”

“선하야.”

오빠가 심각한 얼굴로 말을 끊었다.

“너 지금 네가 무슨 말 하는지나 알고 하는 거야?”

“그럼요. 스폰 제안하는 거잖아요. 원조교제? 주변에 친구들도 다 해요.”

“선하 너…….”

“싫으면 말구요. 전 다른 사람 구하면 되니까. 아까 그 아저씨한테라도 해달라고 하지 뭐.”

당연히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면 오빠가 날 걱정해서라도 진지하게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어차피 우리 같이 배운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여자가 사람답게 살려면 성매매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어차피 팔 거면 조금이라도 비싸게 사주는 사람한테 팔아야죠. 업소에 나가서 여러 사람한테 파는 것보단 낫잖아요?”

“선하야.”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괜히 설교할 생각 마세요. 오빠가 뭘 알아요? 좋은 집안에 입양돼 부족한 것도 없이 살았으면서.”

“…….”

안 그래도 심각했던 선후 오빠의 얼굴에 더욱 그늘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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