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6화 (126/256)

김선하2 

“막내야. 당분간 나오지 말고 쉬어. 잠잠해지면 연락할 테니까.”

“……네.”

사실상 해고 통지였다.

어쩔 수 없지.

배우한테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배우는 절대 갑, 스태프는 절대 을이니까.

그것도 막내 알바가 주연 배우한테 그런 짓을 했으니.

짤려도 당연한 거다.

변상하란 소리 안 한 것만으로도 다행인 거겠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매니저 오빠를 이제 못 본다는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이름이라도 들어 놓을걸.

하는 김에 전화번호도.

……내 주제에 무슨.

꿈도 적당히 꿔야지.

다음 알바나 찾아볼까.

하지만 사흘 뒤.

나는 또 촬영장에 와 있었다.

“걱정하지 마, 막내야. 주정환 그 진상 연속 펑크라서 이제 거의 매장당하는 분위기니까.”

충격의 사실.

주정환이 그날 이후 3일 연속 펑크라고 한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드라마는?

“어떻게든 되겠지. 우리는 시키는 일만 잘하면 돼.”

“여기 네 탓하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

소품팀 언니들은 태평했다.

이러다 나 때문에 드라마 엎어지는 거 아냐?

으으. 속 쓰려.

“얘, 막내야. 가서 인사나 하고 와.”

“네?”

언니가 가리키는 곳에는 그 매니저 오빠가 있었다.

마침 같이 있던 황수아 배우도 회의실로 불려갔다.

“안 돼요. 저 그런 거…….”

“자. 빨리.”

다른 언니가 커피까지 뽑아 와서 손에 쥐여준다.

남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나는 언니들에게 억지로 등 떠밀려 매니저 오빠에게로 갔다.

……대체 무슨 말을 하라고?

“저, 커피 드세요.”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매니저 오빠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이런 서민 음식 안 먹는다고 하면 어쩌지?

고급 체인점 커피만 마신다고 하면?

“아, 고맙습니다.”

다행히 커피는 받아주었다.

휴.

“아. 그때.”

그리고 내가 누군지도 알아보았다.

못 알아봤으면 슬펐을 텐데.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제가 그때 괜한 짓을 해서.”

“아니요. 그땐 덕분에 살았어요. 정말로.”

아아. 다행이다.

괜한 짓 했다고 혼났으면 다신 얼굴 못 볼 뻔했다.

“그래도 저 때문에 안 나오시는 거 같아서.”

“그럴 리가. 절대 그런 거 아니에요.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인 거지. 자책할 필요 없어요.”

언니들이 한 말과 내용은 같았지만, 같은 말을 해도 받아들이는 기분이 달랐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안심되는 느낌.

잘생긴 게 착한 거라는 언니들 말이 이제는 이해가 될 것 같았다.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꼴 보긴 싫지만.”

“그러게요. 꼴 보긴 싫지만.”

그러면서 우리는 마주 보고 웃었다.

몇 마디 안 했는데도 이상하게 친근하게 느껴졌다.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이게 외모의 마법이란 말인가.

“저는 진선후라고 해요. 황수아 배우 매니저로 왔어요.”

매니저 오빠가 자기소개를 한다.

진선후.

선후 오빠.

성은 다르지만 죽은 오빠와 같은 이름이었다.

“아, 네, 저는, 세트장 알바로 온 김선하입니다. 고3이에요.”

나는 당황한 얼굴을 숨기기 위해 모자를 벗고 머리를 깊이 숙였다.

모자 안에 숨어 있던 긴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져 얼굴을 가린다.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왜 하필 선후 오빠일까.

그리 흔한 이름도 아닌데.

나는 당황스러운 기분을 감추고서 매니저 오빠와 대화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해보니 나이도 오빠와 같았다.

오빠도 살아있었다면 이 나이였을 텐데.

그런데 겨우 6살에 죽어버리다니.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럼 잘 부탁해. 선하야.”

“네. 선후 오빠.”

그렇게 매니저 오빠와는 오빠 동생으로 말을 트는 데에 성공했다.

선후 오빠.

그렇게 부르는 것만으로, 내 가슴속이 기쁨으로 가득 찬다.

잃어버린 마음의 한 조각을 찾은 것만 같았다.

선후 오빠는 곧 황수아 배우에게 불려갔지만, 내 마음에는 따뜻한 촛불 하나가 켜져 있었다.

“어때? 친해졌어?”

“……조금요.”

소품 팀 언니들에게 돌아가자 언니들이 신나게 놀려댔다.

“어머어머, 얘 좀 봐. 그새 사랑에 빠졌네. 빠졌어.”

“‘너무 잘생긴 사람은 좀~.’”

“‘전 못생겼어도 착한 남자가 조아요~.’”

언니들이 놀리듯이 내 흉내를 낸다.

“제가 언제 그랬어요!”

부끄러웠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언니들이 밀어주지 않았으면 말도 걸지 못했을 테니까.

선후 오빠도 그렇고 언니들도 그렇고, 이번 알바는 마음 맞는 사람들이 많다.

선후 오빠는 황수아 배우 매니저니까 자주 대화할 순 없지만, 멀리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황수아 배우는 주연 배우니까 촬영장에만 오면 항상 볼 수 있을 테고.

될 수 있으면 이번 알바는 오래 붙어 있어야지.

“네? 선후 오빠가 주연 배우 발탁이요?”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촬영장엔 그런 소문이 돌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매니저라면서?

그런데 갑자기 공중파 드라마 주연?

“그러게. 처음부터 교체 멤버로 와있었나 봐.”

“배우인데 매니저라고 한 거야? 웃긴다.”

“어떻게 해~? 더 거리가 멀어져 버렸어~.”

“매니저일 때도 가망 없었거든? 포기해.”

“우리 막내는 어떡하니? 그나마 가능성 있어 보였는데.”

“아서라. 애한테 바람 넣지 마.”

“왜, 좋잖아? 주연 배우와 세트장 알바의 사랑 이야기?”

“이게 무슨 드라마야? 현실 좀 사세요.”

언니들이 하는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생각한다.

왜 말 안 해줬을까.

사실은 매니저가 아니라 배우라고, 나한테만이라도 살짝 알려주지.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내가 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사는 세계가 달랐구나, 하고.

죽은 오빠랑 이름 같다는 거 때문에 운명처럼 느꼈는데.

괜히 헛꿈만 꾸고. 이게 뭐람.

하긴, 애초에 어울리지도 않았지 뭐.

내 주제에 연애는 무슨. 

일이나 해야지.

하지만 다음날, 야외 촬영장에서 언니들은 또 내 등을 떠밀었다.

“자. 막내야. 커피 배달.”

“네?”

“저기. 빨리 갔다 와.”

언니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선후 오빠가 있었다.

“싫어요. 안 갈래요.”

“어허. 어른 말 들어. 넌 아직 가능성 있다니까.”

“주연이라도 아직 뜨기 전이니까, 지금 잡아놔야 해.”

“너 고3이라며? 남자들 여고생이라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껌뻑 죽는다?”

“그래. 대학생 되면 또 다르니까 지금 작업 쳐놔야지.”

“여고생 화이팅!”

정말 그런 걸까.

여고생이라는 것만 믿고 들이대기엔 벽이 너무 높은 거 아닐까.

선후 오빠는 황수아 배우랑도 사이좋은 것 같던데.

황수아에 비하면 나 같은 건…….

“저, 진선후 배우님. 커피 드세요.”

왠지 어제처럼 ‘선후 오빠’ 하고 부를 수가 없었다.

‘죄송한데 친한 척하지 말아 주실래요?’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내일부터 일하러 못 나올 테니까.

“어? 선하잖아? 왜 그래, 서먹하게.”

다행히도 선후 오빠는 주연 배우가 됐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사람이 바뀌진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서먹해진 나를 타일렀다.

주연 배우라느니 하는 걸 신경 쓰는 건 나뿐이었다.

선후 오빠라는 호칭도 다시 돌아왔고, 생애 첫 사인도 받았다.

선후 오빠와 대화하고 있으면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이런 기분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사인은 평생 가보로 간직해야지.

“어땠어? 파란불 같아?”

“그냥요.”

일하러 돌아가자 언니들이 와글와글 떠들어댔다.

“얘 웃는 것 좀 봐. 웃겨.”

“그거 봐. 여고생은 무적이라니까.”

“좋을 때다~.”

“다음에 나도 사인 한 장 받아줘.”

“네. 기회 되면요.”

언니들의 기분 좋은 놀림을 나는 웃으면서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며칠.

선후 오빠는 드라마의 주연 배우로, 나는 세트장 알바로, 매일 마주치며 인사했다.

서로 일하러 온 만큼 자주 이야길 나누진 못했다.

기껏해야 하루에 한두 마디.

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매일 구름 위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선후 오빠는 눈이 마주치면 항상 아는 척해주었고, 언니들은 그럴 때마다 놀려댔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가 나에겐 행복이었다.

그래.

나는 행복했다.

메마른 내 인생에도 꽃이 피는 것만 같았다.

죽은 선후 오빠가 나에게 남겨준 인생에, 살아있는 선후 오빠가 행복을 심어줬다고.

나는 행복하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 충격적인 홍보 영상을 보기 전까진.

『사실 제가 학대 아동 보호센터 출신이라서요. 6살 때 센터에 맡겨졌다가 지금 어머니, 임신혜 배우께 입양됐습니다.』

공식 홍보 영상이 나왔다는 이야기에 부리나케 찾아봤는데.

홍보용 인터뷰에서 선후 오빠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학대 아동.

6살 때 입양.

모든 게 나와, 우리 오빠와 맞아떨어졌다.

선후 오빠가 선후 오빠였다.

진선후가 아니라 김선후였다.

입양되면서 성을 바꿨다고.

선후 오빠는 진짜 내 오빠였다.

죽은 줄 알았는데.

분명 센터 선생님은 오빠가 죽었다고 했는데.

거짓말이었어?

왜 그런 거짓말을?

설마 내가 찾아가기라도 할까 봐?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인터뷰는 이어졌다.

오빠는 계속해서 자랑해댔다.

자신이 엄마에게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게 자랐는지를.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데…….”

매일 외로워서, 오빠가 보고 싶다고 울며 보챘는데.

그랬는데, 나는 이렇게 힘든 세상에 던져놓고서, 오빤 혼자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었어?

믿고 있던 세상이 전부 부정당한 것만 같았다.

나를 지켜주느라 오빤 하늘의 별님이 되었다고 믿고 있었는데.

오빠가 남겨준 삶이니까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이런 시궁창에 처박아 놓고서.

오빠는…….

“……저 일 그만둘래요.”

“어? 갑자기? 왜?”

이유를 묻는 언니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방송국 일을 그만뒀다.

언니들은 말렸지만 내 마음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도저히 선후 오빠와 같은 공간에 있을 수가 없었으니까.

“하. 새 알바 찾아봐야 하나.”

이번엔 오래 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며칠도 못 가서 그만두다니.

“내 주제에 무슨.”

어쩌면 그대로 좋은 관계가 되어서.

언니들 말처럼 신데렐라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다.

드라마 여주인공에 나를 대입시켜 보기도 하고.

인기 배우가 된 선후 오빠와 몰래 데이트 같은 로맨틱한 상상도 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보다 기이하다던가.

설마 선후 오빠가 어릴 때 생이별한 친오빠였다니.

드라마는 드라마긴 하지만, 이런 막장 드라마를 원한 건 아니었어.

“오빠는 나 같은 거 기억도 못 하는 거겠지.”

김선하라는 이름을 듣고도 오빠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성이 바뀐 것도 아니고 얼굴이 바뀐 것도 아닌데.

오빠의 머릿속에 나란 존재는 없었다.

게다가 입양된 집의 새 가족이라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엄마는 배우 임신혜. 누나는 프로 골퍼 진소영. 동생은 아이돌 그룹 스프링의 진미소.

하긴, 그런 집안에 입양됐으면 나 같은 건 잊어도 당연하겠지. 억지로라도 잊으려 하겠지.

나란 존재는 오빠 인생의 오점일 테니까.

“지금은 새 동생도 있고.”

특히 새 동생인 진미소라는 존재.

원래 내 자리였던 오빠의 동생이라는 자리를 차지한 여자.

나 같은 거랑은 비교도 안 될 만큼 예쁘고, 귀엽고, 가슴도 크고.

무엇 하나 내가 이길 수 있는 게 없었다.

나이는 1살밖에 차이 안 나는데, 내가 평생 걸려도 못 이룰 것들을 이미 이루고 있었다.

“아~ 싫다~.”

이런 내가 싫다.

남과 비교해서 주절주절 불평이나 하고.

자격지심에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내가 싫다.

오빠를 원망하는 것도 번지수가 잘못됐다는 걸, 내 이성은 알고 있었다.

나와 오빠는 어른들이 멋대로 갈라놓은 것뿐이다.

오빠 혼자 입양된 것도 오빠가 선택한 게 아니다.

오빠가 날 버린 게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만든 거다.

나도 오빠도, 아무런 힘도 없는 어린아이들이었으니까.

그렇게, 오빠를 원망할 일이 아니란 걸 아는데도.

이성으론 알지만 감정은 받아들이질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오빠한테 사실대로 말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루에도 몇 번이나 생각하고, 후회하고.

그러면서도 방송국에 찾아가 말할 용기는 나지 않고.

그대로 며칠이 지났다.

방송국 일을 그만둔 뒤로 내 자존감은 땅에 떨어져 학교에서도 센터에서도 하루 종일 우울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생은 계속된다.

나는 새로운 알바를 구했다.

이번엔 편의점이었다.

편의점 일은 편하다. 

많이 해봤으니까 요령도 있고, 가끔 진상 손님이 있는 것만 빼면 어려울 게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살아가기만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전엔 먼저 죽은 오빠를 위해서라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죽은 줄 알았던 오빠는 멀쩡히 살아있었고.

그것도 어이없을 만큼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불행한 채, 꾸역꾸역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계산요.”

손님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다.

거기엔 선후 오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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