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화 (123/256)

나는 얼른 일어나 남자가 휘두르려는 손을 붙들었다.

“승희 아버지!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뭐야 넌! 남의 집 일이니까 넌 빠지라고!”

소리치는 남자의 입에서 역한 술 냄새가 풍겼다.

잡힌 팔을 빼내려 힘을 주는 남자.

하지만 순순히 놓아줄 수는 없었다.

“선후 씨! 그 사람 도박 중독이에요! 승희 데려다가 저한테 돈 뜯어내려고 그러는 거라고요!”

“시끄러워! 승희는 내 딸이니까 승희가 번 돈은 내가 쓰는 게 당연하잖아!”

그럴 수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그런 거였다니.

“승희 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승희가 어떻게 벌어온 돈인데, 그 돈으로 도박할 생각이 드십니까?!”

“그깟 애들 연기가 뭐 대수라고! 따서 갚는다고 했잖아!”

“이, 개……!”

개새끼가! 라고 하려다 승희가 듣고 있어서 참았다.

“컥!”

아.

입은 참았는데 주먹은 못 참았다.

울컥해서 그만 때리고 말았다.

그래도 손바닥으로 때렸으니까 죽진 않겠지.

나에게 맞은 남자는 바닥에 뒹굴었다.

나는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승희 아버지. 오늘만 해도 승희는 물에 빠진 연기 하다가 진짜 빠져서 죽을 뻔했습니다. 아십니까?”

“뭐라고……?”

“그리고 이 시간에 이런 햄버거나 먹으러 오는 것도. 가족끼리 변변한 외식 한 번 못 하고, 승희한테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랑 같이 여기서 햄버거 먹었던 게 행복했던 기억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승희한테 뭐 먹고 싶냐고 물으면 항상 햄버거만 찾습니다. 아빠로서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

젠장.

마음 같아선 피떡이 되도록 팼을 텐데.

하지만 그랬다간 나도 드라마도 끝장이다.

주정환이 깽판 치고 나가서 안 그래도 분위기 안 좋은데.

지금 한 대 때린 것도 문제였다.

정당방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젠장. 이런 중요한 시기에.

“아빠.”

승희는 눈물범벅이었지만, 의젓하게 아빠 앞에 섰다.

그리고 해피밀이 든 봉지를 아빠에게 내밀었다.

봉지는 아까 넘어질 때 바닥을 굴러서 흙투성이였다.

“배고프지? 이거 먹어. 해피밀 세트야. 아빠가 내 생일날 사줬던 거.”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하게 접힌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냈다.

“이건 내 용돈.”

그 돈을 멍하니 주저앉아있는 아빠의 손에 쥐여준다.

“아빠도 나 사랑하지? 지금은 방황하고 있는 거뿐이지? 어서 돌아와 줘. 난 아빠 믿으니까.”

승희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며 아빠에게서 돌아섰다.

젠장…….

이런 딸을 두고 어떻게 이래?

이런 것도 아빠라고.

“승희 아빠. 이제 승희 앞에 나타나지 마. 우리 돈 없어. 당신이 승희 이름으로 빌린 돈 갚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

승희 어머니도 승희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

답답하다.

10살짜리 딸 이름으로 돈을 빌려?

그래놓고도 아직도 도박한다고?

사람한테 살인 충동을 느끼는 건 오랜만이었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저도 인간이라면 느끼는 게 있겠지.

* * *

차에 돌아와 보니 승희가 대성통곡하고 있었다.

“으아아앙!”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그런 승희를 보니 마음이 착잡했다.

나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승희 어머니도 말없이 눈물을 닦고 있었다.

“승희야.”

“어헝! 어어엉! 아빠, 아빠아!”

통곡하는 승희를 달랠 길이 없었다.

나는 그저 우는 승희를 꼭 끌어안고서 등을 토닥여줄 뿐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뭐가 괜찮은지는 나도 몰랐다.

그저 승희가 진정될 때까지 계속 안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나서야 겨우 울음소리가 줄어들었다.

“아빠, 미안해, 히끅.”

“미안해? 승희가 뭐가 미안해?”

“우리 아빠가 때려서 미안해. 나 미워하지 마…….”

“절대 미워할 일 없어. 내가 승희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마음까지 이렇게 예쁜 승희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

뭐라도 해줄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 쓰레기 같은 인간.

승희를 이렇게 슬프게 하다니.

어휴.

그렇게 승희를 안고서 토닥거리고 있자, 승희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승희야. 졸리지? 그만 자자. 아빠가 집까지 데려다줄게.”

“해피밀…….”

“해피밀은 다음에 또 사줄게. 알았지?”

“응…….”

잠든 승희를 자동차 뒷좌석에 눕혔다.

“아빠……. 가지 마…….”

“아빠 어디 안 가. 안심하고 자, 승희야.”

승희를 뒷좌석에 태우고 나는 운전석에 앉았다.

나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죄송해요, 선후 씨. 괜히 저희 때문에…….”

그러고 보니 승희 어머니 호칭이 진선후 배우님에서 선후 씨로 바뀌었구나.

조금 가까워진 거 같아서 좋네.

“뭘요. 맞은 덴 괜찮으세요?”

“네. 선후 씨는요?”

“저도 뭐. 일단 출발할게요.”

사실 나는 조금 아팠다.

넘어질 때 삐끗했는지.

자고 나면 나으려나.

“그런데 저도 때렸는데 괜찮을까요? 신고라도 하면.”

“괜찮아요, 어차피 그 인간 수배 중이라서 신고도 못 해요.”

“수배요?”

아. 그런 줄 알았으면 좀 더 패줄걸.

아니지. 잡아가라고 경찰에 신고라도 할까.

그런 인간은 콩밥을 먹여야 하는데.

승희네 집에는 금방 도착했다.

지은 지 오래된 작은 맨션이었다.

치안은 괜찮은 걸까. 승희도 귀한 여배우인데.

승희 어머니도 그렇고, 모녀 둘이 산다고 생각하니 걱정이다.

“선후 씨, 집에 들렀다 가세요. 약이라도 발라드릴게요.”

“괜찮습니다. 택시 불러서 가볼게요.”

“제가 안 괜찮아서 그래요. 올라왔다 가요.”

승희 어머니의 간청에 못 이겨 나는 집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이혼했다곤 해도 전남편한테 맞았으니 승희 어머니도 마음이 편치 않겠지.

나는 잠든 승희를 안고서 엘리베이터로 올라간다.

집에 도착해 승희를 방 침대에 눕힌다.

핑크색으로 가득한 여자 초등학생다운 방이었다.

그리곤 거실 소파에서 승희 어머니와 마주 보고 앉았다.

“아까 넘어지셨었죠? 어디가 아프세요?”

“등이랑 어깨 쪽이 조금.”

“확인해보게 옷 좀 벗어보실래요?”

“에.”

그건 좀 부끄러운데.

“긴장하실 거 없어요. 사실 결혼 전까진 간호사였거든요.”

“아.”

그럼 괜찮나?

괜찮겠지?

야한 게 아니라 치료 목적이니까.

나는 승희 어머니 앞에서 웃통을 벗었다.

“아프면 말씀하세요.”

승희 어머니는 내 몸 여기저기를 손으로 짚었다.

“읏.”

“여기가 아프세요?”

“네. 조금.”

승희 아빠에게 차였던 부분이었다.

승희 어머니는 그 주변을 조심조심 문질렀다.

……왠지, 좀.

야릇한 분위기였다.

나도 이제 경험이 쌓여서 그런지, 그런 분위기도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떡해. 내일이면 멍들겠어요.”

“하하. 괜찮습니다. 수영복 신도 다 찍었으니까요. 눈에만 안 띄면 되죠.”

“그래도…….”

승희 어머니는 주저하고 있었다.

슬슬 올 타이밍인가.

어떻게 할까.

승희의 어머니라는 점 때문에 여자로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

“저, 선후 씨.”

승희 어머니도 ‘승희가 크면 이렇게 되겠지’ 싶을 정도로는 미인이니까.

30대 초반 정도로 한창 무르익었을 시기고.

유부녀의 색기 같은 것도 있고.

무엇보다 가슴이…… 말이지.

“아까 들으셨겠지만, 저희가 빚도 있고…… 그래서 치료비나 위자료 같은 건 드리기 힘들어서요.”

물론 그런 건 받을 생각 없었다.

받더라도 그 남자한테 받아야지.

하지만 승희 주머니에서 나온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를 본 후론 그 남자한테 받을 마음도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나는 잠자코 입 다물고 있었다.

그 뒤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 대신, 그…… 선후 씨만 괜찮으시면…… 오늘 밤 제가, 위로해드릴까 하고.”

승희 어머니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하.

정말 이렇게 된다고?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가만히 앉아있었다.

승희 어머니 

정상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매일 최고의 여자들과 잠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또 새로운 여자를 탐낸다는 게.

그것도 승희 어머니는 일반인치고는 미인이겠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수아 씨를 비롯한 내 주위 여자들에 비해선 몇 단계나 떨어지는 게 사실이니까.

나이도 있고.

애 딸린 이혼녀고.

감점 요소는 몇 가지나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끌린다.

어려서부터 내가 엄마에게 품어온 감정 탓일까.

‘자식을 위해 노력하는 엄마’라는 속성이 내 페티쉬가 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절대 뒤끝 없이, 오늘 밤 일은 오늘 밤으로 끝낼게요. 승희 아빠가 때린 위자료라고 생각하시고…….”

내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승희 어머니가 급히 덧붙였다.

“승희 어머니가 그러실 필요 없으세요.”

머릿속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을 꺼낸다.

그러면서 나는 다시 한번 승희 어머니를 위아래로 스캔했다.

연한 화장에 목까지 단추를 잠근 단정한 정장 차림.

하의는 치마도 아니고 바지 정장이었다.

손과 얼굴 외엔 노출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승희의 어머니로서, 여자로서의 자신은 죽이고 살아온 거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몸에서 풍기는 색기는 감춰지지 않았다.

가슴인가?

역시 저 가슴 때문인가?

답답할 정도로 동여맨 옷 위로도 확연히 표가 나는 거유가 있었다.

역시 어머니는 위대했다.

“여, 역시 안 되겠죠? 이런 아줌마는.”

“아줌마라뇨, 승희 어머니. 이렇게 아름다우신데.”

“그런 위로 안 해주셔도 돼요.”

“정말입니다. 평소에 승희를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도 멋지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선후 씨…….”

승희 어머니는 넘어왔다.

꼬시는 내가 미안할 정도로 쉽게.

“그렇다고 승희 어머니가 책임 느끼실 필요 없습니다. 억지로 그런 일 하실 필요도요.”

“어, 억지로 하는 게 아니에요! 아까 수영장에서 선후 씨 봤을 때부터 그래서, 일부러 말도 걸고…….”

어라.

그때 탈의실 앞에서 승희가 어쩌고 했던 것도?

“아, 내가 왜 이런 얘기까지…… 몰라.”

뒤늦게 자신의 말을 후회하며 부끄러워하는 승희 어머니.

나이에 안 어울리는 귀여움까지 있었다.

좀 더 괴롭혀보고 싶지만, 어른을 너무 놀리면 안 되겠지.

“승희 어머니.”

승희 어머니 옆자리로 옮겨 앉으며 손을 잡았다.

“네, 네!”

화들짝 놀라는 승희 어머니.

“그럼 오늘 하룻밤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뒤끝 없이, 어른 대 어른으로.”

은근히 손등을 쓰다듬는다.

승희 어머니는 새빨개진 얼굴로 대답했다.

“……제가, 부탁드릴게요.”

얼굴을 가까이 다가가자 승희 어머니가 눈을 감는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입을 맞춘다.

승희 어머니는 어색하게 키스를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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