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화 (120/256)

* * *

“자, 간다아. 하나, 둘, 셋!”

“꺄아아!”

수정이를 안고서 수영장에 뛰어든다.

풍덩.

물이 사방으로 튀고, 수정이는 신이 나서 까르륵 웃었다.

“여보! 위험하게 뭐 하는 거야!”

뒤늦게 쫓아온 아내 신아영이 잔소리를 한다.

“뭐가 위험해. 승희도 재밌지?” 

“재밌어! 또 해줘!”

“안 돼! 위험해!”

10살배기 딸과 비슷한 수준으로 철없는 아빠 황진우.

그리고 그런 아빠의 장난을 말리는 엄마 신아영.

부모님은 티격태격하지만, 오랜만의 가족 외출에 딸 수정이는 즐겁기만 했다.

“아빠! 수영해줘! 수영!”

아빠의 목에 매달려 수영해달라고 보챈다.

“알았어. 수정아, 꽉 잡아!”

“꺄아!”

마치 돌고래처럼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는 아빠.

수정이는 그런 아빠 목에 매달려 돌고래에 탄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여보. 적당히 좀 해. 그러다 당신 쓰러지겠어.”

“헥헥. 아무렇지도, 않은데? 헥헥.”

무리하는 아빠가 걱정돼서 핀잔을 주는 엄마.

그리고 되레 큰소리치는 아빠.

수정이는 그런 아빠한테 더 놀아달라고 조른다.

“좋아. 아빠랑 한 바퀴만 더 돌까?”

“꺄악!”

“여보!”

수정이는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매일 이렇게 즐겁게 지내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런 즐거운 가족 간의 시간을 방해하는 인물이 있었다.

“어머. 황진우 실장님 아니세요?”

“어? 선아?”

수영장 사이드를 걷던 젊은 여성들.

그중에서도 유독 야한 수영복을 입고 있는 한 여자가 아빠에게 말을 걸어왔다.

“수정아. 인사해야지. 아빠 회사 동료분이셔.”

“……안녕하세요.”

수정이는 아빠가 시키는 대로 인사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수정이의 눈에는 아빠 회사 동료라는 그 여자가, 모처럼 되찾은 가족의 평화를 깨뜨리려는 마녀처럼 보였다.

실내 수영장 신2 

“실장님이라니?”

“우리 회사 거래처인 황산 그룹 실장님이셔.”

“황산 그룹이면 그 황산 그룹?”

“안녕하세요. 황진우입니다.”

“너무 멋있으시다! 저희랑 같이 놀아요!”

“죄송합니다. 오늘은 가족들이랑 같이 와서요.”

“에이, 그러지 마시고 이야기라도 좀 해요. 저희 아버지가 진안그룹 정명원 부사장이에요.”

“아. 정 부사장님요? 잘 계시죠?”

수정이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젊은 언니들에게 아빠를 빼앗길 것만 같았다.

도움을 요청하는 눈으로 엄마를 봤지만, 엄마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아빠, 놀자.”

아빠 팔을 잡아당기며 보채 본다.

“수정아. 엄마랑 잠깐 놀고 있어.”

하지만 아빠에게 밀려나 버렸다.

“여보.”

“일 때문에 그래. 잠깐 이야기만 듣고 올게.”

아빠는 풀장 밖으로 올라간다.

일 때문이라는 말에 엄마도 말리지 못하고 한숨을 쉴 뿐이다.

수정이는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는 아빠가 가버린다.

“수정아. 엄마랑 놀고 있을까? 아빠 금방 올 거야.”

엄마는 그렇게 말하지만, 본인도 불안한 듯 아빠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정이는 생각했다.

아빠를 돌려받고 싶다고.

아빠의 관심을 끌고 싶다고.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알고 있었다.

중요한 건 그 방법을 실행할 용기가 있느냐 하는 것뿐.

수정이는 엄마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용히 수심이 깊은 쪽으로 헤엄쳐 갔다.

그리고, 어푸어푸, 물에 빠진 척을 한다.

“아빠!”

도와줘!

그렇게 외치려 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행동에 근육이 놀란 걸까.

순간. 다리 근육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놀란 수정이는 어서 얕은 곳으로 이동하려 했지만, 근육이 아파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 빠──”

꼬르륵, 꼬르르륵.

버둥거리던 수정이는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얘! 수정아!”

남편에게 신경이 쏠려있던 신아영은 딸이 깊은 곳으로 가는 걸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뒤늦게 수정이가 물에 빠진 걸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다.

“여보! 진우 씨!”

그 소리에 황진우가 돌아보았다.

수정이가 물에 빠진 걸 보고, 황진우의 눈이 커진다.

그리고 그대로 달려가 풀에 뛰어들었다.

풍덩.

그대로 수정이가 빠진 곳까지 잠수해 들어간다.

수정이는 물속에서 기절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황진우의 얼굴이 불안으로 일그러진다.

황진우는 수정이를 안고서 곧장 수면 위로 올라왔다.

“푸핫! 수정아!”

황진우는 숨을 몰아쉬며 수정이를 깨웠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

얼굴은 창백하다. 숨도 쉬지 않는다. 

황진우는 서둘러 수정이를 안고서 풀장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수정이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수정아! 수정아, 괜찮아?!”

“수정아! 정신 차려! 눈 좀 떠봐!”

아빠의 목소리에도, 엄마의 목소리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황진우는 서둘러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코를 막고 입으로 숨을 불어 넣는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가슴을 꾹꾹 눌러준다.

“수정아! 수정아, 일어나!”

황진우는 심각한 얼굴로 계속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신아영은 수정이의 손을 잡고 울면서 수정이를 불렀다.

“……콜록. 콜록! 우엑!”

그런 부모의 간절한 마음이 닿았을까.

수정이가 물을 토하더니 간신히 눈을 떴다.

“수정아! 아빠야! 아빠 보여?!”

황진우는 인공호흡을 멈추고 수정이와 눈을 마주쳤다.

“아빠…….”

수정이는 흐릿한 눈으로 아빠를 보았다.

“수정아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그런 수정이를 끌어안으며 황진우는 자책했다.

“아빠아~.”

수정이도 왈칵 눈물을 쏟으며 아빠에게 안겼다.

……아빠를 되찾았다.

수정이는 아빠에게 안겨 큰 소리로 울면서 작게 입술을 끌어올렸다.

“…….”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아는 말없이 돌아섰다.

* * *

“캇뜨! 완벽해! 최고야!”

감독님의 외침에 겨우 정신이 들었다.

“수정아! 괜찮아?”

“네?”

수정이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되묻는다.

“승희 연기 너무 좋았어. 역시 우리의 호프! 밀어준 보람이 있어!”

“감사합니다.”

지혜 씨의 칭찬에 수정이가 대답했다.

아.

수정이가 아니라 승희였지.

물에 빠진 것도 연기였다.

와.

너무 놀랐다.

수정이가 진짜로 빠진 줄 알았다.

“하아. 놀래라. 진짜 빠진 줄 알았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직도 심장이 두근대고 있었다.

“아빠 무슨 소리야? 나 진짜 빠졌는데? 죽는 줄 알았어.”

승희가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승희야. 농담이지?

……농담 맞지? 응?

“아빠. 그러니까 어디 가지 마. 알았지?”

그러면서 승희는 다시 내 목을 꼬옥 끌어안았다.

“아, 응…… 그래.”

일단 얼결에 나도 안아주긴 했지만…….

오싹했다.

이게 여배우의 아역 시절이란 건가.

무서워라.

승희는 아무래도 신지혜 배우와 비슷한 타입인 것 같다.

어쩌면 더 심할지도.

이렇게 작은 아이가 커서는 저렇게 되는 건가…….

연기의 신은 잔인하구나.

“아빠. 난 옷 갈아입고 올게. 나중에 봐.”

“어, 응. 그래.”

승희를 보내고, 승희와 교대하듯이 두 사람이 다가왔다.

“진선후 배우님! 연기 너무 멋졌어요!”

수영복 차림으로 그렇게 말을 걸어온 두 사람. 

신지혜 배우와 같은 소속사 신인 배우들로, 선아와 함께 3인조로 함께 단역으로 나왔던 배우들이었다.

“아, 예, 고맙습니다. 누나들도요.”

“어머! 누나래!”

“너무 귀엽다!”

수영복의 화려함은 덜했다,

주인공인 선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캐릭터들인데, 선아보다 눈에 띄면 안 되니까 그런 거겠지.

하지만 외모나 성격의 화려함은 신지혜 배우와도 맞먹었다.

아싸인 나와는 섞일 수 없는 ‘진짜 인싸’ 그 자체였다.

“하, 하하…… 감사합니다.”

이렇게 패거리로 몰려다니는 인싸들은 내 트라우마 트리거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미인이라도 거북했다.

겉으론 웃고 있어도, 내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솔직히 당장에라도 도망가고 싶었다.

“어떻게 그렇게 수영을 잘하세요? 평소에도 수영하세요?”

“아니요…… 어렸을 때 누나한테 워낙 스파르타로 배워서…….”

죽고 싶지 않아서 익혔던 수영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누나도 이럴 때를 대비해서 수영을 가르친 거겠지.

“그러셨구나! 저도 수영 배우고 싶은데!”

“언제 따로 수영하는 법 좀 알려주시면 안 돼요?”

“오늘 마치고 시간 있으세요?”

세상에.

신지혜만큼이나 허물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이 둘이나 더 있다니.

대체 뭘 먹고 자라면 이렇게 인싸가 되는 걸까?

“하하…… 그런 건 그, 전문가한테 배우시는 편이…….”

아무도 없나? 날 구해줄 사람은?

두리번거리다 보니 단역 누님들 어깨너머로 신지혜 배우가 있었다.

눈빛으로 헬프를 외쳤지만, 신지혜 배우는 심술궂게 혀를 내밀 뿐이었다.

큭.

설마 저 사람의 함정이었나!

이게 어제의 복수란 말인가!

그렇게 좌절하고 있던 내 앞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수영복 위에 점퍼를 걸친 황수아 배우였다.

“선후 씨. 방금 연기가 그게 뭐예요?”

“에……?” 

내 연기?

내 연기가 어때서? 괜찮지 않았나?

“잠깐 따라와요. 이야기 좀 하게.”

“아, 예.”

수아 씨는 왠지 화가 난 것 같았다.

그 싸늘한 분위기에 인싸 누나들도 아무 말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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