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선후 오늘 푹 쉬었니?”
“어, 응.”
엄마는 저녁 늦게 돌아왔다.
미소는 낮부터 나갔고, 누나는 나와 한 뒤부터 잠들어 있다.
나는 지금 엄마 방 침대에 앉아있었다.
엄마는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 너머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또 소영이랑 미소랑 마구 한 건 아니고?”
엄마는 농담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이게 농담이 아니라는 게 농담 같단 말이지.
아침엔 미소와, 점심엔 누나와.
아침에 미소와 할 때는 가볍게 즐기는 정도였지만, 점심에 누나와 할 때는 상당히 힘을 빼버렸다.
“응…… 조금.”
장렬한 사투였다. 엄마 말대로 마구 해버렸다.
누나는 체력도 회복력도 상상을 초월하니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서 누나 전용 필살기를 개발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하는 건 좋지만 몸 상하지 않게 조심해서 해. 내일부턴 또 촬영 들어가니까.”
엄마는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웃으며 말한다.
하는 건 좋지만.
정말로 좋은 걸까.
아들딸들이 이런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데.
사실은 엄마 혼자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 건 아닐까.
“……엄만, 내가 누나나 미소랑 하는 거, 아무렇지도 않아?”
만약 그런 거라면 나한테만이라도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했다.
아예 안 할 순 없겠지만, 엄마 눈에 안 띄게 조심할 수는 있으니까.
“아무렇지도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소영이나 미소는 엄마 딸이래도 정말 멋지고 예쁘니까, 선후랑 서로 좋아하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
수면용 화장을 마친 엄마가 침대로 와 앉으며 말했다.
나이트가운을 입은 엄마에게서 풍기는 색기에, 낮에 그렇게나 했으면서도 내 몸은 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후가 엄마한테 신경도 안 썼다면 엄마도 슬펐겠지만, 그렇진 않잖아? 저런 예쁘고 젊은 딸들이 있는데도 선후는 엄마를 사랑해주니까. 그것만으로도 엄마는 행복해.”
엄마에게 그동안 그렇게 사랑받아왔으면서, 내 사랑은 엄마 한 사람에게만 오롯이 돌려주지 못하는 나란 인간.
엄마는 그런 나의 허물까지도 포용해준다.
“그래도 한쪽만이 아니라 두 사람 동시에 사귀는 건 반대지만.”
뜨끔.
엄마 말은 백번 지당했다.
역시 누나와 병원에서 그런 관계가 됐을 때, 미소와는 확실히 거리를 뒀어야 했는데.
내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두 사람 다 안아버렸다.
당사자들이 용인해준다는 걸 핑계로.
“엄마, 그건…… 미안.”
솔직히 이건 죽어도 할 말이 없었다.
엄마에 누나, 동생까지.
만약 새아빠가 아직 있었으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보통 그런 관계가 되면 서로 다투게 되잖아? 내 거니 네 거니 하면서. 하지만 소영이 미소가 선후를 두고 싸우진 않으니까 괜찮아. 엄만 우리 아들딸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기뻐. 그리고, 음…….”
엄만 말하기 어렵다는 듯이 뜸을 들였다.
“솔직하게 말할까? 사실 엄만 소영이랑 미소한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미안해? 왜?”
“엄마 마음대로 선후 데려와서 아들로 삼아버렸으니까. 선후가 우리 아들이 아니었으면 떳떳하게 사귈 수 있었을 텐데.”
남남이었으면 떳떳하게 사귈 수 있었을 거라고?
말도 안 돼.
엄마라는 접점이 있으니까 누나 미소랑도 연이 생긴 건데.
엄마가 아니었으면 내 인생에 두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엄마 아니었으면 나는 누나나 미소랑 만날 수도 없었어.”
“글쎄, 어떨까?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서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나는 엄마랑 사랑에 빠질래.”
“얘는. 엄만 나이가 몇인데.”
엄마는 부끄러운 듯이 웃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마주치더라도 첫눈에 사랑에 빠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
나이라…….
이제 눈을 돌려선 안 될지도 모른다.
배우 일도 궤도에 올랐고.
조금 이를지도 모르지만.
앞일은 모르는 거지만.
나는 말하기로 했다.
“엄마. 이번 드라마 끝나고.”
긴장감에 목이 탄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말했다.
“……우리, 동생 만들까?”
“동생? 미소?”
엄마는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이 되묻는다.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나, 엄마랑 아이 만들고 싶어. 더 늦기 전에.”
엄마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진다.
그래. 더 늦기 전에.
이미 조금 늦었는지도 모르지만,
엄마에겐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부담이겠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지기 전에, 만들고 싶었다.
나와 엄마의 아이를.
“선후야, 엄만……. 안 돼. 선후는 앞길이 창창한데. 그런 일. 엄마가 아들 앞길을 막을 순 없어.”
“엄마.”
“지금 이야긴 못 들은 거로 할게. 오늘은 그만 돌아가서 자. 엄마도 잘 테니까.”
엄마는 나에게 등을 보이고 누워버렸다.
엄마에게 거절당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충격은 없었다.
엄마가 반대할 건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반대할 걸 알면서도 말한 건, 설득할 각오도 돼 있기 때문이다.
“엄마. 사랑해. 우리 결혼하자.”
엄마 등에 가까이 붙으며 말했다.
돌아누워 있던 엄마가 내 말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선후, 너……!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나한테 화를 내는 엄마는 오랜만이다.
엄만 내가 쉽게 이런 말을 꺼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런 거 아닌데.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각오하고 하는 말이야. 법적인 절차도 다 알아봤어.”
“뭐……?”
나는 엄마의 손을 다시 잡았다.
“저와 결혼해주세요. 어머니.”
내가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엄마도 알 수 있도록.
내 진심이 전해지도록, 나는 진지하게 엄마의 눈을 보며 말했다.
저녁엔 엄마2
“지금 내 인생이 있는 건 전부 엄마 덕분이야. 엄마가 나를 행복하게 해준 만큼, 앞으론 내가 엄마를 행복하게 해줄게. 그러니까, 저와 결혼해주세요.”
내 진심을 담은 고백.
이 마음은 엄마에게 전해질까?
“선후야…….”
울먹이는 목소리.
엄마는 눈물지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분명 엄마는 감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반응이었다.
“엄만 기뻐. 선후가 엄마를 그렇게까지 생각해줘서.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인가…….
역시, 안 되는 건가.
“엄마는 선후 엄마가 아니면 안 돼. 선후 엄마라는 이름만은…… 그것만은 버릴 수 없어. 그러니까 선후와 결혼도 할 수 없어.”
“…….”
엄마의 아들인 나와는 또 다른, 아들의 엄마라는 이름.
나는 엄마와 아들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다시 결혼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그렇게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는 걸까.
“미안해, 선후야. 이해해달라곤 하지 않을게. 이건 엄마 혼자 간직한 마음이니까. 말해도 선후는 이해하지 못할 거야.”
“……응.”
이해하지 못한다면 설득도 할 수 없다.
내가 설득한다고 엄마의 마음이 바뀌지도 않겠지.
내켜 하지 않는 엄마에게 억지로 결혼해달라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억지로라도 하려 들면 엄마는 싫어도 해주겠지만, 그런 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니까.
내가 바라는 건 웨딩드레스를 입고 행복하게 웃는 엄마를 보는 거니까.
어쩔 수 없다.
엄마와 결혼이라니.
처음부터 바라서는 안 되는 소원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엄마의 동의를 얻어서 결혼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건 시작에 불과하다.
입양아와의 결혼을 이 사회가 용납할 리 없다.
얼마나 많은 비난과 손가락질을 견뎌야 할지 모른다.
엄마와 나의 인지도만큼 그 비난은 거셀 것이다.
만약 엄마도 기쁘게 동의해준다면 모르지만.
엄마만 행복해한다면 모든 고난을 정면돌파 할 자신이 있지만.
엄마가 원하지 않는다면, 내 자기만족을 위해 싫어하는 엄마를 그런 가시밭길로 몰아넣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안 된다면 포기하자.
“대신…… 아이는 좀 더 생각해볼게.”
“정말?!”
그렇게 낙담한 나에게, 엄마는 희망의 끈을 던져주었다.
기쁨과 놀라움에 눈을 크게 뜨고 엄마를 본다.
엄마는 성모와도 같은 자애로운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로 낳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까, 우선 이번 드라마 끝나봐야 알겠지만.”
“고마워! 고마워, 엄마!”
“어머.”
나는 엄마를 와락 끌어안았다.
“엄마, 나 잘할게. 엄마도 아이도 지킬 수 있는 그런 남자가 될게.”
비록 결혼은 거절당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결혼 따위 어차피 형식적인 거니까.
남자로서 여자와 아이를 책임지겠다는, 그런 형식적인 의식이니까.
엄마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지는 데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결혼이라는 형식에 구애됐던 것이다.
하지만 결혼하지 않아도 엄마와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결혼은 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법과 사회의 인정이 없더라도.
나만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책임을 지면 되니까.
“엄마야말로 고마워. 선후가 그렇게까지 엄마를 진지하게 생각해줄 줄은 몰랐어.”
엄마도 나를 꼭 끌어안아 준다.
나는 언제나 엄마에게 진지했는데.
왠지 항상 나만 헛도는 기분이란 말이지.
이제라도 내 마음이 엄마에게 전해진 거 같아서 기쁘다.
“그렇지만 선후야. 만약 아이를 낳게 되더라도 엄마 혼자 낳아서 엄마 혼자 기를 거야.”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전해지지 않은 거 같다.
내가 그럼 그렇지.
“만약 낳게 되더라도 아이 아빠가 누군지는 밝히지 않을 거야. 엄마 혼자 조용히 임신해서 낳을 거니까. 선후도 아들이 아니라 동생으로 대해줘.”
“엄마. 그건 안 돼. 내가 무슨 뻐꾸기도 아니고. 내가 연기 일을 시작한 것도 다 책임지기 위해선데.”
엄마가 내 아이를 낳아준다는 것 이상 멋진 일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낳는다고 끝이 아니다.
함께 아이를 기르는 과정에서 오는 기쁨도 슬픔도 나누는 것.
그게 진짜 가족 아닐까?
내가 바라는 엄마와의 생활은 그런 것이다.
그런데 씨만 뿌리고 책임은 지지 않겠다니.
엄마한테만 모든 부담을 떠넘길 순 없었다.
“선후야. 잘 생각해 봐. 만약 엄마가 선후 아이를 뱄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니?”
“엄마. 난 괜찮아.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상관없어.”
그 발작 사건으로부터 얼마 지나지도 않았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엄마와 함께라면 나는 어떤 고난도 역경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선후는 괜찮을지 몰라도, 누나는? 미소는? 엄마랑 선후만 손가락질받는 게 아니잖니.”
“……그건.”
누나도 미소도…… 남들이 뭐라 하든 신경 안 쓸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당사자도 아닌 내 입으로 감히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선후만 엄마 아들이 아니야. 소영이도 미소도 엄마 딸이잖아? 그러니까 엄마의 이기심으로 딸들에게 피해를 줄 순 없어. 엄만 엄마니까. 엄마 마음 이해하지?”
“엄마, 그럼…… 엄마만 힘들잖아. 그럴 거면 난 아이 같은 거 필요 없어.”
미혼모로 아이를 낳는다.
그런 게 가볍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엄마 나이에.
애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고.
저 도도한 대배우 임신혜가.
이렇게 물어뜯기 좋은 추문도 없겠지.
엄마에게 쏟아질 세상의 시선이 어떨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차라리 내가 비난받으면 모를까.
그 비난이 엄마에게만 쏟아진다면, 나는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이건 엄마 이기심이라고 했지? 엄마도 선후 아이 낳고 싶어. 더 늦기 전에. 선후만 괜찮다면, 엄마는 꼭 낳고 싶어.”
“엄마…….”
“엄마 실력 알잖아? 소영이도 미소도 엄마 작품이니까. 분명 선후랑 낳는 아이는 훨씬 더 귀여울 거야. 엄마도 그 아이 꼭 만나고 싶어.”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응……. 그래도 그런 말은 누나나 미소가 들으면 서운해하겠네.”
나는 훌쩍이며 웃었다.
나와 엄마의 아이.
틀림없이 귀엽겠지. 귀엽지 않을 리가 없다.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귀여울지도 모른다.
“엄마. 난 딸이 좋아.”
“얘는. 벌써 그런 말 하면 못써.”
“그래도 딸이 좋아. 나 닮은 아들 낳으면 어떡해? 엄마도 누나도 미소도 뺏으려 들 텐데.”
내 아들이면 그러고도 남는다.
내기해도 좋아.
이런 후레자식 같으니.
“그럴 리가 있겠니. 그때 되면 엄만 이제 할머닌데.”
“내 유전자를 가진 아들이라면 엄마가 호호할머니가 되어도 사랑할 거야.”
“하여간, 말은.”
“정말이라니까.”
“그럼 엄마 유전자 가진 딸이면 선후 뺏으려 들게?”
“아.”
엄마의 유전자를 가진 여자.
엄마, 누나, 미소.
세 사람 다 나와 진한 관계를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