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4화 (114/256)

점심엔 누나 

“……누나.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왜? 뭐 찔리는 거 있냐?”

누나는 바닥의 매트를 발로 통통 치더니, 글러브 낀 주먹을 서로 부딪치며 느낌을 확인했다.

“아니……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이유? 널 패는 데 이유가 필요해?”

“당연하지!”

나도 사람이야 사람!

이유도 없이 사람을 패면 안 된다고!

이유가 있어도 패면 안 된다고!

어떻게 된 건지, 누나의 병이 도졌다.

누나의 병이란 일명 남동생 구타 증후군.

느닷없이 남동생을 패고 싶어지는 병이다.

나는 지금 그런 병이 도진 누나와 피트니스 룸에서 마주 보고 있다.

내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복장을 하고서.

상의는 브라탑에 하의는 레깅스.

상하의 공통으로 몸에 착 달라붙는 재질이라 내 눈은 기뻐하고 있다.

거기까진 좋았지만…….

손에 낀 오픈 핑거 글러브.

머리에는 헤드기어.

나를 두들겨 팰 생각으로 가득했다.

나도 일단 장비는 착용하고 있지만…….

좋아서 끼고 있는 게 아니다.

나도 이제 배우인데, 맨얼굴로 맞으면 큰일 나니까.

“룰은 알지?”

“아니.”

당연히 알고 있다.

룰 없음, 반칙 없음, 시간제한 없음.

상대방이 항복하거나 쓰러질 때까지.

굳이 모른 척한 건 시간을 끌기 위해서.

혹은 설명하기 귀찮은 누나가 그만둘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런 잔머리가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 몇 대 맞으면 기억날 거야. 파이트!”

누나는 곧바로 달려들었다.

나는 일단 얼굴부터 가렸다.

누나는 내가 가드를 올린 걸 보고 내 바디를 쳤다.

퍽, 퍽.

옆구리는 팔로 막았지만 복부는 맞았다.

아프다.

“걱정 마! 얼굴은 안 때릴 테니, 까!”

그 말과 동시에 얼굴로 훅이 날아왔다.

말과 행동이 정반대였다.

나는 가까스로 고개를 젖혀 그 주먹을 피했다.

“오~ 좀 하는데?”

누나가 한 번 떨어진 걸 보고 나는 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누나, 누나 몸값이 얼만지 알고 이러는 거야?”

“너보단 잘 알아.”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래?”

“흥. 네가 날 다치게 하겠다고? 어디 한 번 해보시든가!”

“윽.”

내 호소는 오히려 누나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곧바로 얼굴로 원투가 날아왔다.

나는 손으로 가드 했다.

“얼굴은 안 때린다며!”

“그 정도 맞는다고 안 죽어.”

“안 죽는 게 문제가 아니잖아!”

“맞기 싫으면 얼른 나를 쓰러뜨리든가.”

누나를? 내가?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악몽 같은 기억.

흥분한 내가 누나를 마구 때려서 피투성이로 기절시켰던 때의 일이다.

그때 누나는 한 달 가까이 병원 신세를 졌다.

경기도 당연히 뛰지 못했다.

다행히도 누나는 퇴원 후 프로 테스트를 통과하긴 했지만, 만약 못 했다면 나는 평생 죄인으로 살아야 할 뻔했다.

그 뒤로도 누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나에게 ‘격투기 놀이’ 상대가 되어줄 것을 요구했다.

병원에 실려 갔던 일에 대한 화풀이인지.

아니면 단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건지.

맞은 누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했지만, 때린 나는 그때의 일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스파링을 하더라도 누나를 때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일방적으로 맞다가 항복할 뿐.

자주 하진 않았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했었다.

그나마 최근엔 잠잠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또 누나의 병이 도진 모양이다.

“후우.”

나는 깊이 한숨을 쉬고서 싸울 자세를 취했다.

살짝살짝 제자리에서 뛰며 스텝을 밟는다.

“오~ 이제 좀 할 마음이 들었어?”

“별로.”

나는 생각했다.

누나가 갑자기 이런 일을 하려 하는 이유를.

순수하게 운동이 하고 싶어서? 아니다. 

그럼 나를 때리고 싶어서? 아니다.

‘합법적으로 나에게 맞고 싶어서’.

그게 내가 낸 답이다.

더러운 일, 하기 싫은 일, 모욕적인 일.

그런 걸 당하길 좋아하는 누나가, 이제는 ‘맞고 싶다’는 단계까지 나아갔더라도 이상하지가 않았다.

실제로 행위 중에 엉덩이 맞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하지만, 내가 누나를 때릴 수 있을까?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는 제법 희석되었다.

나도 이제 어린애가 아니고, 그때처럼 이성을 잃고 덤빌 일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나를 마음 편히 때릴 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때려야 했다.

누나의 기호를 접하고, 나도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누나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누나의 성향은 ‘마조히즘’에 가까웠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처 입는 행위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는 피학 취향을 말한다.

이런 취향의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파트너를 요구하고, 남자친구가 자신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면 다른 파트너를 찾는다고 한다.

자신을 ‘굴복’시켜줄 다른 파트너를.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다른 파트너, 다른 남자에게 맞고 기뻐하는 누나라니.

그런 사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그러니까, 누나가 맞고 싶어 하면, 나는 때려야 했다. 

하지만 지금 누나는 세계적인 프로 골퍼.

누나의 몸에는 내가 감히 상상도 못 할 가치가 매겨져 있다.

절대 다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특히 얼굴.

그리고 관절이나 팔다리, 근육 등, 운동능력에 지장이 오는 부위도.

……그럼 전부 다 아닌가?

“뭐 해? 덤벼.”

누나도 복싱 자세로 나를 도발했다.

때릴 수 있는 곳은 어디지?

배나 옆구리?

그쪽밖에 없겠는데.

“흡.”

우선 레프트로 누나의 얼굴을 치는 시늉을 한다.

누나는 가드한다.

하지만 그건 페인트다. 

라이트를 누나의 복부에.

퍽.

아. 들어갔다.

“아.”

누나의 입에서도 작은 탄성이 나왔다.

정말 맞을 줄은 몰랐던 걸까.

누나는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나는 반격에 대비해 얼른 뒤로 물러났다.

누나가 맞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다.

이성을 잃고 달려들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 게…….”

누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와서.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누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서둘러 누나에게 다가갔다.

“누나! 괜찮아?!”

겨우 그 정도로?

연기 아니야?

순간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저 누나가 장난으로라도 무릎을 꿇을 리가 없었다.

장난으로 쳤다가 급소를 잘못 맞아서 죽었다는 사람도 있지 않던가.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만, 통증이 남아서 경기에 지장이 올지도 몰랐다.

“……너, 좀 친다? 윽.”

누나는 맞은 자리, 옆구리를 누르며 신음했다.

“많이 아파? 119 부를까?”

“오버 좀 하지 마, 임마.”

퍽.

누나한테 머리를 맞았다.

하지만 나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누나라면 이 정도는 괜찮겠지’했던 게 화근이었다.

격투기를 배운 것도, 맞는 데에 이골이 난 것도 아닌데.

단지 성격이 센 누나일 뿐인데.

누나는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말 괜찮은 걸까.

내 앞에서 센 척하느라 그런 건 아닌지 걱정이다.

내 걱정을 비웃듯이, 누나는 다시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계속해.”

“뭘?”

“뭐긴 뭐야. 아직 안 끝났잖아.”

“이걸 계속하자고?”

기가 막혔다.

더 하나 마나다.

내가 일부러 맞아주지 않는 이상, 누나가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지금 한 번의 공방으로 그것만은 확실해졌다.

“말했잖아. 쓰러지거나 항복할 때까지라고.”

“쓰러졌잖아!?”

“흥. 잔말 말고 덤벼!”

누나의 로우킥.

다리를 들어 맞는다.

아프긴 했지만 힘은 많이 빠져있었다.

나에게 맞은 타격이 남아 있다는 얘기였다.

나는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도망쳐도 끝까지 잡으러 갈 거야!”

나도 누나 성격을 안다.

도망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확실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로 누나를 쓰러뜨려? 말도 안 된다.

아니면 일부러 내가 쓰러져? 더 꼬일 미래밖에 보이지 않았다.

“누나! 타임!”

“뭐?”

다행이다. 타임은 먹히는구나.

“‘격투기 놀이’말고 ‘레슬링 놀이’ 하자!”

“레슬링? 뭔 소리야?”

“때리면 아프잖아. 멍들면 안 되니까 레슬링으로 하자고.”

궁여지책이었다.

이 바보 같은 놀이를 끝내기 위해서는 서브미션으로 누나에게 항복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술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억지로 하려 들다가 어딘가 부딪혀서 다칠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이건 부상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방책이었다.

“변태 새끼. 그러면서 또 야한 짓 하려고 그러지?”

“……그야, 내가 누나를 제압하면, 야한 짓 할지도 모르지.”

나는 말을 하면서도 직감했다.

이건 분명히 누나에게 먹힌다고.

“반대로 내가 제압당하면 못하겠지만.” 

나는 글러브를 벗으며 말했다.

누나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거란 확신이 있었다.

“재밌겠네. 어디 한번 해보자고.”

누나도 나를 따라 글러브를 벗는다.

“대신 서로 다치지 않게 조심하기야.”

“좋아. 너도 이제 배우니까, 나도 그 정도는 신경 써줄게.”

누나는 자신이 진다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말한다.

아무리 누나라도 남자한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아무리 운동신경이 천부적으로 타고났다고 해도.

제대로 격투기나 레슬링을 배운 것도 아니고.

나도 약골이 아닌데.

질 게 뻔한데, 이길 것처럼 말한다.

“아.”

“? 왜 그래?”

그런가.

누나가 질 걸 알면서도 이러는 이유를 알았다.

오만하게 강한 태도로 나오고, 그러다 꼴사납게 패해서, 우습게만 보던 상대에게 굴복당하길 바라는 것이다.

누나에 대한 모든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유레카.”

“뭐래.”

나는 누나를 이해했다.

“내가 이기면 발가벗겨서 매달아줄게.”

“……그건 좀 봐줘.”

설마 본인이 그렇게 당하고 싶다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안 된다.

다른 사람 앞에 그런 꼴을 내보일 순 없다.

누난 내 거니까.

장갑을 벗고 헤드기어도 벗는다.

서로 보호장구 없이, 맨손으로 마주한다.

“그럼, 시작!”

누나는 시작과 동시에 자세를 낮추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어깨로 내 배를 밀어 넘어뜨리려 한다.

나는 배와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났지만, 바로 반격에 들어갔다.

팔을 잡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다.

“읏!”

텅.

누나가 매트 위에 쓰러진다.

나도 누나 위에 올라타, 양손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매트 위에 누른다.

“하아, 하아.”

누나는 팔을 빼려고 힘을 준다.

하지만 빠지지 않는다.

나는 잠시 그런 누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해? 이게 레슬링이야?”

가만히 누르고만 있는 나에게, 누나가 화난 듯이 말한다.

예전엔 몰랐지만.

누나는 화를 낼 때도 미인이었다.

“응.”

나는 허리를 구부려 누나의 그 입술에 키스했다.

츄우,

입술이 잠시 붙었다 떨어진다.

그리고 나는 얼른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

“……넌 죽었어.”

매트에서 일어난 누나는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화가 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유였다.

천천히 스텝을 밟으며 누나가 덤벼들길 기다린다.

누나는 어김없이 직선적으로 달려들었다.

마치 성난 황소처럼.

누나가 황소라면 나는 투우사.

누나의 태클을 피하고, 나를 스쳐 지나가는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린다.

철썩!

“꺅!”

몸에 달라붙는 레깅스의 타격감은 맨살보다도 찰졌다.

“야! 진선후! 너 똑바로 안 할래?!”

누나는 폭발 직전이었다.

그리고 내 자지도 폭발 직전이었다.

나는 알고 있다.

누나는 화내는 척을 하지만, 거기에 들어있는 감정은 분노보다 부끄러움이 더 크다는 사실을.

하하. 누나와의 놀이가 이렇게 즐겁다니.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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