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2화 (112/256)

아침엔 동생 

수아 씨와 첫 하룻밤을 보낸 후.

나는 해가 뜨기 전 새벽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먼저 돌아가겠다는 간단한 메모만 남기고.

깼을 때 인사하지 못 하는 건 아쉽지만,

외박하고 들어왔다는 오해(?)를 살 수는 없었으니까.

수아 씨도 이해해주리라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살금살금 집으로 돌아와 아침을 맞이했다.

그리고 오늘은 쉬는 날.

하루 종일 집에서 엄마와 함께 보내야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미안해. 엄마 오늘 화장품 광고 촬영이 있어서…….”

아침 식사 자리에서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이럴 수가!

드라마 촬영이 없으면 그냥 쉬는 날인 나와 달리,

엄마의 일은 드라마 촬영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

업계 탑급 여배우인데.

“미리 말 안 해서 미안해. 대신 저녁엔 일찍 돌아올 테니까…….”

“일인데 미안할 게 뭐 있어. 잘 찍고 와, 엄마.”

내가 6살 애도 아니고 엄마가 하루 종일 돌봐줄 이유가 없다. 

그렇게 알고는 있어도, 기대한 만큼 아쉬움은 남았다.

“흥. 마마보이 같으니.”

윽.

대꾸할 말이 없다.

마마보이 그 자체니까.

“오빠, 그럼 오늘 나랑 영상 찍어주면 안 돼?”

“영상? SNS에 올리는 그거?”

“응. 세아 언니한테 괜찮다고 했다며? 안 될까? ‘서비스 잘해 줄게.’”

뒷부분은 엄마나 누나한테 안 들리도록 속닥속닥 이야기했다.

흠.

나야 물론 괜찮지만.

아직 소속사에는 안 물어봤는데.

괜찮을까?

일단 찍고 나중에 문제 되면 몰랐다고 하면 안 될까?

……아니지. 나도 이제 프로니까.

제대로 절차는 밟아야지.

“일단 소속사에 물어볼게.”

“응.”

계약할 때 저장해둔 담당자 전화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1분도 안 돼서 OK 답장이 돌아왔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인지도를 올려야 하니까요.』

라는 게 우리 소속사의 입장이었다.

역시 무명인 내가 오히려 부탁해야 할 판이었구나.

“아. 된대.”

“응! 그럼 밥 먹고 오빠 방에 갈게!”

또 찍고 싶어하는 걸 보면 나름대로 반응은 좋았던 거겠지?

댓글이 무서워서 확인은 못 하겠지만.

그래도 미소한테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었다.

“야. 진선후.”

“응?”

누나는 왠지 심기가 좋지 않았다.

가만히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불안하다.

뭐가 문제지?

……설마, 미소랑만 놀아서?

“누나. 영상 찍고 나서 누나 방에 놀러 가도 돼?”

“흥. 그러든가.”

누나는 별 관심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꽤 부드러워져 있었다.

휴. 다행이다.

선택지를 틀리지 않아서.

식사 후, 내 방에서.

“짠!”

미소는 무려 교복 차림으로 왔다.

“미소, 너…….”

“이번 컨셉은 교복입니다! 노래 제목은 ‘School Love’!”

미소는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며 말했다.

그 바람에 치맛자락이 올라가 속바지가 보였다.

“스쿨 러브?”

그것도 최신곡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교복 컨셉이라니.

여성 단체에서 아무 말 안 하나?

“학생들의 순수한 사랑을 노래할 뿐인걸! 학교 폭력 예방 캠페인도 찍었는걸!”

그런가?

그럼 괜찮은 건가?

치마도 이렇게 짧은데…….

가슴도 저렇게나 눈에 띄어선…….

자꾸만 그쪽으로 눈이 가버린다.

“진짜 미소 네 교복이야?”

“진짜 같지? 아쉽지만~ 코스프레였습니다!”

내가 아쉬울 건 없다만…….

근데 미소 교복도 이렇게 생기지 않았었나?

명찰에도 진미소라고 적혀있고.

“멤버들 다 같은 교복으로 맞춰야 해서 진짜 교복은 못 입어. 학교가 다 다르니까.”

“그건 그렇겠네.”

그러니까 진짜 교복은 아니란 말이지.

‘교복처럼 생긴 옷’일 뿐이니까.

흠.

……그런데 누구한테 자꾸 변명하는 거야?

“그런데 오빠는 이번 곡 들어봤어?”

“응. 한 번.”

“한 번? 그럼 어떡해? 피아노로 못 치는 거 아니야?”

“세 번 정도 들어보면 칠 수 있어.”

“오오! 역시 오빠 천재! 그럼 연습할 겸 같이 듣자!”

“응.”

스쿨 러브.

활발한 멜로디에 귀여운 춤, 풋풋한 가사가 매력적인 노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학창 시절 첫사랑 이야기다.

나는 피아노 의자에 미소와 나란히 앉아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았다.

『옆자리의 네가 자꾸 신경 쓰여~♬』

짧은 간주 후에 곧바로 노래가 들어간다.

춤은 그렇게 격렬한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있었다.

중간에 에이가 부르는 랩 파트, 진이가 부르는 고음 파트도 있다.

그리고 4인이 번갈아 가며 부르는 노래라 쉬는 틈이 없다.

……이거, 미소 혼자 다 부를 수 있는 거 맞아?

“어때, 오빠? 칠 수 있을 거 같아?”

“어……. 나야 괜찮은데, 미소 너야말로 혼자 다 부를 수 있어?”

“당연하지! 나도 이제 진심 내기로 했어! 숨겨둔 힘을 드러낼 거야! 진이한테 빼앗긴 조회수를 탈환하기 위해서!”

“그래…….”

오빠는 항상 미소를 응원한단다.

화이팅.

“그래도 랩 파트가 문제란 말이지. 랩까지 부르면 숨돌릴 틈이 없어서.”

“그렇겠네.”

랩만 있는 게 아니라 앞뒤로 노래가 바로 이어지니까.

혼자 춤추면서 부르기는 사실상 불가능이었다.

랩이 끝나자마자 노래 들어오는 부분에서 헥헥거릴 게 뻔했다.

“그럼 랩 파트는 내가 할까?”

“어? 오빠가?”

“응. 그래도 내가 노래까지 하는 건 좀 그렇지? 팬들이 싫어하려나.”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오빠 랩 할 수 있어?”

할 수 있냐고?

발음이랑 리듬만 맞추면 되는 거 아냐?

가사는 이미 나와 있고, 에이가 부른 시범 영상도 있고.

학생들 겨냥한 노래라서 어렵지도 않고.

그냥 따라 하기만 하면 될 거 같은데.

“음. 할 수 있지 않을까? 프로 수준으론 못 하겠지만.”

“그럼 일단 한 번 보여줘 봐!”

“그럴까?”

“흠흠.”

나는 피아노 반주를 치면서 에이의 랩 파트를 따라 불렀다.

『널 처음 봤을 때부터 you hunt 내 심장 잡혀 버렸어 my heart

하지만 왜 차갑게만 대하는지 도대체 왜 솔직하지 못하는지

너와 좀 더 친해지고 싶은데 너와 좀 더 같이 있고 싶은데

네가 내 이름 불러준다면──』

“와! 오빠! 목소리 뭐야?!”

“목소리? 이상했어?”

“아니! 전혀! 완전 멋있었어! 에이만큼 멋있었어!”

에이만큼?

호들갑도 심하네.

“아. 지금 거 찍어놓을걸.”

“뭐하러. 어차피 제대로 하면서 찍을 건데.”

“그래도 아깝잖아. 아무도 본 사람 없으면.”

“왜 아무도 없어? 미소가 보고 있는데. 난 미소만 봐줘도 충분해.”

“오빠…….”

눈을 감고 키스 대기 상태가 된 미소.

어라?

왜 또 이런 분위기가.

미소와 하는 키스는 언제든지 환영이지만.

“츄우. 응…….”

살짝 키스하고 떨어진다.

“미소야. 일단 영상부터 찍을까?”

“조금만 더…….”

미소의 어리광에 못 이겨 5분 정도 계속 키스했다.

잘못해서 불붙으면 안 되니까 몸은 만지지 않았다.

나름 노력했다. 최선을 다했다.

입술을 떼자 미소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키스할 때도 그렇고, 미소의 반응이 왠지 더 순진해진 것 같았다.

새삼스럽지만.

그런 미소도 귀엽다.

교복 비슷한 걸 입고 있어서 그런가?

마음마저 학생 시절로 돌아간 건지도.

“어흠, 그럼 오빠, 우리 모션도 한 번 맞춰볼까?”

원래대로 돌아온 미소와 영상에 관해 이야길 나눈다.

“여기, ‘너와 눈이 마주친 순간’, 여기서 이렇게 오빠랑 눈 마주치는 거야.”

“응응. 알았어.”

가사에 맞춰 간단한 합을 정한다.

피아노를 치면서도 할 수 있는 간단한 동작이었다.

“근데 오빠, 의외로 의욕 있네. 이런 거 싫어할 줄 알았는데.”

“미소한테 도움이 될 수 있다는데 당연히 의욕 나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말해줘.”

물론 미소한테도 도움이 된다는 것도 있지만.

드라마 홍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사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굳이 미소한테 그런 얘기는 할 필요 없겠지.

“오빠…….”

미소는 또 눈을 감았다.

어라.

왜 또 이런 분위기가.

미소와 하는 키스는 언제든지 환영이지만.

오늘 안에 찍을 수는 있는 걸까?

……다시 5분 뒤.

“자, 이제 진짜로 찍는다! 하나 둘, 스타트.”

카메라가 돌아가고.

나는 피아노를 연주한다.

『옆자리의 네가 자꾸 신경 쓰여~♬』

경쾌하고 귀여운 멜로디.

통통 튀는 미소한테는 이게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일지도 모른다.

『너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난 네게 반해버렸어~♬』

『어떻게 할까~ 좋아한다 말할까~』

세상에.

어느 학교에나 한 명쯤 있는 제일 예쁜 아이가, 사실은 나를 좋아했다고 말하는 듯한.

미소를 보고 있으면 그런 이미지가 딱 떠오르는 것이었다.

미소는 이런 걸 의도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낼 수 있었다.

역시 천재 아이돌.

완벽하게 다듬어져 만들어진 세아도 대단하지만, 우리 미소한테는 안 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널 처음 봤을 때부터 you hunt

내 심장 잡혀 버렸어 my heart』

미소의 노래에 이어 내 랩 파트가 들어온다.

생각해보니 이 랩 파트는 짝사랑하는 남자아이의 시점이구나.

스프링의 랩 담당인 에이는 원래 왕자님 같은 이미지고.

자연히 남자 파트를 맡은 건지도 모른다.

에이는 남자 팬보다 여자 팬이 더 많다고 하니까.

『하지만 왜 차갑게만 대하는지

도대체 왜 솔직하지 못하는지』

사실은 서로 좋아하면서 둘 다 솔직해지지 못한다.

학창시절, 누구나 경험해봤을 풋풋한 사랑 이야기.

나와 미소는 그때로 돌아가 함께 노래했다.

옆에서 춤추는 미소와 피아노 치면서 랩 하는 나.

어렸을 적 같이 피아노 치고 노래하던 때가 떠올랐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

그리고 나는, 지금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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