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6화 (86/256)

잠만 자고 간다.

잠만 잔다는 선은 어디까지일까?

나는 성적인 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의미였지만,

알몸으로 같이 잔다는 건 성적인 행위에 포함되지 않는 것일까?

애초에 나는 잠만 잘 수 있을 것인가?

“수아 씨, 불은.”

“저는 원래 불 켜고 자요. 불 끄면 무서워서 선후 씨한테 안겨버릴지도 몰라요.”

그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협박이었다.

“이불은.”

“이불도 안 덮고 자요. 불편해서.”

그럼 옆에 있는 이불은 뭡니까?

나는 굳이 묻지 않았다.

수아 씨의 태도는 명백했다.

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것.

차려놓은 밥상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 여자가 남자에게 몸을 허락했을 때 쓰는 은어다.

“선후 씨도 이쪽으로 와요.”

수아 씨는 알몸으로 침대 위에 누워 나를 유혹한다.

그건 말 그대로 차려놓은 밥상이었다.

수아 씨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

몸을 써서라도 나를 잡겠다는 걸까.

하지만 내가 여기서 수아 씨를 안는다고 해서,

내가 수아 씨를 선택하는 일은 없다.

그걸 모르는 수아 씨에겐 이게 최후의 수단이겠지만,

상대는 엄마다.

그 뒤에는 누나, 미소까지.

처음부터 수아 씨에게는 이길 수 없는 도박이었다.

머릿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싸운다.

끝까지 책임질 자신 없으면 처음부터 손대지 말라는 천사.

먼저 유혹한 건 그쪽이니 먹고 버리라는 악마.

“어서요. 옆에 누워요.”

악마가 유혹한다.

나는 악마에 홀려 슬금슬금 침대에 몸을 뉘였다.

“선후 씨는 답답하지 않아요?”

“……아니요, 저는.”

뻣뻣하게 누워있는 나에게 수아 씨가 손을 뻗는다.

“넥타이라도 풀고 자요.”

자연스럽게 내 팔에 수아 씨의 가슴이, 내 가슴엔 수아 씨의 손이 닿는다.

내 넥타이는 풀어져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벨트도.”

“수아 씨.”

이번엔 내 허리춤에 손을 뻗는 수아 씨.

그 손목을 붙잡는다.

“벨트 풀어주려는 것뿐이에요. 이상한 여자 취급하지 말아 줄래요?”

조금 화난 듯이 말한다.

“……제가 풀겠습니다.”

손을 떼어내고 직접 벨트를 푼다.

수아 씨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 눈은 줄곧 내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저만 벗고 있는 건 불공평하지 않나요?”

“……저는 원래 다 입고 잡니다. 벗으면 불편해서.”

“거짓말쟁이.”

수아 씨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내 손을 잡아 당겼다.

“손 잡고 자요.”

작고 따뜻한 손이 내 손을 감싼다.

그 손에서 거짓없는 애정을 느낀다.

“옆에 선후 씨가 있으니까 신기해요.”

“…….”

“매일 이렇게 같이 지내면 좋을 텐데. 같이 잠들고, 같이 눈뜨고. 그리고 아침에 눈이 마주치면 인사하는 거예요. ‘잘 잤어요?’하고.”

그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일까.

매일 수아 씨 옆에서 잠들고, 눈을 뜨면 옆에 수아 씨가 있고.

수아 씨와 결혼하는 남자는 행복하겠지.

하지만 지금 내 손에 쥔 행복을 버리고 그 행복을 잡으려 해선 안 된다.

마지막엔 둘 다 놓쳐버리고 말 테니까.

과한 욕심은 사람을 망치는 법.

이미 내 손에 잡은 행복만으로도 나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크기였다.

“그런데 선후 씨, 주머니에 이건 뭐에요?”

생각에 빠져 있느라 대응이 늦고 말았다.

수아 씨가 내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거기에 있는 ‘무언가’를 잡았다.

오. 하느님.

“아.”

그게 뭔지 수아 씨도 눈치챘겠지.

화들짝 놀라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미, 미안해요, 그런 건 줄 몰랐어요, 정말이에요.”

본인은 이미 발가벗고 있으면서, 이 정도로 얼굴을 붉히다니.

잠시 잠잠하던 수아 씨는 마음을 정했는지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 했다.

“나, 남자분은 이렇게 되면 잠들기 힘들죠?”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수아 씨는 또 한 걸음 내딛었다.

그 손이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붙잡는다.

“……손만 잡고 잔다면서요.”

“손으로 어딜 잡는다곤 말 안 했잖아요.”

……그런 건가?

그럼 이건 반칙이 아닌가? 

내 안의 악마는 어떻게든 수아 씨의 말을 합리화하려고 든다.

내 안의 천사는…… 살충제를 맞은 모기처럼 비실대고 있었다.

“수아 씨. 이럴 필요 없어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제발요. 이 이상 떼쓰진 않을게요.”

눈물을 글썽이며 애원하는 수아 씨를 매정하게 내칠 정신력이 없었다.

마지막 힘을 짜낸 천사의 한 마디는 단번에 격추당했다.

수아 씨의 손목을 붙잡은 손에 힘이 빠지고, 그 손은 다시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아아. 나약한 나의 정신력이여.

“우와.”

주머니 속 얇은 천 너머에서 수아 씨의 손이 내 자지를 잡는다.

조물조물.

마치 해삼을 처음 보는 아이가 신기해서 막 만져보는, 그런 느낌이었다.

“느낌이 이상해요. 징그러운데 귀여워요.”

징그럽다는 건 이해하지만 귀엽다니.

직접 보질 않아서 그렇지.

실물은 전혀 귀엽지 않습니다.

“선후 씨, 갑갑하죠? 바지 벗길게요.”

나는 자포자기 상태였다.

더는 저항할 기력이 남아있질 않았다.

주머니 안에서 수아 씨의 손을 만났을 때, 이미 내 안의 천사는 죽었다.

알몸의 수아 씨를 상대로 이 정도 버텼으면 선전한 거지.

“와.”

팬티가 내려가고 자지가 튀어나왔다.

막상 그것과 대면한 수아 씨는 당황해했다.

아마 상상했던 것만큼 귀엽진 않았으리라. 

“마, 만져봐도 돼요?”

여기까지 왔는데 안 된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 내버려두었다.

흉악한 자지를 더듬더듬 만져보는 수아 씨.

그 순진한 행동에 내 자지는 더욱 힘을 모았다. 

“아, 아프진 않아요?”

“네. 전혀요.”

쾌감이 되지 못한 자극은 솔직히 답답할 뿐.

하지만 수아 씨의 이런 순진한 반응을 보는 것도 오늘뿐이겠지.

나는 굳이 재촉하지 않았다.

마음껏 만지게 해주자.

“아. 지금 조금 움직였어요.”

신기한 파충류를 구경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수아 씨.

섬세한 손이 기분 좋은 곳에 닿을 때마다 나는 자지를 움찔거렸다.

“후후. 귀여워라.”

……정말 귀엽다고?

이게?

농담이지?

“아. 끝에서 물 같은 것도 나왔어요. 오줌인가요?”

“아니요. 남자가 흥분하면 나오는 쿠퍼액입니다. 여자와 같아요.”

“아.”

여자와 같다는 말에 수아 씨도 이해한 듯하다.

그건 수아 씨도 젖어본 적이 있다는 걸까.

수아 씨는 어떤 상황에서 젖었을까. 궁금하다.

“저…… 어떻게 만지는 게 좋을까요?”

조심조심 질문하는 수아 씨.

이걸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

솔직히 말해 감질맛나서 견딜 수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로 수아 씨를 덮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기 전에 빨리 내 안의 악마를 진정시켜야 했다.

그냥 손으로 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왠지 그렇게 하는 게 굉장히 합리적인 해답인 것 같았다.

“이렇게…… 손으로 쥐고 위아래로 문지르면 됩니다.”

“이렇게요?” 

침대에 눕고나서 계속 수동적이었던 내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반응을 돌려줬다.

수아 씨는 그것만으로도 기쁜지 한층 인상이 밝아진다.

이렇게 좋은 여자의 마음을 어지럽히다니.

죄책감을 느낀다.

수아 씨는 열심이었다.

내 조언에 따라 열심히 자지를 애무했다.

수아 씨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몸도 마음도 다 바치는 여자였다.

내가 조금이라도 기분 좋은 듯 반응하면 수아 씨는 나보다 몇 배로 기뻐했다.

아아. 어쩌면 좋을까.

나는 몸도 마음도, 아무것도 돌려줄 게 없는데.

“선후 씨. 알려주세요. 제가 어떻게 해야 선후 씨가 더 기분 좋아지는지.”

내가 말하면 말하는대로 수아 씨는 실행하겠지.

입으로 빨라면 빨고, 다리를 벌리라면 벌리고.

한치의 의심도 없이, 나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하지만 나는…….

“아!”

수아 씨의 다리 사이에 손을 댄다.

손대 손.

수아 씨가 나를 손으로 애무해주듯이, 나도 손으로 수아 씨를 애무한다.

수아 씨는 당황한 듯 다리를 오므렸지만 내 손을 거부하진 않았다.

“……수아 씨. 계속 문질러주세요. 멈추면 싫어요.”

“아, 아…….”

내 말에 수아 씨는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건 선천적인 걸까. 수아 씨의 음모는 가늘고 적었다.

나는 수아 씨의 클리토리스 부근을 상냥하게 문질렀다.

“선후 씨…….”

단지 손으로 만지는 것만으로도, 수아 씨는 순식간에 느끼기 시작했다.

눈가는 촉촉하고 얼굴은 붉어진다.

이미 숨도 헐떡거리고 있다.

방어력이 얼마나 약한 건지.

아니면 상대가 나라서 그런 건지.

수아 씨가 나를 먼저 애무하기 시작했지만, 결승점에 다다르는 건 수아 씨가 훨씬 빨랐다.

“핫! 앗! 선후 씨!”

금세 오르가즘에 달하며 몸을 비트는 수아 씨.

하지만 그러는 중에도 내 자지를 애무하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수아 씨의 몸이 점점 뜨거워진다.

나는 수아 씨가 한 번 절정을 맞은 뒤에도 바로 다음 절정을 위한 애무를 계속했다.

“선후 씨, 무서워요, 무서워요!”

수아 씨는 나에게 매달렸다.

수아 씨의 떨림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미지의 감각에 수아 씨는 쾌감보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걱정말아요, 수아 씨. 저 여기 있어요.”

빨갛게 열이 오른 귓가에 속삭인다.

한 손으로는 수아 씨의 성기를 애무하며, 한 손으로는 머리를 쓰다듬는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수아 씨는 연속으로 오르가즘을 맞았다.

“선후 씨, 선후 씨……!”

그러면서도 내 자지를 애무하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이걸 놓으면 선후 씨도 놓쳐버린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선후 씨, 키스해줘요! 키스……!”

수아 씨가 애원한다.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해버리면 나도 수아 씨에게 빠져버린다.

나 이상으로 수아 씨는 나에게 빠져버린다.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돼버린다.

그걸 알면서도.

“음, 츄……우움.”

나는 수아 씨에게 키스했다.

이전에 수아 씨와 했던, 애들 장난 같은 뽀뽀가 아니었다.

몸도 마음도 녹여버릴 진심의 키스였다.

“응응! 으흐읍!”

“수아 씨……!”

수아 씨는 연속으로 절정에 빠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도 함께 사정했다.

수아 씨의 손에, 몸에, 침대에.

내 정액을 뿌린다.

수아 씨는 끝까지 내 자지를 문지르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잠시 지나자 수아 씨의 몸에서 떨림이 잦아든다.

수아 씨는 질끈 감았던 눈을 희미하게 떴다.

“선후 씨…… 저 잘했죠?”

눈물 머금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예. 고마워요, 수아 씨. 기분 좋았어요.”

나는 칭찬하듯 수아 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수아 씨는 그제야 안심한 듯 눈을 감았다.

“다행…… 이에요…….”

나는 수아 씨를, 수아 씨는 나를.

서로의 성기를 마주 잡은 채.

우리는 함께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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