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 씨와 데이트
“선후 씨. 피곤해 보여요.”
“아.”
아침, 황수아 배우 대기실.
난 나름 멀쩡하다고 생각했는데, 옆에서 보기엔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죄송해요. 어제 잠을 좀 설쳐서.”
어젠 늦게 돌아간 데다 흥분해서 새벽까지 너무 힘을 써버렸다.
그리곤 아침 일찍 나와야 해서 3시간도 채 자지 못했다.
나는 그래도 괜찮지만 엄마는 많이 피곤해 보였는데.
오늘 촬영 괜찮을지 걱정이다.
“어제 제가 괜히 이상한 짓 해서…… 죄송해요.”
응? 어제? 이상한 짓?
아. 그러고 보니 어제 헤어질 때 수아 씨가 나한테 키스했던가.
그 뒤에 엄마와 보낸 시간이 너무 농밀해서 완전히 잊고 있었다.
수아 씨는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듯 빠르게 말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 건 아니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진 말아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키스는 그냥 인사라던데. 사실 선후 씨랑 저 사이에도 그런 건 인사 수준 아니겠어요? 매니저 일 해주신 거 감사의 표시기도 하고. 어젠 힘든 일도 있었고.”
내가 잠 못 잔 게 수아 씨 키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사춘기 애도 아니고 그런 풋풋한 키스에 잠을 설칠 리가…….
……지금 보니 수아 씨도 잠을 설친 것처럼 보였다.
“그럼 그 인사 한 번 더 해봐도 될까요?”
그런 수아 씨가 귀여워서 놀리듯이 한번 말해보았다.
“……좋아요. 인사니까.”
수아 씨가 두 손을 꼭 모으고 눈을 감았다.
어? 정말 해도 된다고?
으음. 뭐지. 양심에 찔리는데.
하지만 이제 와서 빼는 건 용기를 낸 여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쪽.
어제 수아 씨가 했던 것처럼 귀여운 키스.
엄마와 했던 혀가 녹을 듯한 키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수아 씨의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부끄러워하면 나까지 민망해지는데.
약간의 침묵 뒤에 수아 씨가 입을 열었다.
“선후 씨는 혹시, 사귀는 사람 있어요?”
마치 중학생처럼 풋풋한 대화.
왠지 어렸을 적으로 돌아간 것 같다.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사귀는 사람은 없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지금은 사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고요.”
“네…….”
왜 그렇게 기대를 담은 표정을 짓는 건가요?
당신 얘기가 아닌데.
으음. 수아 씨랑은 계속 지금처럼 좋은 친구 관계로 지내고 싶은데…….
혹시 난 순진한 여자애 데리고 장난치는 건가?
하지만 수아 씨는 나보다 연상이고. 그것도 6살이나.
연예계 경력만 20년 이상인데.
얼굴도 능력도 돈도 있는데.
남자 경험이 없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
하지만 이 순진한 반응은 뭐지?
으음. 걱정이다.
나쁜 남자한테 속아서 홀랑 넘어가는 건 아닐지.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내가.
아니아니. 무슨 소리야?
책임지지 못할 거면 손도 대지 말아야지.
…….
하지만 궁금하잖아?
“수아 씨는 혹시 사귀는 사람 있으세요?”
“있어 보여요?”
“없다면 좀 이상하네요. 수아 씨 같은 사람이 왜 없는지. 남자들이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을 텐데.”
수아 씨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전 워낙 어릴 때 데뷔하다 보니 계속 부모님이 관리해주셨거든요. 엄마가 기획사 사장에 아빠가 매니저로. 성인 돼서도 계속 부모님 관리받다 보니 남자 사귈 일이 없었어요.”
“아.”
“그리고 어릴 때부터 키스신 금지, 스킨십 금지여서 키스도 어제 선후 씨가 처음이었어요.”
“……그, 랬군요.”
조금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이는 수아 씨.
윽. 죄책감이 장난 아닌데.
그렇게 아껴놓은 첫 키스를 내가 빼앗다니.
아니지. 내가 빼앗은 게 아니잖아?
수아 씨가 멋대로 한 거지.
방금 내가 한 건 첫 키스가 아니니 무효고…….
무효 맞지?
“아역 땐 그렇다 쳐도 성인 됐을 땐 풀었어야 했는데. 일부러 풀 필요는 없나? 싶어서 놔뒀더니 계속 그대로여서…….”
“아…… 네.”
“너무 의미 두진 마세요. 저도 그렇게 신경 안 쓰니까.”
손으로 얼굴을 파닥파닥 부치는 수아 씨.
얼굴은 아까부터 빨간 채였다.
어떻게 봐도 엄청 신경 쓰는 거 같은데.
“그럼 이만 가요, 선후 씨. 촬영장으로.”
아직 시간은 남았는데.
수아 씨는 민망함을 감추려는 듯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말해야 하나?
난 그럴 생각 아니라고.
아무리 봐도 수아 씨는 그럴 생각 같은데.
나중에 ‘그럴 거면 왜 잘해줬어요’ 같은 소리 들으면 어쩌지?
……뭐, 정말 그렇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고.
지금은 일단 그보다 신경 써야 할 일이 있으니까 미뤄둘까.
나도 수아 씨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촬영장에 가면 어제 싸웠던 주정환 배우에게 사과할 생각이다.
그 남자 성격상 1:1로 대기실에서 사과하는 것보다 사람들 앞에서 사과받는 걸 좋아하겠지.
보는 사람이 있으면 이상한 소리도 덜 할 테고.
내가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앞으로도 계속 마주칠 일 생각하면 내가 고개 숙이고 푸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말로 안 풀리면 몇 대 맞더라도 어쩔 수 없겠지.
내가 먼저 멱살도 잡았고.
엄마나 수아 씨한테 피해 입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가 굽혀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촬영장에 왔지만.
“에, 연락 이미 받으신 분도 있겠지만, 지금 주정환 배우가 연락이 안 되는 관계로 오늘 촬영은 못 할 거 같습니다. 일단 주정환 배우 안 나오는 분량만 먼저 찍을 건데, 따로 찍을 분량 없는 분은 돌아가셔도 됩니다.”
세상에.
펑크야?
“도대체 그 인간은 뭐 하자는 거야? 드라마가 장난이야 뭐야?”
엄마가 다른 사람들 들으라는 듯이 짜증을 낸다.
진심으로 화도 났을 테고, 내 편을 들어주려고 일부러 그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펑크라니.
혹시 이것도 나 때문인가?
“전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선후 씨 오기 전에도 그랬으니까. 애초에 이건 정환 씨가 정신이 나가서 선후 씨한테도 시비 건 거라고 봐야죠.”
그런 걸까. 그래도 좀 찝찝한데.
“수아 선배.”
“아. 지혜 씨.”
아. 신지혜 배우다.
어젠 못 봤는데. 촬영이 없었나?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정환 선배는 왜 안 왔대요?”
“으응. 그냥 좀.”
“안 그래도 밀려있으면서. PD 머리 아프겠는데.”
최근 부진한 황수아 배우와는 반대로, 신지혜 배우는 요즘 떠오르는 젊은 여배우다.
서글서글한 이미지에 시원한 성격 덕분인지 ‘외모는 평범하지만(실제론 전혀 평범하지 않음) 인기 있는 여주인공’역에 캐스팅 1순위다.
황수아 배우가 고전적 미모의 여배우라면 신지혜 배우는 확실히 신세대 여배우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이쪽 분은?”
“안녕하십니까. 진선후라고 합니다. 황수아 배우 매니접니다.”
신지혜 배우가 나를 가리키며 묻기에 자기소개했다.
“매니저?”
“……임신혜 선생님 아들이셔. 내가 개인적으로 좀 도와달라고 했어.”
“아! 그 사진에 있던! 반가워요. 전 신지혜예요.”
신지혜 배우가 손을 내밀기에 악수한다.
그러자 신지혜 배우는 내 손을 잡고 신나게 흔들었다.
그런데 사진?
엄마가 사진이라도 보여준 건가?
“확실히 실물이 다르네. 몇 살이에요?”
“21살입니다.”
“21살? 완전 애기네 애기야! 내가 누나니까 누나라고 불러!”
“예?”
신지혜 배우는 아직도 내 손을 잡고 흔들고 있었다.
나는 그 손을 뿌리치지도 못하고 그저 흔드는 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누나! 지혜 누나라고 해봐.”
“지, 지혜 누나?”
“귀여워!”
……다 큰 남자한테 귀엽다니.
신지혜 배우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밝은 사람이네.
학교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의 활달함이다.
솔직히 도망가고 싶다.
왠지 PTSD가…….
“너, 그러지 말고 누나 매니저 안 할래?”
“예?”
신지혜 배우가 내 어깨에 팔을 턱 걸치고 말한다.
만나서 3분도 안 돼서 스카웃 제의라니.
이걸 기뻐해야 하나?
“지혜 씨. 지금 뭐 하는 거야? 선후 씬 내 매니전데.”
“뭐 어때요~ 선배랑 나 사인데~.”
“선후 씨. 괜히 말 듣지 말아요. 지혜 씨 매니저는 일주일도 못 버티고 도망간다고 악명 높으니까.”
대체 뭘 시키길래.
물론 난 하라고 해도 안 한다.
이 사람은 블랙홀 같은 사람이다.
같이 있으면 내 에너지가 빨려 들어가서 말라죽는다.
“가요, 선후 씨. 개인 촬영은 없으니까 우린 그냥 가도 될 거에요.”
“아. 네.”
“나중에 따로 연락해~.”
“수, 수고하세요.”
손을 흔들어 배웅하는 신지혜 배우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앞장서서 걷는 황수아 배우 뒤를 따라 걷는다.
오늘은 허탕이네.
촬영도 허탕, 주정환 배우한테 사과하는 것도 허탕.
모처럼 마음먹었는데.
내일 또 해야 하나?
그냥 이대로 흐지부지 넘어갈 수는 없을까?
아~ 귀찮아.
신경 쓰기 싫으니까 얼른 끝냈으면 좋겠는데.
“……선후 씨.”
“네?”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 타자 수아 씨가 심각한 목소리로 부른다.
“…….”
막상 불러놓곤 말은 안 한다.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정면 유리만 보고 있고.
화난 거 같다.
흠.
“어디 가고 싶은 데라도 있어요? 들렀다 갈까요?”
수아 씨는 한참 생각한 끝에 말했다.
“……바다. 바다 보러 가요.”
“바다? 지금요?”
“네.”
아직 이른 시각이다.
시즌도 아니고 시간도 애매하지만, 수아 씨 같은 유명인이 보러 가기에는 이런 한적한 때가 적기일지도 모른다.
“그래요. 가요, 바다.”
“정말요?”
내 대답이 의외였는지 수아 씨가 눈을 크게 떴다.
“안 될 거 뭐 있어요? 가고 싶으면 가는 거지.”
오이도까진 밤중에 혼자 드라이브하면서 몇 번 가본 적 있다.
1시간이면 갈 수 있었다.
별일 없겠지?
만약 사람들이 황수아 배우를 알아보고 좀비떼처럼 몰려오더라도 수아 씨는 가벼우니까 번쩍 들어서 도망치면 될 테고.
뭐 그럴 일도 없겠지만.
차를 출발시키고 나서도 수아 씨는 한참 말이 없었다.
“선후 씨는…….”
“네?”
“선후 씨는, 지혜 씨 매니저 하고 싶어요?”
“예? 왜 그렇게 돼요?”
계속 조용하던 수아 씨가 갑자기 그런 이야길 꺼냈다.
“지혜 씨 같은 사람이 더 좋지 않아요? 저랑 있으면 별로 재미도 없고…….”
나는 웃었다.
왜 재미없다고 생각하지? 이렇게 재밌는데.
수아 씨든 신지혜 배우든 내가 선택할 주제도 아니지만, 만약 그럴 상황이 오더라도 내가 신지혜 씨를 선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밝기가 아니다.
“지혜 씨는 너무 밝아서 저 같은 사람이랑은 안 어울려요. 보시다시피 전 음침해서 조용한 걸 더 좋아하니까.”
내 대답에 수아 씨는 오늘 하루 중 가장 밝게 웃었다.
“와! 바다다!”
해변에 도착하자 아이처럼 기뻐하며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수아 씨.
그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림으로 남겨두고 싶을 정도로 멋졌다.
아. 그림은 안 돼도 사진이 있잖아.
나는 얼른 스마트 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는 수아 씨 사진을.
본인이 싫어하면 지우려고 생각했지만, 수아 씨는 내가 찍는 걸 알자 부끄러워하면서도 카메라를 보며 포즈를 취했다.
역시 여배우.
어떻게 찍어도 예술이다.
해변에는 드문드문 가족이나 커플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쪽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 눈에는 우리도 평범한 커플로 보이겠지.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는 수아 씨의 뒤를 따라 걸었다.
오길 잘했다.
수아 씨도 좋아하지만, 나도 수아 씨와 바다를 보며 치유되는 게 있었다.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있자면 내 가슴도 넓어지는 것 같았다.
내 고민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저 바다를 보며 수아 씨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바다를 한참 멍하니 보고 있던 수아 씨가, 바다를 향해 힘껏 소리쳤다.
“엄마─! 아빠─! 미안해──!”
그 목소리는 바다 저편까지 전해졌을까?
정말이지 모든 게 영화 같은 사람이다.
나는 수아 씨 뺨에 흐르는 눈물을 말없이 닦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