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형태는 제각각
‘우리 멤버들 중에서 좋아하는 사람 있어?’
이전에 데이트 도중 미소가 나에게 물었던 말이다.
나는 그때 ‘너, 미소’라고 대답했지만, 사실은 미소보다 먼저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세아.
미소가 소속한 아이돌 그룹 스프링의 리더다.
물론 그건 미소보다 세아를 더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미소를 좋아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 떠올릴 필요도 없었던 거다.
세아, 본명 한세아는 나보다 1살 많은 22살이다.
세아가 가진 별명은 많다.
태어날 때부터 아이돌.
세:세계제일의 아:아이돌.
미스 퍼펙트.
그런 별명들만 보더라도 세아가 어떤 인간인지 연상될 것이다.
노래, 춤, 외모, 토크, 자기관리, 멘탈. 기타 등등.
세아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아이돌이다.
미소가 모든 면에 고르게 능력치가 분배된 정육각형 아이돌이라면, 세아는 꽉 찬 정육각형 아이돌이다.
쉽게 말해 미소의 상위호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건 미소의 팬뿐만 아니라 가족인 나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미소는 좀 모자란 부분이 있어서 더 귀여우니까.
다른 아이돌에는 관심이 없는 나지만, 미소가 속한 그룹인 만큼 스프링의 공연은 가능한 챙겨보는 편이다.
그때마다 세아는 무대의 중심에서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완벽한 아이돌인 세아의 팬이었다.
모든 면에서 부족한 내가 보기에, 모든 면에서 완벽한 세아는 너무나 눈부신 존재였다.
말 그대로 나의 아이돌(우상).
나는 은밀히 세아를 응원하고 있었다.
미소가 있으니 그런 티는 못 냈지만.
속으로 응원하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남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세아의 팬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일’로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나의 아이돌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한세아입니다. 어제 말씀드린 일로 만나 뵙고 싶습니다.』
아침 일찍, 그 세아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며칠 전의 나였다면 춤을 출 만큼 기뻐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요만큼도 기쁘지 않았다.
가슴을 시멘트로 채운 것처럼 무겁고 답답했다.
그래도 만나야 한다.
미소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이 사람들과는 이야기를 해야 했다.
세아와 문자를 나누고, 오늘 당장 약속을 잡는다.
점심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
장소는 어제와 같은 호텔 EFL.
오늘은 사장과 세아가 함께 나온다고 한다.
아이돌이 호텔에서 약속을 잡아도 되나 싶지만.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겠지.
어제도 그 호텔에서 묵은 것 같고.
그리고 세아는 그 사장과 그런 사이라고 했고.
…….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아이돌의 사생활이 어떻든.
항상 깨끗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남길 바랐다.
모르고 있으면 계속 행복했을 텐데.
휴.
쨍쨍한 햇볕이 내리쬐는 정오.
오늘 나는 정시에 맞춰서 나갔다.
어젠 30분 일찍 나갔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호텔 라운지 테이블에 두 사람은 기다리고 있었다.
세아는 흰색 정장, 사장은 검은색 정장.
그 모습이 천사와 악마의 대비처럼 느껴졌다.
나의 천사를 타락시킨 악마와 나는 지금부터 대화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과 세아가 일어나 인사했다.
나도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왠지 이상한 기분이다.
갑을관계가 바뀐 것 같았다.
잘난 척 거만한 태도를 보이는 자신에게 어색함을 느낀다.
“어제는 오해를 살 만한 이야기를 드려서 죄송했습니다.”
정말 그게 오해였을까?
어제 밤새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여지가 없었다.
세아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녀는 가만히 테이블에 시선을 향하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선 저와 세아의 관계에 대해 다시 말씀드리죠. 저희는 진지하게 사귀고 있습니다. 이건 스프링의 다른 멤버들도 아는 이야깁니다.”
미소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이들의 편을 들어주었다.
역시 세아와 미소는 속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아저씨가 뭐가 좋아서?
돈 때문인가? 빚이라도 있어?
내가 돈이라도 있었더라면…….
아니. 세아에게 빚이 있다는 건 내 상상일 뿐이다.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봐야지.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멤버들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이 자리의 세 명만 아는 이야기니까, 만약 누설되면 저는 진선후 씨를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밀은 지키라는 건가.
은근슬쩍 협박하는군.
하지만 D.S.의 사장이 한세아와 남녀관계라는 것보다 더 큰 비밀이 있다고?
“사실 저는……남자로서 구실을 못 합니다.”
…….
그건 너무나 엉뚱한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가 나올 거라곤 솔직히 상상도 못 했다.
한세아와는 사귀고 있다며?
“진선후 씨가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이혼 경력이 있습니다. 지금보다 젊었을 적, 10년도 더 된 이야깁니다만…… 당시 제 아내는 불륜을 저질렀습니다. 젊은 남자와, 제 집에서요.”
우와.
이야기가 갑자기 막장 드라마가 돼버렸어.
이런 이야기를 왜 나한테 들려주는 거야?
“아내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낀 전 집안에 카메라를 설치했고, 아내와 젊은 남자가 제 집에서 하는 짓을 녹화된 영상으로 보고 말았습니다. 충격을 받은 저는 아내와 그 후 바로 갈라섰습니다.”
너무 무섭다.
그런 영상을 직접 보는 건 무슨 느낌일까?
나는 이상해도 카메라는 설치하지 말아야지.
“아내가 바람난 데에는 제 탓도 있습니다. 남자 구실을 제대로 못 했으니까요. 억지로 하게 해주는 약을 먹어도 정신적 흥분이 없으니, 저한테는 노동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내는 밤일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데에 질린 거겠죠. 아내는 젊고 매력적인 여자였으니까요. 자길 더 사랑해주는 젊은 남자한테 떠나도 사실 할 말은 없습니다.”
젊고 매력적인 아내에게 흥분하지 못하다니.
매일매일이 흥분의 대모험인 나로선 그런 사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와 이혼한 뒤, 저의 성욕은 더욱 가라앉았습니다. 나이도 먹었으니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지만요. 문제는 그런 제가, 아내의 그 영상을 볼 때만큼은 남자가 됐다는 겁니다. 그때만이 제가 유일하게 흥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
“진선후 씨는 믿어지십니까? 육체적으로 건강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도 흥분하지 않으면서, 그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걸 볼 때만 흥분한다는 이야기를요.”
“……아니요.”
이해할 수 없다.
번식은 수컷의 본능.
사장의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이야기였다.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이야기였다.
“저도 저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더러운 이야기, 누구한테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대로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평생 성욕을 죽인 채 혼자서 살아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더러운 저를 떨쳐내기 위해 더더욱 일에 미쳐 살았습니다.”
“그러다 세아를 만났습니다.”
“세아는 저에게 진지하게 다가왔습니다. 당시 세아는 어렸고, 어른과의 사랑을 꿈꿀 나이인 거겠지, 저는 그렇게 생각해 거절했습니다. 애들 불장난에 어울려줄 시간도, 정신적인 여유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세아는 포기하지 않았고, 세아의 진지한 태도에 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런 변태적인 성벽 이야기를요. 세아가 저를 포기할 수 있도록. 나와 멀쩡한 사랑은 할 수 없으니까 아무리 다가와도 어쩔 수 없다고.”
“그런데도 세아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가자고, 세아는 이런 저까지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진선후 씨는 이런 여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장의 말에 나는 어째선지 엄마를 떠올렸다.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해주는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를 사랑하는 나.
모든 고민을 끌어안아주는 존재.
사장에게 세아는 그런 존재인 건지도 모른다.
비정상적인 관계라는 것도, 세상에 받아들여질 수 없는 관계라는 것도 같았다.
“저는 세아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약속했습니다. 세아가 성인이 되고, 최고의 아이돌이 되어서, 그래도 그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진지하게 교제하자고요.”
“그리고 약속대로 세아는 성인이 되었고, 최고의 아이돌이 되었고, 그래도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외부에는 알릴 수 없는 관계지만요.”
세아는 지금 22살이다.
사장의 말대로라면 교제한 지는 2년이 된 건가.
그때부터 벌써 세아는…….
“어제 진선후 씨에게 이 이야기를 전부 하지 않은 건 제 남자로서의 마지막 고집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진선후 씨와 세아가 잠자리를 가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덤으로 그걸 빌미로 진선후 씨가 우리 회사와 계약을 맺게 되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고요. 하지만 그런 결과가 될 줄은……. 진선후 씨가 미소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못한 저의 판단미스였습니다.”
“……왜, 접니까?”
소속사 아이돌도 있다.
회사 밖에도 사장의 연줄이라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한세아와 하룻밤을 보내길 바라는 남자라면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제가 이런 이상한 성벽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세아를 아무 남자한테나 안기게 할 수는 없습니다. 세아와 어울리는 남자, 거기에 비밀을 지킬 수 있고, 뒤끝이 없어야 합니다. 세아나 회사에 피해를 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선후 씨는 이상적인 상대였습니다. 진선후 씨를 만나고 온 진이가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더군요. 남자로서 질투가 날 정도로. 진이는 그래 보여도 남자 보는 눈은 정확한 아입니다. 함부로 남자를 칭찬하지 않습니다. 그런 진이가 인정한 남자. 그리고 미소와도 깊은 관계가 있고, 지켜야 할 비밀도 있고.”
지켜야 할 비밀.
이 남자는 나에 대해 뭘 알고 있는 거지?
“지켜야 할 게 많은 남자는 남의 비밀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그래서 저는 진선후 씨를 고른 겁니다. 세아에게 어울리는 남자로.”
“……만약. 만약 제가 진지하게 세아 씨를 유혹하면요? 그래서 세아 씨가 저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저는 세아를 믿습니다. 그래도 만약 세아가 돌아선다면 그건 그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겠죠. 저는 세아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사장은 어둡고 쓸쓸한 눈을 하고 있었다.
빛이 들지 않는 깊은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테이블 위에 어제와 같은 열쇠를 두는 사장.
무섭다.
이 사람이 어떤 각오로 이 말을 하는지.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내밀고, 결국은 빼앗길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더라도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나라면 어떨까.
……아니.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세아 씨는, 괜찮은 겁니까?”
세아 씨는 지금까지 어떤 마음으로 이런 일을 해온 걸까.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불특정한 남자와 잠자리를 가진다.
그녀는 어떤 기분으로 이런 일을 받아들인 걸까.
“저는, 그런 사장을 사랑하니까요.”
그 사랑은 내가 아는 사랑보다 훨씬 더 무겁고 어두운 것이었다.
나는 사장이 내민 열쇠를 쥐었다.
그리고 한세아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진선후 씨. 세아를 잘 부탁드립니다.”
세아의 손을 잡고 객실로 향하는 내 등 뒤에 사장이 말한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