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3/256)

내가 사랑 받는 진짜 이유는 

“푸하.”

컵의 물을 단숨에 들이켠 사장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어라. 여긴 금연 아닌가?

당연히 여긴 금연이었고, 사장은 한 모금 빨기도 전에 호텔 직원에게 주의를 받고 담배를 껐다.

뭐지. 지금 건.

“그런, 미신 같은 이야기.”

나는 조금 황당해하면서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공작 설화는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진선후 씨가 공작 깃털을 뽑은 주 씨의 후손이라는 게 아니라, ‘그런 특성을 가진 사람이다’는 거죠. 주공작 설화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비슷한 이야기는 있으니까요. 관계를 맺은 남자를 성공하게 해주는 여자나, 주변 여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남자 같은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있습니다. 물론 반대로 주변을 파멸로 이끄는 사람도 있고요.”

사장은 담배가 땡기는지 계속 담뱃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이런 미신 같은 이야기, 믿기 어려우실 겁니다. 저라도 안 믿을 테니까요. 하지만 21세기의 지식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버리면, 이젠 미신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최대승 사장은 어제 미소, 진이와 했던 촬영 이야기를 꺼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각이 부를 수 있는 음의 한계가 있다는 거 아십니까? 어제 ‘브리즈’ 녹화본에서, 진이는 그 한계를 넘었습니다. 사람은 절대로 넘을 수 없는 한계를요.”

“……그게, 사장님은 정말 제가 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게밖에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진이는 그렇게 못 불렀으니까요. 어제와 오늘의 다른 점은 진선후 씨가 있었냐 없었느냐의 차이뿐입니다.”

어제 진이는 말했다. 300번 이상 부르면서 제일 잘 불렀다고.

나는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솔직히 우리 같은 막귀한테는 거기서 거기일 거고.

하지만 전문가 입에서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니.

“그래서 저는 확신했습니다. 진선후 씨한테는 뭔가 있다고. 진미소를 최고의 아이돌로 만들고, 진소영을 최고의 골퍼로 만들고, 임신혜를 최고의 배우로 만든 뭔가가 있다고.”

말도 안 된다.

누나의 실력이고, 엄마의 실력이고, 미소의 실력이다.

거기에 내가 영향을 끼쳤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하나씩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진선후 씨. 부디 우리 기획사에 들어오시지 않겠습니까? 원하는 모든 조건을 맞춰드릴 의향이 있습니다.”

그건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내 귀에 너무나 달콤하게 들렸다.

그리고 사장은 어떤 열쇠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마치 호텔 객실 열쇠 같은 것을.

“이 방에, 한세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슴속에 섬뜩한 무언가가 날아와 박힌다.

“당신……!”

“아. 오해는 마시길. 이건 본인도 동의한 부분이니까──”

쾅!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대로 라운지를 나와 호텔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뛴다.

이건 너무나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

순수한 분노였다.

“씨팔새끼!”

테이블을 내리쳤던 주먹이 얼얼하다.

그런 얘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던 내가 등신이었다.

만약 상대가 내가 아니었으면.

그리고 그 상대가 만약 미소를 원했다면. 미소가 동의했다면.

그 방에 있는 건 미소였을까?

미소가, 누군지도 모를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씨발!

“저기.”

엘리베이터에 먼저 타고 있던 직원이 뭔가 말을 걸어왔다.

“아뇨. 죄송합니다.”

나는 차갑게 대답했다.

그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 * *

호텔 지하 주차장에 내려와 차를 타니 휴대폰 벨이 울렸다.

미소였다.

“후.”

일곱 번, 여덟 번.

벨은 계속 울렸다.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전화를 받았다.

『오빠?』

“미소 너, 아이돌 그만두고 싶다고 했지.”

『어? 갑자기 왜 그래? 사장님이 전화 와서…….』

“너, 아이돌 그만둬. 아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냥, 모든 게 용서할 수 없었다.

미소가 이런 더러운 세계에서 일한다는 게.

내가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게.

그 방에 미소가 있었을지도 몰랐다는 게.

한세아가, 박수진이, 진미소가.

이런 예쁜 아이들이, 이런 더러운 일을 한다는 게.

“……미안하다.”

『오빠? 도대체 무슨 일인데? 우리 사장이야? 사장이 뭐라고 했어?』

“나중에…… 집에 가서 얘기할게.”

『오빠! 당장 그만둘게! 그만두기 전에 사장 반쯤 죽여놓을게! 그러니까 울지 마, 응?』

나는 전화를 끊었다.

답답했다.

무슨 말을 할지.

누구한테 어떻게 이 기분을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윽. 큭.”

나는 자동차 핸들에 이마를 대고 울었다.

또다시 휴대폰이 울린다.

엄마였다.

“엄, 마…….”

『선후야! 너 어디니? 지금 어디 있어?』

“엄마. 죄송해요. 죄송해요…….”

내가 엄마의 인생을 망쳤다.

남의 자식을 입양시키고,

남의 자식을 키우게 하고.

남편과 이혼하게 만들고.

혼자서 자식 셋을 키우게 만들고.

매일 정신병 걸린 남의 자식 뒤치다꺼릴 하게 하고.

그리고 또 나는.

나는. 그런 엄마를.

그런 엄마에게. 무슨 짓을.

엄마에게. 누나에게. 미소에게.

나는 무슨 짓을.

내가 엄마에게 했던 행위.

시켰던 행위들.

누나에게, 미소에게.

그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그 하나하나가 칼날이 되어 내 심장을 찢는다.

아.

죽고 싶다.

『』

하지만 죽을 수도 없다.

그러면 엄마가 슬퍼하실 테니까.

『』

지금도 수화기 저편에서 엄마는 날 찾고 있다.

날 걱정하고 있다.

내가 잘못될까 봐.

『』

진선후. 넌 누구지?

여자를 유혹하는 악마.

여자를 미치게 하는 괴물.

“엄마. 나. 사랑받고 싶었어.”

주공작의 마음이.

산신령에게 비는 마음이.

공작의 깃털을 뽑아서라도, 그렇게라도 사랑받고 싶어 했던 마음이.

나에게는 너무나 잘 알 수 있었다.

세상은 너무 괴롭고.

사람들은 나에게 너무 차갑고.

모든 게 힘들어, 단지 살아있는 것조차.

죽고 싶어서.

그런데 죽는 방법을 몰라서.

그렇게 나는 살아있었다.

그저 누군가가 날 죽여주길.

그만 괴롭게 해주길 바랐다.

그런 나를 구해준 사람.

엄마.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닌데.

그런데도 나를 사랑해주었다.

아들로 사랑해주었다.

그것을 부정당하는 것은

괴로운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나에겐 괴로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은.

사랑이 아니라.

무언가의 착각이었다거나.

악마의 유혹이었다거나.

누군가에게 조종당해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척할 수밖에 없었던 거라면.

나는 살아있을 수 없다.

“야! 진선후!”

쾅!

비용비용.

경보 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누나?

누나가 왜?

“아주 지랄. 꼴값을 떨고 있네.”

쾅!

누나가 골프채로 운전석 창문을 두들긴다. 

“야! 문! 열라고!”

쾅!

뭐야? 무슨 일이야?

누나는 왜 골프채를?

“셋 셀 동안 안 열면 너 진짜 죽어! 하나! 둘!”

달칵.

이게 어떤 찬데.

누나가 부수게 놔둘 순 없다.

아. 이것도 누나가 사준 차였구나.

“새끼, 진작에 열 것이지. 드라이버 작살났잖아. 이게 얼마짜린지 알아? 차는 또 드럽게 튼튼해요.”

누나는 내 넥타이를 잡고서 차에서 끌어 내렸다.

“누, 나가, 왜.”

“왜긴 왜야 새꺄. 람보르기니 끌고 호텔 가길래 어떤 년이랑 가나 보러왔지. 그년도 죽이고 너도 죽이고 나도 죽으려고. 왜, 꼽냐?”

그런 농담은 하지 마.

누나가 말하면 농담 같지 않단 말이야.

“어. 선후 잡았어. 아, 알아서 잘 달래서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안 때려. 내가 왜 때려? 내가 깡패야? 됐고, 미소한테 전화나 해줘. 걔도 당장 쫓아오려 하더라. 엄마도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해. 엄마가 일 때려치우면 누가 선후를 먹여 살려? 이런 찐따 등신 같은 새끼 키워줄 사람 엄마밖에 없는데.”

찐따 등신 같은 새끼…….

그랬다. 나는 찐따에 등신 같은 새끼다.

엄마가 이런 나를 사랑해주는 건 전부 저주 탓이겠지.

또 눈물이 나왔다.

“빙신. 아주 꼴값을 떨어요.”

누나와 함께 호텔 엘리베이터를 올라간다.

얼마 전에도 이런 일 있었는데.

그땐 행복했지.

누나도 나를 사랑한다고.

누나한테도 사랑받는다고 행복해했지.

그땐 세상 다 가진 기분이었는데.

그게 다 거짓이었다니.

엄마도, 누나도, 미소도.

“그래서, 왜 질질 짜는데?”

호텔 객실에서.

누나는 물었다.

나는 누나에게 모든 걸 이야기했다.

“누나……. 공작이, 주공작이…….”

* * *

“풋.”

누나는 웃었다.

내 얘기를, 주공작의 이야기를 듣고 비웃었다.

“푸하하하! 아하하하하!”

아무리 그래도 너무 웃잖아.

나는…… 심각한데.

“야. 찐따. 잘 들어. 두 번 얘기 안 할 테니까.”

누나는 내 귀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여자들이 너한테 잘해주는 거. 그거 네가 잘 생겨서 그래.”

“…….”

“왜 너랑 섹스하고 싶어서 환장하냐고? 니가. 얼굴이. 잘생겨서. 몸이. 좋으니까. 좆이. 졸라게. 크니까! 이 등신아!”

귀가 아프다.

“주공작인지 지랄인지 찐따 망상이 아니라! 니 이 자지가! 여자를 미치게 만드는 거라고!”

알았어. 누나.

알았으니까 귀에 대고 소리 지르지 마.

그리고…… 자지도 놔줘…….

“엄마는! 니가! 진짜 내 자식 같으니까! 넌 그것도 모르냐, 이 병신아!”

“윽.”

누나의 말은.

마치 사막의 단비처럼.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공작의 저주는 지랄. 뭐? 모든 여자가 널 사랑해? 나 너 처음 봤을 때 졸라게 싫어했거든? 그리고 너 만나기 전부터 난 골프 천재였거든? 니 친애미는 널 그렇게 사랑해서 그따위로 학대했냐? 너도 나이 처먹었으면 생각이란 걸 좀 하고 살아, 등신아. 보이스 피싱에나 당할 새끼.”

나를 싫어했다는 누나의 말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을까.

나를 학대했던 친모의 이야기가, 이렇게 도움이 될 수가 있을까.

“자. 니가 좋아하는 젖이라도 만지고 있어라. 어휴 이 찐따새끼. 그렇게 판타지 좀 그만 보라니까.”

“……누나도, 나 사랑해?”

“하. 나 이 찌질한 새끼 진짜.”

찌질한 내 물음에, 누나는 내 귀에 대고 힘껏 소리쳤다.

“졸라게! 사랑한다고! 이 병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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