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화 (72/256)

주공작 설화 

『오빠!』

이 시간엔 바쁠 텐데.

웬일로 일하는 미소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 미소야 왜?”

『그, 우리 사장님이 오빠랑 만나보고 싶대.』

“어?”

미소한테 사장님이면 소속사 사장님?

소속사 사장님이 나를 왜?

그때 그 일 때문에?

“설마, 말했어?”

내 목소리는 자연히 줄어들었다.

『아니? 사장님이 지난번 일 사과하고 따로 부탁할 것도 있다고.』

“지난번 일?”

『오빠 쓰러졌을 때 있잖아.』

“아. 그런 건 괜찮은데.”

그때 사장님이 미소한테 호통친 게 내가 쓰러진 데에 영향을 주긴 했지만, 그걸 사장님 잘못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

오히려 괜히 소동 일으킨 내가 사과하는 게 맞지 않나?

『그거 말고도 부탁할 거 있나 봐. 사업상 부탁이라던데.』

“그게 더 이상한데. 그 사장님이 나랑 사업적인 이야기 할 게 뭐 있어.”

『오빠, 걱정 안 해도 돼. 우리 사장님 생긴 건 산적 같아도 좋은 사람이야. 정말이야.』

흠.

미소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괜찮겠지?

잡아먹기야 하겠어?

그 사장님은 누군지 모르니까 믿을 수 없지만, 난 미소를 믿으니까.

나한테 손해될 이야기면 미소가 연락하지도 않았겠지.

“알았어. 언제 어디로 가면 돼?”

* * *

D.S.엔터테인먼트 최대승 대표.

그는 연예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거물이다.

본인도 가수 출신으로 기획사를 차렸지만, 가수로서 능력보다 아이돌 프로듀싱 능력을 더 인정받는다.

소속 가수는 미소가 소속한 스프링 외에도 쟁쟁한 아이돌 그룹이 다수.

본인의 이름을 딴 회사를 대한민국 3대 기획사 중 하나로 키워낸 능력자다.

이런 사람이 나 같은 일반인과 사업적으로 할 얘기가 대체 뭐가 있을까.

빠를수록 좋다는 말에 그날 오후에 바로 약속을 잡았다.

긴장하면서 약속 시각보다 30분 일찍 왔는데, 최대승 사장님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진선후입니다.”

장소는 유명 호텔의 이그제큐티브 플로어 라운지. 줄여서 EFL.

기껏해야 소속사 어딘가로 불러낼 줄 알았는데 이런 곳까지 예약해놓고.

진짜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안녕하세요. D.S 최대승입니다.”

나보다 나이가 2배는 많은 남자가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나도 당황해서 마주 허리를 숙였다.

“지난번 일은 죄송합니다. 제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미소한테 화부터 냈습니다.”

“아니요, 소속 아이돌이 일탈하면 꾸짖는 게 당연하죠. 오히려 저희 미소를 잘 돌봐주시는 거 같아서 안심했습니다.”

나지만 잘도 이런 얘기가 술술 나오는구나.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말을 잘했지?

“우선 앉으시죠. 술은 하십니까?”

“아니요. 전 물 마시면 됩니다.”

이상할 정도로 예의를 차리는 사람이구나.

이런 일을 하다 보면 당연한 거겠지만, 사회경험이 없는 나로선 굉장히 어색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진선후 씨는 저희 소속사에 들어오실 생각 없으십니까?”

“제가요?”

분명 미소 관련 이야기겠거니 했는데, 설마하니 영입제안이었다.

나를? 왜?

“제가 아이돌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진 않은데요.”

나는 노래도 춤도 못 한다. 그나마 피아노? 그것도 프로가 되기에는 한참 부족하고.

나이도 많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이런 내가 무슨 아이돌을?

“우리 회사는 꼭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유튜브 같은 인터넷 방송인도 키우고 있으니까요.”

“아.”

인터넷 방송인가.

그런 일이라면 피아니스트급 실력이 아니라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일이야말로 종합적인 능력이 필요한 거 아닌가?

내가 잘할 수 있을 거 같진 않은데.

“뭐, 꼭 어떤 일을 한다기보다, 이번처럼 스프링 멤버와 협업하게 되면 수익 배분 문제 같은 게 있으니까요. 계속 무상으로 부탁드리는 것보다 저희도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계약이 있으면 부탁드리기도 편하고.”

음. 그런 건가.

나야 미소한테 도움이 된다면 무상으로도 상관없는데. 애초에 돈 받고 칠 실력도 아니고.

하지만 금전적인 소득이 생긴다는 매력은 있다.

나도 언제까지나 엄마나 누나한테 용돈 받으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

내가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대형 기획사에서 오퍼가 오는 건 정말 귀한 기회가 아닐까?

“……저, 죄송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긴 어렵겠는데요. 어머니와 상의해보고 대답 드려도 될까요?”

“어머니. 임신혜 배우님이십니까?”

“네.”

“음……. 아마 어머닌 반대하시겠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 거절하기 위해서 엄마 얘길 꺼낸 거기도 하고.

분명 이건 나한테 큰 기회겠지.

하지만 너무 이상했다.

이런 대형 기획사에서 일부러 나를 영입하려는 게.

나 같은 아마추어를.

진짜로 너희들이 원하는 건 뭐야?

미소? 엄마? 누나?

진심을 말하지 않으면 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

“음…….”

최대승 사장님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면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마음을 정했는지, 입을 열었다.

“진선후 씨는 혹시 ‘주공작 설화’를 아십니까?”

“? 아니요.”

“그러시겠죠. 저희 고향 시골에 내려오는 옛날이야기니까요.”

“예?”

뭐야, 갑자기?

“주 씨 성을 가진 남자가 공작새의 깃털을 뽑아다 자기 몸에 붙여서 공작의 저주를 받은 이야깁니다.”

“예??”

갑자기 최대승 사장님은 옛날이야기를 시작했다.

깃털을 뽑아? 공작의 저주?

아마 지금 나는 무척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겠지.

“처음부터 말씀드리죠. 좀 긴 이야깁니다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 주 씨 성을 가진 남자는 매우 못생긴 남자였다.

당연히 주 씨는 여자에게 미움받았다.

주 씨는 산신령에게 빌었다.

여자에게 사랑받게 해달라고.

산신령은 대답했다.

『공작의 깃털을 뽑아 몸에 붙이면 여자에게 사랑받으리라.』

주 씨는 신나서 공작을 잡았다.

산채로 그 깃털을 뽑아 자신의 몸에 붙였다.

털이 뽑힌 공작은 주 씨에게 저주를 내렸다.

『너와 너의 후손은 모든 여자에게 사랑받으리라』

그것이 공작의 저주였다.

“…….”

나는 왜 이런 곳까지 와서 이런 얘길 듣고 있는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그래서 사장님 말씀은, 제가 그 설화에 나오는 주 씨 남자의 후손이라는 말입니까?”

“……저희 고향에선 옛날부터 어려서 죽는 남자아이를 ‘주공작’이라고 불렀죠. 왜 그런지 아십니까?”

“…….”

“모든 여자에게 사랑받는 남자 따위, 다른 남자가 보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적일 뿐입니다. 모든 여자에게 사랑받는다는 말은 즉 모든 남자에게 미움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공작의 축복’이 아니라 ‘공작의 저주’라고 불리는 이유고요.”

“…….”

“무리를 이끄는 사자는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는 수컷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죠. 그게 설령 자기 새끼라고 해도 물어 죽입니다.”

“……저기.”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이성적이고, 법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이성과 법조차 잊게 만드는 것이 저주라는 겁니다.”

무섭다.

그의 말이, 나를 가리키는 것 같아서.

내 인생이 저주라는 말 한마디로 설명될 것 같아서 무섭다.

나를 학대했던 부친.

나를 치가 떨리도록 싫어했던 새아버지.

나를 사랑해준 새어머니.

미소, 누나,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여자들.

그리고 나에게 적의를 보냈던 남자들.

그 모든 게, 저주라는 말 한마디로 설명될 것 같아서.

엄마가 준 사랑이, 사실은 저주 때문이었다는 말로 들려서, 무서웠다.

“그래서, 그 공작의 저주라는 게 실제로 있다면, 대체 어떤 원리로 여자에게 사랑받게 만드는 걸까요?”

“……예?”

“뛰어난 외모, 똑똑한 두뇌, 우수한 운동능력. 하지만 그것만으론 ‘모든 여자에게 사랑받는다’는 조건을 채울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엔 비과학적인 뭔가가 있다.”

똑똑.

방황하는 내 집중력을 붙잡으려는 듯이 테이블을 두드린다.

“스프링에서 가장 인기 많은 멤버가 누군지 아십니까?”

“어, 세아 아닌가요? 리더 세아.”

세아는 스프링의 맏언니로 그룹의 중심이다.

외모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세아가 그 그룹에서 가장 우수한 인간인 건 틀림없다.

그런데 갑자기 웬 스프링?

“미소입니다. 진선후 씨 동생 진미소요.”

미소가?

미소가 세아보다 인기가 많았어?

“저희도 계속 의문이었습니다. 왜 미소가 스프링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지. 원래 스프링은 미소 없이 나머지 3인조로 그룹을 짤 예정이었거든요.”

그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원래 이미 떨어뜨렸어야 했는데, 이상하게 미소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연습생 시절 실력은 다른 멤버들보다 떨어졌고, 그렇다고 남들보다 노력하는 것도 아니었고. 간절하지도 않았고.”

윽.

미소의 욕을 듣는데 반박할 말이 없다.

미소가 다른 멤버들보다 열심히 하지 않은 건 내가 제일 잘 아니까.

“그런데도 미소는 데뷔했습니다. 예정에도 없던 3인조 그룹을 4인조로 바꾸면서까지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모르겠는데요.”

내 대답에 최대승 사장님은 하하! 하고 시원스럽게 웃었다.

“저희도 모릅니다! 왜 미소를 데뷔시켰는지! 왜 안 떨어뜨렸는지! 굳이 말하자면 ‘왠지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다’는 겁니다!”

……대체 이 아저씨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그런데 막상 데뷔해보면 어떻습니까? 미소는 여전히 게으르고, 간절하지도 않고, 도망갈 궁리만 하는데, 그런데도 제일 인기가 많습니다! 대체 왜?”

“그야, 본인한테 매력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바로 운입니다!”

최대승 사장은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운입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예쁘고 잘생겨도, 운이 없으면 뜨질 못합니다. 반대로 운만 있으면 아무리 부족해도 뜹니다.”

사장의 말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미소는 부족한데 운이 좋아서 떴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으니까.

그건 본인이 본인의 일을 부정하는 거 아냐?

“그런 의미에서 미소는 천운을 타고났다. 여기서 운이란 길 가다 동전을 줍는 단순한 행운이 아닙니다. 우주를 움직이는 거대한 기운입니다.”

왠지 회사 대표가 아니라 약장수랑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의문이었습니다. 왜 우주의 기운은 우리 한세아가 아니라 진미소를 밀어주고 있는가?”

응? 우리 한세아?

“한세아에게는 없고 진미소에게는 있는 것. 그리고 진소영, 임신혜에게도 있는 것.”

최대승 사장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바로 당신, 진선후 씨입니다.”

긴 이야기를 마치고, 그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목이 말랐는지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그리고 나는, 잔에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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