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1/256)

* * *

절대로 팬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특별공연이 끝나고.

진이는 옷을 갈아입고 우리 집을 나섰다.

“선후 오빠. 고맙습니다. 오늘 정말 재밌었어요. 자고 가고 싶은데 매니저가 밑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내가 더 고맙지. 또 놀러와. 미소랑도 친하게 지내주고.”

너무나도 멀쩡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주차장까진 데려다주려 했지만, 누가 보면 반대로 오해한다며 혼자 가겠다고 했다.

“오빠, 어땠어?”

“뭐가?”

진이가 가고 난 후 미소가 묻는다.

진이는 옷을 갈아입고 갔지만, 미소는 여전히 무대의상인 채였다.

반짝이는 검은 가죽 재질의, 조금 야한 의상.

자꾸만 그리로 눈이 가고 만다.

“진이 말이야. 귀엽지?”

“아. 응. 진이도 귀여웠지. 그래도 내 눈엔 미소가 더 귀여워.”

“또. 오빤 말로만.”

미소는 삐친 척하면서도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오빠. 진이는 오빠랑 하고 싶어 하던데, 오빠는 어때? 진이랑 하고 싶어?”

……올 게 왔구나.

“미소 넌 진이가 그러는 거 싫지 않아?”

미소의 본심이 알고 싶었다.

아마 두 사람 사이에선 이미 이야기가 된 거겠지.

아니면 저렇게 노골적으로 행동할 리가 없다.

여자는 친한 친구와 자기 남자를 공유할 수 있을까?

남자는 그런 거 절대 용납 못 할 텐데.

“음~ 만약 오빠가 진심으로 진이한테 빠져서 나한테 소홀해지면 싫겠지만, 그런 게 아니면 괜찮아.”

내가 진이한테 빠져서 미소를 소홀히 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애초에 미소가 아니었으면 마주칠 일조차 없는 세계의 사람이고.

“진이한테 우리 오빠 자랑하고 싶고, 객관적인 점수도 받아보고 싶고.”

“점수?”

“그런 게 있어.”

미소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진이한테 나와의 비밀을 왜 말했는지.

그 ‘특별공연’은 다른 데서도 한 적 있는지.

미소에게 물어볼 건 많았지만.

“……오빠. 오늘은 이거 입고할까?”

미소의 그 권유를 거절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응.”

피아노 위에서 시들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들이(선인장) 외전 

내 이름은 시들이.

선인장이다.

정확하게는 선인장에 깃든 악령이지만.

크크.

원래 나는 의식도 없이 시들어가는 선인장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에게서 ‘시들이’라는 이름을 받고, 영혼의 정수(정액)까지 받으면서 혼이 태어나버렸다.

지금은 피아노 위에 자리를 잡고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크크크.

나의 목표는 저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 ‘진선후’라는 남자의 몸을 빼앗는 것.

진선후의 영혼을 이 선인장에 가두고, 나는 그의 몸을 대신 차지한다.

그리고 이 집의 여자들을……!

크크크크!

지금 나에겐 아직 인간의 몸을 빼앗을 정도의 힘은 없다.

이 시들어가는 선인장 본체를 회복하는 게 우선이겠지.

완전체가 되어 원래의 힘을 되찾으면 진선후가 자는 사이에 몸을 빼앗는다.

그리고 그 몸을 이용해 이 집안의 여자들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크크크크크!

이 집안에 여자는 셋이 있다.

우선 진선후가 엄마라고 부르는 여자, 임신혜.

그녀의 직업은 배우인지, 가끔 진선후와 함께 이 방에서 연기 연습을 한다.

“황진우! 너 진짜 엄마 미치는 꼴 보고 싶어서 이래?”

“나 좀 내버려 둬! 난 엄마의 인형이 아니야. 나도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철썩!

오. 아프겠다.

“꺅! 어떡해! 선후야 괜찮니?”

“……아~. 엄마. 왜 멈췄어. 지금 좋았는데.”

“피! 피 나잖아!”

저런. 뺨 맞다가 손톱에 긁힌 모양이군.

조심히 다루라구, 부인.

곧 내 몸이 될 테니까 말이지.

크크크.

“에이. 이 정도로 뭘. 자고 나면 나아.”

“안 돼! 약 가져올 테니까 기다려.”

부인은 서둘러 약을 가져온다.

그리고 정성껏 진선후의 얼굴에 약을 발라준다.

맞은 진선후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때린 부인이 울려고 한다.

“어떡하면 좋으니. 엄만 매번 선후한테 상처만 입히고.”

“괜찮다니까. 엄마가 나한테 상처 입힌 것보다 치료해준 게 100배는 더 커. 그러니까 다신 그런 말 하지 마.”

“선후야…….”

얼씨구.

이것도 대본 연습이냐?

에로 영화 대본이야?

눈이 맞고 서로 끌어안는다.

여기서부터 키스까진 그냥 자동이다.

모자지간에는 있을 수 없는 농밀한 키스를 나누는 두 사람.

진선후의 손은 어느새 부인의 가슴을 더듬고 있었다.

그런 아들의 나쁜 손을 혼낼 생각도 않고, 부인은 더욱 흥분해 아들의 입술을 탐한다.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구만.

선인장이라 혀를 찰 수가 없는 게 한이다. 쯧쯧.

“엄마, 나…….”

“선후야. 좀 있으면 미소 올 거야. 오늘은 엄마가 입으로 해줄 테니까 참아, 응?”

흥. 오늘은 입이 심심한 날인가 보군.

“아…….”

부인이 진선후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는다.

진선후는 기분 좋은 듯이 신음하고, 부인은 그 소리에 기쁜 듯 머리를 움직인다.

제길.

내가 진선후의 몸만 뺏으면 나도 실컷 해줄 테다!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라고 부인!

엄마 임신혜에 이어 이 집안의 두 번째 여자.

진선후가 누나라고 부르는 여자. 진소영이다.

터질 듯한 가슴에 탱탱한 엉덩이를 가진 도내 최고 미녀.

거기에 변태다.

누나 진소영은 이 방에 오면 항상 진선후에게 피아노를 쳐달라고 한다.

어차피 목적은 따로 있을 텐데.

내 눈에 피아노는 그저 변태 짓을 위한 구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진소영은 침대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진선후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있다.

하지만 머릿속엔 온갖 변태 같은 생각으로 가득하겠지.

“그럭저럭 들어줄 만하네.”

연주가 끝나자 진소영이 팔짱을 끼며 말한다.

그렇게 팔짱을 끼고 가슴을 강조하는 건 일부러 그러는 거지?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봐. 상으로 들어줄 테니까.”

저거 봐.

결국 변태 짓이 하고 싶은 거뿐이잖아.

“……누나. 네발로 기어서 이쪽으로 와.”

진선후가 명령한다.

평소 진선후는 누나 진소영에게 꼼짝도 못 하지만, 변태 짓을 할 때는 입장이 역전된다.

“변태 새끼.”

진선후의 말에 진소영은 욕을 하면서도 표정에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대체 누가 누구더러 변태란 건지.

내 눈엔 둘 다 변태일 뿐이다.

진소영은 진선후가 시키는 대로 네발로 기어간다.

아마 꼬리가 달려 있었으면 개처럼 흔들고 있었을 것이다.

변태 같은 것들.

진선후의 발밑에 도착한 진소영이 진선후를 올려다본다.

그 눈은 기대로 빛나고 있었다.

진소영이 생각하는 것 따윈 뻔하다.

‘대체 무슨 변태 짓을 시킬까?’

그런 기대로 빛나고 있었다.

진선후는 다리를 꼬더니 한쪽 발을 내밀었다.

“핥아.”

진소영은 충격을 받은 듯 진선후를 올려다본다.

그리고 곧 분하다는 표정으로 진선후의 발가락을 핥기 시작했다.

으악! 저 변태들!

싫은 척이라도 좀 하라고!

“잘했어, 누나. 이제 뒤로 돌아서 엉덩이 벌려. 개처럼 박아주지.”

진소영은 원망스러운 듯 동생을 노려보았지만, 결국은 그 말에 기쁘게 따를 게 뻔했다.

저거 봐.

얼른 박아달라고 엉덩이까지 흔들고 있잖아.

아~ 제기랄!

진선후의 몸만 뺏으면 나도 매일 개처럼 박아주마!

세 번째 여자.

여동생인 진미소다.

앞의 두 명을 보면 알겠지만, 이 막내도 정상이 아니다.

제 오빠가 무대의상에 반응하는 걸 본 뒤론 툭하면 새로운 옷을 가져와 이 방에서 패션쇼를 연다.

“오빠, 이 옷은 어때?”

“……치마가 너무 짧은 거 아냐?”

“그런가? 안에 속바지 입으니까 괜찮을 텐데.”

“속바지라고 괜찮을 리가 있냐.”

“왜? 속바지는 팬티가 아니잖아.”

그러면서 진미소는 치마를 들쳐 올려 속바지를 보여준다.

너무 뻔해서 어이가 없다.

그런 노골적인 유도에 걸려드는 저놈도 문제다.

지금도 잡아먹을 듯이 거기를 보고 있다.

나한테 코가 없어서 콧방귀를 못 뀌는 게 한이다.

“팬티는 이 안에 입고 있어. 봐.”

오빠의 눈이 거기에 고정된 걸 알고 그 속바지를 내려 팬티를 보여준다.

야. 진선후. 그러다 눈 튀어나올라.

“오빠. 저번에 하고 나서 나 여기 아직 아픈데. 핥아주면 안 돼?”

진미소가 팬티까지 내리며 유혹한다.

“아앙!”

진선후는 거기에 대가리를 처박는다.

아~ 빌어먹을!

진선후의 몸만 뺏으면 나도 개처럼 핥아줄 텐데!

할짝할짝! 혀가 없는 게 한이네!

이런 제기랄!

* * *

“어머. 선인장이 말라 죽겠네.”

부인. 오늘은 왜 혼자 오셨수.

진선후는 어쩌고?

아니면 또 이 방에서 자위라도 하시게?

“선후가 물을 안 줘서 그런가?”

어어?

부인! 그만둬!

물은 진선후가 알아서 주고 있어!

선인장은 물을 자주 주면 안 된다고!

시들시들한 건 원래부터 그런 거라고!

“선후처럼 건강해지렴. 후훗.”

……제길.

쓸데없이 오지랖은.

물이 너무 많은데. 큰일이군.

진선후가 알아차리고 다음에 물을 안 줘야 할 텐데.

회복하기 쉽지 않겠어.

“이 방에 선인장 같은 게 있었나?”

뭐야, 누님.

누님은 또 왜 오셨수.

진선후는 오늘 없다고.

“흠.”

뭘 봐? 시들시들한 선인장 처음 봐?

설마 또 물 주려는 건 아니겠지?

흥. 그럴 리가 없나.

이 누님한테 그런 섬세한 마음이 있을 턱이 없지.

보나 마나 선인장으로 거길 찌르면 무슨 느낌일까 상상하고 있겠지.

“진선후. 너 요즘 왜 ‘그거’ 안 해줘?”

그거?

그거가 뭐야?

그리고 난 진선후가 아니라고.

할 말이 있으면 본인한테 직접 말해!

“……안 되겠어. 너도 벌을 받아야 해.”

어어?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화장실? 여긴 왜?

정말로 물 주려고?

그만둬! 물은 이제 싫어!

“읏. 전용 변기라고 했으면서. 왜 안 해주는 거야…….”

으악! 이게 뭐야!

오줌? 미친 거 아냐?!

남의 선인장에 무슨 짓이야!

그만둬! 죽어버려!

“진선후 네가 잘못한 거니까…… 그러니까 네가 대신 맞아…… 읏.”

으아아각가각

오로호옳로ㅗ오

…….

………….

미친.

변태라곤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미친년이었어.

오줌 냄새 없앤다고 락스까지 뿌려버리고.

젠장. 정말로 죽을 거 같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해.

살아남아서 진선후의 몸을 빼앗아야…….

그래서 한을 풀어야 해…….

으윽…….

진미소…….

너는 안 그럴 거지?

너는 그래도 상식이란 건 있는 인간이지?

“선인장을 잘라서 심으면 또 자란다고?”

뭐, 뭐 하는 짓이야?

가위? 그만둬!

꺾꽂이는 건강한 애들한테나 하는 거라고!

그런 종이 자르던 가위로 자르지 마!

으악!

“응? 잘 안 잘리네. 끙.”

죽어! 나 죽어!

성불해버렸!!

“아. 됐다. 근데 상처가 많이 났네. 괜찮으려나.”

괜찮을 리가 있냐! 이 사이코패스야!

아…….

나는 또 이렇게 가는 건가.

원통하도다.

진선후의 몸만 뺏었으면.

그랬으면 나도 한을 풀 수 있었는데.

아아…….

제길…….

나도…….

나도 여자 손 한 번…… 잡아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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