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256)

미소의 특별 서비스!(성공!) 

“진이는 이제 진정 좀 됐어?”

“네? 진정요? 뭐가요?”

“……너 진정될 동안 리퀘스트 받아달라며.”

미소가 진이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아? 아! 네! 진정됐어요. 아하하.”

나는 한숨을 푹 쉬고 팬티를 주워 입었다.

“아. 내 몽골리안 데스웜이…….”

진이는 아쉬운 것 같지만 벗고 촬영할 순 없잖아.

“그럼 마저 촬영하고 끝낼까? 진이도 너무 늦기 전에 가야지.”

나는 다시 정장을 주워 입으면서 말했다.

“오빠 되게 뻔뻔해졌다. 진짜 우리 오빠 맞아?”

“뭐가?”

“아무한테나 알몸 막 보여주고. 보여주고 나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거 같고.”

“……니들이 보여달라며? 미소랑 진이가 아무한테나야? 니들 어디 가서 놀지도 못할 테니까 오빠가 부끄러운 거 참고 보여준 건데.”

“미안미안. 그런 거 아니야. 너무 좋아서 그래.”

부끄러움을 숨기려 화난 척을 하자 미소가 아양을 떨었다.

사실은 나도 좀 놀라고 있다.

보여달란다고 보여줄 게 아닌데.

왠지 새로운 성벽에 눈 뜰 거 같다.

이러다 삐끗하면 바바리맨이 되는 거 아닐까.

그런 일로 뉴스에 나오면 엄마가 슬퍼하실 테니 조심하자.

“오빠, 그럼 우리가 하자고 하면 할 거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준비나 해.”

“네엥.”

큰일 날 소리를.

내 말에 미소와 진이는 소곤대며 화장을 고친다.

하지만 이걸로 확실해졌네. 진이한테는 이미 말했다는 게.

미소 녀석. 내가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데. 그렇게 말하지 말랬더니.

진이 가고 나서 혼 좀 나야겠어.

두 사람이 준비하는 동안 나는 방을 좀 정리했다.

미소와 진이가 춤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방이 넓다곤 해도 두 사람이 춤을 출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정식 무대에서 추는 것처럼 거친 춤은 힘들겠지.

“오빠. 우린 다 됐어.”

“어. 그럼 시작할까.”

‘네버러브’.

나쁜 남자에게 상처받고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노래다.

그치만 이렇게 예쁜 애들을 놔두고 바람피우는 남자가 있을까?

이해가 안 가는데.

“그럼 찍을게~ 하나~ 둘~.”

셋.

전주에 들어간다.

노래가 시작되기 전엔 두 사람이 나란히 합을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노래에 들어가면 한 사람은 노래를, 한 사람은 춤을.

4명이 칼군무 하는 것만큼 압도적이진 않지만, 좁은 공간에서도 두 사람은 충분히 빛나고 있었다.

역시 익숙한 곡이라 좋네.

브리즈처럼 가창력은 필요하지 않지만, bpm이 빠르고 노래와 동시에 춤도 춰야 해서 부르는 사람은 힘들겠지.

아이돌은 어지간한 운동선수보다 체력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미소도 그렇지만, 진이처럼 약한 여자애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울린다.

응원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이해가 간다.  

“휴. 어땠어?”

“잘 나온 거 같은데?”

춤도 번갈아 가며, 작게 작게 춰서 그런지 둘 다 숨도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있었다.

“한 번만 찍어도 되겠어?”

“네. 원래 원 테이크 컨셉이니까요. 오빠 시간 많이 뺏을 수도 없고.”

나? 난 괜찮은데. 백수니까.

“그럼, ‘네버러브’ 한 번 더 해볼래? 사실 어레인지 버전도 준비했거든.”

“어레인지 버전? 들어봐도 돼요?”

전체적으로 좀 더 화려하게, 피아노에 힘을 준 어레인지.

2절로 넘어가는 간주 중엔 피아노 애드립도 들어간다.

어레인지 버전을 원곡 가수 본인에게 들려주는 데에는 의외로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발가벗고 피아노도 쳤는데, 그 이상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내 연주를 두 사람은 흥얼거리면서 듣고 있었다.

“……어때? 너무 피아노 중심이라 팬들은 싫어할까?”

“전 좋은데요? 아예 카메라도 피아노랑 선후 오빠한테 포커스를 맞춰서.”

“그럼 우린 춤 빼고 오빠 옆에 앉아서 노래만 맞출까?”

진이와 미소는 내 어레인지 버전을 들어보더니 척척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를 중심으로 찍는다고?

그거야말로 팬들이 성내지 않을까?

“오빤데 뭐 어때.”

난 네 오빠지 진이 오빠는 아니잖아.

“괜찮아요. 이 정도로 불탈 팬은 이제 남아있지 않으니까.”

아~.

스프링은 왠지 이상한 스캔들에 자꾸 휘말리니까.

남아있는 팬들은 그만큼 멘탈이 단련됐다는 건가.

슬프네.

“오빠, 여기 앉아도 돼요?”

“그럼 난 여기.”

피아노 의자의 왼쪽엔 진이, 오른쪽엔 미소.

물론 가운데엔 나.

으음…….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나야 좋지만.

“괜찮아요. 문제 되는 장면은 회사에서 편집해줄 테고.”

“정 안 되겠으면 그냥 빼겠지 뭐.”

그런가?

“책임은 회사가 질 테니까, 오빠는 연주에만 집중해주세요.”

진이가 그렇게까지 호언장담하면 나도 할 말은 없다.

어차피 나는 피아노만 쳐주는 거고.

주인공은 미소랑 진이니까.

“그럼 찍을게요. 하나, 둘.”

셋.

‘네버러브’의 어레인지 버전.

스프링의 최고 히트곡이고 나도 좋아하는 노래라, 원곡을 망쳤단 소리 듣지 않으려 특히 신경 썼다.

양옆으로 미소녀 아이돌이 앉아있긴 하지만, 연주에 집중하다 보면 그것조차 잊어버린다.

……잊어버린다. 분명 잊어버릴 터.

그런데 왜, 내 허벅지에 손을 올리는 거지, 진미소?

너 진짜 그러다 큰일 난다니까.

회사 사람들이 편집하다 오해하면 어쩌려고 그래? 오해도 아니지만.

『왜 너 같은 남잘 만나서─ 내가 이렇게 힘들어──』

……어라?

이건 미소가 아닌데?

진이 목소린데?

분명 왼쪽이 미소, 오른쪽이 진이.

아니지, 반대였나?

그럼 이건 진이였나? 처음부터?

혼란스럽다.

진이가 왜 나한테 이런 유혹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지.

아니, 그런 게 아닐 거다.

노래에 집중하다가 자연스럽게 편한 자세를 취한 것뿐이겠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진이는 노골적으로 내 허벅지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안 돼. 피아노에 집중할 수가 없다.

이제 중요한 애드립 파트인데.

내 실력으론 완전히 집중해도 어려운데.

……피아노에 집중하자.

어린애가 장난치는 거잖아.

이런 유치한 방해 공작에 흔들려선 안 돼.

윽. 잠깐!

안쪽으론 들어오지 마!

……결국 피아노를 어떻게 쳤는지도 모르게 곡이 끝나버렸다.

촬영이 끝나고 미소와 진이는 소곤대며 영상을 확인하고 있지만, 나는 피아노에 계속 앉아있어야 했다.

서버렸기 때문이다.

영상에 찍히진 않았을까? 각도상으론 괜찮다고는 생각하는데.

미소랑 진이가 확인하니까 문제가 될 만한 게 있으면 빼겠지.

하…….

진이의 의도는 뭘까.

나와 미소와의 관계를 알고 있다면 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냐?

아니면 둘이 친한 건 겉모습뿐이고 속으론 앙숙이야?

으으. 무서워서 파고들 수가 없다.

“응. 멋있게 잘 찍힌 거 같아.”

“문제 될 건 없었어요, 오빠.”

생글생글 웃는 진이를 보며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낀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육식동물을 앞에 둔 듯한 감각.

……이렇게 작고 귀여운 아이가?

“휴. 그럼 이제 다 된 거네?”

“아니. 아직 하나 더 남아있어.”

“하나 더? ‘브리즈’랑 ‘네버러브’, 두 개 아니야?”

내가 빼먹은 게 있었나?

“오늘 도와준 오빠를 위해 특별공연을 준비했어요!”

“특별공연?”

의아해하는 나를 두고 미소가 폰에서 음악을 재생한다.

‘네버러브’의 원곡 버전이었다.

뭔진 몰라도 뭔가 보여줄 모양이다.

나는 자세를 고쳐앉았다.

“촬영 금지! 발설 금지! 만지는 것도 안 되고 눈으로만 보기!” 

전주 중에 미소는 포즈를 잡으며 나를 흉내 내듯이 그렇게 선언했다.

“선후 오빠, 거기 앉아서 잘 보세요. 오빠만을 위한 공연이니까!”

진이도 포즈를 잡으며 말했다.

스프링 멤버 두 사람의 나만을 위한 공연인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 걸까.

노래가 시작됐지만 두 사람은 입만 벙긋거릴 뿐.

노래는 전부 녹음으로 때우는 립싱크였다.

대신 이번에는 노래보다 안무에 집중했다.

방안에서 보이는 화려한 퍼포먼스.

역시 현역 최고의 아이돌이다.

좁은 공간을 활용해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낸다.

촬영이 아니라 그런지 두 사람의 퍼포먼스는 더욱 자유로웠다.

나도 피아노를 안 치고 공연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더 좋았고.

나는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무대에 빨려 들어갔다.

노래는 2절로 넘어가기 전, 간주에 들어갔다.

“오빠! 여기서부터가 진짜야!”

“잘 보세요, 선후 오빠!”

두 사람은 춤을 멈추고, 주섬주섬 옷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설마.

“와! 뭐 하는 거야!”

몰래카메라라도 하는 거겠지.

안에 작은 수영복이라도 입고 있겠지.

그런 내 생각은 틀렸다.

요즘 애들의 까진 정도를 우습게 봤다.

두 사람이 의상 상의를 벗어 던지자, 정말로 맨가슴이 튀어나왔다.

“원래 여기까지는 계획에 없었지만, 오빠도 보여줬으니까!”

“답례의 서비스에요. 오빠!”

가슴뿐만이 아니었다.

미소와 진이는 치마와 속바지, 그리고 그 안에 입는 작은 팬티까지도 벗어버렸다.

털 하나 없는 반들반들한 그곳이 나란히 드러났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오빠! 눈 감지 말고 잘 보라니까!”

“이런 공연 어디 가서 못 봐요, 선후 오빠.”

함정인가?

이래놓고 진짜로 보면 ‘오빠가 진이한테 그럴 줄 몰랐어’하면서 미소한테 원망받는 패턴인가?

“아이참! 오빠! 눈! 떠!”

미소가 손으로 내 눈꺼풀을 벌린다.

억지로 내 눈을 뜨게 만들었다.

눈앞에는 미소의 가슴이 흔들리고 있었다.

멋지다.

“선후 오빠. 미소만 보지 말고 저도 좀 봐주세요.”

내 어깨를 짚고 춤추는 진이.

자연히 내 시선은 그리로 이동했다.

옷을 입고 있을 때도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벗겨놓으니 진이는 생각보다 더…… 어린애 체형이었다.

가슴은 없고 갈비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마른 몸매.

배덕적이다.

밥은 먹고 다니는 걸까?

보고만 있어도 미안해지는 몸이었다.

이유도 없이 죄책감을 느끼고 만다.

『너 같은 bad boy─ 내 인생에서 꺼져줘─』

미소가 내 뺨을 치는 시늉을 한다.

물론 진짜로 치진 않았다.

하지만 가슴은 흔들린다.

출렁, 출렁, 하면서.

아프지 않을까.

미소 몸에 알몸으로 춤추는 건 힘들 거 같다.

『너 같은 쓰레기는 이제 필요 없으니까─』

이번엔 반대쪽에서 진이가 내 뺨을 친다.

물론 진이도 치는 척만 할 뿐이다.

가슴은……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릴 가슴이 없었다.

꼭지만이 콕 도드라져 보일 뿐이었다.

알몸으로 춤춰도 힘들진 않겠지만. 음.

……서글픈 빈부격차여.

『이제 다시 시작해── Without you, Never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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