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256)

인간 황수아 이야기 

어느 연극배우 부부가 있었다.

이름도 날리지 못하고, 어딘가 구석진 무대에서 연기하는 엑스트라 연극배우.

가난한 두 연극배우는 결혼해서 한 명의 딸을 낳았다.

딸의 이름은 황수아였다.

황수아의 부모는 딸을 배우로 키우고자 했다.

여느 부모가 그렇듯, 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에게 강요했다.

다행히도 수아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이 바닥에서 얼굴이 귀여운 아이는 사막의 모래알만큼이나 있지만, 참을성이 있고 감정표현이 되는 아역배우는 보석보다 귀했다.

천사처럼 귀여운 얼굴에 보는 사람도 울려버리는 눈물 연기.

촬영을 함께한 배우는 누구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아는 방송계에서 ‘아역배우’하면 떠오르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부모는 욕심을 냈다.

자신들의 한을 푸는 것처럼, 수아에게 끊임없이 일을 시켰다.

아버지는 매니저처럼, 어머니는 기획사 사장처럼.

수아에게 붙어서 끊임없이 일을 시키고, 끊임없이 돈을 벌게 했다.

수아의 부모는 황수아의 1인 기획사를 차렸다.

기획사와 나누는 돈조차 아깝다는 것처럼.

어린 수아는 아무것도 몰랐다.

오직 부모가 시키는 대로 연기를 하고, 사진을 찍고, 방송에 나오고.

엄마가 전화로 일정을 조율하고, 아빠가 운전하고.

수아에겐 그냥 그 모든 게 당연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성인이 된 후.

황수아는 어렸을 때 천사 같은 외모 그대로 성장해, 연기력까지 갖춘 근본 여배우가 되었다.

어렸을 적 얼굴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으니 성형 의혹을 가장 안 받는 여자 연예인으로 꼽혔다.

부모의 철저한 관리 덕분에 스캔들은 연기조차 나지 않았다.

너무 완벽해서 무서운 배우 황수아.

까고 싶어도 깔 거리가 없는 황수아가 완성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수아는 부모의 관리를 받고, 용돈을 받아 쓰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별다른 취미도 일탈도 없이 생활했다.

황수아에게는 그게 너무나 당연했다.

하지만 그런 당연한 일상에 돌을 던지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야~ 수아 씨 진짜 대단하네. 건물 올렸다며?”

건물?

말을 걸어온 남자배우는 별로 소문이 좋지 않으니 가까이하지 말라고 부모가 말했었지만, 그가 한 이야기에는 흥미가 있었다.

“재벌이야 재벌. 그 나이에 100억짜리 빌딩이라니. 이제 그만 은퇴해도 되는 거 아냐? 혹시 투자할 데 찾고 있으면 내가 알려줄까? 좋은 소스 있는데.”

100억.

경제 관념이 없는 수아로서도 그게 얼마나 큰 돈인지는 알았다.

“뭐야. 본인도 모르고 있었어? 아~ 수아 씨 돈 관리는 부모님이 하시지?”

그러면서 남자는 스마트폰으로 연예 기사를 검색해 수아에게 보여주었다.

뉴스에는 배우 황수아가 100억대 빌딩의 건물주가 되었다며, 연예인의 부동산 투기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도 담고 있었다.

수아로서는 모든 게 금시초문이었다.

“수아 씨. 돈 관련해서는 원래 부모도 믿는 거 아니야. 지금이라도 변호사 알아보고 챙길 수 있는 건 챙겨. 내가 잘 아는 변호사 소개해줄까?”

수아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유명 연예인의 가족이 해당 연예인을 이용해 돈을 갈취했다는 뉴스는 본 적이 있지만, 자신이 그 당사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쯧쯧. 그렇게 어릴 때부터 소처럼 일하더니. 부모 좋은 일만 시켰네.”

남자의 비꼬는 말이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이런 문제는 항상 부모와 상담해서 해결했었는데, 이번엔 그 부모가 문제의 원인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무작정 부모님을 만나 따졌다.

“다 수아 너를 위해서 그런 거야.”

틀에 박힌 듯한 변명에 환멸이 났다.

“그렇게 나 착취해서, 건물 올려서 좋았어? 지금까지 나 이용해서 얼마나 벌었어?”

인생을 맡겨온 부모님의 배신.

황수아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앞뒤도 따지지 않고, 부모가 상처받을 만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

그러다 아버지에게 뺨을 맞고 황수아는 그 자리를 뛰쳐나왔다.

수아는 휴대폰도 버리고 하루 꼬박 잠적했다.

그게 황수아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었다.

……그런 부모자식 간의 진흙탕 싸움은 어이없이 끝을 맞이했다.

과속, 과로로 인한 졸음운전.

그게 부모의 사망 원인이었다.

연락이 닿지 않는 수아를 찾느라 내내 쫓아다녔던 부모님.

그러다 수아가 어느 호텔에 묵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급히 달리다 사고가 났다.

너무나도 어이없는 결말에 넋을 놓아버린 황수아에게 변호사가 찾아왔다.

죽은 부모님이 고용한 변호사는 황수아의 재산에 관해 설명했다.

새로 올린 빌딩도, 곧 이사할 아파트도, 아버지의 차도, 주식도, 땅도, 소속사 건물도.

처음부터 황수아 명의로 돼 있었다.

부모님의 사망보험금까지도.

사망보험금을 제외하면 부모에게서 받을 재산은 거의 없었다.

처음부터 부모가 수아에게서 갈취한 재산 따윈 한 푼도 없었던 것이다.

검소하게 생활한 건 수아만이 아니었다.

검소한 건 부모의 성정이기도 했다.

“다 수아 너를 위해서 그런 거야.”

아무것도 몰랐던 수아를 위해 재산을 모으고 건물을 올리고.

가난에 시달렸던 부모의 괴로운 경험을 딸은 겪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수아는 부모의 마음조차도 몰랐다.

“그렇게 나 착취해서, 건물 올려서 좋았어? 지금까지 나 이용해서 얼마나 벌었어?”

그런 게 부모님과의 마지막 대화라니.

허무함에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건물도 재산도 필요 없었다.

그냥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됐는데.

하지만 후회해도 모든 게 늦어버렸다.

“이야~ 수아 씨, 너무 상심하지 마. 응? 전화위복이라잖아. 이 기회에 우리 소속사로 옮기는 거 어때? 조건 잘 맞춰줄게.”

사람의 불행을 뜯어먹는 하이에나 같은 남자.

이 남자의 말을 들었다가 이런 일을 당했다.

아니. 이 남자의 탓이 아니다.

자신의 무지.

그리고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흥분해서 화부터 낸 자신의 잘못이었다.

귀를 열고 부모님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들었으면.

하다못해 다른 누군가와 상담이라도 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다.

평생 자신을 이끌어준 부모를 믿지 않고 이런 남자의 말을 믿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이 남자를 원망하는 건 번지수를 잘못 짚는 거다.

황수아는 그 남자를 원망하는 것조차 그만두었다.

“수아 씨. 정신 차려.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하루아침에 천애 고아가 된 황수아.

그런 수아를 챙겨준 건 선배 배우 임신혜였다.

부모의 장례를 치르는 3일 내내, 넋을 놓아버린 수아를 대신해 임신혜는 상주 노릇을 했다.

사실 그녀가 그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

얼마 전에 함께 드라마를 찍긴 했지만 혈연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무수히 많은 연예계 선후배 중에 한 명일 뿐.

하지만 후배의 큰일에 연예계 대선배가 스스로 나서서 굳은 일을 하는데, 굳이 입을 댈 사람도 없었다.

손님을 받고, 인사를 드리고, 명복을 빌고.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만 같은 후배에게 임신혜는 끊임없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슬플 땐 울어. 속에 있는 걸 털어놔. 안 그러면 병 생겨.”

수아는 울지 못했다.

눈물의 여왕이라고 불리던 배우 황수아가.

정작 부모님의 장례식에선 울지 못했다.

그 눈물조차 연기라는 생각에, 울지 못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일상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 일상은 수아가 알던 일상이 아니였다.

거기에 부모님은 없었다.

일단 부모님이 미리 계약해둔 일만이라도 어떻게든 쳐내려고 했다.

스스로 전화를 받고, 스스로 운전을 하고.

변변한 소속사도 없이, 매니저도 없이.

그런 수아를 보다 못해 손을 내미는 사람도 있었지만 수아는 손을 잡지 않았다.

수아는 인간불신에 빠졌다.

배우 본인과 연락도 제대로 되지 않고 연기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동정심에 눈감아 줬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

팔리지 않는 배우를 동정심만으로 써줄 사람은 없다.

일은 줄고 몸값도 내려갔다.

황수아의 시대는 끝났다고들 했다.

황수아는 그래도 괜찮았다.

집도 있고 재산도 있다.

죽을 때까지 써도 다 못 쓸 만큼 있다.

그러던 중에 공인중개사에서 전화가 왔다.

부모님이 미리 계약해둔 아파트가 비었으니 이제 입주해도 된다고 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우울한 생각만 드는 이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새집은 혼자 살기에는 너무 큰 집이었지만 이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황수아는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다.

버릴 물건이 없었다는 게 맞겠지.

부모의 소유물은 정말 별것도 없었다.

수아의 물건이라면 어렸을 때 덮고 자던 유아용 이불조차 보관하고 있으면서.

당신들의 물건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나 검소한 부모님이었다.

“수아는 최고의 배우가 될 테니까 이런 것도 다 기념품으로 남겨둬야 해.”

그런 부모님이었다.

그런 부모님에게, 나는…….

“엄마는 수아가 엄마 대신 최고의 여배우가 되는 게 꿈이야.”

어렸을 적 덮고 자던 이불을 보자, 잠자리에서 엄마가 도닥이며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수아는 이불을 안고 밤새 울었다.

막혀있던 눈물샘이 터진 것처럼, 밤새 울었다.

이사는 했다.

하지만 이삿짐은 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하고, 그저 새집에 방치하고 있었다.

어렸을 적 그 이불만을 꺼내, 거기서 잠만 잤다.

만약 그 사람이 짐을 풀어주지 않았으면 평생 그대로였겠지.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돌아가지도 못하고.

선후가 가져온 단출한 아침밥에선 아빠가 만들어준 밥을 떠올렸다.

바쁠 때도 밥은 꼭 챙겨 먹어야 한다며, 차 안에서 급하게 만들어준 인스턴트 음식의 맛.

딸을 걱정하는 아빠의 마음을 떠올렸다.

수아는 선후 앞에서 부끄러운 것도 잊고 펑펑 울어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자신에게 꿈을 맡기고 간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 * *

잠에서 깬 수아는 선후가 이미 떠난 걸 알았다.

아직도 수아의 곁에는 선후의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쓸쓸하기만 한 집안에서 오랜만에 느낀 사람의 온기였다.

소파 앞 테이블에는 선후가 가져다준 커플 선인장이 있었다.

“후훗.”

왠지 귀여워서 쿡쿡 찔러본다.

“선후 씨.”

한쪽 선인장의 이름은 이미 선후로 정해져 있었다.

물론 다른 한쪽은 수아였다.

한 쌍의 선인장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수아는 임신혜 선생님과 그 아들 선후에게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은혜를 느꼈다.

대체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

돈도 물건도 필요 없을 텐데.

“응?”

문득 수아는 선후가 앉아있던 자리에 무언가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이게 뭐지?”

검은색의 작은 비닐 포장지를 주워 들여다본다.

“…….”

0.01mm, XXL.

콘돔이었다.

선후가 급하게 집을 나설 때, 엄마 임신혜가 억지로 선후의 주머니에 챙겨 넣어준 거였다.

하필이면 선후는 그걸 수아의 집에 떨어뜨리고 간 것이다.

“…….”

수아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선후도 남자다.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오면서 아무 생각도 없이 올 리가 없었다.

오히려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은 수아가 너무 순진한 거겠지.

수아는 선후가 자신을 그런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그런데 자신은 그런 선후를 앞에 두고 쿨쿨 잠이나 자다니.

참기 힘든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선후에게 은혜를 갚을 방법을 알아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나와 나의 피아노 연탄(連彈) 

『선후 너, 수아 씨한테 무슨 짓을 한 거니?』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는 대뜸 그렇게 말했다.

“무슨 짓? 아무 짓도 안 했는데?”

하늘에 맹세코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다.

혹시 수아 씨 자는 사이에 내가 이상한 짓이라도 했다고 착각했나?

나는 담요를 덮어줬을 뿐인데.

내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누웠을 때 약간 서긴 했지만.

그것도 열심히 참아서 50% 미만으로 억누른 거다.

그 이상은 불가항력이었다. 사람의 힘으로 조절할 수 없는.

나는 억울하다.

『그럼 수아 씨가 왜 그러지?』

“뭐가?”

『수아 씨가 우리 기획사에 들어오고 싶다지 뭐니. 전에는 오라고 해도 안 오더니.』

“그래?”

연예계 사정에 어두운 나로선 솔직히 관심 없는 이야기였다.

기획사를 옮겼다느니 하는 이야기.

그게 그렇게 큰일인가 싶기도 하고.

내가 이상한 짓을 했다고 오해한 게 아니라면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겠지.

『선후랑 만나고 나서 수아 씨가 많이 밝아졌어. 연기도 좋아졌고.』

“응. 그러네. 윽.”

『앞으로도 선후가 신경 좀 많이 써줘. 알았지?』

“알았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할게. 윽.”

엄마와의 전화를 끊고서.

나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누나…….”

피아노 의자 아래에 누나가 있었다.

엄마와 통화하는 그 짧은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누나는 거기 들어가 내 자지를 빨고 있었던 것이다.

“수아 씨가 누구야?”

“아…….”

누나는 눈을 치켜뜨고 물었다.

왠지 전에도 이런 대화를 했던 것 같은.

뭐라고 대답하지?

“여자 친구?”

“그런 거 없어.”

“흥.”

“윽.”

내 대답에 누나는 흥미가 없어졌다는 듯이 다시 자지를 빨기 시작했다.

“……누난 내가 여자 친구 생기면 화낼 거야?”

나는 조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누나에게 물었다.

엄마와 누나, 미소와 동시에 관계를 맺는 이상, 언젠가는 거쳐 가야 할 일이었다.

“화? 화낼 게 뭐 있어?”

누나는 입에서 자지를 빼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네 여자 친구를 죽이고 너도 죽이고 나도 죽으면 되지.”

“어…….”

자지가 죽어버렸다.

“쫄긴. 농담이거든.”

“……누나. 하나도 안 웃기니까 그런 농담 하지 마.”

누나라면 진짜로 할 거 같단 말이야.

숨이 멎어버린 자지를 살리기 위해 누나가 자지에 인공호흡을 했다.

다행히 자지는 다시 살아났다.

아마 정말 여자 친구가 생기더라도 누난 별 신경 안 쓰겠지.

그게 원인으로 누나랑은 이제 이런 짓 안 하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은.

하지만 엄마나 미소와의 관계를 알면 어떻게 될까.

이쪽은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 어떡하지.

들키면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나.

“야. 진선후. 너 외국인 좋아해?”

“외국인? 웬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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