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55/256)

어느 창녀의 이야기 

어렸을 때 나는 프로 골퍼가 꿈이었다.

정확하게는 내 꿈이 아니라 부모의 꿈이었지만.

그래도 부모의 기대를 등에 업고, 나름대로 노력했다.

초등학생 때 골프 주니어로 활약해 중학교도 골프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들 중에서는 꽤 전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애를 만나기 전까진.

진소영.

지금은 골프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된 여자다.

하지만 그런 진소영에게도 주니어 시절은 있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하필이면그 진소영이 2살 아래 신입생 후배로 들어왔던 것이다.

진소영은 압도적이었다.

나보다 2살이나 어린데도 불구하고, 비거리도 정교함도 나랑은 비교가 안 됐다.

아. 이런 애들이 프로가 되는 거구나.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 수 있었다.

그런 진소영을 보고 좌절한 또래 애들은 하나둘씩 골프를 그만뒀다.

하지만 나는 그만둘 수 없었다.

그만두려고 했지만 부모가 그만두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나는 꾸역꾸역 골프를 쳤다.

자신의 한계 따윈 벌써 알고 있었지만 나는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가 그렇게 시켰으니까. 그리고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줄 몰랐으니까.

고등학교 시절은 안 좋은 기억밖에 없다.

그즈음 내 부모는 매일 같이 싸워댔다.

아빠 회사가 흔들리면서 생활비가 줄어들었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던 엄마는 화를 냈다.

그러던 중에도 나는 골프를 쳤다.

골프는 나의 도피처였다.

골프만 치면 다른 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골프만 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나는 골프만 쳤다.

매일 화를 내던 엄마가 집을 나가도.

아빠 회사가 부도가 나도.

살던 집을 팔고 셋방으로 이사를 가도.

나는 계속 골프를 쳤다.

나에겐 그거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몰랐지만, 이때 아빠는 빚을 내서 나에게 골프를 시키고 있었다.

골프는 돈이 드는 스포츠다.

옷도, 용품도, 골프장 이용료도, 캐디비도.

내가 움직일 때마다 돈이 들어갔다.

어쩌면 기사회생의 가능성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진소영처럼, 고등학생 때 프로가 되어 일확천금을 벌었더라면.

그럼 아빠를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게 아빠의 마지막 희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프로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아빠는 자살했고.

나는 골프를 그만두었다.

우습게도 골프를 그만두고 나서야 나에게 스폰서가 붙었다.

골퍼로서의 스폰서가 아니다.

김은하라는 여자에 대한 스폰서였다.

학생 시절부터 나를 눈여겨본 기업의 어떤 분이 제의를 해왔다.

매주 한 번씩 남자를 상대하라고.

그럼 살 곳과 돈을 주겠다고.

나는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평생 부모에 의지해 골프만을 쳐온 나는 혼자 서는 법을 몰랐다.

부모가 떠난 뒤 나에게 남은 건 여자의 몸뿐이었다.

나는 김은하라는 이름도 버리고 슬기라는 예명을 얻었다.

그 후 나는 매주 남자에게 안겼다.

기업의 높으신 분이나 거래처 아저씨들, 가끔 정치인 같은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이 아빠뻘이거나 그보다 늙은 남자들이었다.

그렇게 1년, 2년.

시간이 지나면서 스폰서 기업에 문제가 터졌다.

내가 했던 성 접대를 포함해 온갖 비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모기업은 망하고 스폰서는 끊겼다.

그때까진 나도 아직 젊었다.

모아둔 돈도 있었으니 손을 씻고 새 출발 하기에는 적기였겠지.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할 줄 아는 것도, 배운 것도 없는, 몸 밖에 없는 여자였다.

내가 다음에 흘러 들어간 곳은 오피스텔.

성매매 업소였다.

거기서 나는 다양한 남자와 더 자주 상대했다.

이미 경험이 있으니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남자를 상대하는 건 익숙했고, 여기선 최소한의 룰은 있었다.

말로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고, 몸으로 상대해주면 끝.

오히려 스폰을 받던 시절보다 돈은 더 벌 수 있었다.

나에게 진심으로 다가오려던 남자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몸으로 시작된 관계.

나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렇게 또 1년, 2년.

시간이 지나던 어느 날.

“은하 선배!”

목소리만 들어도 알았다. 

진소영이었다.

이른 아침 퇴근길에 마주쳤다.

길 한복판에서, 새빨간 페라리를 타고, 진소영은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당황했다.

진소영을 만날 줄도, 진소영이 나를 알아볼 줄도, 아는 척할 줄도 몰랐으니까.

나와 같은 세계에 있었던 건 단지 중학교 때 1년뿐이었는데.

왜 아직도 나를 선배라고 부르는 거야?

이제 다른 세계의 주민이 됐으면서, 왜 아는 척하는 건데?   

“선배 미안, 나 지금 바빠서. 번호만 좀 찍어줘.”

옆에서 ‘진소영이다’ 하는 말이 들렸다.

나는 얼떨결에 진소영이 내민 휴대폰에 내 번호를 눌렀다.

“나중에 연락할게!”

그리고 새빨간 페라리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와 똑같이 골프밖에 모르고 골프만 치던 진소영.

하지만 도착점은 나와 정반대였다.

진소영은 세계 최고의 자리에, 나는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그 빨간 페라리는 마치 나와 진소영의 신분차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연락한다곤 했지만 진짜 연락이 올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 ‘나중에 얼굴 한번 보자’같은 인사치레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나는 진소영의 인생에 스쳐 지나간 수많은 엑스트라 중 한 명일 테니까.

하지만 전화가 왔다. 진소영에게서.

『선배, 뭐해?』

안 바쁘면 우리 만나.

마치 평소에도 늘 보던 사이처럼 편안한 말투.

그래. 넌 그런 애였다.

주변이 뭐라 하든 남의 눈 신경 안 쓰는 마이웨이.

진소영은 나이를 먹어도 변함이 없었다.

대체 그 진소영이 뭘 하려고 나를 불러내는 건가 궁금했다.

약속을 잡고 진소영을 만났다.

“선배는 요새 뭐해?”

당연히 근황 이야기가 나오고.

“몸 팔아. 나 창녀 됐어.”

그 바보 같은 표정이라니. 하하하.

진소영의 그런 표정 본 건 아마 세상에 나밖에 없을 거다.

“어, 쩌다가?”

물어봤으니 들을 각오는 됐겠지?

나의 신세 한탄 대서사시를.

고등학교 때 아빠 사업이 힘들어지고, 엄마가 가출하고.

졸업 후에 아빠 사업이 망하고, 아빠는 자살.

스폰 받고 몸 팔다가, 그 회사도 망하고.

그 뒤론 현재까지 오피에서 창녀짓 중.

어때. 이제 속이 후련해?

선배랍시고 큰소리치던 여자가 몰락한 꼴을 봐서?

“선배. 왜 나한테 연락 안 했어? 적어도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만이라도 알려줬으면…….”

내가? 너한테? 어째서?

나는 몰락한 내 처지가 부끄러워서 그전까지 알고 지낸 인연을 전부 끊어버렸다.

진소영과는 중학교 졸업 후 이미 연락하지 않고 있었고.

물론 연락처를 알려면 알 수는 있었겠지.

하지만 연락해서 어쩌게.

도와달라 하라고?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 안 한 옛날 후배한테?

난 그런 말 못 하네.

차라리 몸을 팔지. 죽었으면 죽었지.

“선배는 바보네. 진짜 바보야.”

그래. 나 바보다.

똑똑했으면 벌써 죽었을 텐데.

바보라서 이렇게까지 하면서 산다.

“만약 선배가 성공하고 내가 망해서 도와달라고 했으면 선배는 안 도와줬겠어?”

내가? 진소영을 도와줘?

가정이라곤 해도 상상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마 도와줬겠지.

가엾은 후배를, 잘난 선배가, 도와줬겠지.

“선배는 그 일 계속 하고 싶어? 아니면 따로 하고 싶은 일은 없어?”

왜. 가게 차린다고 하면 돈이라도 빌려주게?

“선배 말 들어보고. 가망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난 몸 파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데.

문득 머리에 떠오른 건 왁싱샵이었다.

별로 그전부터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바로 어제, 같이 일하는 언니한테 이야길 들어서 떠올랐을 뿐이다.

자긴 돈 모으면 왁싱샵 차려서, 멀쩡한 남자 하나 물어서 시집갈 거라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도 할 수 있는, 그럴듯한 일이라고.

그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뿐이다.

“좋네. 나도 받아보고 싶었는데. 그럼 하나 차려. 건물은 내가 빌려줄 테니까.”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히 진소영은 그렇게 결정했다.

그리고 몇 군데 전화를 돌리더니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켰다.

3년간은 무상임대. 그 뒤엔 재계약.

조건은 거의 없지만, 성매매나 그와 유사한 행위만은 금지.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그 비싼 상가의 무료 임차인이 되었다.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뭐니?”

“이유? 중학교 땐 선배가 나 많이 도와줬잖아.”

남자 선배들한테서 지켜주기도 했고.

──남자들이 여자 후배 꽁무니 쫓아다니는 게 열 받아서 그랬을 뿐이다.

성희롱하던 선생이랑 싸워주기도 했고.

──대놓고 편애하던 선생한테 나도 대놓고 욕한 것뿐이다.

나 컨디션 좋은 날 알려주기도 했고.

──‘소영이 너 뭐 좋은 일 있니? 오늘 왜 이렇게 잘 쳐?’

너무 잘 쳐서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 했던 것뿐이다.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선배한텐 아무것도 아니었을지 몰라도, 난 선배한테 도움 많이 받았어.”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그래. 진소영. 넌 그런 애였지.

주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내 갈 길 가는.

너는 정말 하나도 안 변했구나.

하지만 소영아, 나는 변해버렸어.

난 니가 알던 그 선배가 아니야.

후배의 순수한 호의조차 비꼬아 들을 정도로.

이렇게 성공해서 턱 하니 도와주는 너를 오만하다 생각할 정도로.

내가 잃어버린 행복한 가족을 가진 너를 질투할 정도로.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는데, 모든 걸 가진 너를 원망할 정도로.

이런 자신이 너무 비참해서, 너를 죽이고 나도 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변해버렸어.

* * *

나는 진소영의 권유에 따라 오피 일을 그만두었다.

실장은 말렸지만 문제는 없었다. 빚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샵 인테리어를 꾸미면서 동시에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다녔다.

자격증은 쉽게 땄다. 돈만 주면 따는 거니까.

샵을 오픈하고, 직원을 뽑고, 적당히 일한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에는 어떻게든 진소영에게 한 방 먹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아는 것도 없고, 뭘 어떻게 해야 진소영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을지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몸 밖에 없는 바보 같은 여자. 그게 나니까.

어차피 진소영에게 나는 개미 같은 존재다.

길을 가다 개미가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걸 보고 건져내 준 것뿐.

겨우 그 정도 일이다.

그 개미가 손가락을 물어도, 진소영은 신경도 쓰지 않겠지.

그렇게 목표도 없이, 의욕도 없이,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사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에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선배, 내 남동생이 갈 거야. 좀 아프게 해도 되니까 확실하게 뽑아줘.』

의외였다. 그런 일로 진소영이 일부러 전화까지 하다니.

진소영에게 입양아인 남동생이 있다는 건 아는 사이에선 유명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중학생 때까진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걸 이야기 소재로 삼아 접근한 남자도 있었지만, 진소영에게서 별다른 반응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남동생 이야기를 하는 진소영은 왠지 기분이 좋았다.

진소영도 사람이었다. 가족에게는 최소한의 애정은 있었던 거다.

나는 그 남동생을 조종하기로 했다.

나에게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 여자의 몸을 사용해서.

이거라면 나라는 개미도 진소영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모든 걸 가진 진소영이 소중하게 여기는 걸 빼앗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예약했는데요…….”

진소영의 동생은 진선후라고 했다.

보는 순간 이해했다.

이런 귀여운 남동생이 있으면 그야 진소영이라도 귀여워하겠지.

하지만 동생도 남자다.

남자. 남자는 변하지 않는다.

힐끗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고.

슬쩍 가슴 주변을 보여주고.

살짝 몸을 터치해주면.

단지 그것만으로 남자는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아. 이 여자랑 하고 싶다, 라고.

합법적으로 사람의 몸을 보고 만질 수 있는 이 직업은 남자를 조종하는 데 최적이었다.

동생의 벗은 몸은 멋졌다.

기계체조라도 한 걸까.

거기에 말도 안 되는 대물.

만약 진소영의 남동생이 아니라 남자친구였다면 진심으로 질투할 뻔했다.

하지만 그런 몸에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생은 순진했다.

그것도 지나치게.

온실 속에서 자라기라도 한 건지.

순간 연기가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나는 지금부터 이런 순진한 아이를 유혹하고, 속여서, 골수까지 짜낼 예정이다.

나를 누나의 친한 선배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이 아이를 상대로.

하지만 난 이미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걸레 같은 여자.

양심 같은 게 남아있을 리 없다.

나는 처음 계획대로 일을 진행했다.

이렇게 순진한 남자를 속이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너무나 순조롭게 계획이 성공해버리고 만다고 도중까진 생각했다.

그러나.

“죄, 죄송해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기…….”

나는 충격 받았다.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거절한다고? 왜?

아니, 아직 아니다.

남자는 누구나 똑같다고 생각했지만, 남자가 아니라는 가능성도 있었다.

게이거나 고자거나.

하지만 손으로 해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손으로 해주는 것만으로도 동생은 세상 행복한 얼굴이었다.

정액도 잘만 나왔다.

그럼 뭐야? 왜 거절했어?

“그냥, 그. 왠지 그러면 안 될 거 같아서…….”

왠지 그러면 안 될 거 같아서.

그래서 거절했다고?

남자가? 여자를?

하하. 그래.

물론 그러면 안 되지.

그러면 안 된다는 건 다들 알아.

하지만 안 된다는 걸 알아도,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착실한 남자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적어도 나는 한 명도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까지.

하지만 있었다. 여기에.

바보 같았다.

남자는 어차피 다 똑같다고, 세상 다 아는 것처럼 떠들던 내가.

혼자 비극의 히로인 행세나 하면서 이상한 복수극이나 꿈꾸고 있던 내가, 바보 같았다.

대체 난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건지.

  

세상 유일의 순수가, 더러워진 여자를 정화시킨다.

걸레는 빨아도 걸레다. 그래도.

혼자 좋아하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몸을 팔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나는 자신을 ‘슬기’가 아닌 ‘김은하’라고 소개했다.

그에게만은 창녀 슬기가 아닌, 김은하인 나로서 있고 싶었다.

“또 와. 서비스 잘해줄게.”

그건 26살의 창녀가,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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