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화 (53/256)

왁싱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나는 왁싱샵에 왔다.

누나가 내준 숙제를 완수하기 위해.

사실은 끝까지 버티다 누나한테 한 대 맞고 없었던 일로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미소의 그…… 뭐라 말하기 힘든 플레이 이후, 나는 왁싱을 받기로 결심했다.

솔직히 이제 그런 플레이는 하고 싶지 않았다.

기분은 좋았지만, 정말 좋았지만, 그런 플레이에 빠져버리면 평범하게 사랑을 나누는 행위로는 만족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거기에 빠져서 엄마한테라도 해달라고 하면 아마 엄마는 해주긴 해줄 것이다.

하지만……그래선 안 된다.

뭐든지 해주고 싶어 하는 엄마의 마음을 이용해 내 욕망을 채우는 일 따위……!

……이미 나는 저지르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니까.

엄마의 존엄을 짓밟는 일이니까.

물론 미소한테도 이런 건 이제 안 한다고 단단히 타일러 놓았다.

하지만 미소 성격상 하지 말란다고 안 할 리가 없다. 오히려 하지 말라면 더 하려고 할 게 틀림없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으니까.

그래서, 나는 왁싱을 받기로 했다.

털이라도 없는 편이 조금이라도 깨끗할 테니까.

다음에 또 그런 일을 당할 때를 대비해서.

누나가 소개해준 그 왁싱샵.

그 입구 앞에서 나는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좀 기고만장해졌지만 소심한 성격이 다 나은 건 아니다.

이런 번쩍번쩍거리는 건물은 나랑은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잡아먹는 것도 아닐 텐데, 들어가려고 하면 주눅이 들고 만다.

하지만 이미 예약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마음을 정하고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예약했는데요…….”

화려한 건물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깔끔한 개인병원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 넓지는 않은 공간에 입구 쪽 카운터에는 젊은 여직원이 앉아 있었다.

직원이 아니라 사장인가?

“네, 성함이요?”

화려한 외모에 밝게 염색한 머리.

보기만 해도 위축되는 인싸 느낌의 누님이었다. 

“진선후, 입니다.”

“아! 혹시 소영이 동생?”

젊은 여사장님은 내 이름을 듣자 안색을 바꾸며 무척 반가워했다.

“저, 저희 누나를 아세요?”

“당연히 알지! 내가 중학교 때 소영이랑 제일 친했던 선배거든. 소영이가 너무 잘나가서 나도 선배로서 기가 산다니까.”

그랬구나.

누나한테도 학창시절 지인이 있었다니.

아니, 당연히 있겠지. 나한테는 그런 누나지만 밖에서는 상식적인 사람이니까.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마. 편하게 있어. 소영이한테 동생이면 나한테도 동생이니까. 누나라고 생각해.”

사장 누님이 뻣뻣하게 굳어있는 내 어깨를 팍팍 치며 말했다.

“아, 네…….”

그, 그런 건가? 

친절한 사람 같아서 안심은 되지만, 난 오늘 처음 본 건데.

마치 10년은 사귄 사이처럼 친근하게 대한다.

이상하다. 적응이 안 된다.

“그럼 메뉴는 어떤 걸로?”

“그, 브라질리언 왁싱요.”

메뉴에는 겨드랑이 왁싱이나 전신 누드도 있었지만 그런 건 필요 없겠지.

누나가 하라고 한 것도 이거고.

“브라질리언 왁싱은 앞쪽이랑 뒤쪽만이고, 왁싱은 내가 할 건데, 괜찮지?”

“어, 저, 남자 왁서는 없나요?”

나는 머뭇거리면서도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 왁서한테 알몸을 보이는 건 주눅이 들었다.

이렇게 묻는 것도 소심한 나한테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한테는 사활이 달린 문제니까.

“그게 실은, 원래는 남자친구랑 같이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사장님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헤어진 걸까.

연인끼리 같이 일하다 헤어지면 일도 그만둬야 하니 큰일이네.

“글쎄, 그 인간이 여자 손님 왁싱하는데 몰래 들여다보려다 잡혀갔지 뭐니. 성추행으로.”

“…….”

그만둔 이유가 가관이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거기다 그런 소문이 나는 바람에 단골손님도 다 떨어져 나가고. 덕분에 지금은 이렇게 파리 날리고 있어. 동생 안 왔으면 오늘 저녁도 굶었을 거야.”

“아… 네….”

하긴. 요즘은 그런 문제 터지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니까.

거기다 이쪽 상가는 월세도 천문학적이라 저녁 굶는다는 얘기도 단순한 농담이 아닐지도 모른다.

“장사가 안되니 있던 직원도 내보내고, 새 직원은 고용할 여유도 없고. 사실 손님은 남자든 여자든 대부분 여자 왁서를 선호하니까, 지금은 어떻게든 혼자 하고 있어.”

“아 네…….”

여자 손님은 당연히 여자 왁서를 선호하겠지만, 남자 손님이 여자 왁서를 선호하는 이유는 뭐지?

부끄럽지 않나?

“그래서 왁서는 나밖에 없지만, 여자라고 부끄러워하진 마. 의사 선생님께 진찰받는다고 생각해.”

의사 선생님인가.

하긴. 이분들은 이게 직업이니 남자 알몸 같은 걸 봐도 아무 생각도 안 들겠지.

오히려 여자라고 의식해서 부끄러워하는 게 프로에 대한 모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한테 의사 선생님이라고 하면 윤서아 선생님인데.

……의사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니 더 부끄러워져 버렸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누나가 서비스 잘해줄게. 후회 안 할 거야.”

“서비스?”

털 뽑는데 서비스랄 게 있나?

장난스럽게 윙크를 날리는 사장 누님에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만다.

“자, 그럼 이쪽으로 와.”

사장 누님의 지시에 따라 처치실로 들어간다.

그 방에 딸린 샤워실에서 시키는 대로 몸을 씻으며 나는 고민에 빠졌다.

어쩌지.

난 당연히 남자한테 받을 줄 알았는데.

저녁 굶는다는 말을 듣고 안 받겠다고도 할 수 없고, 결국 이야기가 흘러가는 대로 흘러와 버리고 말았다.

씻으면서도 긴장해서 땀이 나올 정도였다.

분명 후기에는 야한 일은 절대 없으니 이상한 기대는 하지 말라고 돼 있었다.

성매매 업소도 아니고, 당연한 얘기였다.

그런데도 쓸데없는 짓을 해서 성추행으로 신고당하는 손님도 종종 있다고 했다.

후기를 읽을 때만 해도 나는 그런 사람들을 바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데서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하지?

하지만 남자의 마음이란 단순하다.

사장님이 풍기는 야한 분위기에 괜한 기대를 품고 만다.

야한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으려고 해도, 몸이 먼저 반응해버리고 만다.

어떡하지.

지금 미리 한 발 빼놔야 하나?

처치 받는 중에 발기라도 하면 나도 성추행으로 잡혀가는 거 아니야?

누나랑 친한 거 같으니 설마하니 신고는 하지 않겠지만…… 그럼 소개해준 누나의 평가까지 까이게 된다.

……하지만 아무 데서나 자위행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간이 크지 않았다.

결국 나는 어중간한 상태로 샤워를 마친 뒤, 가운을 걸치고 샤워실을 나왔다.

“후. 털만 뽑고 가는 거야. 어렵게 생각할 거 없잖아?”

세차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호출 벨을 눌렀다.

그러자 곧 노크가 들리고 사장 누님이 처치실에 들어왔다.

“동생, 다 씻었어?”

“아…… 네.”

방에 들어온 사장 누님을 보고 당황했다.

위에는 딱 달라붙는 흰색 끈나시만 입고 있었다.

어깨에는 화려한 문신이 눈에 띄었고, 얇은 옷감 위로는 가슴이 도드라져 보였다.

한 마디로 눈 둘 곳이 없었다. 

“작업할 땐 이런 옷이 편하거든. 혹시 보기 불편하니?”

“아, 아니요.”

사장님은 당황하는 내 반응을 보고 웃으면서 도구를 준비했다.

그래. 편한 옷을 입고 작업하는 건 당연하지. 의사 가운 같은 걸 입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나는 제발 작업 중에 발기하지 않기를 빌며 침대에 앉아 기다렸다.

“그럼 가운 벗고 침대에 누워볼래?”

중요 부위의 털을 뽑는 거니까 알몸이 되는 건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벗을 때가 되면 망설여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가운을 벗고 침대에 바로 누웠다.

[발기 게이지 ■□□□□□□□□□ 10%]

다행히 아직 ‘발기’라고 부를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긴장감이 흥분을 억눌러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부디 아무 일도 없이 끝내야 할 텐데.

“그럼 엉덩이 쪽 먼저 할게. 다리를 이렇게.”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가 나는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사장님은 허술한 끈나시 차림이라, 조금만 허리를 숙여도 그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흰색 레이스가 달린 브래지어와 거기에 둘러싸인 가슴골.

그리고 속옷 사이즈가 맞지 않는 건지, 절대 보이면 안 될 그 꼭짓점까지 슬쩍슬쩍 보이고 있었다.

나는 부처님을 찾으며 얼른 고개를 돌렸다.

[발기 게이지 ■■■■□□□□□□ 40%]

“다리는 손으로 잡고 있을래?”

아. 이 포즈는.

미소가 핥아줬을 때와 같은 포즈였다.

아기 기저귀 가는 자세.

자연히 그때의 상황이 떠올라 버리고 만다.

나는 반야심경을 외며 머릿속 음란마귀들을 쫓아냈다.

[발기 게이지 ■■■■■■□□□□ 60%]

“너무 그렇게 부끄러워할 거 없어. 다들 하는 거니까.”

“아… 네…….”

이런 포즈로 안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혹시 누나도 왁싱할 때 이런 포즈를 취했을까?

그 누나가 이런 부끄러운 포즈를…….

앗, 안 돼. 생각하지 마라. 저기가 서버린다.

[발기 게이지 ■■■■■■■□□□ 70%]

“조금 차가울 거야.”

라텍스 장갑을 낀 손으로 엉덩이에 크림 같은 뭔가를 바른다.

엉덩이골 안쪽과 항문 주변까지 구석구석.

야한 일이 아니란 걸 알아도, 민감한 부위에 손이 닿아선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발기 게이지 ■■■■■■■■□□ 80%] 

“이제 왁스 바를게. 이번엔 좀 뜨거워.”

나무 막대기로 뜨끈한 액체를 바른다.

아까와 똑같이 구석구석. 

조금 뜨겁긴 하지만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모근이 굵은 편은 아니라서 그렇게 아프진 않을 거야.”

그, 그건 다행이네요.

나는 다리를 잡은 채 긴장해서 덜덜 떨었다.

주사를 기다리는 어린애 같은 심정이었다.

“자, 뜯습니다~.”

마를 때까지 좀 기다려야 하나 했는데, 생각보다 금방 뜯었다.

찍, 찌익. 찌익.

“옷, 오옷.”

뜯을 때마다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하지만 단번에 털을 뜯어내는 것치곤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 

“자! 뒤쪽은 다 됐어. 생각보다 안 아프지?”

“아…… 네. 생각보다는…….”

정말 생각보단 안 아팠다.

긴장한 탓에 발기도 조금 죽었지만, 뜯어낸 부위에 또 약 같은 크림을 바르느라 다시 조금 살아났다.

[발기 게이지 ■■■■■■□□□□ 60%] 

“그럼 다리 내리고, 이번엔 앞쪽을 할 거야. 이쪽은 좀 더 아프긴 해. 고환 쪽은 민감하기도 하고.”

사장님이 내 자지를 가리키며 설명한다.

으으. 이미 뒤쪽까지 다 보여줬지만 부끄러운 건 부끄러웠다. 자지도 반쯤 서 있고.

“그럼 영양 크림 바를게.”

앞쪽에도 크림을 바르기 시작한다. 

당연하지만 음모는 기둥 자체나 고환에도 나 있다.

그 말은 거기에도 크림을 바른다는 뜻이다.

구석구석 정중하게, 예쁜 누나가 손으로 직접.

참는다고 해서 발기를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발기 게이지 ■■■■■■■■■□ 90%] 

“어, 저, 선생님.”

당황한 나머지 사장님이 아니라 선생님이라고 불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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