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256)

피아노 치는 남자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누나에게 피아노를 치라는 말을 들었던 때부터 치려고는 했었지만 의외로 기회가 나지 않았다.

엉망인 연주를 다른 가족에겐 들려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혼자 있을 때 치려고 했는데, 의외로 내가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은 그리 자주 오지 않았다.

바쁘지 않아? 의외로 다들 한가한 거야?

그러던 중, 오늘은 오랜만에 집에 나 혼자 있었고, 그래서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피아노를 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이제 대학교 2학년이니 벌써 7년이나 지났다.

7년. 7년인가…….

그동안 나는 피아노를 방치했지만, 엄마는 아니었다.

엄마는 바쁜 와중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피아노를 닦았다.

매년 조율사를 불러서 조율을 받는 것도 알고 있다.

치는 사람도 없는데.

계속 방치되어 있는데, 엄마는 피아노를 관리했다.

실은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나는 피아노를 버리려고 했었다.

하지만 엄마가 반대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어느 날 갑자기 피아노가 치고 싶어질지도 모르잖니? 그때 만약 피아노가 없으면 무척 슬플 거야. 그리고 선후가 안 치더라도 나중에 아이들한테 물려줘도 되고.”

이사 와서도 피아노는 내방 한쪽을 줄곧 차지하고 있었다.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치고 싶어할 때를 대비해, 그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날을 대비해, 피아노를 관리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피아노를 친다. 

피아노 뚜껑을 열고 건반 덮개를 벗긴다.

오랜만에 마주한 피아노는 왠지 작아져 있었다.

아니. 피아노가 작아진 게 아니다. 내가 커진 거다.  

손바닥을 펴 본다.

피아노를 치던 시절보다 많이도 커졌다.

도에서 한 옥타브 위의 레까지, 9도가 겨우 닿던 손가락이 지금은 12도까지 닿았다.

그만큼 세월이 많이 지났다는 의미였다.

나는 한 번 이 자리에서, 피아노 앞에서 도망쳤다.

콩쿠르를 준비하던 6학년 때.

나는 압박감을 이기지 못했다.

항상 배우 임신혜의 아들로, 학대받은 아동으로, 장애 아동으로.

모든 일에서 어드밴티지를 받아왔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어떤 일에 실패하더라도 혼나지 않는다.

평범한 성과만 거둬도 대단하다고 칭찬받는다.

엄마한테 입양된 후의 나에게는 그게 당연한 일이 되어 있었다.

피아노도 그랬다.

평범하게 치기만 해도, 대단한 재능이라도 있는 것처럼 엄마는 기뻐했다.

내가 허황된 꿈을 꿀 정도로.

그러나, 콩쿠르는 달랐다.

엄마의 이름도, 장애 여부도, 다른 요소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오롯이 실력으로 평가받는다.

순수하게 내가 연습해서 얻은 성과만을.

아파서, 장애 때문에,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그동안 해왔던 변명들이 통하지 않는다…….

나는 우울했다.

만약에 실패하면,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나라는 인간의 껍데기가 벗겨져 버리면,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아버리면.

내가 진심으로 노력했던 게 사실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다는 결과를 받아버리면…….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내가 노력한 결과를 평가받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사실은 콩쿠르 같은 건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가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 나약함 때문에 나가기 싫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너, 다시는 피아노 치지 마. 한 번만 더 내 귀에 피아노 소리 들리면 손가락 다 잘라버릴 줄 알아. 알았어?’

도망칠 이유만 찾고 있던 나에게, 누나의 그 말은 탈출구가 되어주었다.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되는 아주 좋은 변명거리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누나의 그 말을 마음의 방파제로 삼아 도망쳤다.

콩쿠르에 나가, 무대에서 건반 하나 두드리지 않고 내려와 버렸다.

그런 나를 엄마는 위로해주었다.

엄마 때문이라고, 엄마가 욕심부려서 미안하다고 오히려 사과받았다.

그로부터 7년. 7년이나 지났는데, 누나는 아직도 그 일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지금도 자기가 한 말 때문에 내가 피아노를 그만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에게 차나 시계 같은 걸 자꾸 사주려는 것도, 나와 섹스한 것도, 전부 그 죄책감의 발로일지 모른다.

“후…….”

피아노 앞에서 자신의 죄를 마주한다.

피아노는 내 비겁함의 상징이었다.

쓰레기 같은 나를 떠올리게 해주는 산 증인이었다.

괴롭다. 자신의 비겁함에 신물이 난다.

하지만 마주해야 했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누나를 위해서라도. 미소를 위해서라도.

나는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비겁함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그리고 바뀌어야 했다.

둥.

건반을 두드린다.

7년이나 지각해버린, 혼자만의 콩쿠르를 시작한다.

* * *

어렸을 적 나는, 아무튼 멋있는 걸 좋아했다.

멋있는 차, 멋있는 로봇, 멋있는 전투기.

어쩌면 지금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쇼팽을 좋아했다. 

쇼팽에는 멋이 있었으니까.

쇼팽이라는 이름부터가 멋있었다. 천재라고 불리면서 일찍 요절한 것조차 나에겐 멋으로 느껴졌다. 음악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쇼팽을 좋아했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으로 칠 곡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Nocturne No. 20 in C Sharp minor Op. Posth.

일명 녹턴 20번이다.

영화의 삽입곡으로도 유명하고, 내가 콩쿠르에서 치기 위해 연습한 곡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이 곡은 쇼팽이 자신의 누나에게 헌정한 곡이구나.

나는 이걸 치다가 누나한테 치지 말라고 혼났었는데.

왠지 그 아이러니함에 웃음이 났다.

피아노를 두드린다.

건반 위에서 손가락이 저절로 춤춘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손가락 길이는 달라지고, 7년간 한 번도 피아노를 치지 않았는데, 몸은 피아노를 기억하고 있었다.

피아노도 나를 기억하고 있는지 잘도 소리를 울려주었다.

좋았다.

피아노를 치는 내 몸은 기쁨으로 넘치고 있었다.

아아. 나는 피아노를 치고 싶었구나.

도망친 이후로 칠 용기가 나지 않았을 뿐, 

나는 계속 피아노를 치고 싶어 하고 있었구나.

녹턴 20번이 끝나고, 이어서 엄마가 좋아했던 녹턴 2번, 발라드 1번을 쳐본다.

신기할 정도로 전부 기억이 났다.

전문가가 들으면 욕했겠지만, 콩쿠르장에선 야유받았겠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내가 좋아서 치는 거니까. 아무도 듣는 사람 없으니까.

그래. 치고 싶으면 치면 되는 거다.

듣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들려주면 되는 거다.

남의 평가를 신경 쓰고, 상을 받는지 못 받는지,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그런 건 피아니스트들한테 맡기면 된다.

나는 그냥 치고 싶은 걸 칠뿐.

나는 쇼팽이 되었다가, 베토벤이 되었다가, 드뷔시가 되었다가.

어렸을 땐 잘 치지 못했던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도 쳐보고.

미소와 함께 쳤던 반짝반짝 작은 별이나, 고양이 춤도 쳐보고.

나는 오랜만에, 정말로 오랜만에, 즐겁게 피아노를 쳤다.

눈물이 나는 걸 닦지도 않고.

그 눈물이 떨어져 건반이 미끄러워져도.

그저 울면서, 행복하게 피아노를 쳤다.

* * *

연주를 마치고 나자, 방문 앞에 엄마가 서 있었다.

언젠가 누나가 그렇게 서 있었던 것처럼.

엄마는 손으로 입을 막고 울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나의 하나뿐인 관객에게.

엄마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힘껏 박수를 쳐주었다.

그렇게나 나의 연주가 감동적이던 걸까.

그렇다면 나도 연주한 보람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

이렇게 좋아해 주는 관객이 있다면 나도 이미 훌륭한 연주자가 아닐까.

십만 명의 관객보다 더 소중한, 나의 하나뿐인 관객이었다.

“선후야!”

엄마가 달려와 나를 꽉 끌어안는다.

아아. 이렇게 좋아해줄 줄 알았으면 진작에 칠 것을.

왜 나는 좀 더 빨리 치지 않았을까.

어리석은 자신에게 정말이지 신물이 난다.

“……엄마, 나, 콩쿠르는 못 나가지만, 피아노 쳐도 돼?”

“응응. 되지. 되고 말고, 우리 아들.”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엄마가 안 된다고 할 리가 없는데.

그렇지만 나에게는 필요한 의식이었다.

과거의 나를 벗어나기 위해서.

아직도 7년 전 콩쿠르에 묶여있는 과거의 나를 놓아주기 위해서.

나는 그대로 한동안 엄마에게 안겨 있었다.

* * *

잠시 후, 나는 다시 쇼팽을 쳤다.

이번에는 엄마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엄마는 그런 나를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어렸을 적 선후가 연주하는 걸 찍어놓지 않아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 그때 찍어놨으면 듣고 싶을 때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카메라로 찍는 건 여전히 부끄러웠지만, 쓸쓸하게 말하는 엄마를 보니 찍지 말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최소한 다시 들었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쳤다.

그럭저럭 70점은 되지 않을까.

“어? 오빠, 피아노…….”

때마침 돌아온 미소가 놀라서 소리를 냈지만, 카메라로 찍고 있는 엄마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내 소중한 두 번째 관객의 입장이었다.

“미소도 뭐 듣고 싶은 거 있어?”

치던 곡을 마치고 미소에게 묻는다.

“아무거나 신청해도 돼?”

“내가 칠 수 있는 거라면.”

“으음, 그럼, Spring의 For you!”

그건 미소네 그룹 Spring의 데뷔곡이었다.

크게 히트하지는 못했지만, 데뷔곡인 만큼 애착이 가는 거겠지.

미소의 데뷔 무대를 가족들이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보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에게도 추억의 곡이었다.

“음. 잘 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모든 음을 다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완벽하게 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중요한 건 내가 치고 싶은 걸 치고, 미소가 듣고 싶은 걸 치는 것.

나는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대충 어레인지로 때우면서 피아노를 쳤다.

“난 너를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어어~♬”

후렴구에 맞춰서 미소가 노래를 부른다.

하하.

옛날엔 자주 했었지.

내가 피아노를 치고, 거기에 맞춰서 미소가 노래를 부르고.

미소가 아이돌을 꿈꾸기도 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이야기다.

나는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즐겁게 피아노를 쳤다.

미소도 예전 안무를 떠올렸는지 춤도 추면서 노래를 불렀다.

엄마는 그런 나와 미소를 흐뭇하게 보며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그렇게 너를 위해~ For you~♬ 감사합니다!”

행복한 가족의 한 컷이었다.

* * *

“아이고 아야.”

작은 연주회를 마치고, 부끄럽게도 나는 드러누워 버렸다.

갑자기 안 쓰던 손 근육을 쓴 탓인지 손등에 통증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선후야, 정말 병원에 안 가도 괜찮겠어?”

“괜찮다니까. 이런 건 좀 쉬면 나아.”

손등이 뻐근한 것뿐이다. 이 정도로 병원이라니. 

몇 년이나 쉬었는데 갑자기 쇼팽이나 리스트 같은 걸 쳤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오빠! 내가 손 주물러 줄게!”

“오…….”

“그럼 엄마는 이쪽.”

“오오…….”

이게 무슨 호강이란 말인가.

내 왼쪽에선 대배우 임신혜가, 오른쪽에선 아이돌 미소가 손을 마사지해주고 있었다.

아마추어가 몇 곡 쳤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보수가 아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선후야, 어떠니?”

“응…… 좋아…….”

“오빠. 좀 괜찮아졌어?”

“응…… 시원해…….”

조물조물. 조물조물.

너무 기분 좋았다.

무엇보다 내 침대에 엄마와 미소가 나란히 앉아 있는 이 상황이.

나도 모르게 거기가 서버릴 정도로 기분 좋았다.

오랜만에 피아노 치느라 뇌가 흥분한 탓일까.

“…….”

“…….”

“…….”

엄마도, 나도, 미소도, 다 같이 입을 다물었다.

모두가 내 거기가 선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 척했다.

이건 그런 약속이었다.

손 마사지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모두 같은 마음으로 모른 척하고 있었다.

엄마와 여동생 사이에서 

오랜만에 피아노를 쳤다.

7년의 공백치곤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엄마도 미소도 좋아해 주었고.

손이 좀 아프긴 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손 마사지도 받았고.

나는 대만족이었다.

그런데.

“자, 오빠, 앙~.”

미소가 젓가락으로 소시지를 집어 내 입가에 가져다준다.

“……혼자 먹을 수 있어.”

애도 아니고.

부끄럽다.

그러면서 그걸 받아먹는 나도 나지만.

“아프면 3일은 꼼짝 말고 쉬어야 해.”

반대편에선 엄마가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여 준다.

“숟가락 정도는 들 수 있다니까…….”

부끄럽다.

그걸 또 받아먹는 나도 나다.

새끼 새가 된 기분이었다.

엄마도 미소도 그저 싱글벙글.

번갈아 가며 내 입에 먹을 걸 넣어준다.

싫어하면서도 잘만 받아먹는 나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나도 정말 싫으면 안 받아먹으면 될 텐데, 주면 넙죽넙죽 받아먹고 있었다.

그런 소꿉장난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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