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의 고백 - 사실 나는4
내가 필드로 복귀한 건 그로부터 한 달 뒤였다.
계절은 여름.
엉망이 된 얼굴로 돌아다닐 수도 없어서 그동안은 병원과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아웃도어 타입인 나는 몸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화풀이로 선후를 샌드백 삼아 두들겨 팼지만, 그거론 부족했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팬 뒤에는 항상 반대로 당하는 상상을 하며 자위해야 했다.
선후는 그 일 이후로 정신을 차렸는지 많이 변했다.
담당 정신과 의사도 유명한 사람으로 바꿨다는 것 같고.
완전히 정상인이 됐다고 보긴 어렵지만, 꽤 좋아진 모습이었다.
좀 더 당당해지고 자신감도 생겼다.
내가 입원 중일 때는 극진하게 내 수발을 들었다.
퇴원하고 나서도 자청해서 내 심부름을 하려고 했다.
말 잘 듣는 하인이 생긴 것 같아서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주위에는 넘어져서 다쳤다고 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특히 병원에서는 꼬치꼬치 캐물었다. 누구한테 맞았냐고.
하지만 나도 선후도 입을 다물고 있었으니 큰일로 번지진 않았다.
엄마나 미소는 대충 눈치챈 것 같았지만 깊이 파고들진 않았고.
내가 계획했던 것과는 좀 달라졌지만, 어쨌든 결과는 좋았으니 된 거 아닐까.
그리고 내 복귀 무대는 그 해의 2차 프로 테스트장이었다.
오랜만의 필드에서 나는 마음껏 샷을 날렸다.
푹 쉬다 온 덕분일까.
다치기 전 부진했던 게 거짓말처럼 공은 잘도 날아갔다.
그 결과, 당당하게 상위로 예선 통과.
며칠 뒤에 열린 본선에서는 무려 1위를 기록하며 프로 테스트를 통과했다.
나도 이제 진소영 프로님이 된 거다.
“누나, 프로 된 거 축하해!”
“오냐. 좀 더 존경하도록 하렴.”
주위에선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작 나는 그만큼 기쁘진 않았다.
원래부터 내가 프로가 되는 건 시기의 문제였을 뿐, 기정사실이었으니까.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앞으로는 프로들과 겨뤄야 하고.
프로가 된 직후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1위로 테스트를 통과한 게 공중파 뉴스를 타면서 화제가 됐다.
천재 여고생 골퍼라느니, 레퍼토리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바뀌지 않았다.
방송 섭외도 많이 들어오고 스폰서도 줄을 섰다.
광고나 화보도 찍었다.이게 공중파의 힘인가.
배우 임신혜의 딸이라는 것도 있어서, 안방 드라마에 복귀한 엄마와 함께 예능 프로에도 출연했다.
스노우볼이 굴러가듯이 인지도가 쌓였다. 쟁쟁한 선배들보다도 방송에 얼굴을 자주 비추게 됐다.
어떻게 보면 그게 협회의 윗분들이 원하던 그림이었다.
골프를 일부 매니아층만의 스포츠가 아니라, 야구나 축구처럼 범국민적 메이저 스포츠로 만들기 위한 큰 그림.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인들도 다 알 만한 슈퍼스타가 필요했다.
나는 그 조건에 딱 맞는 인재였다.
일부 매니아층만이 아닌, 대중적으로도 얼굴을 알렸으니까.
길에 서 있기만 해도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진을 찍을 정도였다.
이제 세계대회 우승 타이틀만 따면 됐다.
국위 선양이라면 환장하는 민족이니까.
진소영이 LPGA에서 우승하기만 하면 게임은 끝난다는 그런 분위기였다.
하지만 안 됐다.
내 성적은 파도가 치듯 들쭉날쭉했다.
국내 작은 대회에선 우승경쟁을 하기도 했지만, 큰 대회에서는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때 나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요청들로 지쳐있었다.
하루하루가 스케쥴 투성이로, 아침부터 밤까지 낯선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야 했다.
골프 선수가 아니라 영업사원이 된 것만 같았다.
그만큼 돈은 벌었지만 생활은 메말라 있었다.
인지도도 쌓고 푸쉬도 받았다. TV만 틀면 나온다고 할 정도로 광고나 방송도 많이 찍었다.
하지만 성적은 안 나온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인지도가 오른 만큼 안티도 많아졌다.
특히 스폰서 초청선수로 참가해 논란이 된 LPGA에서 바닥을 찍은 게 결정적이었다.
돈에 환장해서 광고만 찍는다고 비난받아야 했다.
실력도 없는데 얼굴로 떴다느니, 몸으로 스폰서를 따냈다느니, 성 상품화라느니.
기자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물어뜯을 거리를 만들어냈다.
거기에 네티즌들은 승냥이 떼처럼 달려들었다.
“흥. 돈 버는 게 뭐가 나빠? 어차피 프로는 다 돈 벌려고 하는 건데.”
겉으론 그렇게 태연한 척했지만 내심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여론을 뒤집기 위해선 성적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 열을 낸다고 경기가 잘 풀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편하게 치는 게 나았다.
그리고 인정하긴 싫지만, 내가 좋은 성적을 거뒀을 땐 항상 같은 요인이 작용했었다.
“야! 진선후!”
내가 선후를 괴롭힌 직후에는 항상 성적이 좋았다.
마치 징크스처럼.
반대로 선후를 피해 다닐 때는 성적이 안 나왔다.
요즘도 바빠서 좀 신경을 안 썼더니 엉망이었고.
얼마 전엔 엄마도 선후랑 대본 연습을 했더니 연기가 좋아졌다고 했다.
미신 같지만, 어쩌면 선후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으아각! 항복! 기브! 기브업!”
나는 ‘격투기 놀이’를 하며 선후에게 암바를 걸고 있었다.
선후는 열심히 바닥을 두드렸다.
나는 끌어안고 있던 선후의 팔을 놓아주었다.
“흥. 이 정도도 못 참아서는.”
“그걸 어떻게 참아…….”
선후는 아픈 팔을 잡고서 울상을 지었다.
“얼른 일어나. 한 판 더 하게.”
“또?”
하지만 선후는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시간이라도 끌 생각인가?
“뭐해? 안 일어나고.”
“자, 잠깐만.”
나는 우물거리는 선후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선후는 엉거주춤 앞쪽을 양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팔이 아파서 못 일어난 게 아니었어?
“뭐야? 뭘 숨기고 있어?”
“아, 아니…….”
억지로 손을 치우게 하니 운동복 바지가 불룩하니 튀어나와 있었다.
“…….”
“…….”
그게 뭔지 정도는 나도 안다.
“뭐야 너. 그 상황에서 섰어? 누나 상대로?”
“아, 아니……, 그…… 이건 생리 현상이라.”
선후는 횡설수설하며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귀와 목까지 새빨갰다.
“생리 현상 같은 소리하네. 확 그냥.”
나는 애써 평소처럼 행동했지만, 마음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동안 현실의 선후와 내 상상 속의 선후는 다른 캐릭터라고 선을 그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 경계선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파이트 도중 흥분한 선후가 나를 덮친다는 시츄에이션은 내 단골 자위 소재였다.
궁금하다. 팬츠 아래에 있는 것이.
만약 여기서 억지로 벗겨버리면 어떻게 될까?
오랜 교육의 성과로 선후는 내 말은 뭐든지 듣는다.
조금 정도는 심한 장난으로 치고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역겨워. 기분 잡쳤어. 뒷정리나 해놔.”
나는 괜히 선후에게 욕을 퍼붓고는 자리를 떴다.
선후가 수학여행 사건 후 우울하게 웅크리고 있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선후가 또 그렇게 돼서는 가정 파탄이다.
엄마는 완전히 나를 선후에게서 떼어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돌이킬 수 없다.
“하아…….”
나는 샤워기 물을 맞으며 깊이 심호흡을 했다.
선후를 매도했지만, 그 상황에서 흥분한 건 선후만이 아니었다.
기술을 걸며 끌어안았던 선후의 팔을 떠올린다.
여자와는 근본부터 다른 강인한 남자의 팔.
만약 선후가 진심으로 덤빈다면 나는 ‘그때’처럼 잠시도 버티지 못하겠지.
그 팔의 감촉을 떠올린다.
거기에 닿아 있었던 가랑이와 가슴 언저리가 뜨거웠다.
“응……♡”
나는 샤워를 받으며 자위했다.
* * *
『진소영 선수, 프로 데뷔 후 첫 우승 축하드립니다. 지금 기분이 어떠십니까?』
“물이 시원했습니다.”
『아직 고등학생이신데, 부상으로 ○○ 승용차를 받으셨어요. 차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가족들과 상의 후 결정하겠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어머니, 우리 동생들, 그리고 항상 도와주는 우리 스티븐 최 캐디,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시는 협회 여러분들, 어렸을 때부터 지원해주신 사성전자 스폰서 분들, 그리고 또…….”
『혹시 남자친구는?』
“없습니다.”
『그럼 이상형이 있다면?』
“음……게이?”
* * *
“그래서 언니, 차는 어떻게 할 거야?”
가족끼리 외식 날.
오랜만에 내 우승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최 캐디한테 선물로 줄까 싶은데.”
나는 엄마를 슬쩍 보며 말했다.
보통은 아버지한테 주는 경우가 많다지만, 나한테 아버지는 이미 없는 사람이었다.
아까도 연락이 왔었지만 차단해버렸다.
“소영이가 탄 거니까 소영이 하고 싶은 대로 해. 엄만 상관없어.”
“응.”
엄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와. 좋겠다.”
선후가 조용히 중얼거리는 소리를 캐치했다.
“뭐야 너. 차에 관심 있었어?”
“응……. 멋있잖아.”
선후는 왠지 쑥스러운 듯 소곤거렸다.
“그럼 무슨 차가 제일 좋아?”
“람○르기니!”
그 장난감 같은 차?
어린애냐?
아, 덩치만 컸지 어린애였지.
“그래? 나중에 면허증 따면 누나가 한 대 사줄게.”
나는 지나가는 투로 가볍게 말했다.
어때? 자연스러웠나? 이상하게 들리진 않았지?
“뭐! 진짜!”
선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좋아한다.
흥. 차 한 대로 평생 부려먹을 노예가 생기면 싼 거지.
“얘는. 스포츠카는 안 돼. 사고 나면 어쩌려고 그래.”
“엄마. 비싼 차가 오히려 사고 나도 덜 다쳐. 그리고 사람들이 알아서 피해가니까 덜 위험하고.”
“그러니?”
엄마는 이러쿵저러쿵 말해도 어차피 선후한테는 이길 수가 없다. 결국은 허락해주게 되어있다.
“오빠, 안돼. 언니한테 찻값으로 또 얼마나 맞으려고. 나중에 내가 돈 많이 벌면 사줄게.”
“넌 데뷔나 하고 말해.”
미소는 역시 예리했다.
하지만 나보다는 미소한테 받는 게 선후한테는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저건 진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후훗.”
엄마는 티격태격하는 나와 미소, 그리고 기뻐하는 선후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평화로운 가족의 한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