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3/256)

누나의 고백 - 사실 나는3 

콩쿠르……?

선후 녀석, 그런 걸 준비하고 있었어?

어쩐지. 며칠 전부터 엄마가 괜히 안절부절못한다 싶더라니.

나는 그때까지 선후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선후야 원래부터 나를 피하고 있었고, 나도 선후 얼굴 보기 민망해서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다시는 피아노 치지 마. 한 번만 더 내 귀에 피아노 소리 들리면 손가락 다 잘라버릴 줄 알아. 알았어?’

내가 선후에게 했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똑똑히 떠올랐다.

…….

이건 틀림없이 나 때문이구나.

엄마는 울었다.

선후나 미소 앞에선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엄마지만, 나한테는 가끔 이렇게 감정을 드러낼 때가 있었다.

아쉽기도 하겠지. 부족한 선후가 모처럼 노력한 성과를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기회였는데.

내 귀에도 뭐…… 그럭저럭 괜찮게 들렸으니, 아들 바보인 엄마의 기대는 오죽했을까.

하지만 엄마는 선후가 너무 긴장한 나머지 피아노를 치지 못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말한 걸 엄마한테 일러바치진 않은 거 같다.

……죄책감이 장난 아니다.

“야, 진선후!”

다음날, 나는 엄마가 집에 없는 타이밍에 선후 방으로 쳐들어갔다.

선후 방에 들어가는데 노크 따윈 필요 없었다. 반대로 내 방에 노크 없이 들어오면 죽이겠지만.

“누, 누나?!”

선후는 얌전히 책상에 앉아 있었다. 공부라도 하고 있었나?

흥. 팔자도 좋긴.

나는 가만히 팔짱을 끼고 서서 선후를 째려보았다.

선후는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하려고 왔더라?

“너…….”

일단 말문은 열었지만, 뒷말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냥 잠시 그대로 선후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리고 선후는…… 내가 보고 있는데도 살짝살짝 눈동자가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놈의 가슴이다.

“……뭘 봐? 죽을래?”

내 말에 선후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엄마는 저 때문에 저러고 있는데 이 자식은! 진짜 확 패버릴까?

……아니. 그런 걸 하러 온 게 아니다.

솔직하게 사과하고, 앞으론 피아노 쳐도 된다고 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죽어도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많이 했지만, ‘미안해’라는 말은 태어나서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꿈속에서나 망상에서밖에는.

“흥.”

결국 나는 하고 싶은 말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방을 나와버렸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답답하다. 화난다.

내가 왜 이런 일로 고민해야 하는 거야? 선후 주제에.

나는 또 괜히 선후를 원망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인터넷에서 방법을 찾기로 했다.

Q. 가족과 화해하고 싶은데 미안하다는 말을 못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땐 편지를 쓰세요. 평소에 미안했던 점, 고마웠던 점을 솔직하게 써서 눈에 보이는 곳에 두면 됩니다.

나는 답변을 읽자마자 편지세트를 사 왔다.

“끄응…….”

하지만 편지를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몇 번이나 썼다가 지우고, 다 쓰고 나서도 마음에 안 들어 구겨버렸다.

선후 따위한테 줄 편지 때문에 내가 왜 이렇게 고민해야 해?

빈 종이만 받아도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냐?

결국 나는 마지막 한 장 남은 편지지에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써서 봉투에 넣었다.

나는 손에 편지를 들고서 선후 방에 잠입했다.

어디…… 책상 위에 놔둘까? 아니면 서랍 안에?

문득 책상 위에 놓인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선후와 미소가 나란히 V 사인을 그리고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선후의 얼굴은 조금 굳어있었지만, 적어도 나랑 있을 때보다는 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미소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활짝 웃고 있었다.

뭐야. 남매끼리 이런 사진이나 찍고.

게다가 액자에까지 장식해선. 징그럽게.

나는 액자가 보이지 않게 탁 덮었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에 쥐고 있던 편지는 벌써 구겨져 있었다.

그래. 미소는 애교도 있고 귀염성도 있고.

저것도 오빠라고 잘 따르니 나보다 친하게 지내는 것도 당연하겠지.

당연한데…… 당연한데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쿵쿵거리며 선후의 방을 나왔다.

그리고 구겨진 편지를 가스 불로 태워버렸다.

타고 남은 귀퉁이는 변기에 넣고 내렸다.

내가 편지를 썼던 흔적은 전부 없어졌다.

시간만 낭비했네. 연습장이나 갈걸.

화장실 거울을 본다.

한심한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 * *

1년이 지났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선후는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선후는 그 찌질한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암흑 같은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엄마가 학교에 불려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등신. 사지 멀쩡한 놈이 왜 맞고 다녀?

학교에서 아무도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던 나로선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중학교에서는 달라지겠다며 헬스 같은 걸 하는 모양인데.

내가 보기엔 애들 장난 같은 수준이지만, 엄마나 미소는 응원하고 있는 것 같다.

바보 같다. 운동으로 모난 성격이 고쳐진다면 나도 이렇게 고생하지 않는다고.

가끔 피트니스 룸에서 선후와 마주칠 때도 있었지만, 선후는 나만 보면 사자라도 만난 것처럼 부리나케 도망친다.

누가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내가 먼저 말 걸면 대답은 한다. 하지만 제대로 대화가 성립하지 않는다.

피아노 건에 대해서도 아직 말 못 하고 있고.

나만 이렇게 신경 쓰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났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짜증이 쌓여서 그런지 골프 성적도 곤두박질쳤다.

연초에는 프로 테스트를 받아봤지만 30위 안으로도 들어가지 못해 예선 탈락해버렸다.

아직 어려울 거라곤 생각했다. 그래도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할 줄은 몰랐다.

프로의 벽이고 자시고, 내가 너무 못해서 떨어진 거였다.

답답했다.

난 왜 이렇게 못 치는 걸까?

점점 실력이 퇴화하는 것 같았다. 자신감도 떨어졌다.

순수하게 감으로 쳤던 시절에도 지금보단 성적이 잘 나왔는데.

초등부 때는 눈에도 안 들어오던 애들이 지금은 나보다 더 잘 쳤다.

나는 슬럼프에 빠졌다.

*

그렇게 답답한 시간만 흐르던 중, 사건이 터졌다.

“선후가 성추행을 했다고?”

난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아니었다. 성추행을 한 게 아니라 당했다는 거였다.

그것도 여자애들한테. 집단으로.

“어떻게 여자한테?”

초딩 때처럼 비실비실 약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여중생한테 당하느냐고.

그렇게 열심히 운동해놓고선.

처음엔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내용을 알고 나서는 분노했다.

선후가 여자한테 약하다는 걸 노려, 집단으로 덮쳤다.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범행이었다.

영상으로 찍어서 조리돌림하고, 그걸로 협박까지 했다.

악질적이었다.

남녀가 바뀌었다면 나라가 뒤집혔을 일이었다.

하지만 가해자들이 14세 미만 촉법소년이라 법적인 처벌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퇴학, 정학, 전교 조치, 봉사활동.

겨우 그런 거로 끝낼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달리 처벌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 나라에서 촉법소년은 무적이니까.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내장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내가 그 정도였는데 아들 바라기인 엄마는 오죽했을까.

하지만 엄마는 절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나한테 신신당부했다.

엄만 내가 옛날처럼 골프채라도 휘두를 거라 생각하는 걸까.

나도 이제 애가 아니다. 그 정도 분별은 할 줄 안다.

엄마도 참고 있는데 내가 설칠 수는 없지.

*

물론 가해자들한테는 아무 짓도 안 한다.

다만 선후한테는 아니다.

“야. 진선후. 나와.”

거칠게 방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역시 대답은 없었다.

선후는 그 일 이후로 방에 틀어박혔다.

불러도 대답도 없고, 나오지도 않고, 밥도 먹지 않는다.

벌써 3일째.

슬슬 위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발만 동동 구를 뿐.

문을 따고 억지로 끌어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엄마라도 이럴 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거 같았다.

아직도 선후가 스스로 이겨내고 자기 발로 나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만약 선후가 자살이라도 할 거 같았으면 엄마도 강행돌파 했겠지만…….

선후는 방안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어째서인지 선후 방에는 CCTV가 달려 있었고, 그걸 미소 휴대폰으로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었다.

엄마는 그걸 보고 안심한 거 같았다.

근데 미소 너, 그거 범죄거든.

“……칫.”

나는 틀어박힌 선후 때문에 답답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선후가 여자애들에게 유독 약한 이유.

그건 어떻게 생각해도 내가 원인이었다.

성인 남성에게 약한 건 어려서 당한 학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집안에 여자가 셋이나 있는데, 여자한테 약할 이유가 없다.

엄마도 미소도 선후를 애지중지하니까.

선후가 집안에서 유일하게 어려워하는 여자.

바로 나다.

원인에는 짐작이 간다. 내가 해온 일이 있으니까.

선후가 저렇게 된 데엔 내 잘못도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름의 책임감을 느꼈다.

“야, 진선후! 문 열라고! 대답 안 해? 죽고 싶어?”

나는 선후의 방문을 부술 기세로 두드렸다.

“3초 안에 안 열면 너 진짜 죽는다! 하나! 둘!”

딸칵.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열 수 있잖아.

나는 당당히 문을 열고 선후 방안으로 쳐들어갔다.

선후는 어두운 방 안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가져온 종이가방을 선후의 품에 억지로 밀어붙였다.

“그거 가지고 따라와.”

내가 앞장서서 나갔지만 선후는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나오라고. 빨리.”

나는 선후의 멱살을 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워 밖으로 끌고 나왔다.

선후는 휘청거리면서도 나한테 이끌려 따라 왔다.

내가 준 종이봉투를 안고서.

선후를 데려간 곳은 피트니스 룸이었다.

“뭐해? 너도 껴.”

나는 바닥의 매트를 밟아 확인하며 보호장구를 착용했다.

종이가방 안에는 헤드기어와 오픈핑거 글러브가 들어있었다.

종합격투기용 장비다.

하지만 선후는 멍청히 봉투를 들고 서 있을 뿐.

그건 삶을 포기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났다.

“할 수 없네. 이번만 누나가 특별히 해주는 거야.”

나는 억지로 선후의 머리에 헤드기어를 씌우고 손에는 글러브를 끼웠다.

어느샌가 선후는 나와 키가 비슷해져 있었다. 중학생에 이정도면 꽤 큰 편 아닐까.

근육도 잡혀서 제법 남자다워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성장한 건 겉모습 뿐.

내용물은 여전히 소심한 어린애인 채였다.

선후는 장비를 착용하고 나서도 멍청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마음대로 시작하기로 했다.

“제한시간 없음. 상대가 쓰러지거나 기권할 때까지. 룰 없음, 반칙 없음. Do you understand?”

흥. 멍청한 얼굴 하고선.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지.

나는 주먹을 부딪쳐 공을 대신했다.

“그럼, 시작!”

퍽!

시작과 동시에 선후의 얼굴에 스트레이트를 질렀다.

선후는 가만히 서서 주먹을 맞고는 뒤로 벌렁 쓰러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거 같았다.

“뭐해? 빨리 일어나.”

나는 쓰러진 선후의 옆구리를 차서 일으켜 세웠다.

선후는 비틀거리면서도 일어났다.

그리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쳐다본다.

“몰라? 격투기 놀이야. 누나가 놀아주니까 좋지?”

말하면서 선후의 복부에 레프트를 꽂았다.

반사적으로 웅크리는 선후의 턱에 어퍼컷을 날린다.

선후는 거기에 정통으로 맞아 만화처럼 뒤로 쓰러졌다.

흠…… 죽었나?

“언제까지 누워있을 거야? 얼른 일어나. 누난 바쁘니까 놀아줄 시간도 별로 없다고.”

툭툭 차니 좀비처럼 일어선다.

눈은 퀭하고 초점이 맞지 않는다.

정말 좀비같다.

“계속 그렇게 맞고만 있을 거야? 이건 격투기 놀이니까, 너도 때려도 돼. 아니면 맞는 게 좋아?”

얼굴에 잽을 툭툭 날린다.

막으려는 건지 가드를 올리는 선후.

“바디가 비었어!”

거기에 나는 리버를 때린다.

선후의 허리가 꺾이고 괴로운 듯 신음을 흘렸다.

“자자, 이번엔 얼굴이야. 어떡할래? 양쪽 다 막을 수는 없다고.”

나는 또 얼굴을 친다.

그러자 선후는 얼굴을 가리며 구석으로 도망친다.

“뭐야, 너? 언제까지고 계속 도망칠 수 있을 거 같아? 아니면, 엄마가 와서 구해줄 거 같아?”

나는 도망치는 선후를 툭툭 때리며 뒤쫓았다.

“평생 그렇게 계속 당하고만 살래? 그리고 엄마한테 구해달라고 할래? 억울하지도 않아? 너 등신이야?”

선후는 구석에서 나에게 등을 돌리고 웅크리고 앉았다.

할 수 없네. 이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야, 진선후. 너네 엄마가 임신혜라며?”

웅크린 선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나는 허스키한 목소리 때문에 이런 식으로 남자 흉내도 곧잘 내곤 했다.

“내일 올 때 너희 엄마 팬티 하나 훔쳐 와. 목욕할 때 몰래 사진도 좀 찍어오고. 어때, 할 수 있지?”

선후의 등이 딱 굳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네 동생이 그렇게 귀엽다며? 소개 좀 시켜주라. 앞으론 너 안 괴롭히고 대신 네 동생이랑 놀아줄 테니까. 응?”

선후의 어깨를 감싸며 징그럽게 속삭였다.

그건 선후가 실제로 들은 협박이었다.

선후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어떡할래? 시키는 대로 할 거야? 계속 당하고만 있을래? 엄마도 미소도 팔아먹을 거야?”

그제야 선후는 나에게 얼굴을 돌렸다.

못생긴 얼굴이 눈물로 일그러져 더 엉망진창이었다.

“으아아아──!”

선후는 마구잡이로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얼른 뒤로 뛰어 물러났다.

“옳지, 그렇게…….”

하지만 내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이어진 선후의 태클을 받아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던 거다.

“윽……!”

나는 마치 트럭에라도 치인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선후가 넘어진 내 배에 올라탔다.

나는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나를 누르고 있는 선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포라는 걸 느꼈다. 

“아아아아──!!”

선후가 주먹을 내리친다.

나는 양팔을 올려 얼굴을 가드했지만, 선후의 주먹은 송곳처럼 파고들며 내 얼굴을 가격했다.

퍽! 퍽! 퍽! 퍽!

나는 오로지 맞고 있을 뿐이었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내 팔도 축 늘어졌다.

선후는 무방비하게 드러난 내 얼굴을 계속해서 내리쳤다.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선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아. 실패했다.

엄마한테는 그렇게 잘난 척하며 말해놓고, 정작 선후가 어린애라고 가장 방심한 건 나였는지도 모른다.

*

잠깐 정신을 잃었었나 보다.

내가 깨어났을 때, 선후는 내 옆에 꿇어앉아 울고 있었다.

“……뭐, 야……. 하려면 할 수 있잖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싶었지만, 발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누나, 미안해, 미안해…….”

선후는 엉엉 울면서 사과했다.

지가 때려놓고 울긴 왜 울어?

“……이 정도로 안 죽어. 울지마, 이 등신아. 못생긴 얼굴 더 못생겨질라.”

말할 때마다 입안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지만 참았다.

“아~아~. 선후한테 져버렸다. 쪽팔리게. 어디 가서 맞았다고 말도 못 하겠네. 너도 말하지 마. 말하면 죽인다.”

선후는 울면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얻어맞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또 괜한 트라우마를 심어준 건 아닌지 모르겠군.

“누난 씻고 올 테니까, 뒷정리는 네가 해. 알았어?”

바닥의 매트는 내가 흘린 피투성이였다.

엄마가 보면 기절할지도 모른다.

나는 욱신거리는 몸을 채찍질해 화장실로 향했다.

“이게…… 나?”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얼굴은 피투성이에 눈탱이는 밤탱이가 되어있었고 코는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있었다.

웃겨.

“아야야야.”

헤드기어를 벗는 것만으로도 곡소리가 절로 났다.

세수라도 하고 싶었지만 아파서 그럴 정신이 아니었다.

물 묻힌 휴지로 피만 대충 닦아냈다.

……그나저나, 문제는 얼굴이 아니었다.

이번에 나는 정말로 지린 것이다.

공포심 때문에 싸버렸는지, 아니면 기절하면서 싸버렸는지.

“내가 미쳐.”

선후도 알까? 알겠지?

기껏 쌓아놓은 누나의 위엄이…….

하. 이제 쪽팔려서 어떻게 사냐고.

나는 오줌을 씻으면서 한탄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길.

나는 마침 집에 돌아온 엄마와 거실에서 마주쳤다. 

“어. 엄마.”

“꺄아아악!!”

엄마는 내 얼굴을 보고 비명을 지르더니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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