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의 고백 - 사실 나는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인생의 승리자였다.
좋은 집안에, 좋은 부모 밑에서, 예쁜 얼굴로 태어났다.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 받으며 부족할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쯤, 골프만 잘 치면 학교 공부도 학원도 다른 건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이야기에 혹해 아빠를 따라가 배우기 시작한 골프.
가만히 앉아 연필만 움직이는 것보다 넓은 필드에 나가 공을 치는 게 나한테는 훨씬 잘 맞았다.
내가 골프를 시작하자 주위에선 나를 천재 골프소녀라며 치켜세우며 호들갑을 떨었다.
칭찬받는 것도 좋았고 골프 그 자체도 즐거웠다.
나는 순식간에 골프에 빠져들었다.
프로인 선생님 말에 따르면 나는 아무튼 감각이 좋다는 것 같다.
파워도 감각도 타고났다고.
적어도 내 나이 때의 선생님보단 훨씬 낫다고 했다.
유명한 프로 선수의 보증까지 나왔다.
팔불출 부모의 단순한 자식 자랑이 아니었던 거다.
그때부터 부모님은 진지하게 나를 골프 선수로 키우기로 했다.
아빠는 나를 데리고 매일 골프장을 돌았다. 엄마도 나와 아빠가 골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집은 어느새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골프는 복잡해 보여도 의외로 단순한 놀이였다.
아무튼 홀컵에 공을 넣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힘들어? 어려워?
어른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걸 왜 못 해?
나는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우는 또래 아이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좋은 성적을 내고 칭찬을 받는다. 어느샌가 그게 나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 되어있었다.
기대받는 것도,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주위의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다 보면 내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싫어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정말로 천재였던 거다.
초등학생 레벨에서 나는 무적이었다.
어지간한 실수라도 하지 않는 한 우승을 놓치는 적이 없었다.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예쁜 얼굴 덕에 실력 이상으로 대우를 받는 면도 있었다.
부모님의 연줄인지 천재 골프소녀라는 타이틀을 달고 방송에도 여러 번 출연했다.
만약 내가 골프를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아마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겠지.
나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순탄한 생활도 돌연 끝을 맞이했다.
진선후. 엄마가 어디선가 데려온 남자아이.
그 애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가족의 테두리 안에 끼어 들어왔다.
엄마는 내 남동생이라고 했지만, 이제 동생 같은 건 필요 없었다.
별로 귀엽지 않은 건 여동생인 미소와 다를 바 없었고, 비 맞은 새끼 고양이처럼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것도 답답해서 싫었다.
이 애는 왜 우리 집에 있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든가, 유명인의 사회적 공헌 같은 건가?
그런 건 적당히 기부로 끝내면 되는 거 아니야?
그 애 사정은 들었다. 딱하긴 해도 굳이 우리 집에서 키워줄 필요는 없잖아?
갑자기 이상한 남동생이 생기긴 했지만,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구석에서 떨고 있을 뿐이고. 나한테 말을 거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 애를 집 안에 있는 장식물이나 애완동물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엄마의 관심이 나에게서 그 아이에게로 옮겨갔지만, 그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미 엄마의 관심을 요구할 나이는 지나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빠는 나와 달랐다.
아빠는 엄마의 관심이 새로 생긴 남동생에게 쏠리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그때부터 엄마와 아빠는 사소한 일로도 다투기 시작했다. 언성을 높이는 일도 종종 있었다.
대개는 미소의 애교로 어떻게든 해결됐지만, 사춘기를 맞으려던 나는 슬슬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아빠가 엄마를 때린 것이다.
아무리 화가 나도, 상대방이 잘못했더라도, 절대 먼저 폭력은 휘두르면 안 된다.
아빠는 나에게 끊임없이 그렇게 주입해왔다.
철없던 어린 시절, 말보다 주먹을 먼저 내밀었던 내 탓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그렇게 말해왔던 아빠가.
엄마는 어른이지만, 내 기준으로는 나보다도 연약한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에게 폭력을 휘두른 아빠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눈이 뒤집힌 나는 골프채를 가져와 아빠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수박이 쪼개지는 소리가 나며 아빠는 쓰러졌다.
구석에서 울고 있던 선후가 그 광경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게 인상적이었다.
아빠는 구급차에 실려 갔다. 열 몇바늘을 꿰매고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
엄마한테는 혼났다. 골프채를 사람한테 휘두르면 안 된다고.
하지만 엄마도 진심으로 화를 내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도 솔직히 별로 반성하지 않았고. 나는 정의를 지킨 거니까.
그리고 그 사건은 아빠와 나머지 가족 간에 균열을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아빠는 이제 나와 골프를 치러 가지 않게 되었다. 집을 비우는 일도 잦아졌다.
집안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게 맞겠지. 나에게 맞은 것도 그렇지만, 항상 아빠에게 애교만 부리던 막내딸 미소에게 무시당한 게 더 충격이었던 거 같다. 엄마는 말할 것도 없고.
솔직히 나는 속 시원했다.
아마추어인 아빠가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걸 듣는 것도 지겨웠으니까.
그 후 아빠는 1년도 안 돼서 젊은 여배우와의 불륜이 발각.
가십 전문 일간지에서 워낙 크게 터뜨리는 바람에 엄마와 이혼하게 됐다.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을 때부터 언젠간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양육권은 당연히 엄마한테로.
나는 엄마든 아빠든 상관없었지만, 새엄마랑 사는 건 싫었으니까.
아빠도 젊은 여배우랑 새살림 차렸다고 하니까 서로서로 잘 된 거겠지.
그리고 나에게는 아빠 대신 전문 캐디가 붙었다.
마침 골프계에는 남자 캐디의 성추행 문제로 한창 시끄러웠던 것도 있어서 엄마는 걱정을 많이 했지만, 선생님에게 소개받은 전문 캐디는 게이였다.
게이라…….
이렇게 멀쩡한 얼굴로 남자끼리 그렇고 그런 짓을 한다고?
이제 막 사춘기에 돌입한 나는 틈틈이 게이 캐디와 주변 남자를 매칭시켜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가장 많이 매칭된 상대는 선후였다.
항상 없는 사람 취급해왔던 선후를 의식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었다.
선후는 뭐랄까…… 아직 어린데도 기묘한 색기 같은 게 있었다.
뭐라고 말로 표현은 못 하겠지만.
페로몬?
좀 다른가.
아무튼, 내 상상 속에서 선후는 누구보다 공격적이었다.
그런 귀여운 얼굴을 하고서 약점을 잡아서 협박하거나.
명령하고 괴롭히고 매도하고.
그런 시츄에이션을 상상하는 게 좋았다.
하지만 그런 선후는 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뿐.
현실의 선후는 여전히 겁쟁이에 소심한 녀석이었다.
집안에선 내 눈에 띄지 않도록 살금살금 다니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깜짝 놀라기나 하고.
누가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그런 꼴이 보기 싫어서 일부러 괴롭히기도 했다.
덕분에 선후는 더 나를 피해 다니고.
엄마한테 들켜서 혼나기도 하고.
하지만 보고 있으면 괜히 괴롭히고 싶어지는 선후 잘못도 있다고 생각해.
남자라면 좀 더 당당하게 살면 될 텐데.
언제까지고 엄마 치마폭으로 감싸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럭저럭 시간이 지나고 나도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교에서도 나는 골프 특기생으로 특별취급을 받았다.
최소한의 수업만 듣고서 매일 골프나 치러 다녔다.
성장기를 맞이한 나는 키도 가슴도 쑥쑥 자랐다.
새로 산 옷도 한 달만 지나면 작게 느껴질 정도고, 엄마랑 둘이 나가면 자매로 착각하는 일도 있었다.
특히 가슴은 문제였다.
같은 반 여자애들과는 비교도 안 되고, 웬만한 성인 여성보다도 컸으니까.
엄마 가슴 사이즈를 봐서는 아마 앞으로도 점점 커지는 거겠지.
하아…….
가슴이 커지자 골프를 치는 데도 불편하지만, 훨씬 더 불편한 게 있었다.
바로 남자들의 시선이다.
또래 남자애들은 물론이요, 아빠뻘, 할아버지뻘인 어른들마저 그랬다.
협회 관계자든 대회 관계자든, 건수만 있으면 어깨를 만지거나 등에 손을 대려고 했다.
자연히 말을 걸어오는 남자도 많아졌다.
그런 남자들에게선 음흉한 속셈이 훤히 보였다. 눈이 부자연스럽게 가슴 쪽을 왔다 갔다 하니까.
차라리 대놓고 가슴을 만지면 성추행으로 고소라도 할 텐데.
예민했던 중고등학생 시절은 그런 데에 신경 쓰느라 정말로 힘들었다.
그나마 안 그런 남자는 게이 캐디와 그 남자친구뿐.
오히려 그런 남자들에게서 나를 지켜주는 방파제 역할을 자청했다.
만약 캐디마저 다른 남자들과 같았으면 골프고 뭐고 때려치우고 방안에 틀어박혔을지도 모른다.
상상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게이 캐디는 나에게 늘 고마운 존재였다.
게이 캐디와는 프로가 된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
좀 더 게이가 많아지면 세상도 살기 좋아질 텐데.
그에 반해 저 소심한 선후라고 하면.
내 얼굴 보고 말도 제대로 못 거는 주제에, 가슴만은 아닌 척 힐끔힐끔 쳐다보고 앉았다.
내가 짜증 나서 빽 소리를 지르면 깨갱 해서 눈을 피하지만, 며칠 지나면 또 힐끗거리기 시작한다.
엄마한테 말해도 엄마는 선후에 관해선 늘 관대하다.
선후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괜찮다고, 선후가 쳐다보는 건 성욕이 아니라 호기심이란다.
초등학교 3학년이라도 요즘 애들은 알 건 다 안단 말이야.
어휴. 엄마는 선후가 아무리 커도 어린애인 줄 안다.
내가 말리지 않았으면 지금도 선후랑 같이 목욕했을 걸.
이제 슬슬 엄마한테서 졸업하는 게 선후를 위해서라도 좋을 텐데.
중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에 세미프로 자격증을 땄다.
경쟁률은 높았지만 별로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아마추어 수준이니까.
정식 자격증을 땄더니 ‘중학생 천재골퍼’라는 타이틀로 또 한바탕 방송에 나왔다.
이름이 팔린 덕분에 처음으로 정식 스폰서 제의도 받았다.
골프웨어 주니어 모델은 했었지만, 본격적인 기업 스폰서가 붙은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때쯤엔 주위의 관심도 나에게 부담이 되었다.
지나친 기대, 응원.
어렸을 땐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도 이제는 귀찮았다.
나는 아직 멀었는데. 이제 겨우 세미프로인데.
그런 주위의 관심이 실력보다 다른 요소가 영향을 끼쳤다는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부모의 명함.
얼굴과 가슴 같은 신체적인 요소.
그리고 나를 차세대 아이콘으로 만들어 골프 인기를 높이려는 협회의 푸쉬도.
세속적이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프로를 목표로 한다면 결국 인기로 먹고사는 거니까.
스폰서도 대회도, 인기가 없으면 성립하질 않는다.
그러나 알고 있다고 해서 부담스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
정말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아도 되나? 하는 질문을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던졌다.
더 어렸을 때는 내가 최강이라고 생각했지만, 중학생쯤 되니 나에게도 슬슬 프로의 벽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사춘기라 그랬을까. 당시에는 모든 일이 스트레스였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어 처음 나간 대회.
나는 있을 수 없는 실수를 연속으로 저지르며 한 홀에서만 10오버파를 쳤다.
초등학생 때도 받지 않았던 내 생애 최악의 성적이었다.
나는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도 몰랐다.
멘탈이 박살 난 나는 있지도 않은 손목 통증을 핑계로 기권하고, 캐디의 위로조차 듣기 싫어서 혼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날 내 스트레스는 최대치까지 올라 있었다.
만약 건드리는 사람이 있으면 때려 죽이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화를 주체하지 못한 채 집에 도착한 내 귀에 낯선 음악 소리가 들어왔다.
피아노.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유명한 클래식 곡.
그것도 녹음한 게 아니라 직접 연주하는 소리였다.
“피아노?”
피아노 소리는 선후 방에서 나고 있었다.
그 방에 피아노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선후가 좀 더 어릴 때는 곧잘 연습하곤 했었으니까.
하지만 벌써 예전에 그만둔 줄 알았는데.
그게 언제였더라.
분명 내가 시끄럽다고 소리 지른 날이었던가?
그때도 나는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다.
벽 사이로 희미하게 들리는 피아노 소리가 귀에 거슬렸던 나는 선후에게 화풀이 삼아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후로 피아노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잘 쳤었나?”
지금 선후의 연주는 문외한인 내가 듣기에도 제법 그럴듯했다.
분명 예전에 들었을 때는 엉망진창이었는데. 아니면 혹시 다른 사람인가?
선후 방의 문을 열자 피아노 소리가 좀 더 제대로 들렸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선후였다.
선후는 어지간히 집중하고 있는지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어쭈.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한쪽이 부족한 애는 다른 쪽으로 능력이 뻗는다더니 선후도 그런 건가?
나는 팔짱을 끼고 방문에 기댄 채 선후의 연주를 감상했다.
“흥, 흐흥 흥~♬”
나도 모르는 사이에 멜로디를 따라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나 보다.
그 탓으로 선후도 내가 온 걸 알아버렸다.
“누, 누나?!”
선후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누나의 고백 - 사실 나는2
“왜 멈춰? 계속 치지.”
나름 상냥하게 말한다고 해봤지만, 선후는 덜덜 떨고 있을 뿐이었다.
미소가 부족한가? 나름 노력해서 웃고 있는 건데.
“미, 미안, 난 누나 온줄 모르고…… 이제 그만 칠게.”
피아노 뚜껑을 덮으려는 선후.
“계속 치라니까?”
나는 그런 선후를 멈추게 하고 다시 뚜껑을 열었다.
“……응.”
선후는 마지못한 표정으로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뭐야. 내가 무슨 못 할 짓이라도 한 것처럼.
나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감추지도 않고 선후를 째려보았고, 선후는 벌벌 떨면서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연주는 엉망진창이었다.
어릴 때나 마찬가지, 아니 그보다 더 심했다.
그런 어이없는 연주에 초딩 때보다 못했던 오늘 내 성적이 오버랩되면서 내 분노가 폭발했다.
“야! 진선후!”
주먹으로 피아노 건반을 내리친다.
쾅!
요란한 소리에 선후는 깜짝 놀라며 몸을 웅크렸다.
그런 비굴한 모습이 내 화에 기름을 끼얹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그따위로밖에 못해? 아니면 내 앞에선 치기 싫다는 거야?”
“아, 아니, 미안, 미안해 누나…….”
“누가 사과하랬어? 왜 그렇게밖에 못 치냐고 묻잖아!”
쾅! 쾅!
내가 주먹을 내리칠 때마다 선후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다시 쳐. 이번엔 제대로. 이번에도 엉망으로 치면 가만 안 둬.”
내 엄포에 선후는 흠칫흠칫 건반 위에 손을 올렸지만 좀처럼 건반을 두드리지 못했다.
“……미안, 누나. 나… 못 치겠어.”
울먹이며 말하는 선후.
힐끗 보자 선후의 손가락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
“못 쳐? 못 치겠다면 다야? 울면 다 용서해줄 줄 알아? 그런 게 통하는 건 엄마밖에 없어!”
속에 쌓여있던 울분을 선후에게 내지른다.
그건 선후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엉망진창으로 치고선 기권하고 도망쳐온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괜한 트집이라는 건 알고 있다. 선후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지금 내 행동은 단순한 화풀이일 뿐.
하지만 나도 불안정한 건 마찬가지였다.
나도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을 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던 것이다.
“뭐 해! 빨리 치라니까!”
쾅. 쾅. 쾅. 쾅.
나는 선후의 옆에 서서 계속해서 피아노를 내리쳤다.
선후가 다시 피아노를 칠 때까지 계속 그럴 생각이었다.
“누나, 미안해, 이제 피아노 안 칠게. 그러니까 제발 그만…….”
선후가 울면서 내 팔을 붙잡았다.
뭐야? 치라는데 왜 안 친다는 거야? 그렇게 나한테 반항하고 싶어?
문득 선후에게 잡힌 내 손이 눈에 들어왔다.
몇 번이나 내리쳤던 주먹은 찢어졌는지 피가 나고 있었다.
피아노 건반도 내 손도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뒤늦게 찡한 아픔이 느껴졌다.
“……너, 다시는 피아노 치지 마. 한 번만 더 내 귀에 피아노 소리 들리면 손가락 다 잘라버릴 줄 알아. 알았어?”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솔직하지 못한 아이였다. 그리고 그날은 모든 게 엉망이었다.
그저 좀 더 듣고 싶었을 뿐인데.
네 연주를 듣고 싶다고 한마디만 하면 됐을 텐데.
“등신 새끼. 남자라면 한 마디 반항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나는 애꿎은 선후를 원망하며 내방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