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7/256)

동생의 회상 - 나와 오빠의 이야기 

몇 살인지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 햄스터를 키운 적이 있다.

이름은 햄찌와 스찌. 작은 두 생명은 작은 우리 안에서 의미도 없이 쳇바퀴를 굴려댔다.

너무나 작고 연약한 생명들. 조금만 손을 가하면, 혹은 조금만 손을 떼면 죽어버리는 너무나 작은 생명들이었다.

나는 그게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나의 손안에서 떨고 있는 이 작은 생명이, 조금만 힘을 주어도 죽어버릴 이 작은 생명이.

어느 날 스찌가 죽었다.

내가 손가락으로 등을 꾸욱 누르는 것만으로 스찌는 버둥거리다 죽어버렸다.

그래. 내가 죽인 것이다. 나는 어떤 죄책감도 없이 그 작은 생명을 해치고 말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햄찌는 죽은 스찌를 갉아먹어버렸다. 스찌를 죽인 범인이 햄찌가 되는 순간이었다.

가족들은 누구도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귀여운 막내둥이가 그런 잔인한 짓을 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몸이 절반만 남은 스찌를 보고 언제나 강한 척하던 소영 언니가 울었다. 밤새도록. 언니가 그렇게나 우는 건 처음 봤다. 그 작은 생명의 죽음이 언니에겐 큰 상처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나에게 그 죽음은 희열이었다. 하나의 생명을 내 손으로 좌지우지한다는 희열. 몇 년 안 되는 나의 짧은 인생에서 스찌의 죽음은 가장 큰 자극이었다.

혼자 남은 햄찌는 얼마 살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외로웠던 걸까. 어쩌면 스찌를 죽인 햄찌를 언니와 가족들이 제대로 돌봐주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햄찌가 죽었어도 언니는 스찌가 죽었을 때만큼은 울지 않았다. 오히려 스찌를 죽인 햄찌가 죽어서 속이 후련한 듯한 모습도 보였다.

불쌍한 햄찌. 가엾기도 하지. 나만은 너의 결백을 믿어줄게.

두 마리의 햄스터가 죽은 뒤, 우리 집에서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게 되었다.

언니는 몇 번이나 개나 고양이를 졸랐지만, 엄마 아빠는 들어주지 않았다.

개도 고양이도 어차피 사람보다 오래 살지 못한다. 먼저 떠나보내면 또 상처받을 언니를 생각한 부모님의 결정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로선 아쉬울 따름이었다. 스찌가 죽었을 때 느낀 희열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고 나에게는 좀 더 큰 자극이 필요했다. 새로운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찾아왔다.

"미소야. 오빠야. 선후 오빠."

"오빠?"

엄마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동생보다 나중에 생기는 오빠라니?

하지만 엄마에게 손목을 붙잡혀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리는 그 작은 생명을 보는 순간, 나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오빠! 안녕!"

오빠.

오빠를 보며 나는 오래전 죽은 햄찌와 스찌를 떠올렸다. 작은 우리에 갇혀서 열심히 쳇바퀴를 돌리던 햄스터들.

나에게 오빠란 존재는 으스러질 것처럼 연약하고 작은 존재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기특한 존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빠는 햄스터에 비해 훨씬 손이 많이 갔다. 오빠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건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작고 귀여운 동생을 왜 그렇게 두려워한 걸까?

오빠가 나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꼬박 1년이 걸렸다. 그 1년 사이에 내가 오빠에게 들인 정성이란 이루 말할 수도 없을 정도다.

“미, 미소, 미소야,”

“응~? 오빠 왜~?”

“고, 고마워.”

그때 어째서 오빠가 나에게 고맙다고 한 건지, 앞뒤 상황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빠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느낀 희열은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

스찌가 죽었을 때 느낀 감정이 전기에 감전된 정도라면, 이때 느낀 감정은 벼락에 맞은 정도였다. 이유는 몰라도 그만큼 나에게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오빠가 나에게 마음을 허락한 뒤, 내 취미는 오빠의 심장 소리를 듣는 게 되었다.

오빠를 끌어안고 가슴에 귀를 대보면 연약한 심장이 열심히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 심장을 내가 언제든지 멈추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박동이 나에게는 어떤 음악보다 감미롭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내가 오빠에게 붙어있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엄마와 불만스럽게 바라보던 아빠. 결국 어느 날 엄마 아빠가 크게 싸운 뒤, 아빠는 집을 나가버리고 말았다. 나도 엄마도 언니도 아빠를 일방적으로 따돌렸으니, 집을 나갔다기보다는 쫓겨났다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 뒤로 아빠는 불륜 스캔들과 함께 엄마에게 이혼당하고 말았다.

없어진 아빠의 일 따윈 어찌 됐든 상관없다. 지금은 오빠가 중요하니까.

사랑스러운, 사랑스러운 나의 오빠.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짓밟아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몇 번이나 느꼈다.

하지만 그건 얼마 전에 읽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동화와 같은 행위였다. 한순간의 충동대로 행동했다간 평생의 즐거움이 사라지는 거다.

나는 인내했다. 최고의 순간, 최고의 희열을 맛보기 위해서.

그 작은 심장을 열심히 두근거리며 오빠는 무럭무럭 성장했다. 오빠는 나보다 훨씬 크고 멋있게 성장했다. 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되자 어렸을 적 연약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연약한 마음은 그대로였다. 여전히 오빠는 겁쟁이였고, 사람을 대하는 데에 서툴렀다.

오빠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상처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8살이 되면 학교에 가야 한다. 그리고 오빠는 자폐성 장애로 인한 특수교육 대상 학생이었다.

오빠에겐 특수 학교에 갈지, 아니면 일반 학교의 특수 학급으로 갈지, 그것도 아니면 일반 학교의 일반 학급으로 갈지 선택할 수 있었다.

아니, 오빠가 선택하는 게 아니다. 정확하게는 보호자인 엄마의 선택이었다.

엄마는 오빠가 보통 학생들과 지내며 보통으로 자라길 원했다. 그래서 오빠는 일반 학교 일반 학급에서 학교에 다니게 됐다.

오빠는 어떤 걸 원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엄마의 생각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엄마의 선택은 별로 좋지 못했다. 엄마의 생각처럼 모든 일이 잘되진 않았다. 무엇보다 엄마는 아이들의 선천적 잔인함을 생각하지 못했다.

항상 벌벌 떨며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조차 못 하는 오빠는 금세 학교에서 고립됐다. 그나마 소영 언니가 학교에 있던 2년간은 괜찮았지만, 4살 위의 언니는 금세 졸업하고 중학교로 올라가 버렸다.

소영 언니라는 방파제가 사라진 뒤로 오빠는 직접적인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다.

자신보다 작고 연약한 생명을 괴롭히고 희열을 얻는 건 인간의 본성인 걸까. 마치 작은 햄스터를 눌러 죽이듯, 아이들은 오빠를 괴롭혀댔다. 아이들의 순수한 잔인함에 오빠는 몸과 마음에 상처를 늘려갔다.

혹여나 깨질까 싶어 아끼고 아껴온 내 오빠인데.

하지만 1년 늦게 학교에 입학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하굣길에 오빠의 손을 잡고 집으로 데려오는 것 정도였다. 오빠가 나에게 한 부탁은 오로지 엄마에겐 말하지 말아 달라는 것뿐이었으니까.

오빠 본인 말에 따르면 물리적인 아픔은 익숙해서 괜찮다, 초등학생이 때리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였다.

하지만 정말로 무서운 건 엄마와 우리 가족에게 폐를 끼치는 거라고.

오빠 본인이 괜찮다고 하는데 그 기분을 무시하고 파고들고 싶지는 않았다.

오빠와 손을 잡고 하교하는 나를 보고 놀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오빠의 손을 놓은 적이 없었다. 그것만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때 손을 놓았다면 두번다시 오빠의 손을 잡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진흙투성이로 돌아온 오빠를 보고 엄마가 괴롭힘에 대해 알게 되면서 학교가 뒤집혔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단순한 ‘애들 장난’에 처벌을 주는 건 어린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게 학교의 입장이었다. 게다가 그 ‘장난’에 가담한 남학생의 수가 너무 많았다. 그 모든 아이에게 벌을 주고 전학을 보내고 학교 폭력을 인정하는 것보다 오빠 한 사람의 사회성 부족을 문제로 삼는 게 학교 입장에선 훨씬 편한 해결책이었겠지.

결국 그 사건은 어영부영 넘어가게 됐고, 학교는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밖에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오빠는 분명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지만 가해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직접적인 괴롭힘은 많이 줄었다. 은근한 따돌림은 어쩔 수 없었지만 적어도 내 눈에 보이는 폭력은 없어졌다.

그리고 오빠는 무사히 살아서 졸업식을 맞이했다.

졸업식 날 오빠는 행복한 듯이 웃고 있었다.

그런 해바라기처럼 웃는 오빠를 보는 건 나도 처음이었다.

“미소야. 고마워.”

“갑자기 왜 그래? 오빠?”

“학교, 미소 덕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어. 내가 무사히 졸업한 건 전부 미소 덕분이야. 고마워.”

“……어이구. 우리 오빠, 기특하기도 하지. 근데 중학교 가면 혼자 다녀야 할 텐데 어떡해? 나 없어도 괜찮겠어?”

“……응. 어렵겠지만, 변하도록 노력해볼게. 엄마한테도 누나한테도 미소한테도 걱정 끼치지 않도록 변할 거야.”

오빠는 자신의 두 다리로 세상에 서려 하고 있었다. 나에겐 그런 오빠가 마치 애벌레가 나비로 우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응, 오빠. 내가 응원할게!”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오빠의 손을 꽉 쥐고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를 든 엄마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중학생이 된 오빠는 정말로 변했다. 밥을 잔뜩 먹기 시작하더니 키도 쑥쑥 자라고 덩치도 커졌다. 매일 달리기나 팔굽혀펴기, 윗몸 일으키기 같은 운동도 빼먹지 않고 했다.

무엇보다 엄마와 대본 연습을 하기 시작하면서 말더듬이도 고쳤다.

여전히 발표할 때처럼 많은 사람에게 주목받거나, 모르는 사람과 대화할 때는 많이 긴장했지만, 오빠에게 있어선 정말로 크나큰 발전이었다.

오빠의 성장, 그리고 스스로 바뀌고자 하는 모습을 보고, 중학교엔 나도 소영 언니도 없지만 분명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오빠는 중학교에 잘 적응했다. 동성 친구도 생겼고 초등학교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란 언제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터지기 마련이다.

1학년 수학여행지에서 오빠는 같은 학년 여학생들에게 집단 성추행을 당했다.

여학생들은 억지로 오빠의 바지를 벗겨 사진을 찍고 강제로 사정하게 만들어 동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같은 학년 여학생들끼리 영상과 사진을 공유했다.

이 사건은 뉴스로 나올 정도로 파장이 컸다. 초등학생 때 당한 귀여운 학교 폭력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문제였다.

사건에 직접 가담한 여학생 8명이 강제 전학을 갔다.

채팅방을 통해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한 여학생 20여 명에게도 정학, 봉사활동, 특수교육 등의 처벌이 내려졌다.

하지만 그런 처벌로 오빠가 입은 상처를 지울 수는 없었다.

오빠와 우리 가족들은 초등학생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나와 언니, 엄마가 같은 여자라는 이유로 오빠에게 거절당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충격을 받았다.

결국 그 고비를 넘으면서 우리 가족의 인연은 더욱 단단해졌지만, 그때의 일은 두 번 다신 겪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마음속 깊이 깨달은 게 있었다.

우리에 가둬 놓고 키웠던 햄스터처럼, 오빠와 오빠의 주변도 좀 더 철저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나 혼자만의 힘으론 부족했다. 좀 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과 인력이 필요했다. 중학교 시절뿐만 아니라 앞으로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졸업 후의 생활을 생각하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다.

내가 아이돌이 되기로 한 것은 단순히 나에게 그럴듯한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기엔 딱 좋은 일이었다.

아이돌 생활을 길게 할 생각은 없었다. 어느 정도의 유명세만 얻으면 그만둘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데뷔하고 인기를 얻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린 데다 그만두는 것도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나는 이 일을 너무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서 고등학교에 진학한 오빠를 전적으로 관리하는 데에도 구멍이 생겼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오빠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내 귀와 머리를 의심했다. 나를 두고, 소영 언니를 두고, 엄마를 두고, 여자친구를 만들었다고?

그때 내가 느낀 배신감이란 도저히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동생의 회상 - 나와 오빠의 이야기 2 

가족 외에는 처음으로 오빠의 특별한 사람이 된 여자.

하지만 우리 가족을 제외한 오빠의 주변인들은 지금까지 모두 오빠를 생각 없이 상처입힐 뿐이었다. 

중학생 시절 수학여행 사건도 그랬다. 여학생들 사이에서 리더였던, 소위 일진이었던 한 여학생이 오빠에게 눈독 들인 게 원인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빠에게 사귀자고 했다가 거절당한 뒤, 거기에 앙심을 품고 그런 일을 벌인 것이었다.

오빠에게 가족을 제외한 특별한 사람이란 해악밖에 없는 존재였다. 좋아한다든가 관심 있다든가, 그런 가벼운 생각으로 접근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진심으로.

나는 오빠의 여자친구라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솔직히, 깜짝 놀랐다. 오빠의 여자친구, 연이 선배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얼굴도 평범, 성격도 평범, 집안도 평범, 어느 반에나 있는 구석에서 조용히 책이나 읽고 있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

혹시 오빠는 이런 사람이 취향인 걸까. 나랑은 완전 정반대 극점에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솔직히 조금 충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연이 선배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었다는 거다. 본인 스스로가 오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고, 우연히 오빠와 사귀는 사이가 되긴 했지만 정작 본인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했다.

엄마가 나온 드라마처럼 돈 봉투를 주면서 헤어지라고 종용할 것도 없이 연이 선배는 순순히 오빠와 헤어지기로 했다. 그뿐만 아니라 오빠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결과, 앞으로의 계획에도 협조해 주기로 약속했다.

오빠 가까이에서 주위를 살펴줄 동급생의 존재. 연이 선배는 나에게 꼭 필요한 인재였다.

연이 선배는 이후 충실하게 오빠 주위를 맴돌며 나에게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미리 정보만 얻을 수 있다면 문제 대부분은 돈과 인맥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연이 선배는 오빠와 같은 대학에 입학해 오빠의 울타리가 될 조직을 만들었고, 지금도 오빠를 지키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연이 선배의 수완이 좋은 건지, 조직은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나름 체계적이고 충성도도 높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고를 미리 방지할 수는 없었다. 어디에나 모난 돌은 있기 마련이고 그 모난 돌은 언제나 우리 오빠에게만 날아오곤 했다.

대학 1학년 때 오빠는 스토커 피해를 당했다. 그 스토커란 오빠와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으로 오빠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것뿐만 아니라 중학교 수학여행 때 찍은 영상을 가지고 있다며 만나주지 않으면 영상을 퍼뜨리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어째서 이런 이상한 여자는 선후 오빠 주변에만 모이는 걸까. 신의 장난일까, 아니면 저주라도 받은 걸까. 오빠 주변에 멀쩡한 여자라곤 나밖에 없는 것 같다. 정말로.

당연하지만 그런 막무가내식 협박이 통할 리가 없었다. 그 여자는 곧바로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리고 오빠는 그 일로 또 한 번 큰 상처를 받고 말았다. 그것도 이제 겨우 아물려 했던 과거의 상처까지 헤집어놓기나 하고.

하지만 오빠도 예전의 오빠가 아니었다. 여성 혐오증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오빠는 훌훌 털고 일어났다.

그동안 받아온 상처들이 오빠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걸까. 오빠도 언제까지나 어린애가 아니었다. 예전처럼 작고 연약하기만 한 오빠가 아니었다. 오빠도 이제 어른이었다.

오빠의 성장을 가장 기뻐한 건 분명 엄마였겠지만, 내가 느낀 감동도 아마 못지않았을 것이다. 이런 게 모성이라는 걸까? 오빠의 성장에 모성애를 느끼는 여동생이라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 감정은 그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가슴을 가득 채우는 기특함, 사랑스러움, 오빠가 나에게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지 다 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다. 내가 오빠를 원했다. 오빠의 모든 걸 가슴에 담고 싶었다. 오빠를 품에 가득 안고서 언제까지고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 기분이었다.

이 시기에 나는 뒤늦게 자위를 배웠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했던가. 날이면 날마다 오빠를 생각하면서 자위 삼매경이었다. 스케쥴이 있는 날도 없는 날도 상관없었다. 오빠를 향한 내 사랑은, 자위의 쾌락은, 내 모든 에너지의 근원이었으니까.

그리고 자위를 시작하면서 나는 파워업을 했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좀이상하네. 오빠의 성장을 보고 나도 같이 성장을 했다고 하는 게 좀 더 듣기에는 좋겠지 

어쨌든 나는 성장했고 업계의 정상에 올랐다. 처음에 계획했던 적당한 인기와 인지도는커녕 최고 인기 아이돌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갑작스레 부풀어 오른 인기 탓에 부작용도 많았다. 팬이 늘어난 만큼 안티도 늘었고 그 정도도 심해졌다. 말도 안 되는 루머와 스캔들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단지 오빠를 생각하면서 자위하는 게 취미인 순진한 20살 여자 아이돌일 뿐인데, 인터넷에 떠도는 진미소란 인간은 아이돌 남친을 귀걸이처럼 바꿔 끼면서 임신과 낙태를 반복하는 개걸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제 슬슬 자위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진짜 오빠가 필요했다. 상상만으로는 부족했다. 살아있는 오빠를 원했다.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데, 매일 눈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째서 상상하고 자위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오빠에게 접근했다. 같은 집에 있으니 기회는 충분했다. 나는 기회가 날 때마다 오빠에게 접촉을 유도했다.

자신은 있었다. 나는 인기 절정의 아이돌이니까. 수많은 남성 팬들을 반하게 만들어온 실적이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 관계도 있다. 내가 오빠를 사랑하는 만큼 오빠도 나를 사랑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오빠는 고자인가?

아무리 내가 꼬리를 쳐도 오빠는 나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다른 멤버들에게 남자를 유혹하는 방법을 배워서 써보기도 했지만 효과는 신통찮았다.

오빠가 그동안 겪은 상처로 인해 고자가 됐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사 결과 오빠는 건강했다. 자위도 매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나에겐 관심을 안 보이는 걸까.

피가 이어져 있지 않은데도 남매라는 정신적 장벽이 가로막는 걸까.

나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 영향으로 아이돌 활동에도 지장이 올 정도였다.

그리고 초조함이 쌓여 폭발해버린 나는 오빠가 목욕 중인 욕실에 쳐들어가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그 일은 오빠와의 관계를 극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지만, 지금도 미친 짓을 했다고 반성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오빠와의 사이에 영영 수복할 수 없는 균열이 생겼을 수도 있었다. 그동안 오빠를 상처입혀온 다른 여자들과 똑같은 인간이 될 수도 있었다. 너무나 위험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오빠는 나를 받아들여 주었다.

드디어 내 망상의 한 페이지가 현실에서 이뤄진 순간이었다.

그 뒤로도 오빠와의 관계는 순조롭게 발전해나갔다.

안 좋았던 컨디션은 완전히 회복되었다. 이상한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언제나 에너지가 넘쳐났다. 이게 사랑의 힘이라는 걸까?

단둘이 나갈 데이트 약속도 잡았다.

엄마가 반대할 거라고 걱정했지만 엄마도 말없이 허락해주었다.

오빠와 데이트라니. 아무것도 아닌 일도 오빠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다.

행복했다. 이 행복의 마지막 장면에는 호텔에서 오빠와 첫날밤을 보낼 계획이었다. 매일 망상해온 로맨틱한 밤이 오늘 드디어 현실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하지만 계획은 심각하게 틀어지고 말았다.

내가 상상했던 최악의 상황은 오빠와의 관계가 들켜 아이돌을 은퇴하는 거였지만, 현실은 내 상상 속 최악을 우습게 뛰어넘어버렸다.

“하악……, 히익…….”

숨 소리가 이상했다. 오빠의 얼굴에 빛이 사라졌다.

“오빠! 왜 그래, 오빠! 정신 차려! 숨 쉬어!”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오빠는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나는 패닉에 빠졌다.

오빠가, 오빠가 죽어버린다. 나 때문에. 내가 그랬어?

안 돼. 오빠. 죽으면 안 돼. 죽게 놔둬선 안 돼.

호흡곤란? 어떻게 해야 해? CPR? 아니, 심폐소생술은 심장이 멈췄을 때. 오빠는 어떻지? 심장은? 뛰고 있어?

철썩!

양손으로 힘껏 자신의 뺨을 때렸다. 혼란해 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오빠를 죽게 놔둘 거야?

나는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바로잡았다.

떠올려. 배웠잖아. 발작을 일으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천천히 기억해 내.

“거기 언니! 119 신고 좀 해주세요! 사람이 호흡곤란으로 쓰러졌다고!”

위급 상황 발생 시, 먼저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신고해달라고 요청한다. 나는 바로 앞 매장 직원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리고? 환자가 숨을 쉬는지, 심장이 뛰는지 확인한다.

숨. 쉬지 않는다. 심장. 뛴다.

호흡이 정지되고 4분이 지나면 뇌세포가 파괴된다. 그 전에 구조 호흡을 해야 한다. 

그래. 구조 호흡이다. 심장을 누를 필요는 없어. 제대로 뛰고 있으니까.

우선 기도 확보. 답답할 수도 있는 가슴 단추를 풀고 벨트도 풀었다.

그리고 인공호흡. 코를 막고 입은 바람이 새지 않도록 완전히 밀착한다. 그리고 숨을 불어넣는다. 5초에 1번 간격으로.

“후욱.”

“후욱.”

“후욱.”

키스와는 달랐다. 오빠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혀는 굳어있고 입술은 차가웠다. 평소와 다른 감촉이 내 마음속에 공포심을 일으켰다.

“오빠. 나 무서워. 제발 일어나. 제발 숨 쉬어줘.”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쉬지 않고 구조 호흡을 했다. 5초에 1번. 5초에 1번. 5초에 1번.

“찍지 말아주세요. 죄송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찍지 말아주세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오빠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저마다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우리 쪽으로 렌즈를 향하고 있었다.

저 렌즈들이, 저 카메라들이 오빠를 죽였어.

뱃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었다. 오빠가 먼저니까. 오빠를 먼저 살리지 않으면 안 되니까.    

구조 호흡을 이어간다. 5초에 1번씩. 5초에 1번씩. 내 가슴이 아플 정도로.

몇 번이나 했을까. 몇 분이나 지났을까.

“오빠!”

드디어 오빠는 스스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굳어있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오빠아……!”

오빠가 살았다는 안심감에 나는 오빠에게 매달려 엉엉 울어버렸다. 뒤늦게 구급대원도 도착해 오빠의 입에 호흡기를 씌웠다. 그리고 간이침대에 눕혀 오빠를 구급차로 옮겼다. 

나는 엉망진창으로 울면서 오빠를 따라 구급차에 탔다. 

“선생님, 선생님, 오빠는요? 우리 오빠 괜차나요?”

“괜찮아요. 오빠분 숨 제대로 쉬고 있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구급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목 놓아 울었다. 구급대원 언니 오빠도 곤란했을 것이다.

“미소 씨가 오빠분을 살렸어요. 고생했어요. 이제 안심하셔도 돼요.”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아마 평생 흘린 눈물보다 이때 흘린 눈물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위험한 순간은 있었지만, 오빠는 살아났다.

우선 엄마한테 전화해 오빠가 응급실에 입원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엄마는 금방 날아왔다. 병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기세로.

혼날 거라고 생각해서 벌벌 떨고 있었지만, 오히려 엄마한테는 위로를 받았다.

무서웠지, 힘들었지, 하며 안아주었다.

나는 또 펑펑 울었다.

오빠는 응급실 의사의 소견에 따라 금방 응급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다. 방금 전까지 숨도 못 쉬고 있었는데. 마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돌팔이 같으니.

나는 누워있는 오빠를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오빠는 엄마에게 맡기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나대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지금까지 안티도 팬이라고 어물적 넘겼지만, 이번엔 달랐다. 오빠를 이렇게 만든 놈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어, 미소야. 어디니? 병원이야?”

마침 전화하려고 했던 소속사 사장한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사장님. SNS에 글 하나 올릴 건데 검수 좀 해주세요. 그리고 이번에 악플러들 제대로 청소 좀 해주시고요. 이번 일 제대로 처리 안 하면 저 진짜 이 일 못 해요.”

“어어, 알았어. 법무팀 총동원해서 대응할 테니까 미소는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마음 잘 추스르고.”

“사장님. 우리 오빠 이렇게 된 거 사장님 잘못도 있는 거 아시죠?”

“아, 아니, 그건 말이지, 상황이 오해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잖니.”

“나중에 엄마한테서 전화 갈 거니까 알아서 준비하고 계세요.”

“미, 미소야…….”

나는 전화를 끊고서 SNS에 올릴 글을 작성했다.

어떤 식으로 쓰는 게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쓰기로 했다. 적당히 써서 보내면 소속사에서 알아서 수정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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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부모님이나 언니가 누군지는 말 안 해도 다들 아실 겁니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제 오빠가 누군지는 모르실 거예요.

당연합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저희 오빠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으니까요.

오빠는 마음의 병 탓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더 숨겨왔습니다. 하지만 그 탓으로 오늘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희 오빠는 6살 때 우리 집에 온 입양아입니다.

오빠는 어려서부터 친부모에게 심한 학대를 받아 육체적인 상처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상처도 심했습니다.

(위키트리 링크: **년 인천 아동학대 사건)

당시 5살이던 저는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막내딸이었습니다.

학대가 뭔지, 장애가 뭔지 인지조차 못 하는 어린애였습니다.

그저 새 오빠가 생겼다는 이야기에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낯선 가족의 일원이 된 오빠.

처음엔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선후 오빠는 누가 뭐래도 사랑하는 제 가족이고 세상에 하나뿐인 저의 오빠입니다.

오늘은 오빠와의 첫 데이트 날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오빠와 단둘이 외출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빠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가거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 쉽게 컨디션이 나빠지기 때문입니다.

오빠와 같이 길을 걷고, 영화를 보고, 외식을 하고, 쇼핑을 하는 게 제 평생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집을 부렸습니다. 제가 쉬는 날에 같이 나가자고.

오빠 많이 나아졌으니까 이제 괜찮지 않냐고.

오빠는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제 소원을 이뤄주려 했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즐거웠습니다.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너무 좋아했던 게 탈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를 알아본 많은 분들이 오빠를 제 남자친구라고 착각하셨더라구요.

착각만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요. 잘못된 정보는 SNS에서 끊임없이 퍼졌고, 많은 분들이 남자친구와 비밀 데이트를 즐기는 저를 비난했습니다.

오빠는 그 사실을 알고 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에 대한 비난이 오빠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오빠는 쇼크로 정신을 잃었고 호흡이 멈추면서 위험한 순간까지 맞았습니다.

그 순간에도 많은 분들이 쓰러진 오빠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계시더군요.

저는 아이돌입니다.

저의 행동으로 인해 저 자신에게 주어지는 비난과 책임은 얼마든지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제 가족을 상처입히면서까지 아이돌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제 소중한 가족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하고 상처 입는 일이 생긴다면, 저는 당장이라도 은퇴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저희 오빠는 더 사랑받고 행복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제발 더는 상처입히지 말아주세요. 저희 오빠를 지켜주세요. 

오빠. 미안해. 제발 일어나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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