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256)

정신과 상담 받는 날 

  

오늘은 2주에 한 번 있는 정신과 진료를 받는 날이다.

사실 정신과 진료라고 거창하게 말하지만 특별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단순히 상담을 받고, 내 정신 상태에 따라 약을 처방받는다.

어렸을 때는 매번 독한 약을 받아왔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고,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거의 약을 받지 않게 되었다.

약이란 건 양날의 검이다.

마음을 편하게도 해주지만, 동시에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약을 먹으면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지낼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약은 먹고 싶지 않다.

살아있어도 죽은 것처럼 지내야 하니까.

“그럼 대학교에서도 별문제는 없는 거네?”

“네. 잘 지내고 있어요.”

“그래. 친구는 생겼니?”

“아니요…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서두르지 않아도 돼. 지금은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는 데에 익숙해지는 게 중요하니까. 좀 더 나아지면 친구는 싫어도 저절로 생길 거야.”

신경정신과 전문의 윤서아 선생님.

중학생 때부터 내 담당을 맡아주고 계신 분이다.

그리고 상담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자신감을 채워주는 말을 많이 해주신다.

어떤 정신질환자는 자질이 없는 의사를 만나 오히려 증세가 심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처럼 상태가 좋아진 데에는 선생님의 역할이 무척 컸다.

별것 아닌 이야기도 경청해주고, 진지하게 상담에 응해주신다.

나로서는 가족에게도 말 못할 이야기까지 할 수 있는 유일한 상담 상대였다.

“선생님, 저…….”

“응? 왜 그러니?”

선생님은 내 태도를 보고 중요한 이야기가 나오리라는 것을 민감하게 캐치했다.

사실 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망설이고 있었다.

말을 할지, 아니면 계속 비밀로 할지.

아마 지금 선생님에게 말하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계속 속으로만 끙끙 앓다가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기 전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다.

“……선생님. 이 이야기는 비밀로 해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절대 비밀로 한다고 선생님이 약속할게.”

미인 정신과 전문의로 유명한 윤서아 선생님은 TV에도 자주 나오고 신문이나 잡지에 칼럼도 많이 낸다.

이렇게 비밀로 해달라고 말하지 않으면 어디서 어떻게 이야기가 새어나올지 몰랐다.

“사실은…….”

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꺼내려 하니 말문이 탁 막혔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제대로 비밀이 지켜질지.

괜히 말했다가 가족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닌지.

또다시 망설이고 있자, 선생님이 내 손등에 손을 겹쳤다.

차가워져 있던 손에 다시 피가 도는 게 느껴졌다.

“선후야. 뭐든지 괜찮으니까 이야기해봐. 고민거리가 있다면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안경 아래로 나를 응시하는 선생님의 눈동자는 진지했다.

이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그런 확신이 생겼다.

“선생님 사실은…… 제가 고민이 있어요.”

“그래. 어떤 고민일까?”

“그게, 좀, 말하기 힘들지만…… 성적인 고민이에요.”

“성적인 고민 말이지. 선후 나이대에는 당연한 일이야.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젊은 남자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종류가 조금 달랐다.

“하지만 저는 좀 달라요. 저는 가족들을…… 가족이 성적인 대상으로 보여요.”

“그러니? 선후네 가족이라면 어머니, 누나, 동생, 그중에 어느 쪽?”

“……셋 다. 전부 다요.”

나는 말하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말해버렸다. 이젠 주워 담을 수도 없다.

선생님도 나를 경멸할까? 키워준 가족을 상대로 발정하는 짐승이라고.

그나마 육체관계까지 있었다는 걸 말하지 않은 것만은 다행일지도 모른다.

“선후가 고민하는 게 뭔지 선생님도 알 것 같아. 가족인데 단순한 가족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여자로 보인다는 이야기지? 성욕의 대상으로 보인다고.”

“……예. 맞아요.”

말하고 나서 나는 뒤늦게 후회했다.

민망해서 도저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선후야. 너무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 없어. 선생님 좀 볼래?”

선생님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선생님과 눈을 마주쳤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호의를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야. 거기에 성욕이 따라오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선생님, 하지만…….”

“그리고 가족 간에 성욕을 가지는 경우도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야. 다들 비밀로 하고 있으니 알려지지 않는 것뿐이지.”

“…….”

정말 그런 걸까?

선생님이 날 위해서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

“그리고 선후는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 나쁜 짓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아? 싫다는데 억지로 관계를 맺거나, 그러진 않았지?”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럼 괜찮아. 근친간 혼인이 금지되어있다 뿐이지, 사랑하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니까. 엄밀히 말하면 선후는 입양아니까 근친관계도 아니고. 도덕적으론 비판받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도 선후를 처벌할 수는 없어. 대한민국에서 ‘사랑할 권리’는 법으로 보호받고 있거든.”

“……사랑할 권리요?”

“그래. 예전엔 ‘간통죄’라는 게 있었다는 건 아니?”

선생님은 왼손 약지에 낀 반지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간통이란 건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다른 이성과 성관계를 맺는 일이야. 바람을 피운다는 것과 같은 의미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건 간통죄라고 해서 법적으로 처벌받는 죄였어. 하지만 이 법은 폐지되었지. 왜 폐지되었을까?”

“…왜 폐지되었나요?”

“사람의 사랑할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만약 선생님이 남편이 아닌 남자와 바람을 피우더라도, 법적인 처벌은 받지 않는다는 얘기지. 선생님에겐 사랑할 권리가 있으니까.”

“아…….”

선생님은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서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 행동이 왠지 굉장히 의미심장해 보였다.

“바람이란 건 분명한 피해자가 나오는 거야. 만약 선생님이 바람을 피운다면 선생님의 남편이 그 피해자가 되겠지. 그런데도 선생님의 죄는 되지 않아. 선생님에겐 사랑할 권리가 있으니까.”

그랬다. 바람을 피우면 피해자가 나온다.

그런데 그게 죄가 되지 않는다면 피해자는 억울하지 않을까?

엄마가 새아빠와 이혼한 직접적인 사유도 새아빠의 바람 때문이었다.

재산 분할이나 양육권을 얻긴 했지만, 정작 새아빠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하던 일도 멀쩡히 계속하고 있고.

“그렇다면 가족 간의 사랑은 어떨까? 가족끼리 사랑하면 피해자는 누구지?”

선생님이 진지한 눈으로 질문했다.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지만, 선뜻 답이 떠오르질 않았다.

“피해자는… 없지 않나요?”

내 대답에 선생님은 정답이라는 듯이 웃었다.

“그래. 아무도 피해 보는 사람은 없어. 오히려 피해자는 선후 너 자신이야.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너 혼자 죄의식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으니까.”

“제가, 피해자……?”

“그래. 선후 너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죄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다는 얘기야.”

비록 빈말일지라도 선생님의 말은 가뭄의 단비처럼 내 마음을 적셨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동안 고민해왔던 일들이 모두 날아갔다.

내가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죄들도 모두 용서받은 기분이 들었다.

“선후야. 그렇다고 마음을 놓아선 안 돼. 너희 가족은 특별하니까. 아무 잘못이 없어도 깎아내리려 드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잖아?”

“네… 있어요.”

어떻게든 흠집을 내려는 악성 팬덤.

그리고 거기에 먹이를 던져주는 기자들.

그런 사람들에겐 절대로 알려져선 안 된다.

그게 잘못이든 아니든, 그 사람들이 알면 분명 우리 가족을 파괴하려 들 테니까.

“그리고 또 하나.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 것. 사람에게 사랑할 자유가 있다지만, 그건 상대방한테도 마찬가지니까. 뭐든 강제로 하려는 건 안 돼. 선생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아, 네. 명심하겠습니다.”

선생님의 조언은 너무 당연한 거였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이기적인 욕망으로 선을 넘었다간 서로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도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선후는 가족 외에는 신경 쓰이는 사람 없니?”

“신경 쓰이는 사람이요?”

그건 또 의외의 질문이었다.

여기서 신경 쓰이는 사람이란 가족에게 느끼는 것처럼 성욕을 느끼는 대상을 말하는 걸까.

“그래. 같은 학교 여학생이라든가.”

“아니요, 별로… 가족 외에는 아직 사람이 무서워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쓰이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친한 사람조차 없다.

“그래. 무서워서…… 혹시 선후는 선생님도 무섭니?”

“아니요. 선생님은 무섭지 않아요.”

선생님은 내가 중학생일 적부터 상담해주신 분이다.

엄마와는 다르지만, 나에게는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고마운 분.

어쩌면 엄마보다 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 상대일지도 모른다.

“그럼 선생님 상대론 어때? 선생님한테도 성적인 욕구 같은 거 느낀 적 있니?”

“……네?”

선생님의 말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갑작스러웠고, 쉽게 대답하기 힘든 민망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해도 돼. 선후가 가족에게만 성욕을 느끼는지, 아니면 쌓인 성욕이 가장 가까운 이성인 가족에게 향한 건지, 그걸 판단하기 위해서 묻는 거니까.”

선생님이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겨우 이해가 갔다.

그렇다고 쉽게 소화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내가 대답을 못 하고 망설이고 있자 선생님이 다시 내 손등에 손을 겹쳤다.

아까도 똑같이 손을 잡았었는데, 왠지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선생님이 살금살금 내 손등을 쓰다듬는다.

조금 간지러운 듯한, 부끄러운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안경 안쪽의 눈이 상냥하게 웃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선생님을 성욕의 대상으로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자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원래 선생님은 미인 정신과 여의사로 유명하신 분이다.

TV에서 정신과에 관련된 조언이 필요할 때는 늘 섭외 1순위. 

지적인 외모에 날카로운 분석력, 거기에 상냥한 상담 태도가 더해져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오랫동안 상담 상대가 되어주시며 가족 외에는 가장 마음을 터놓고 지낸 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선생님을 상대로, 지금 나는 분명 성욕을 느끼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괜찮아. 이야기해줄래?”

“느꼈어요. 성욕. 선생님 상대로도.”

“후후. 고마워. 아직 선생님도 죽지 않았네.”

선생님은 웃으며 내 손등에 올렸던 손을 뗐다.

떨어지는 온기가 아쉬웠다.

뭘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 아무 일도 없는 게 당연한 건데.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잡념을 털어냈다.

“선후는 그럼 정상인 거야. 가족에게만 성욕을 느끼는 게 아니라, 쌓여서 갈 곳을 잃은 성욕이 가족에게 향한 것뿐이니까.”

“네…….”

나로서는 선생님이 특별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무튼, 이번 주 상담은 이렇게 끝이 났다.

“오늘 선생님이 말한 거 명심하고. 또 다른 고민거리 있으면 혼자 삭히지 말고 꼭 이야기해. 꼭 선생님이 아니더라도 가족들한테라도 말이야.”

“알겠습니다.”

앓고 있던 고민이 풀린 만큼 오늘 상담은 특히 보람이 있었다.

“그럼 선후야, 2주 뒤에 보자.”

“고맙습니다, 선생님.”

나는 손을 흔드는 선생님께 공손히 인사하고 진료실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 * *

“하아…….”

한편, 선후를 돌려보내고 진료실에 혼자 남은 윤서아 선생은 깊이 한숨을 쉬었다.

“이번 주도 실패했어… 절호의 찬스였는데…….”

그녀는 힘없이 책상에 엎드렸다.

그리고 책상에 이마를 대고 웅얼웅얼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환자에게 손을 대는 건…… 아니, 이것도 치료의 일환이라고 우기면……”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오른손을 보았다.

선후의 손등에 닿았던 손.

7년간 그의 담당을 맡아왔지만, 이렇게 신체를 접촉한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2주 뒤에는 반드시…….”

그 손은 자연스럽게 책상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녀의 치마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아앗……♡”

그렇게 윤서아 선생은 다음 예약 시간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엄마와 함께하는 우리 아이 성교육 제2탄 

  

정신과 선생님과 대화한 후.

자신감을 얻은 나는 조금 세상을 우습게 봤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건 죄가 아니라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만큼 가족도 날 사랑한다고.

지금의 행복이 언제까지고 계속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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