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256)

*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 선후야.”

집에 돌아오자 엄마가 현관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

내가 유일하게 마음 놓을 수 있는 곳.

그리고 유일하게 마음 놓을 수 있는 사람.

돌아올 장소가 있고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학교에선 별일 없었니?”

“응.”

있었다면 있었지만 그런 사소한 것까지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나는 대답하면서 엄마 품에 안겼다.

“어머.”

엄마는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놀라면서도 기꺼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오늘 하루 쌓인 스트레스가 녹아내린다.

“아무 일도 없었어.”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 그 뒤편에서 

진선후가 다니는 대학에는 특이한 동아리가 몇 군데 있다.

저런 동아리가 어떻게 허가를 받았을까 싶은 동아리에서부터, 정말 저런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나 싶은 동아리까지.

   

그중 하나가 버드 워칭 동아리다.

   

Bird Watching.

말 그대로 새를 관찰하는 놀이를 말한다.

   

이 동아리에서 하는 일은 단순하다.

자신들의 Bird(진선후)를 Watching(관찰)하는 것.

   

시작은 작은 과동아리였다.

한 과에서 마음이 맞는 학생 6명이 모여 동아리를 만들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알음알음 알리며 협력자를 모집했다.

   

1학기가 지났을 때는 그 과의 절반이 이 동아리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1년이 지났을 때는 중앙 동아리로 승급해서 학교 전체에서 회원을 받았다.

그 수는 비공식적으로 약 500명.

공식적으로 등록된 부원은 여전히 6명이지만, 그들의 뜻에 동조하는 여성은 갈수록 늘고 있었다.

   

버드 워칭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연 그대로의 새를 관찰하는 것이다.

절대 새의 사생활을 침범하지 말 것.

그것이 버드 워칭의 제1원칙이다.

   

보는 것도, 상상하는 것도 상관없다.

뭣하면 일기장에 소설을 써도 된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거나 말을 거는 행위는 금지.

관찰하더라도 절대로 눈을 마주쳐서는 안 된다.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조차 새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으니까.

더욱이 만지려 하거나 먹이를 주는 행위는 절대 금기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며 즐기는 것.

그것이 버드 워칭 동아리의 존재의의였다.

   

“그런데 요즘 신입생들이란……!”

   

동아리 회장이 분노하며 책상을 두드렸다.

책상 위에는 오늘 선후가 마셨던 것과 같은 종류의 생수가 여러 병 쌓여 있었다.

“회장. 어떻게 할까요.”

“……일단 우리식으로 교화시켜 보자. 그래도 안 될 때는.”

   

회장 주위에 선 다른 여학생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 괘씸한 1학년이 동아리방에 끌려왔다.

진선후에게 말을 걸다가 다른 학생들에게 입을 막혀 끌려간 그 여학생이었다.

   

“저 왜 데려왔어요? 약속 있어서 가봐야 하는데.”

   

빨갛게 물들인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후배는 말했다.

진한 화장에 귀걸이, 짧은 치마.

전형적인 잘 노는 요즘 여자애였다.

   

본인이 꾸미고 다니는 걸 가지고 트집 잡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런 모습으로 자신들의 파랑새에게 접근하는 건 용서할 수 없었다.

   

“하나만 약속해주면 바로 돌려보내 줄 거야. 2학년 진선후에게 다가가지 말 것.”

“네? 선배님이 무슨 권한으로 참견하시는 건데요?”

   

후배는 기가 막힌 듯 웃었다.

하지만 회장은 후배의 건방진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흔들릴 것 같았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야. 불 꺼.”

   

회장의 말 한마디에 다른 여학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불을 끄고 커튼을 닫는다. 어떤 학생은 문을 잠갔다.

   

“뭐, 뭐 하시는 거예요? 털끝 하나만 건드려도 신고할 거예요?”

   

위기를 느낀 후배는 의자에서 일어나 방어 자세를 취했다.

회장은 대답 대신 노트북으로 어떤 영상을 재생해 후배 앞에 내놓았다.

“이건 선후가 중학생 때, 선후의 어머니이신 임신혜 배우님이 찍은 다큐멘터리를 편집한 거야.”

“임신혜 배우님? 임신혜면 그 임신혜요? 선후 선배가 임신혜 아들이었어요?”

   

놀라서 묻는 후배에게 회장은 설명하는 대신 화면을 보라고 턱짓을 한다.

노트북 화면에는 지금보다 젊어 보이는 선후의 어머니가 인터뷰하고 있었다.

   

『제가 그 아이를 처음 본 건 TV 뉴스에서였어요.』

『친부모한테 학대당한 남자아이가 나오는데.』

   

화면은 선후의 어머니에서 당시 방송된 뉴스 자료화면으로 넘어갔다.

   

『경찰은 아동 학대 혐의로 20대 부부를 긴급 체포했습니다.』

   

『피해 아동의 몸에는 피멍과 함께 담뱃불로 지진 자국도 선명하게 남아있었습니다.』

   

『어린이집 교사(모자이크): 아이가 그날 오줌을 누는데 피가 나오는 거예요. 안 그래도 잘 아픈 아이여서 어머니한테 전화했죠. 그랬더니 어머니가 괜찮다고, 나중에 병원 데려갈 테니까 놔두시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걱정 되니까 일단 병원에 데리고 가봐야겠다─』

   

『의사: 갈비뼈가 2개, 그리고 오른쪽 손목의 요골과 척골이 양쪽 다 부러져있었습니다. 갈비뼈는 부친이 아이의 배를 발로 차는 과정에서 부러졌고, 손목은 아마 단단한 막대기 같은 걸 휘둘렀을 때 아이가 막다가 부러진 걸로 보이고요. 손목이 이렇게 퉁퉁 부어있었는데 어떻게 아무도 몰랐다는 건지─』

   

『아동 학대 신고를 받은 경찰이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면서 사건 처리에 미온적으로 대응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웃 주민 B씨는 오래전에 경찰에 신고했었지만 아동 학대가 아니라 자녀 훈계로 처리했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어린아이의 멍투성이인 몸. 뼈가 부러져 퉁퉁 부은 손목. 그리고 부러진 뼈가 찍혀진 X-ray 사진이 차례로 화면에 비쳤다.

   

동아리 부원 몇몇은 영상을 보며 이미 흐느끼고 있었다.

회장도 소리 없이 눈물을 닦았다.

볼 때마다 너무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화면은 다시 진선후의 어머니인 임신혜의 인터뷰로 돌아왔다.

   

『어떻게 친부모가 자기 자식한테 그럴 수가 있는지, 너무너무 화가 나고 불쌍해서, 나도 아이 엄마니까─』

『어떻게든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어요. 그러다 그 아이가 보호 기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입양할 수도 있지 않을까─』

   

거기서 회장은 영상을 중지시켰다.

집중해서 보고 있던 후배는 화를 냈다.

   

“아니, 왜 중단시켜요? 사람이 보고 있는데.”

“비회원한테 보여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회장은 노트북을 덮었다. 방안에도 불이 켜진다.

그리고 A4용지 몇 장을 꺼내 후배 앞에 놓았다.

   

“이건 선후가 교수님께 제출한 정신과 진단서 복사본.”

“…정신과?”

   

회장이 내민 종이를 후배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장애. 대인기피. 폐소공포증…….”

   

적응 장애. 수면 장애. 거식증. 구토. 공황 발작.

마치 정신질환을 종류별로 나열해 놓은 듯한 진단서였다.

   

“친부모한테 학대당한 후유증으로 선후는 지금까지 정신장애를 앓고 있어. 그 진단서는 자기 정신 상태가 좋지 않아서 MT나 조별 과제 같은 단체 활동은 어려울 것 같다고 교수님한테 제출한 거야.”

“……이거 진짜예요? 이 정도면 학교에 다닐 게 아니라 입원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눈을 동그랗게 뜨는 후배를 향해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외부에서 자극하지만 않으면 문제는 없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본인이 학교를 계속 다니고 싶어 하고, 조금씩이라도 사회생활에 적응해나가고 싶어 한다는 거야. 우리도 교수님한테 선후가 무사히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부탁받았어.”

“그렇구나…. 그럼 선후 선배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제가 곁에서…….”

   

쾅!

후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회장이 벌떡 일어서며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외부에서 자극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잖아! 너 같은 년 때문에 작년에도 선후가 한 달이나 학교를 쉬었다고! 왠지 알아?!”

“왜, 왜요?”

   

갑작스럽게 분노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회장.

놀란 후배는 몸을 움츠리며 되물었다.

   

“너같이 아무 생각 없는 여자가 스토커처럼 졸졸 따라다니다가 선후가 발작을 일으켰기 때문이야! 덕분에 우리는 한 달 동안이나 선후가 없는 학교에 다녀야 했다고!”

“저, 저한테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제가 그런 것도 아닌데…….”

   

후배의 말에 회장은 겨우 자리에 앉았다.

회장은 급 피로해진 얼굴로 눈시울을 꾹꾹 눌렀다.

화를 삼키기 위해 심호흡도 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어떻게 됐는데요?”

“알고 싶어?”

“…아니요.”

   

말을 삼키는 후배에게 회장은 또 다른 종이를 내밀었다.

   

“여기 서명해. 동아리 가입 신청서야.”

“저, 다른 동아리 벌써 들었는데요?”

“중복 가입도 상관없어. 별다른 활동을 하는 게 아니니까. 그저 우리 동아리에서 정한 원칙을 따르겠다는 서명이야.”

   

자세히 보니 종이 상단에 적힌 문구는 ‘가입 신청서’가 아니라 ‘서약서’였다.

대충 내용을 훑어본 후배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여기 가입해서 좋은 게 뭐죠? 행동 제약만 있고 매리트는 없는 거 같은데.”

   

그러자 회장은 윗주머니에서 사진을 한 장 꺼냈다.

후배의 눈이 사진을 따라 이동한다.

   

“진선후, 고등학교 교복 사진.”

   

그 말을 들은 후배가 사진을 빼앗으려 팔을 휘두른다.

하지만 회장이 손을 빼는 속도가 더 빨랐다. 후배의 손은 허공을 갈랐다.

   

헛스윙을 한 후배는 분한 듯 인상을 썼다.

   

“선배 스토커 아니에요? 남의 사진으로 부원을 모으다니, 이런 건 범죄라고요.”

“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호자 동의도 얻은 거니까.”

“보호자?”

“그것까진 부외자한테 알려줄 거 없고. 그래서, 서명 할래, 안 할래?”

   

후배는 인상을 쓰면서도 다시 한 번 서약서의 내용을 읽었다.

본문은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선후가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도록 모두 함께 협조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서명하면 앞으론 선후에게 접근할 수 없다.

하지만 서명하지 않는다고 해서 선후와 친해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분명 오늘처럼 방해가 들어오겠지. 아마 이 사람들은 더욱 철저하게 마크할 것이다.

   

만약 몰래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정신이 불안정한 선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다.

혹시나 자기 때문에 선후가 발작을 일으키고 학교에 안 오기라도 하면…….

이 광신도 같은 여학생 무리에게 어떤 짓을 당할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알았어요. 여기 이름 쓰면 되죠?”

   

그렇게 그날 버드 워칭 동아리에는 또 한 명의 협력자가 이름을 올렸다.

후배는 회장에게서 받은 사진을 지갑에 넣고서 콧노래를 부르며 자리를 떴다.

   

“그럼 오늘 할 일은 끝났으니까 다들 이만 해산하자.”

   

회장의 말에 따라 부원들도 차례로 인사하며 동아리방을 나섰다.

   

"후우……."

   

조용해진 동아리방.

혼자 남은 회장은 조용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스마트폰이었다.

지문을 눌러 잠금을 해제하고는, 폰 화면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쓰다듬었다.

   

“선후야……♡”

   

스마트폰 화면 안에는 교복을 입은 선후와 회장이 나란히 웃으며 서 있었다.

   

누나와 함께 자위 

   

저녁 늦게 누나가 돌아왔다.

그것도 우승 트로피를 가지고.

   

“하~. 역시 집이 좋다니까.”

   

그리고 나는 곧장 누나 방으로 끌려왔다.

   

“호텔도 너무 오래 있으면 질린단 말이지.”

   

누나는 내가 옆에 있는데도 훌렁훌렁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해진 일이었다.

   

나는 또 벽 쪽으로 몸을 돌려야 했다.

   

“누나. 우승 축하해.”

   

누나도 오랜만의 우승이었다.

요즘 꽤 슬럼프가 길었으니까.

말은 안 했지만 누나도 스트레스가 심했겠지.

   

덕분에 오늘 누나는 드물게 기분이 좋았다.

   

“선후 너,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차라든가. 시계라든가.”

“아니. 없는데.”

“정말? 지금 말하면 누나가 사줄 건데?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난 누나가 우승한 것만으로도 기뻐.”

“어쭈. 요게 귀여운 말도 할 줄 아네?”

   

슬립으로 갈아입은 누나가 헤드락을 걸어왔다.

얼굴이 가슴에 눌린다.

마치 일부러 가슴에 얼굴을 누르는 듯한…….

   

“타임! 항복!”

   

나는 누나의 팔을 치고 항복을 외쳐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솔직히 아픔보단 부끄러움이 강했다.

누나의 허물없는 스킨십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관계가 묘하게 바뀐 그 날 이후로는 강하게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스마트폰.”

   

누나가 침대에 앉아 나에게 손을 내민다.

   

“폰은 왜?”

“검사한다고 했잖아?”

   

그랬다.

누나는 나와 미소와의 관계를 신경쓰고 있었다.

이번 대회에 나가기 전에도 신신당부했고.

   

나는 머뭇거리며 누나 손에 폰을 올렸다.

누나는 스마트폰을 조작해 미소와의 대화창을 확인했다.

   

* * *

   

[진미소] : 오빠 뭐해?

[진미소] : 오늘 나 데리러 와줄 수 있어?

[진미소] : 오빠

[진미소] : 톡 읽은거 다 알거든?

[진미소] : 뭐하냐니까

[진미소] : ?

[진미소] : (우는 이모티콘)

[진미소] : 오빠?

[진미소] : 오빠 자?

[진미소] : 보고 있지?

[진미소] : 오빠

[진미소] : (화난 이모티콘)

[진미소] : 대답하기 싫어?

[진미소] : 야!!! 진선후!!!!!

[진미소]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