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256)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 

  

이른 아침.

방안에서 간단히 스트레칭을 마친 나는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어둑한 거실을 지나 현관을 나선다.

아침에 일어나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

바로 조깅이다.

해가 뜨지 않은 한강 공원을 달린다.

아침 이슬이 서늘하다.

코스는 약 7km.

시간은 대충 40~50분 정도가 걸린다.

아침에 몸을 푸는 데는 딱 적당한 거리다.

“저기! 저기요!"

강바람을 맞으며 달리고 있자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랑은 관계없다고 생각하고 계속 달렸다.

"안녕하세요!”

하지만 그 사람은 내 바로 옆까지 와서 인사했다.

운동복을 입은 젊은 여성.

모르는 사람이었다.

“네? 저요?”

나는 계속 달리면서 대답했다.

“네. 항상 이 시간에 운동하시나 봐요. 저번에도 뵀는데.”

“아, 네.”

저번에?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여자분은 내 옆을 나란히 달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저 기억 안 나세요? 저번에 저쪽에서 저희 강아지가 그쪽한테 달려들어서.”

“아. 강아지. 기억납니다.”

사실 강아지는 기억났지만 주인은 기억나지 않았다.

강아지는 소형견인 말티즈였다.

“그땐 죄송했어요. 저희 슈미가, 갑자기 달려들어서.”

달리면서 말하다 보니 여자분의 숨이 점점 차오르고 있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목줄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이 놓쳤는지 강아지가 내 쪽으로 달려왔었다.

큰 개였으면 문제였겠지만 작은 강아지였고, 달려와서도 재롱을 부릴 뿐이었다.

주인에겐 그때도 사과받았으니 굳이 또 찾아와서 사과할 필요는 없을 텐데.

“되게 일찍부터 운동하신다. 혹시 어디 사세요? 저는 요 앞 신남 아파트 사는데.”

“저, 죄송합니다. 빨리 가봐야 해서요.”

솔직히 불편했다.

많이 나아지긴 했어도 대인기피 증상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눠도 괜찮은 사람은 가족이나 그 지인들 정도.

모르는 사람 상대라면 아무리 친절한 사람이라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 네. 붙잡고 있어서 죄송해요. 수고하세요.”

여자분은 실망한 듯 그대로 달리는 속도를 줄여 뒤로 빠졌다.

나는 고개를 꾸벅이며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어머! 총각. 아침부터 열심이네.”

계속 달리고 있자 앞서 달리던 사람이 또 말을 걸어온다.

이번에도 역시 모르는 사람.

조금 나이가 있는 아주머니였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하자 아주머니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거 하나 먹구 가. 힘내! 파이팅!”

“아, 네, 고맙습니다.”

달리면서 아주머니가 던져주는 요구르트를 받았다.

운동선수라고 생각하신 걸까.

의문의 응원을 받으며 나는 계속 달린다.

아주머니는 더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나는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이다.

“하아, 하아.”

혹시나 또 다른 사람에게 붙잡힐까 싶어 좀 더 속력을 높인다.

요즘 들어 부쩍 모르는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는 비율이 높아졌다.

더 일찍 일어나서 뛰어야 하는 걸까…… 나도 피곤한데.

* * *

“후우…….”

조깅을 마치고 겨우 집에 도착했다.

땀에 젖은 트레이닝복 상의를 벗어 세탁 바구니에 넣는다.

상의를 탈의한 채로 피트니스 룸으로 들어갔다.

피트니스 룸에서 내가 가장 애용하는 기구는 철봉이다.

나는 준비된 장갑을 끼고 철봉에 매달렸다.

“훗……!”

등 근육에 힘을 주고 몸을 끌어 올린다.

하나─ 

둘─ 

셋─……

턱걸이.

얼핏 쉬워 보이지만, 제대로 하려면 의외로 어렵다.

나도 중학생 때까지는 하나도 하지 못했고.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고등학생 때는 10개까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20개까지 늘어났다.

……열여덟─

열아홉─

스물─!

겨우 20개를 채우고,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허억, 허억, 허억…….”

팔과 등이 부들부들 떨린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아침 조깅을 빡빡하게 해서 그런가?

평소보다 더 힘든 느낌이었다.

오늘 스쿼트는 그냥 패스……하면 안 될까?

“……딱 30개만 하자.”

스쿼트는 30개씩 3세트를 했다.

* * *

샤워를 마치고 나와 아침밥을 먹는다.

밥은 엄마가 집에 있을 때는 엄마가, 없을 때는 가사도우미 이모님이 와서 해주신다.

“잘 먹겠습니다.”

오늘 메뉴는 보통 한식이었다.

된장국에 계란 프라이, 김치에 김, 그리고 소세지.

어렸을 때,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뭐냐고 엄마가 물었었다.

나는 거기에 ‘소세지’라고 대답했고, 그 후로 우리 집 냉장고에는 소세지가 떨어지는 날이 없었다.

기왕이면 좀 더 비싼 음식을 얘기했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였던 나는 소세지가 제일 맛있는 음식인 줄 알고 있었단 말이지.

엄마의 메뉴는 나와 달리 간단한 오트밀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숟가락만 든 채 내가 먹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 엄마, 왜?”

“그냥.”

그냥 웃는다.

엄마는 내가 밥 먹는 것만 봐도 즐거운 것 같다.

내가 아침을 다 먹고 일어나려 하자 엄마가 말한다.

“선후야, 설거지는 엄마가 할 테니까 나가기 전에 미소 좀 깨워줄래? 얘가 일어날 생각을 안 하네.”

“응. 잘 먹었습니다.”

나는 빈 그릇을 싱크대에 넣고 미소 방으로 향했다.

“미소야. 들어간다.”

노크해도 대답이 없었기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미소는 이불을 돌돌 감고 애벌레처럼 자고 있었다.

“진미소. 해가 중천에 떴어. 얼른 일어나.”

“우응~. 일으켜줘~.”

이불을 툭툭 두드리자 미소가 이불에서 손만 꺼내 뻗어왔다.

나는 그 손을 잡아당겨 일으켜준다.

이불이 벗겨지면서 드러난 미소의 몸에는 새하얀 속옷 한 장뿐.

그리고 미소는 그대로 나에게 안겨 왔다.

“오늘치 안아줘.”

“……알았어. 대신 일어나기다.”

“헤헤. 알았어. 일어날게.”

미소가 내 목에 팔을 두르고 끌어안는다. 

나도 마찬가지로 꾹 안아주었다.

미소의 몸은 따뜻해서 안고 있으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오늘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됐지? 1분.”

“1분만 더~♡”

“안돼. 이제 양치하고 나가야 해. 학교 다녀와서 해줄게.”

“아앙~♡”

매달리는 미소를 떼어내고 나는 방을 나섰다.

나한테는 저런 식이지만 책임감은 있는 아이다.

깨워는 놨으니 일어날 때가 되면 알아서 일어나겠지.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와.”

현관에서 배웅하는 엄마 뺨에 키스하고 집을 나선다.

오늘은 대학에 가는 날이다.

* * *

엘리베이터를 타려 했는데, 문이 열리자 안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

4살 정도 되는 여자아이와 그 어머니였다.

엘리베이터는 나에게 위험한 공간이다.

좁아서 불안해지는 데다 다른 사람이 있으면 불안증세는 더 심해진다.

거기에 그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더더욱 심해진다.

“학생. 얼른 타요.”

“아. 네.”

다음 엘리베이터까지 기다릴까 했지만, 아이 어머니의 재촉에 저절로 몸이 움직이고 말았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손을 잡은 아이가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서영아. ‘오빠, 안녕하세요.’ 해야지?”

“오빠. 안녕하데여.”

“응. 안녕.”

나는 불안함을 감추고 아이에게 웃으면서 인사했다.

서서히 심장이 조여오고 있었다.

“대학생인가 봐요? 우리 서영이는 어린이집 가는데.”

“아, 네.”

“서영이 가는 어린이집 이름이 뭐지?”

“한빛 어린이집!”

“맞아요~ 우리 서영이 잘 아네~.”

아이는 나를 해치지 않는다.

그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그저 아이가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게 가르치는 것뿐.

하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불안은 그치지 않았다.

아이와 어머니는 계속해서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야기의 내용은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엘리베이터가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서영아. 오빠한테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해야지?”

“오빠 안녕가데여.”

“옳지~ 우리 서영이 잘하네~.”

웃으면서 인사하는 모녀에게 나도 인사를 돌려준다.

나는 지금 제대로 웃고 있을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나서야 나는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 * *

학교생활은 오히려 편하다.

좁은 장소도 없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리고 정신없이 강의를 듣다 보면 다른 건 생각할 여유도 없다.

머리가 좋지 않은 나는 강의를 따라가기 위해 남들의 배는 노력해야 하니까.

오전 강의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침은 한식으로 먹었으니 오늘 점심은 양식으로 할까.

나는 학생 식당에서 크림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금방 음식이 나오고, 빈 테이블을 찾아 앉았다.

그리고 한 입 먹으려던 때.

음식을 든 여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죄송한데 합석해도 돼요?”

“아 네. 그러세요.”

4인용 테이블이니 다른 사람과 같이 앉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의자를 조금 당기며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러자 내가 앉은 테이블의 나머지 자리에 여학생 세 사람이 우르르 와서 앉았다.

“고맙습니다.”

옆에 앉은 여학생이 웃으며 인사했다.

나는 마주 고개를 꾸벅한 뒤 식사를 재개한다.

가까이에 모르는 사람이 앉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인다.

이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는 괜한 피해의식도 생긴다.

나는 불쾌한 두근거림을 삼키고 식사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선 내가 적응해야만 하는 문제니까.

식사를 마친 나는 자판기에서 생수를 샀다.

뚜껑을 따고 한 모금 마시려는데, 옆에서 또 누가 말을 걸어왔다.

“저, 저기요.”

“……네.”

물이 목에 걸릴 뻔했지만 겨우 삼키고 대답했다.

원래 학교에서는 이렇게까지 말을 걸어오지 않는데, 오늘은 왠지 이상한 날이었다.

내가 빨리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도 아닐 테고.

눈앞의 여학생은 왠지 머뭇거리면서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괜찮으시면 젛……?!”

어렵게 입을 열어 뭔가를 말하려던 여학생.

하지만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다른 여학생 집단에 의해 그 입은 물리적으로 막히고 말았다.

“아~ 죄송합니다. 얘가 아직 1학년이라 잘 몰라서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들 죄송합니다.”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나타난 여학생들은 나에게 꾸벅꾸벅 사죄하더니, 주변 사람들에게도 연신 사죄했다.

그리고 입이 막힌 여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 여학생들에게 끌려갔다.

그 이상한 광경에는 나도 마찬가지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괜찮은 건가, 저거?

여학생들끼리니까 괜찮은 거겠지? 아는 사이 같았고.

…내 한 몸 건사하는 것조차 벅찬 나는 그냥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 일 이후로는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나는 무사히 오후 강의까지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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