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이 쳐들어왔다
그날따라 미소는 기분이 나빠 보였다.
말수도 적고 표정도 안 좋았다.
그리고 왠지 나를 가만히 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 나랑 눈이 마주치면 노골적으로 시선을 돌려버린다.
“흥.”
밖에서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저녁밥을 먹을 때도 미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식사 분위기도 그리 좋지 않았다.
엄마도 미소도 바쁜 사람들이다.
이렇게 같이 식사할 기회도 흔한 게 아니다.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이럴 땐 좀 참아주면 좋을 텐데.
미소는 시종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밥을 깨작이고 있었다.
“너희 둘, 싸웠니?”
그런 미소의 태도를 이상하게 여긴 엄마가 물었다.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미소와 싸운 적 없었으니까.
하지만 미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흥!”
미소는 그대로 숟가락을 놓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원래도 참새 눈물만큼밖에 먹지 않지만, 오늘은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이러면 정말 나랑 싸운 거 같잖아.
옆에서 보고 있던 엄마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았다.
“어머나. 정말로 싸웠구나?”
“싸운… 건 아닌데.”
그렇다고 짚이는 게 없는 것도 아니었다.
최근 누나의 명령으로 미소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으니까.
특히 이번 대회에 나가기 전에 누나는 신신당부하고 나갔다.
누나 없는 동안에 약속 제대로 지키는지 확인하겠다고.
덕분에 내가 먼저 미소에게 말을 거는 일은 없어졌다.
미소가 먼저 말을 걸어와도 거의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스킨십을 하려고 들면 뭐든 핑계를 대며 도망쳤다.
미소로서는 아무 이유도 없이 내가 차가워졌다고 생각했겠지.
그 때문에 화가 나서 반대로 나를 무시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후훗.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선후가 좀 양보해줘.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는 때가 거의 없으니까, 집에 오면 더 응석 부리는 거야.”
엄마의 말이 내 마음에 꽂혔다.
미소는 아이돌이다.
아이돌은 싫은 일이 있어도 항상 웃고 있어야 한다.
작은 행동 하나에도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언제나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나마 쉴 수 있는 건 집에 돌아왔을 때뿐.
그런데 집에 와서도 내가 소홀히 대하니 스트레스가 쌓였을지도 모른다.
비록 누나가 시켰다고 해도, 내가 나쁜 건 마찬가지였다.
“응…… 내가 이야기해볼게.”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왠지 흐뭇하게 웃었다.
* * *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누나가 나오는 대회의 하이라이트를 보기 위해서다.
요즘은 PC나 스마트폰으로도 쉽게 볼 수 있지만, 화면이 큰 TV로 보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엄마가 출연한 드라마나 미소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볼 때도 나는 항상 TV로 시청하는 편이었다.
…그런 내 주위를 아까부터 미소가 서성거리고 있다.
미소는 식사 후에도 계속 기분이 안 좋았다.
그렇다고 방에 틀어박히는 것도 아니고, 심통 난 얼굴로 거실을 돌아다녔다.
거기다 틈틈이 나를 째려보고 있으니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 미소야?”
나는 주저하면서도 먼저 말을 걸어보았다.
“……뭐?”
그러자 미소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흥.”
왠지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이야기를 얼버무리고 말았다.
미소는 더 화가 난 듯 쿵쿵거리며 방으로 들어가…… 려다,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내가 앉아있는 소파의 구석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
“…….”
……침묵이 아프다.
TV에서 나는 소리만이 거실에 울리고 있었다.
역시 내가 먼저 말을 거는 게 맞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며칠 동안 미소와 대화다운 대화를 하지 않은 탓일까.
누나와의 약속도 있었지만, 그게 아니라도 왠지 말하기가 거북했다.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미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질려서 방에 돌아가려는 걸까.
나는 겨우 쉴 수 있겠다며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미소는 방에 돌아가는 대신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소파가 아니라 내 무릎 위에 엉덩이를 내렸다.
“미…?!”
허벅지를 누르는 부드러운 감촉.
내 가슴에 기대는 연약한 무게.
내 시야를 가리는 반짝이는 머리카락과 샴푸의 향.
그러면서도 미소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시선은 정면에 고정되어 있고, 내 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대체 미소는 무슨 생각일까.
당황한 나는 잠시 그대로 굳어 있었다.
혹시 이 상황을 엄마가 보면 엉뚱한 오해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나기로 했다.
“아~ 벌써 이런 시간이네? 더 늦기 전에 목욕부터 해야겠다~.”
나는 엄마 같은 연기자는 절대 될 수 없을 것 같다.
너무나 뻔한 혼잣말을 한 뒤,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미소를 살짝 들어 올렸다.
미소는 간지러운 듯 몸을 비틀었다.
그 와중에도 고집스럽게 목소리는 내지 않았다.
나는 가볍게 미소를 무릎에서 내린 뒤, 도망치듯이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런 내 뒤통수에 미소의 시선이 꽂히는 듯했다.
* * *
“휴우…….”
욕실로 대피한 나는 큰 욕조에 물을 받았다.
평소엔 샤워로 끝내는 나지만, 오늘은 뜨거운 물에 들어가 천천히 쉬고 싶었다.
일찍 나가면 또 미소와 마주쳐버릴 테니까.
미소가 싫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한 관계로 있는 건 싫었다.
누나 말대로 우리는 너무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본인들은 당연하게 여기고 있어도, 주위에서 봤을 땐 이상했겠지.
그러니까 누나도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이대로 그냥 자연스럽게 멀어져, 보통 남매들처럼 데면데면한 관계가 되면 좋을 텐데.
하지만 미소는 어리광쟁이다.
그리고 그 어리광을 받아줄 사람이 집안에 나밖에 없다는 게 문제였다.
새아빠가 이혼하지 않고 집에 있었으면 좀 달랐을까.
결코 나한테 잘해준 사람이라곤 말할 수 없지만, 누나나 미소한테는 아빠란 존재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하아…….”
샤워를 마친 뒤 욕조에 몸을 담근다.
몸에 쌓인 피로가 뜨거운 물에 녹아내리는 듯했다.
요즘 긴장할 일이 많아서 그럴까?
왠지 쉽게 몸이 피로해지는 것 같았다.
지금은 젊어서 괜찮을지 모르지만, 누나처럼 좀 더 열심히 운동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내가 욕조에 몸을 누이고 편안히 쉬고 있을 때.
욕실과 연결된 탈의실 쪽에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이상하네. 분명 문은 잠그고 들어왔을 텐데.
저번에도 이런 일이 있지 않았나?
“사람 있어요.”
혹시 제대로 안 잠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착각해서 들어왔겠지.
그렇게 생각해서 목소리를 냈지만, 그 그림자는 나가지 않았다.
부스럭 부스럭, 옷을 벗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어?”
왠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 그림자는 욕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것이다.
“와!”
나는 놀라서 소리쳤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아랑곳 않고 욕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미소였다.
내가 있다는 걸 알렸는데도.
미소는 옷을 전부 벗은 채로 욕실 안으로 들어왔다.
“미, 미…….”
소스라치게 놀라는 나를 보고도 미소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나라는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샤워 부스로 들어갔다.
솨아아…….
그리고 미소는 떨어지는 물에 몸을 씻기 시작했다.
미소도 이제 어린애가 아니다. 벌써 20살이다.
다른 사람 앞에서 맨몸을 보이면 안 된다는 상식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아무리 오빠라지만 나도 남자다.
다 큰 처녀의 몸을 보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길쭉하고 탄력 있는 몸매.
엄마에게 물려받은 단정한 얼굴과 큰 가슴.
거기에 본인의 피나는 노력이 어우러져, 미소는 아이돌로서 이상적인 몸매를 가꾸어 냈다.
많은 사람이 추종하는 미소의 신체.
감히 내 눈으로 더럽혀도 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일단 눈을 벽으로 향했다.
그리고 엉터리 불교 경전을 외우기 시작했다.
반야바라밀, 반야바라밀.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미소도 다 씻으면 나가겠지.
내가 계속 자길 무시하니까 화가 나서 시위하는 거다.
시위의 강도가 좀 심하긴 했지만, 내가 먼저 잘못한 일이다.
밖에 나가면 솔직하게 사과하자.
그래도 누나 얘기는 빼야겠지?
변명은 어떻게든 지어내 봐야지.
그렇게 나는 눈을 감고 미소가 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끼익.
마침내 샤워기를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도 그쳤다.
이제 그만 나가겠지.
나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보니 왠지 아까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물을 밟는 찰박거리는 발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그 발소리는 멀어지긴커녕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미소야, 아니지?
이제 그만 나가줘.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제발.
나는 간절히 빌었지만, 하늘은 무심했다.
참방.
누군가 욕조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미지근해.”
그리고 바로 앞에서 미소의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실눈을 떠서 확인한다.
미소는 허리를 굽혀 뜨거운 물을 틀고 있었다.
엉덩이를 내 쪽으로 돌린 채로.
하얀 엉덩이와 그 아래에 세로로 갈라진 틈새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