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256)

엄마는 연습 상대 

오늘 누나는 대회가 있어 새벽 일찍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앞으로 4일간은 집에 누나가 없다.

   

물론 그렇다고 누나에게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건 아니지만…….

   

* * *

   

[진소영 누나] : 야

[진소영 누나] : 진선후

[진소영 누나] : 진선후

[진소영 누나] : 대답 안해?

[진소영 누나] : 뭐해?

[나] : 응

[진소영 누나] : 뭐하냐고

[나] : 나 tv 보는중

[나] : (TV 보는 이모티콘)

[진소영 누나] : 언제 할거야?

[나] : 응

[나] : 이것만 보고 할게

[진소영 누나] : 제대로 해

[진소영 누나] : 사진 찍어서 보내고

[나] : 사진??

[나] : 안돼 누나

[진소영 누나] : 뭐가

[나] : 이런거 사진으로 남기면 안돼 

[나] : (우는 이모티콘)

[진소영 누나] : 하라고

[진소영 누나] : 진선후

[진소영 누나] : 누나 말 안 들을래?

[진소영 누나] : 야

[진소영 누나] : 야야

   

* * *

   

“하아…….”

   

거실 소파에 앉아 누나와 문자를 나누던 나는 새어나오는 한숨을 참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누나를 설득할 수 있을까?

사실 지금 보내는 문자도 조금 위험한 수준인데.

혹시나 유출되기라도 하면 누나 이미지에 큰 손상이 가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요즘 시대에는 유명인들의 사적인 대화나 사진, 영상 같은 것들이 유출돼서 곤혹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는 가족들이 모두 유명인이다보니 그런 일에는 특히 신경을 쓰는 편이다.

괜히 나 때문에 가족들이 피해를 보는 건 싫으니까.

   

그런데 당사자인 누나는 자기가 유명인인 걸 모르는 걸까?

제발 좀 조심해줬으면 하는데.

   

거기에 대화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사진은 정말로 안 된다.

대화는 유출되더라도 어떻게든 얼버무릴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한 사진을 보낸 게 퍼지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고민하는 동안에도 대화창의 문자는 계속 추가되고 있었다.

누나 성격상 이대로 모른 척한다고 해결되진 않겠지.

일단 뭐라도 적어서 답장하려 할 때,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누나였다.

   

“아. 누나.”

『야, 진선후. 왜 답장 안 해?』

   

누나는 많이 화가 난 목소리였다.

화가 난 누나에게 반기를 드는 건 위험하다.

하지만 이것만은 양보해선 안 되는 문제였다.

   

“아니, 누나, 진짜 사진은 안 된다니까.”

『뭐가 안돼? 누나가 하라면 할 것이지.』

“정말로 안돼.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떡할 거야?”

『그런 게 겁나?』

“나는 상관없지만 누나가 다치는 건 싫단 말이야.”

   

내 말에 누나는 왠지 한참을 침묵했다.

드디어 누나도 알아준 걸까?

   

『……치. 알았어. 대신 안 본다고 대충 넘기지 말고 제대로 해!』

“응.”

   

다행이다. 누나도 드디어 이해해준 것 같다.

   

『그리고! 대회 끝나면 각오하고 있어! 모아서 한 번에 할 테니까!』

“응?”

   

……?

뭘 모아서 뭘 한 번에 한다는 거지?

   

하지만 누나는 내가 뭐라고 묻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는 건 누나 특기다.

나야 그렇다 쳐도 다른 사람들한테는 저러면 안 될 텐데.

누나가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조금 걱정이다.

   

[나] : 누나 대회 잘하고 와! (골프치는 이모티콘) 

[나] : 화이팅! (응원하는 이모티콘)

   

나는 전화로 못한 인사를 문자로 남겼다.

물론 대답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지만…….

   

그렇게 누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자, 엄마가 소파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누구랑 통화했어? 혹시 여자 친구?”

“……여자 친구 같은 거 없어. 누나야 누나.”

   

엄마는 늘 바쁘지만 최근 드라마 촬영이 끝난 후 잠시 휴식기를 갖고 있다.

누나는 대회, 미소는 촬영. 

그래서 지금 집에는 나랑 엄마, 둘 뿐이다.

   

“이상하네. 선후가 왜 여자 친구가 없지? 요즘 여자애들은 보는 눈이 없다니까.”

엄마는 진심으로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귀엽다더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어.”

엄마도 누나 못지않게 특별한 사람이지만, 이럴 때 보면 속은 보통 엄마들과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그래? 엄마는 선후 같은 남자 있었으면 바로 고백했을 텐데.”

   

엄마가 내 팔에 팔짱을 끼며 머리를 기대온다.

   

엄마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와 남남으로 만났다면 길가의 돌멩이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애초에 엄마가 젊었을 때는 남자따윈 얼마든지 고를 수 있을 정도로 예뻤다. 물론 지금도 대단한 미인이지만.

   

“그럼 전에는 여자 친구 있었던 적 있어?”

“왜 그런 걸 궁금해 하는데?”

“엄마가 아들 여자 친구 궁금해하는 건 당연하지. 나중에 며느리가 될지도 모르는데.”

   

아들의 연애 사정에 눈을 반짝이는 엄마.

물론 나에게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전에 한 번 있었어. 고등학생 때.”

“정말? 왜 엄마한테 말 안 해줬어?”

   

내 말에 엄마가 깜짝 놀라 다그친다.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그냥 잠깐 사귀었다가 바로 헤어졌다니까. 말할 일도 아무것도 없었어.”

   

이건 정말이다. 사귄 기간은 정말 며칠도 되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오히려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타일렀다.

   

“연애는 경험이야. 20살 넘었는데도 제대로 연애 안 해보면 나중엔 하고 싶어도 못 할 수도 있어. 대학교엔 괜찮은 친구 없니?”

“없어. 연애도 별로 하고싶지 않고…….”

“안돼! 엄마 손자 안 보여줄 거야?”

   

손자라니. 엄마는 벌써 할머니가 되고 싶은 걸까.

   

그나저나 연애라……. 내가 연애 같은 걸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어렸을 적 받은 학대의 영향인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

나 자신은 잘 못 느끼지만, 의사가 그렇다니 그런 거겠지.

이런 나를 가족들은 이해해주지만 생판 남이 이해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에 한 번 사귀었던 여자 친구도 그랬다.

나도 겉보기엔 멀쩡하니 친해질 수 있었지만, 사귀고 얼마 안 가서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다.

   

나로선 딱히 짚이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정신병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겠지. 본인만 모르는 거니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미안, 엄마. 난 여자애들이 무슨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솔직히 무서워. 누군가랑 사귄다는 게.”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대충 넘어갔다간 엄마 성격상 앞으로도 같은 이야길 몇 번이고 듣게될 것이다.

엄마한테는 죄송하지만 괜한 기대를 갖게 하는 것보다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얘길 들은 엄마의 반응은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선후가 연애를 제대로 안 해봐서 겁이 나는 건 알아. 어릴 땐 실패해도 괜찮지만, 어른이 되면 실패하는 걸 두려워하게 되니까. 잃을 것도 많고. 하지만 그렇다고 연애 자체를 포기하면 안 돼.”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았다.

   

“엄마가 도와준다고 했지? 좋아하는 여자애 상대론 실패해선 안 되지만, 엄마 상대론 실패해도 괜찮잖아? 엄마가 연애 연습상대가 되어줄게.”

   

엄마의 따듯한 체온과 진지한 눈빛에 얼굴이 뜨거워진다.

   

지난번 엄마와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가능하면 엄마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나를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을 이용해 내 욕망을 채웠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이번에도 엄마가 먼저 다가와 주었다.

   

“엄마…….”

“자, 이렇게 손을 잡는 것부터 연애는 시작됩니다.”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나와 맞잡은 손을 들어 보였다.

너무 진지해지려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엄마는 일부러 밝게 웃었다.

   

물론 나도 편안한 분위기가 좋다.

그러니 엄마가 만든 분위기에 맞추기로 했다.

   

“선후는 모르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이 갑자기 손을 잡으면 어떨 거 같아?”

“그건 싫지.”

   

엄마는 마치 어린 아이에게 심부름하는 법을 가르치듯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그래. 손을 잡기 전에는 우선 상대방과 어느 정도 친해져야해. 물론 친해졌다고 해서 뜬금없이 잡으면 안 되고, 그때그때 분위기를 잘 봐야하고. 그러다 좋은 분위기가 됐을 때 조심스럽게 잡는 거야. 방금 엄마가 했던 것처럼.”

“응. 알 거 같아.”

“손을 잡았을 때 상대방이 싫어하지 않으면 첫 번째 관문은 클리어. 이제 고백해도 성공할 확률이 높을 거야.”

   

그렇구나. 그럼 지금 고백하면 되는 걸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엄마에게 고백했다.

   

“엄마. 사랑해.”

“…!? 얘는! 엄마한테 고백하란 얘기가 아니잖니!”

   

엄마는 당황스러워하며 나를 나무랐다. 왠지 얼굴도 붉히고 있었다.

나로선 너무 당연한 말을 했을 뿐인데. 뭐가 문제였을까.

   

“하지만 고백하는 것도 연습하지 않으면 실패할지도 모르잖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엄마는 겨우 진정된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 그러네. 연습이었지. 갑작스러워서 엄마도 좀 놀라버렸어. 그럼 다시 해볼까?”

   

이번에는 허락을 받았으니 괜찮겠지.

나는 살짝 심호흡을 한 뒤 다시 한 번 엄마에게 고백했다.

   

“엄마. 사랑해. 어렸을 때부터 계속 좋아했어. 나랑 사귀어줄래?”

“……좋아. 합격. 무난하지만 진심이 느껴져서 좋았어.”

   

다행이다. 진심을 담아 고백해서.

만약 거절당했다면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럼 다음은?”

“다음은…… 키스?”

   

그런가. 고백에 성공했으니 이제 키스도 해도 되는구나.

엄마와 키스는 며칠 전에도 했었으므로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쪽.

   

나는 눈을 감고 엄마의 입술에 내 입술을 살짝 갖다댔다.

엄마의 입술은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있었다. 기분 좋은 향기도 났다.

   

단순히 입술을 맞대는 행위.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이 든 것은 나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선후야…….”

   

짧은 키스 후 눈을 뜨자, 엄마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엄마가 진짜 키스를 가르쳐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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