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전문학교]
* * *
<외부세계: 어딘가=""/>
하얀은 일 하기 시작했다.
그 작고 여린 소녀가 하는 일 치고는 제법 거칠고 험한 일.
중장비들이 해야 할 법한 일들을 하얀은 굵은 삽하나를 들고 땅을 해집고 있었다.
외부세계에서는 땅을 파면 흙뿐만이 아니라 흙속에서 사는 마물들이나 괴물들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과거시대에 있었던 싸움의 흔적들이 간간히 보이는데,
그러한 잔해들을 캐내는 작업이었다.
'부활의식'
거기에 필요한 것은 막대한 양의 마력.
신성력이 없는 지금. 필요한 것은 무수히 많은 양의 마력 뿐
...
사실 부활의 마법. 부활 의식이라는 것이 내가 있던 세계에서는 그리 드문일은 아니었다.
돈벌겠답시고 마물과 싸우려는 모험가들은 수도없이 많고, 그렇게 모험가들이 죽으면 그들을 부활 시켜 빚을 부여하고 그 빚을 갚게끔 만들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노동을 시켰었으니 말이다.
부활 마법은 중위급 사제만 되더라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고, 일부 지역에서는 부활 서비스나 보험따위를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
하지만 이곳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곳에는 마력이 가득차긴 했지만 내가 있던 세계와 같이 '신성력'이 넘쳐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대지에 축복이 깃들어 있지 않고, 땅속에 무수한 마석이 박혀있거나, 악마의 피와 살점이 흩뿌려져 있지도 않기 때문에,
죽은 자의 부활은 상당히 어려운 편이다.
부활이 쉬운 세계가 아니다.
그렇기에 제법 다양한 준비가 필요했고,
때문에 하얀은 일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성능은...
푸욱!
푹!
"조금만 더... 좀만 더 하면 돼... 열심히 하자. 열심히..."
하얀은 희망으로 가득찰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한 이야기가 진짜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순간이며 다른 친구들을 정말로 구해낼 수 있다는 강렬한 희망.
완전히 죽지 않고 그 영혼을 가지고 놀려고 했던 악마 덕분에 무사히 부활의식을 거행할 수 있겠지.
그렇게 하얀이 열심히 일 하고 있을 때 쯤.
미리네에게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 * * *
미리네.
소녀와 같은 체구를 하고 있는 녀셕.
정돈되지도 않은... 아니 요즘은 조금 정돈하고 다니는 기다란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묶은... 빈약한 몸매에 하얗기만 한 피부.
씻지 않는... 아니 요즘은 조금 씻긴 하는 모양이지만, 아무튼 그렇게 추레하게 다니던 미리네다.
노동 의욕은 커녕 게임이나 무언가를 넋놓고 보는 것만 재미있어 하던 미리네는 조금 달라졌는지 일을 하기 시작했다.
"꼽냐 개새끼야."
"아니, 그런건 아닌데... 흐음, 넌 착한 편이구나 미리네!"
"지랄!"
내게는 팍 인상을 쓰고, 이내 씩씩거리면서 일터로 향하고 있지만,
실제 미리네는 이렇게 이야기 했었다.
'마력이 많이 필요해? 마석도? 흠... 나도 좀 보태야겠네'
라고 말이다.
본디 미리네, 돈을 위해 나의 하수인이 되었지만, 그런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을 기꺼이 하얀을 위해 보태려고 하니 그녀의 마음씀씀이가 이해된다.
입으로는 하염없이 거친말을 내뱉긴 하지만, 실제론 찾아오는 이들을 내치지 못하고 정이 붙기 쉬워 하니, 그녀가 매번 보이는 '타인에 대한 적대감' 따위는 그러한 자신을 싫어하는 맥락에서 나오는 성격이었으리라.
그것을 이해하고 기분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녀와라!"
"왜 실실 쪼개는 얼굴로... 시발!"
그게 또 부끄러운지 이번엔 얼굴을 살짝 붉히고는 집을 나서니,
미리네.
능력자로서 주가를 제대로 올리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허가를 받아 나가서 거대한 마물들을 사냥해온다.
미리네의 힘이라면 이미 상급 각성자라고 해도 문제 없을 정도의 강함.
대미궁의 층을 돌파하는 것도 간단해졌겠지.
재력과의 외부세계 모험에서 경험을 얻고 강해진 것은 재력이 뿐만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덕분에 많은 양의 마석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따른 부활 의식도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다만 아직 대미궁에 대한 공략진전은 좀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다른 두 명 때문이었다.
일단 미궁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아무리 용사급 모험가라고 하더라도 방심하거나 준비가 부족하다면 당할 수도 있는 곳이 던전이라는 곳. 가능하면 동원할 수 있는 인원 모두를 동원하고 싶었지만, 지금 두명이 각자의 사정으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중에서는...
...
* * * *
<세이의 집=""/>
"..."
"..."
"상식적으로 탈락하겠죠..."
한세이.
데몬즈 오디션 탈락.
30명 정도로 추려져서 팀 대결을 하려는 타이밍에 불참하는 것이 두세번 이어지는 것으로 인해...
태도불량으로 탈락.
"당연하겠죠.... 하아...."
세이에게는 일이 많았다.
온통 밝음으로 치장되어 있는 듯한 여성. 노랗게 머리칼을 염색한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그 화사한 외모를 지니고 있는 그녀는 바라던 대로 엄청난 미모와 [매력]이라는 특별한 스킬을 보유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리고 공격을 버티고 막아낼 수 있는 다른 스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많았던 것이다.
재력과 싸우는 것이 생각보다 오래걸렸었고, 그게 또 생각보다 더 아프고 고단했던 길.
그 덕분에 채력이 바닥날 정도였으니,
다시는 자기관리에 실패하지 않겠다 다짐한 세이였던 만큼, 이 상태에서 오디션에 참여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만둔 것이었다.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가 보아도 옳은 선택이었지만, 정작 그 당사자인 세이는 탈락의 상실감에 무기력해져 있는 것이다.
"...후우, 이제 어쩌죠."
그러니까 곤란한 일이다.
마왕. 카론. 마정수. 그는 분명 세이에게 원하는 꿈을 이루게 해주겠노라 약속했다.
그녀에게 화사한 미모를. 꿈을 이룰 수 있는 매력을 전해주었으나, 꿈을 이루는데에 실패한 것을 보니 영 탐탁치 않았다.
물론 완전히 끝난것도 아니고 다른 도전의 기회가 더 있을테니...
"어쩌긴... 이제부터 노래연습... 해야겠지!"
괜찮다.
세이가 이번에 느낀 것은 벽.
외모나 다른 것들로는 채울 수 없는 재능이라는 커다란 벽.
하지만 예전과 달리 결코 넘지 못할 벽이 아니라, 세이의 힘으로 부수고 지나갈 수 있는, 극복하고 이겨나갈 수 있는 벽을 보았다.
가창력.
댄스.
예능에 대한 감각.
그 모든 것들을 이번 오디션을 통해 배우고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유명세를 얻었으니,
이제 세이는 어디에 가든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세이는 잠시 합류하지 못하게 되었다.
잠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다.
"... 맞다. 마왕님! 마왕님한테 춤 알려달라고 하면 또 알려줄것 같은데.. 흐음... 노래같은것도 잘하시려나..."
아니지, 싸움에는 끼지 못하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학교: 교실=""/>
"어... 그러니까 얼마전에 재력이가 능력자인걸로 알려지는 바람에..."
주재력으로 부터 시작한다.
라나의 이야기다.
* * * *
<학교/>
재력은 힘없이 앉아 있었다.
악마에게 받은 힘을 빼앗겼다.
"나, 나리야..."
"..."
나리와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학교 생활은 엉망이다.
모든 아이들이 재력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물론 괴롭힘까지 가지는 않았다. 돈과 권력의 상징이라 한다면 당연히 재력을 이길 수 있는 아이들은 누구도 없었기에 누구도 건들지 않았지만, 누구도 재력과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엉망인 학교 생활, 엉망이된 인간관계. 언제 터질까 무서운 가족.
복수할 수 있는 힘마저 빼앗겨버린 지금.
재력에게 남은 것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아주 조그마한 것이 남긴 했다.
[염력]
재력의 능력.
그것은 악마가 재력에게 건네줌 힘임과 동시에 재력이 스스로 각성해 낸 힘.
마왕의 것이었을지 모를 그런 힘은 재력의 안에서 그 한계치까지 뿜어졌기에, 힘의 근원이 사라진 후에도 새로운 근원으로써 재력의 몸에 남은 것이다.
그것을 자각하고 있는 재력이긴 했지만,
더이상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성장시킬 기력은 남지 않았다.
그보다 힘을 키우면 어떻게 되어버릴까 두려워 섣불리 사용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절망하고 있을 때.
자신에게 행복함이란 찾아오지 않는걸까 절망하고 있었을 때.
무언가 일어났다.
똑똑
"실례합니다."
한참 수업중인 교실에 검은 양복을 입은 이들이 여럿 들어온 것이다.
"이곳에 능력자 신고가 있었습니다."
능력자 신고.
재력은 처음 나리를 쳐다 보았지만, 나리 역시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마 사실은 재력의 아버지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는 재력이 최근에 휘말리고 있는 일들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것이고, 능력자용 장비를 훔쳐간적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재력이 자신의 권력과 집안의 힘을 사용하려고 했던 것들도 알 수 있었으니, 이러한 수순을 밟게 되는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
그래서 학교로 찾아온 능력자 조사반은 능력자를 찾게 된 것이다.
....
능력자.
그래.
학교안에 있는 숨은 능력자.
국가나 기관의 등록과 허가를 받지 않고, 능력을 부리고 다룰 수 있는 이들을 찾아서, 학생이라면 능력자 전문 학교에 보내고, 성인이라면 사용한 불법 능력의 죄값을 받게 하며 또는 등록을 받게끔 하여 여러곳에 봉사하게끔 만드는 이들.
요즘시대.
허가받지 않은 능력자는 걸어다니는 핵폭탄과 같은 것이니 당연한 일에....
"..."
"난...왜..."
덜덜덜
세명.
재력의 학교.
재력이 왕으로 군림하던 그 학교에서는 총 세명의 학생들이 능력자로 판명되어 전학을 가게되었다.
그중에는 학교의 유명인 둘과 평범한 소녀 하나가 끼어있었는데,
누가봐도 평범하고 문제없는 소녀의 이름은 최나리 였고, 존재감 없는 왕따였다.
그리고 유명인중 한명은 주재력으로 학교에 군림했다가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는 청년이었으며,
마지막 한명은...
자신이 능력자라는 것을 들키게 만든 주재력을 마치 죽여버릴 듯이 노려보고 있는...
'뭐, 뭐야. 왜 어디서 많이 본거같지? 왜 나한테 아무렇지도 않게 칼을 휘둘러서 동강내버릴 것 같이 날 노려보지? 3학년에 유명한 그 여자인데...?'
"이름. 유 라나씨 맞죠?"
"... 네."
유 라나.
그녀는 그 여려보이는 주먹에 살짝 힘을 쥔 채로 힘겹게 대답했다.
...
그렇게 세명의 학생들이 새로운 곳으로 가게 되었다.
능력자들이 모이는 능력자 전문 학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