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최나리 (8)]
* * *
하 얀.
마법소녀.
그 소녀가 눈앞에 서 있는 동안 재력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재력은 하얀이 자신을 구해주었구나 생각하며 기뻐했고,
그 후에는 역시 하얀도 자신에게 호감이나 그 이상의 감정이 있으리라 확신했다.
말 수가 적은 소녀에 약간 어둡지만 신비로운 느낌을 품고 있는 여린 소녀.
그래도 할때는 한다는 것을 보여주듯. 가장 위험한 상황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재력을 구해 온 것이 하얀이니까...
재력은 그렇게 생각하며 기뻐했었다.
아주, 잠깐동안 말이다.
꿀꺽
숨막히는 공기.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한 분위기.
하얀의 착 가라앉은 그 모습은 그녀의 하얀 머리칼 만큼이나 차갑고 얼어붙는듯 했다.
"... 저, 저기.."
꿀꺽
두번.
재력이 마른침을 두 번이나 넘겨삼킬때까지 아무런 말도 없는 하얀.
그와 동시에 재력은 그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말았다.
구해져서 좋았다는 정말 그 잠깐 뿐.
그 후에는 자신이 보았던 것들과 지금의 상황을 연결짓기 시작했다.
그건 아마도 재력의 과장된 생각이나 아니면 또 다른 다양한 생각이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다.
중요한건... 아니 하얀은...
"악마와 거래해 힘을 얻으니 좋던가요?"
"뭐?"
이제 결판을 낼 것이다.
* * * *
<외부세계: 외딴="" 곳=""/>
사실 가장 치열한 사투를 해온 것은 다름아닌 하얀이다.
누가 뭐라 해도 하얀이 가장 오랜 시간 싸워왔으리라.
자신의 친구를 죽인 원수가 바로 옆에 있는 느낌이었겠지.
또한 자신의 친구의 힘을 멋대로 사용해대는 재력을 보면 친구의 시체를 가지고 노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하얀의 친구들은 비참하고 끔찍하게 목숨을 잃었으니 말이다.
그 해아릴 수 없는 배신감과 절망감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서 하얀은 참은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부터.
... 물론 완전히 참아내진 못했지만,
매끄럽게 연기한것도 아니긴 했지만,
하얀이 할 수 있는 최대한.
그 너머 한계를 넘어서 꾹꾹 참아왔다.
"처음 계획을 들었을땐 어이가 없었어요. 당신에게 있는 그 마법. 제 친구의 영혼을 꺼내기 위해서는 당신이 강해져야 한다고 했거든요. 게다가 당신에게 호감이 있다고 착각시켜야 한다니?"
하얀은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떨리는 목소리다.
작은 주먹에는 꽈악 힘이 쥐어져 있었고, 분노나 달성감 따위로 몸을 약간 떨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재력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 재력은 그 기백에 눌렸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진 몰라도 꼼짝 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주저앉아 있기만 했을 뿐.
"그 쪽이 능력을 각성하는 것으로 당신이 가진 능력과 융합한 사랑의 마법을 특정할 수 있다고. 그래서 그 언니... 최나리라는 사람도 함께 이곳에 왔죠."
하나부터 열까지.
그 이유를 말하는 하얀.
"아저씨는... 아니, 마왕님은 당신의 능력이 각성했을 때 분명 그 힘을 특정했고, 그 다음에는 그걸 붙잡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었어요. 사전 작업이 조금 필요했죠. 그 능력이 가장 높아지는 시기에 다다를 때. 당신이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느끼고 있을 때.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할 수 있었을 때. 온갖 종류의 사랑을 느끼고 있을 때."
마왕의 존재를 언급하며,
"미리네 언니도, 저도, 마왕님도 당신의 주변에서 당신을 도왔어요. 라나언니... 광전사는 이 상황을 만들기 위한 장치였을 뿐이었구요."
이해시킨다.
"아시겠나요? 당신이 힘을 얻은 순간, 당신이 가진 힘을 보기 위해서 준비한거라구요. 이 상황은 당신이 우리에게 충분히 호감을 느끼도록, 당신이 우리의 감정을 충분히 착각하도록 만들고 짜여진 상황이에요. "
재력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해하고 싶지 않아도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왔다.
불안함과 불길함을 애써 무시해온 결과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그리고 계획대로. 마왕님이 말한 대로 당신은 충분히 착각했고 그 힘을 각성시켰어. 당신이 가진 힘은 내 친구의 영혼이자 힘 그 자체인 사랑의 마법. 악마따위와 거래해서 얻은 내 친구의 영혼! 조금 전 최고조에 이르렀던 당신의 힘은 이제 내가...!"
하얀이 자세를 갖춘다.
작은 입술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작은 공부방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고 또 연습했던 마법이다.
감정의 마법을 빼앗는다.
친구의 영혼을 되찾는다.
능력과 융합해버린 그 힘을 하얀 자신의 힘으로 직접 분리하기 위해서...!
"희망의 절단기."
갈라내는 마법을 만들어 눈앞에 등장시킨다.
그리곤 하얀은 말한다.
이것이 결정타.
"아무도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 나도, 검은 마법소녀도, 나리씨도 마왕님도! 당신혼자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야! 나리씨에게는 스토커나 다름 없었어!"
"뭐..아, 아냐...잠... 잠깐만... 잠깐...!"
차오르던 사랑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변해버리는 그 역전의 순간.
"넌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어! 네가 한 사랑은 전부 거짓되고 만들어진것 뿐이야!"
"아냐! 나는...!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너 썸녀 이미 마왕님한테 따먹혔다고 새끼야!!!"
"으, 으아아아아!!"
사각!
희망의 절단기는 재력의 몸을 갈라내었다.
* * * *
띠링
['사랑의 마법']
['염력']
"..."
<외부세계: 싸움이="" 끝난="" 곳=""/>
"끝났어?"
"어. 회수했네"
"그럼 그만 좀 만질래 시발아. 이 개...읏♡"
"좋아!"
싸움이랄것도 없는,
싸움이라 부르기도 민망했던 싸움이 끝났다.
재력은 강해졌다.
강해졌고 마법 역시 강해졌다.
그로인해 그의 능력을 눈에 담을 수 있었고, 악마가 멋대로 융합해버린 재력의 능력과 사랑의 마법. 즉 누군가의 영혼으로 만들어진 힘을 갈라놓을 수 있었다.
겨우겨우.
과정이 애매하게 보였을진 몰라도 실제 이건 도박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다.
능력과 섞인 그 힘은 조금이라도 빨리 분리하지 않았다면 완전히 섞여 되찾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감정의 마법이 가진 힘의 특성상. 강하게 만들어 놓고는 한 순간에 밀려 패배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 적절한 선에 재력의 힘을... 즉, 재력의 감정을 맞추어 조절하는 것도 힘든 일.
거기에 하얀이 아니었다면 그 상태의 힘과 영혼을 분리할 수도 없었겠지.
감정의 마법이 가진 힘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래도 해냈다.
무사히 분리해내어 감정의 마법중 사랑의 마법을 되찾았고, 그와 함께있는 영혼 역시 내 손에 넣었다.
부활을 시키는 일이라면 또 번거로운 일이 되기야 하겠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상황이 끝났다.
힘을 다시 조금 되찾았고 하얀의 옛 동료를 구해냈다.
상황종료.
"좋아, 그럼 돌아갈까."
"...? 자, 잠깐만요.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건데요?"
그렇게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는 잠시 잊었던 나리가 대뜸 나에게 다가와 소리쳤다.
그러고 보니 나리에게도 제법 도움은 받은 셈이다.
재력의 감정을 컨트롤 하기 위해서 좀 부추기는 역할을 하게끔 했으니까 말이다.
재력이 미리네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을 이용하려고 했다가 우연히 나리를 공범으로 만들긴 했지만...
상당히 효과 있기도 해서 나쁘진 않았다.
그래서 고민이다.
"흠. 그래. 그렇지... 어... 음.. 어디보자."
눈을 감고 잠시 생각을 했다.
나의 상태는 카론으로 보이겠지. 이 육신의 주인은 실제 이 아이의 같은반 친구였던 '마 정수'. 인식을 살짝 비틀게 하는 힘을 사용했으니 그렇게 보였겠지만...
'말해도 되나? 이 녀석은 내 아군인가?'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나리를 나의 아군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내 모든 비밀을 알려줄 수 밖에 없다.
알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수인이 아닌 상태로 받아들인다고 친다면 그녀가 어디까지 따라줄지도 의문이며 배신에대한 가능성도 접어둘 수 없는 일.
...
...
잠시 고민 한 후 나는...
* * * *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한 13시간 정도는 빨리 흘러갔다.
재력과 그 일행들의 귀환.
많은 것을 알지 못하고 돌아와버린 나리의 한 숨.
분명 나리는 재력과 함께 있었지만, 두 사람은 이전날과 같지 않고 어색하고 거북한 공기만 감돌고 말았다.
재력이 뭐라 말 할 수가 없는 입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미리네의 집=""/>
"시발! 그래서 왜 또 내집인데!?"
악마의 영향이 사라진 재력은 더이상 위해를 가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미리네의 정체를 알려도 상관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고
따라서 모임 장소는 미리네의 집.
외부세계에서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미리네의 집을 거쳐가는 와중.
"주 재력! 네가 왜 아직도 여기에 있어!? 너... 넌 쓰레기잖아!"
마침 미리네의 집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던 주재력과 나리의 같은 학교 학생이자 마정수의 소꿉친구이기도 했던, 그리고 살짝 양아치 짓을 하고 다녔던 과거가 있었던 양아지가 재력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 일도 있었다.
"아니, 너는 왜 내 허락도 없이 내 집에 있는데!? 열쇠 어디서 났어!?"
"복사해뒀어요! 그리고 주재력 저녀석이 아직도... 그걸론 부족했냐!? 우리 정수를 죽기 직전까지 몰고가는 걸론 부족했어!?"
그리고 아지는 나리의 앞에서, 또 재력의 앞에서 재력의 과거를 토해냈고
그건 분노와 증오서린 목소리로 나리에게 들려왔기에 재력에 대해서 다시 보게 되는 계기를 가지게 되기도 했다.
재력은 반박하거나 대응할 여력이 없었다.
힘이 재력의 몸에서 분리되어 버리면서 사랑의 마법은 잃었고 염력은 그 티끝이 남아 재력의 몸안에 감돌고 있으니 기력은 바닥이 난 상태.
회복하려면 수백시간은 더 필요로 할 만한 상태였기에...
"난...아니야 내가 그런게 아니라...고..."
그저 힘없이,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면서, 자신은 잘못한게 없었다면서 부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리는 그런 아지의 이야기를 듣고
조용히.
또 차분하게 재력을 바라보았으며,
멍하니 자신의 잘못을 부정하려고 하는 재력을 보며 한마디.
"너 정말 쓰레기였구나."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지극히 평범하고 지극히 소심하고 지극히 아무일도 없었고 그저 괴롭힘이나 가끔 받는 생활을 보내고 있었던 만큼이나,
나리는 이제 그저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때가 온 것이다.
그래도 한 명.
조금 다사다난 하고 복잡하고 어려웠고 무서웠던 작은 모험을 끝난 후에는,
한 명. 자신의 인생에서 가까이 하면 안될 듯한, 멀리해야 할 듯한 사람을 알게 되었으니... 거기에 만족하기로 하면서...
"저는 이제 돌아갈께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그래"
나리는 학교로 돌아가기로 했다. 마지막 인사는 마법을 가르쳐 주었던 카론에게 했다. 그가 가르쳐준 마법은 사용하려 할때마다 그의 음란한 손길이 느껴질까 무섭긴 했지만... 이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되어있겠지. 그래서 나리는 더욱더 깊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고, 카론 역시 덤덤하게 대답했다.
"내일 학교에서 보자. 너 주번이더라"
"네?"
변화가 시작되던 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