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최나리 (6)]
* * *
'쓰레기...!'
나리의 생각에 가득찬 것은 반쯤 증오서린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인간에게 입술을 빼앗겼으니 당연한 일이지.
게다가 그는 이미 훌륭한 연인까지 있는 상태였고 갈때까지 간 상태이기도 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를 덮치면서 성욕을 채우는가 싶더니 아무여자에게나 추파를 던지려 하고 서슴없이 엄한 짓을 하려드는
'쓰레기!'
쓰레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카론이라고 생각했다.
나리는 카론을 믿고 있었다.
꽤 괜찮은 사람.
괜찮은 스승이자 선생님이라고 여기고 있을 무렵이기 까지 했으니까.
다른 사람을 쉽사리 믿기 힘든, 그런 환경과 상황 속에서 살아왔으며, 배신이라면 몇번인가 당해왔기에 더더욱 나리에게는 크게 다가온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리는 아직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은 외부활동이다! 실전에 돌입하는거야!"
카론.
그 자존감이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남자.
평범하지 않은 생각을 지닌 남자.
"나리. 집중해."
"읏?! 네, 넷?!"
살며시.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다른 한손으로는 부드럽게 나리의 손을 감싸 쥐는 것이 바로 카론.
"읏...아...!"
당황하여 어쩔줄 모르는 나리를 향해 카론은 지금의 상황을 알려준다.
"여긴 외부세계야. 까딱하면 죽는다. 자신을 보호할 방법은 지금까지 계속 알려줬다 나리. 지팡이를 쥐고. 배운대로 해."
이곳은 외부세계.
카론이 지금까지 나리에게 알려줬던 것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
위험천만한 세계에서 살아남고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이들을 상대하기 위한 것.
카론이 감싸안던 손에는 어느덧 나리가 사용할 수 있을 법한 짧은 나무막대기가 하나 쥐어져 있었고, 그 끝에는 조그마한 보석이 박혀 있는 것을 나리는 보았다.
"배운대로 사용해 봐."
말투는 아주 상냥했고 또 부드러웠다.
어젯밤의 그 거친 입술이 잠시 잊혀질 정도로, 물론 다시 기억해낸 후에는 그 강렬한 입맞춤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도록...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더더욱 몸을 뜨겁게 만들기 시작하며 나리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고,
또한 사고마저 막아가기 시작했다.
상황의 영향이란 보통 그렇게 돌아가기 마련이기에,
나리는 나지막히 대답했다.
"네..."
아주 수줍고 작은 소리로 말이다.
* * * *
"크에에엑!"
그곳은 외부세계.
온갖 괴물과 마물과 악마들이 득실 거리는 곳.
재력의 모험은 별로 많지 않은 과정을 거쳤지만, 꽤 많은 시간을 거쳐서 이곳에 와 있었다.
자신을 노리는 듯한 정체불명의 광전사에게 도망쳐서, 여차저차 하다보니까 외부세계에 오게 되었고,
외부세계에 와서는 그 광전사에 대적할 수 있을 만한 힘을 얻었다.
우연히, 운좋게도 검은마법소녀를 만난 덕분이기도 했고,
그녀의 스승인지 아니면 그저 지인일 뿐인지. 이름도 이상한 카론을 만난덕분이기도 했고 재력은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게 문제였을지도 모르나, 문제를 알게 되었다고 한들 재력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음을 어찌하겠는가?
모든 것은 '그 날' 그 때, 재력이 행동했던, 말했던 한마디로 인해 결정이 나버린 상황이었을 텐데...
여하든 재력.
그렇게 외부세계에서 모험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안에 깃든 힘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 힘을 다루는 법을 알게 되었다.
나리를 향한 마음이 커질 수록,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생각이 강해지거나,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해질 수록 재력은 더더욱 강해지니...
지금 재력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기량을 내뿜고 있는 상태!
'난 나리에게 사랑받고 있어!'
'난 나리를 사랑해!'
재력의 머릿속에 가득찬 것.
'가족들도 전부 내가 구하겠어!'
'전부 내가 알던 그 화목했던 가정으로 돌려놓을 거야!'
가족과 연인에 대한 사랑 뿐.
"으아아앗!"
그래서 재력은 염력을 지니고 있는 능력자로써 앞에 나서서 다가오는 괴물에 맞선다.
쿠웅!
괴물의 형태는 인간과 흡사한 모습에 적색의 피부. 세개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커다란 괴물.
흔들거리는 행동을 하며 삽시간에 다가와 커다란 철퇴를 내려치려 하니, 재력은 손을 뻗어 괴물의 공격을 튕겨내고는 곧바로 옆에 있는 것들을 주워 들었다.
염력의 첫단계는 돌맹이 부터 시작하면서...
'건물의 잔해...!'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건물의 잔해.
부숴진 자동차.
그리고...
'낡은 검!'
버려져 있던 날붙이 따위.
무게와 담긴 마력에 따라서 들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는 염력의 특성상.
지금 재력이 할 수 있는 한계치의 무기를 뽑아 들어 적에게 날리기 시작했다.
염력으로 밀려난 괴물이 균형을 잡고 있을 찰나의 시간동안 일어난 일이었고
재력이 휘두른 그 수백조각의 날붙이 들은 일제히 괴물에게 날아가 그의 몸을 사정없이 꿰뚫기 시작했다.
"쿠어어어!!!"
꿰뚫리는 만큼 회복되고 재생 되어간다.
"크윽...!"
재력에게 있어서는 마치 천적과도 같은 상대.
차라리 그 '방패든 여자' 처럼 방어력만 높은것이라면 방어를 관통할 날카로운 것을 날리면 되었지만 저렇게 무식하게 크고 엄청난 속도로 재생을 하면 재력의 날카로움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
'아냐... 쓸모없지 않아! 더 많이... 더 빠르게 한다면...!'
하지만 재력은 그정도로 포기하지 않는다.
더 빨리. 더 많이...!
들어올리는 물건의 갯수를 늘린다.
"크에엑!"
재력이 염력을 사용하는 동안 검은 마법소녀의 화살이 끊임없이 괴물을 견제하며 폭음을 내고,
튀어오른 모든 파편 따위는 재력이 붙잡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마법이라는 것은 마력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마력은 정신력이기도 하며 체력이기도 한 것이기에 있는 모든 힘을 쥐어 짜내기 시작한 재력은 자신이 상상한 대로..
"으아아앗!"
파편을 만들어낸다.
수백, 아니 수천 조각의 날붙이 돌맹이. 파편. 붙잡아 휘두를 수 있는 파편을...!
"간다아...!"
그리고 재력은 자신이 공격할 것이란 신호와 함께...
'나리는...!'
나리가 무사한지.
나리는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같이 외부세계로 나오게 된 나리는 지금 어떤 위협에 맞서 싸우고 있는지.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려 고개를 돌린 순간.
"앗... 어, 어딜 만지시는거에요!?"
"아니... 잠깐... 밀어내지 마 나리! 그러니까 너는 마법을 쓸때에 자세가... 이 쪽 엉덩이를..."
"그러니까 만지지좀 마시라니까요!?"
"어차피 너도 공범인건데..."
"제, 제가 알아서 할께요! 배운대로 마법쓴다구요!"
"어깨는 좀더 피고...! 허리는... 젠장! 어제 간식을 안먹은건 아니었겠지? 넌 여전히 너무 말랐..."
"제발 아무데나 만지지좀... 아앗♡ 읏!"
"소리는 자연스러운 거니까 참지 않아도 된다. 자, 엉덩이는 좀더 집어넣고. 연상을 시작해!"
'뭐야 저 상황?'
보인것은 나리.
그리고 카론.
그리고 카론과 나리가 하하호호 웃으면서.
필사적인 상황임에도 여유를 잃지 않고 나리의 몸은 더듬어지면서,
나리는 그것이 싫다며 말하는 듯 해도 강한 저항은 하지 않는... 그런 상황...!
"저게 지금..."
"야! 주재력! 빨리 안쏘고 뭐해!!"
"아..네...!"
그 순간 재력이 들어올렸던 잔해의 절반이 바닥에 떨어졌다.
콰아아앙!
그래도 괴물은 쓰러졌다.
절반으로도 충분했기에,
지칠대로 지쳐있었기에...
꽤 장시간의 싸움에서,
본래라면 이기기 힘들었던 치열한 싸움을 극적으로 승리해낸 것이다.
다만 재력은...
"좋아! 잘 했다 나리! 역시 마법 머리는 좀 되는 편이군! 이 지팡이를 잘 쥐고 있는게 좋을거야! 내가 했던 말 잘 생각하고!"
"아, 알았으니까 말걸지 마세요!"
투닥거리고 있는 나리와 카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뭐야 저 두 사람... 언제 저렇게... 친해진거지?'
어느덧 서로에게 스스럼이 없어진듯한... 두 사람,
얌전하고 순하기만 했던 나리가 다시 거친말을 내뱉으면서도 조금씩 웃는 표정. 재력이 한번도 보지 못했던 그런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는...
그런 두 사람을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