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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화 〉 [최나리 (2)] (104/112)

〈 104화 〉 [최나리 (2)]

* * *

"후하하핫! 자! 저는 광전사님의 자객입니다! 지금부터 당신을 죽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상대를 재력이 바라보고 있다.

재력이 보고 있는 사람은 커다란 방패를 쥐고 있는 여성이었다.

그녀의 모습은 뭐라고 해야 할까,

아름다움을 빼다가 박은 그러한 느낌.

왜 있지 않은가?

가끔가다가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았나?' 싶은 정도의 재능같은걸 가진 사람 말이다. 아니면 갑작스럽게 너무나도 달라졌다던가 하는 그런?

그녀는 그런 느낌이었다. 갑자기 엄청난 '아름다움'이라는 재능을 얻은 사람인것처럼 빛나고 있었고, 본인은 또 그것을 가꾸고 있었으며, 거기에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겸손은 잃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

꾸미는 것을 좋아하되 뽐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싸움에 임하는 한편, 멋짐이나 보이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타입의..

뭐 그런것.

재력이 느끼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양의 정보였겠지만, 아무튼 그녀는 그런 인상을 주고 있었다.

베일에 쌓인 광전사의 자객이라 자신을 지칭하는 방패든 여성.

인근 마물들을 쉽게 쓰러트릴 수 있게 됨으로 인해서 초고속 성장에 점차 방해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만난 그녀는...

"후우... 좋아. 지켜봐주세요 검마님."

재력이 다시금 자신이 처한 상황. 그리고 싸움과 성장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어, 그래 열심히 해."

"네!"

재력이 달려나갔다.

방패든 여성과 싸우기 위해서, 그녀의 강력한 방어력을 뚫을 수 있게 되기 위해서 치열한 싸움의 시작일이었다.

* * * *

하루,

재력은 그 방패든 여성과 수시간을 싸웠다.

아니, 사실은 이게 정말 '목숨건 싸움인가?' 싶어 했을 정도로 철저하게 배분된 싸움시간과 쉬는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아무튼 계속 그렇게 싸웠다.

"제법이네요!"

방패든 여성은 지칠줄 몰랐고,

또 그녀의 굳건한 방어는 깨어질줄 몰랐다.

"절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더이상 전진할 수 없어요. 자! 쉬는 시간이 끝났습니다! 다시한번 싸우죠! 저도 '훈련'을 해야 하니까! 그리고 합숙소로 돌아가서 노래 경연 해야 되거든요!"

그런 그녀를 넘지 않고서는 재력은 이곳에 정체되어 있을 뿐이었으니,

재력은 그런 그녀와 꽤 치열하게 싸웠지만, 방어도 못뚫고, 그녀가 이따금 쏘아내는 반격에 맞고 쓰러지는 것만 반복했을 뿐,

결국에는 결판을 내지 못하고 다음날 까지 와버리고 말았다.

'윽, 너무 강해. 역시 내가 너무 약한 탓인가?'

재력은 실망했고, 그렇게 그날은 숙소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게 바로 다섯째 날의 시작이었다.

...

이른 아침,

마물들이 날뛰는 밤이 아닌 이른 아침에 외부세계에 마련해준 숙소로 돌아온 재력은 패배의 아픔에 속이 쓰리긴 했지만 나리를 다시 만날 생각으로 조금 설레인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그 여자를 만나기 전에 싸웠던 상대에 대해서? 아니면 자신의 염력이 얼마나 대단해졌는지? 아니면 자신이 가지게 된 새로운 무기에 대해서?

그것도 아니면 이번에야 말로 진도를 나가볼까, 그녀와 손을 잡고 황폐한 거리를 걸으며 웃고 떠드는것도 어떤 낭만이 있어 좋다고 생각하는 참이었던 재력이다.

계속된 전투에 지친것반, 그런 행복한 상상의 나래와 곧 현실이 될 일들을 생각하는 것을 반.

그렇게 조금 무거우면서도 가벼운 발걸음을 걸어 나가기 시작한 재력이다.

하지만 그런 재력에게 보인 광경은...

그런 재력의 기대감과는 달리, ... 무언가 다른 모습이었다.

외부세계에 마련된 임시거처,

그곳에서 재력이 본 것은 그 임시거처의 한 켠에서...

"나리야."

"자, 잠깐만요! 제가 할께요! 제가 할 수 있어요!"

"그래? 그럼 이걸 이렇게 잡고... 그래! 잘 하는군! 손은 좀더 모으고... 이렇게해라!"

"앗,네!"

나리와 카론이 서로 어깨를 맞댄채로 무언가 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옆에 냄비같은 것이 있고, 앞에는 도마가 있으며, 두 사람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기에 함께 요리라도 하는 듯 했지만,

실제로는 베이킹 중이다.

물론 그거랑은 별로 상관 없이.

"나, 나리야."

재력의 머릿속에는 안좋은 기억이 스쳐지나가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정수와 닮은 이상한 사람.

자신을 지켜주고 있긴 하지만, 자신의 소중한, 연인과도 같은, 그렇게 되고 싶으면서도 꼭 지켜줘야 하는 나리와 저렇게 달라붙어 있으면

아무리 그래도 이상한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재력은 숨을 들이켰다.

호흡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흥분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이것은 성적인 흥분이 아니라,

분노와 비슷한 감정으로써 일어난, 짜증과 과거의 트라우마가 자극되어서 일어난 흥분이었으니..

"나리야!"

이건 조금 과민하게 반응하게 되어버리고 만다.

'난 널 위해서 지금까지 열심히 훈련하고 왔는데!'

딱히 나리를 위해서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렇다고 치기로 했다.

'내가 얼마나 무서운 적이랑 싸우고 왔는데!'

사실 싸우면서 흘끔 흘끔 보일랑 말랑 하는 속살과 스쳐지나가는 머리칼의 향기같은걸 맡으면 은근히 기분 좋게 되기도 하긴 했지만, 뭐 지금은 무서운 적이라 치기로 했다.

"뭐하는거야!"

재력은 그런 생각으로 성큼성큼 나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채었다.

"꺅?!"

한참 카론과 즐겁게 이야기 하고 있던 나리는 갑작스럽게 재력에게 낚아 채져서 균형을 잃어버릴 뻔했지만,

재력은 그런건 신경쓰지 않고 나리의 팔목을 꽉 잡은 채로, 나리쪽은 보지도 않고, 카론을 아주 적대적이고 불쾌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하고 있었던 겁니까?"

일단은 존대말을 유지한다.

재력은 짜증에서 시작했지만 이제와선 분노가 되어버린 감정을 담아 적개심을 표현했지만, 그래도 자신을 도와준 검은 마법소녀의 동료이자 상사인 사람에게 하는 최소한의 예의.

였지만,

그럼에도 그 분노가 어딜 가는건 아니었기에, 인상을 팍 쓰면서 그를 보았다.

그의 웃음

카론의 웃음은 이죽거리는 듯 했고 자신을 비웃는것 같다.

정수와 닮은 그 모습.

물론 정수일리는 없겠지만, 그와 가까운 모습.

그러니 지켜야지,

나리만큼은... 나리 까지는...!

"아니? 별로 아무것도 안했는데?"

"아, 아파 재력아.."

"..."

나리가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를 내며 재력의 팔을 잡아 자신의 손을 빼내려고 하고 있음에도 재력은 한동안 그 상태를 유지했는데,

금방..

"재력아!!"

"앗!? 어...! 엇?"

"놔줘!"

"아 미안...!"

소심하던 나리가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재력은 조금,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 재력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황이 재력의 생각보다 달리, 조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라?"

먼저 나리는 드디어 재력의 손에서 벗어나 자신의 팔목을 매만지며 다소 날카로운 눈으로 재력을 보고 있었는데,

한 순간 나리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던 것은 그 때 검은 마법소녀의 집에 있을때 찾아왔던 아지라는 소녀의 이야기. 재력이는 폭력적이고 한 소년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간 악한사람이라는, 학교의 왕으로 군림하던 시절의 재력의 모습.

섬뜩한 것이 나리의 등줄기를 타고 올라와 조금은 다르게 보였겠지.

거기에 재력의 뒤를 따라 왔던 검은 마법소녀는 아차 싶었는지, 혹은 재력이 무슨 일을 벌이나 걱정되었는지 다급히 와서는 카론의 옆으로 다가가고 있던 중이었고, 또 재력을 경계하는 중이었다.

카론?

그는 여전히 높은 위치에서 자신을 내려다 보는 듯한 모습인 채였으니,

그 한가운데에 놓여져 있는 재력은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너, 왜 그런거야 재력아."

"그래, 왜 그렇게 화가 났어?"

"영양이 부족해서 그러냐? 보통 화가 많을때는 배고파서인 경우가 종종 있거든?"

"... 아니, 나는..."

"그냥 베이킹을 가르쳐주고 있었을 뿐이야, 그 겸 해서, 나리가 배우고 싶다기에 간단한 반찬 같은것도 겸사겸사 알려주는 중이었고, 잼 만드는 법도 알려주고 있었던 것 뿐인데 말이야!"

"그러니까."

그래,

이건 안좋은 일.

나쁜 일.

재력이 혼자 급발진 해서, 화목하던 분위기를 산산조각 내려고 할 뻔한, 눈치없고 아둔한 일.

질투 때문이었을까? 트라우마 때문이었을까? 그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

재력이 잘못했다.

"죄, 죄송합니다."

재력의 잘못이다.

"그, 저기 너무 흥분해서..."

"그래, 진정좀 해라, 예민한것 같은데. 싸움은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으니 항상 차분함을 유지하는게 좋아."

질투 따위에 흥분해서는,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님에도 소리를 질러버린 재력의 잘못.

목숨을 위협받는 지금 나리를 지키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1분 1초라도 강해져야 하는데 질투로 인해 그녀를 묶으려고 했던 재력의 잘못.

그래서 재력은 사과했다.

고개 숙이며 조금은 떨면서,

뭔가, 속에 뜨거운 것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말이다.

"... 난 방으로 들어갈께. 카론님, 저는 공부방에서 기다리고 있을께요."

"그래, 금방 가지"

나리는 다소 차가운 톤으로 그렇게 말하며 공부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엄... 그래, 너 너무 흥분하지 말고, 그리고 카론한테 대들려고 하지 않는게 좋을껄? ... 아무튼 힘 내라."

검은 마법소녀는 고개숙인 재력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나리를 뒤따라 들어갔다.

흘끔 카론과 검은 마법소녀의 시선이 겹쳤지만 재력은 보지 못했다.

그리고 카론 마저 영 탐탁치 않다는 듯 그 자리를 떠나니,

재력은 홀로 남아서..

'뭔가 일어나고 있는것만 같은...'

불안한 생각을 시작했다.

요컨데,

상황을 악화시키기 시작햇다.

* * * *

꺄르륵­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같았다.

재력은 옆 방에서 돌아 누웠다.

귀를 막았다.

­"크하핫! 이 문제 녀석 벌써 부터 온 몸이 구석구석 까발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겠나!"

­"앗...! 네, 넷! 아, 알것같아요!"

­"풀이방법을 조금만 바꿔도 정답을 질질 싸게 되어버리지! 큭큭큭! 자, 이제 다음 문제의 중요힌 부분을 천천히 자극해서 정답을 분수처럼 뿜어내게 만들어 주도록 하겠다!"

­"읏...! 네...! 저, 정말 굉장하세요...!"

­"자, 이 문제는 어떻지? 네 입으로 한번 말해봐라 최 나리!"

­"아앗... 크, 크고... 아름다워서..."

­"큭큭큭... 무서워 할 필요없다. 그저 숫자가 클 뿐이니까, 곧 네 안(지식)에 사정없이 쑤셔넣어지겠지만!"

­"하앗...읏?! 더, 더이상은 안들어와요...! 너, 너무 굉장... 읏...♡"

­"크하하! 자! 한번 스스로 해봐라! 이 문제위에 올라타서 음탕하게 펜을 흔들어봐랏!"

­"넷! 여, 열심히 해볼께요옷♡"

옆방에서 시끄럽게 들리는 문제푸는 소리.

마법의 이론이니 뭐니 하는, 자신은 이해하지도 못할 그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나리와 카론이 즐겁게 이야기 하는 소리.

듣고 싶지 않다.

"..."

솔직히 짜증이 치밀어 오르며 질투심이 폭발할 것 같았다.

앞으로 10분 후면 또 외부세계에서 사냥하기로 한 시간.

앞으로 하루 밤은 또 바깥에서 보내는 동안 카론과 나리는 저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겠지.

'속이... 너무 안좋아..'

속이 너무나도 안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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